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21화
221화 흘러가는 시간
일 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진다.
수도에서 언데드 사태가 일어난 지도 어느덧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빠, 여기!”
“욘석아, 뛰지 말라고 했잖느냐.”
“이거 엄청 커!”
“허허, 녀석도 참.”
분수 앞에 세워진 거대한 기둥이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한 아이가 기둥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에드워드…… 가웨인?”
수많은 이름 중 하나를 읊은 아이가 뒤에서 다가온 아빠에게 이게 뭐냐는 듯 물었다.
“훌륭한 기사님의 이름이다.”
“우와, 기사님!”
“그래. 제국을 지켜 주신 고마운 분들이시지.”
“나도 커서 기사가 되고 싶어!”
반짝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빠는 쓰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아이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사내를 바라보고는 아빠에게 착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빠. 저 형도 기사님이야?”
“……그래. 그렇다더구나.”
아이의 시선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바라본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한 얼굴의 청년은 전신에 무기를 두르고 있었다.
가벼워 보이지만 이음새만 보더라도 장인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가죽 갑옷.
그 사이사이에 투척용 단검 같은 냉병기가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등 뒤로 기다란 쌍검과 단창이 묶여 있었고, 양 허리춤에는 작달막한 도끼도 달려 있었다.
“저 많은 무기들은…….”
“설마?”
“기사 알렉스다!”
그런 특이한 차림새 때문인지 사방에서 시선이 모여들었다.
기사 알렉스.
어느 날부터 클레이튼 가문의 차남과 함께 다니기 시작한 청년은, 지난 전쟁 이후 정식으로 기사 서임을 받았다.
‘평화롭구나.’
알렉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모를 따라 산책을 나온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갈 줄을 몰랐고, 사람들의 발걸음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으며 걷던 알렉스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이런 나날을 꿈꿨었는데.’
고블린 하나만 출몰해도 난리가 나는 시골 마을의 순박했던 청년은 4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신도 몰랐던 무의 재능이 꽃피고, 여러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성장하여, 어느덧 자신에게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해졌다.
예전이라면 이런 시선에 우쭐했을지도 모른다.
당장 클라인의 곁에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클레이튼 가문이 가져다주는 명성이 알렉스의 어깨를 올라가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알렉스는 더 이상 우쭐해하지 않았다.
자신은 강해졌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자신이 존경하는 이들의 발끝에도 미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갈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알렉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도 많이 바뀌었구나.’
현재 제국의 수도는 대륙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되었다.
본래에도 제국의 수도에서 산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동경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해졌다.
노력만 한다면 기회가 주어지는 땅.
국민이 직접 나라의 흥망성쇠를 정할 수 있는 제국의 수도.
그러나 처음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다.
작년만 해도 아직 길거리에 지워지지 않은 혈흔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희망을 안고 수도에 정착하기 위해 찾아온 이주민들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새롭게 황제로서 등극한 올리시아는 수도의 복구를 최우선적으로 실행시켰고, 다양한 행사를 이어 갔다.
이주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노력은 효과를 봤고,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나가며 수도에 자리 잡기 위해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곧 돈이 되는 법.
이걸 빠르게 파악한 몇몇 중앙 정치 귀족들이 다양한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렇게 한 귀족 파벌이 정책을 시작하면서 돈을 쓸어 담기 시작하자, 다른 파벌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면서 경제가 빠르게 활성화되었다.
이는 분명 몇 년의 시간만 흐른다면 과거의 영광을 뛰어넘을 속도였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잠시 빠져 있던 상념에서 깨어난 알렉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왔지만, 자신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알렉스.”
“아!”
그때, 그런 그의 뒤에서 로브를 쓴 누군가가 다가왔다.
무려 5품의 엑스퍼트가 된 알렉스도 조금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실력자.
“셰인 님!”
“늦지 않게 왔군.”
로브 아래로 보이는 로즈베리빛 눈동자.
자신이 모시는 클라인만큼이나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었다.
“준비는?”
“저는 언제든 출발해도 상관없습니다!”
“괜찮겠나? 그래도 수도에 제법 오랜만에 왔을 텐데.”
알렉스는 자신에게 묻는 셰인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처음 그가 봤던 셰인의 눈동자는 무저갱과 같았다.
지금이라고 그 기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사람을 물건처럼 보던 시선은 많이 사라진 듯싶었다.
적어도 몇 년 전의 셰인이었더라면, 자신의 의사를 묻는 것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 광장만 봐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활기가 넘치더군요.”
“일이 잘 풀린 덕분이지.”
초장에 지방 영주들을 견제시키는 전략은 아주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지금 당장도 부정부패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개가 일어나면 상대 파벌 측에서 3~4개는 잡아내는 청정함은 유지되고 있다.
하나의 이권이라도 제대로 손에 쥐어야 다른 파벌들로부터 우위를 가지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 달에 몇 번씩 정치 귀족들이 갈아치워지더군.”
“하하…… 서로 물어뜯기 바쁘다는 거군요.”
“그래.”
오스튼은 이런 상황을 예측했고, 적당히 귀족들을 풀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너무 몰아붙였다간 파벌이고 뭐고 상관없이 하나로 합쳐지는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둘은 길을 걸으며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텄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지?”
“하하, 매일 똑같습니다. 클라인 님과 대련하고, 홀로 남는 시간에는 모험가 길드와 던전에 들어가면서 실전 감각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오러도 익숙하게 다루는 알렉스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전쟁 당시에도 부상을 거의 달고 살다시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도 그랬었지.’
전생의 알렉스는 용병의 밑에서 자란 탓인지, 상당히 투박한 전투를 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덕분인지 항상 전투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는 했다.
‘목숨이 위험한 전투법이긴 하지만, 실력 향상만큼은 확실하지.’
물론, 그런 알렉스의 목숨을 책임지는 클라인이 곁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클라인은 어떻게 지내지?”
“편지를 주고받지 않으셨습니까?”
“매주 주고받기는 한다만.”
하지만 그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클레이튼 가문 영지의 근황이나, 혹은 셰인의 안부를 묻는 것 정도.
그렇기에 특별하다 싶을 무언가가 오가지는 않았다.
‘숲의 왕을 상대했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군.’
제국 수도에서의 일이 너무도 바쁜 탓에 클라인을 따로 마주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셰인이었다.
듣자 하니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디라일라나 아르티아, 벤자민은 각자의 깨달음을 얻고 지금까지 은거한 상태였다.
‘깨달음을 핑계로 귀족들의 회유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무언가를 얻었음은 확실했다.
그러나 클라인은 달랐다.
따로 깨달음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지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이후로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 있는 모양이군.”
“예. 가끔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데 그때 보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 셰인 님?”
알렉스의 말에 셰인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셰인은 클라인의 성장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어느 정도 길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클라인의 성장은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클라인의 성장을 지켜볼 때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만 그걸 여태까지 내버려 둔 이유는, 그게 오히려 클라인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발목을 잡고 있는 건가?’
혹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일단 만나 봐야 알겠군.’
본래 알렉스와 만난 이유는 황실에서의 일과 관련해 가문과 나눌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주체가 바뀌었다.
아무리 황실의 일이 중요하다 한들, 인류의 희망인 용사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 * *
오랜만에 찾아온 클레이튼 가문의 영지는 가문의 명성이 바뀐 만큼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진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이전과 별다를 바 없는 거리.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래 보이는군.’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수도와 비교해서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다.
전에는 없던 다양한 시설들이 추가됐고, 이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무기를 차고 다니는 용병 혹은 모험가들이 곧잘 보였는데, 이는 그만큼 영지의 경제가 활성화되었다는 의미였다.
‘마석 광산 덕분이겠군.’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나오는 메자이아 대수림산 마석들.
클레이튼 가문은 이 마석의 판매 수익을 재투자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쌓았다.
제국 수도 복구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퍼부었음에도, 지금의 클레이튼 가문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가문.
입구 앞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셰, 셰인 도련님?”
로드윌.
4년 전. 알렉스가 있던 마을에서 자신과 함께 어둠의 정령과 맞섰던 기사였다.
그동안 가문으로 돌아올 일이 많지 않았던 덕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정말 도련님 맞으십니까?”
“그래, 맞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뭣들하고 있어! 문들 열지 않고! 셰인 도련님께서 귀가하셨다!”
그런 로드윌의 격렬한 환영과 함께, 셰인은 실로 오랜만에 가문의 문턱을 밟았다.
* * *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이튼 가문의 가주, 로웰의 얼굴은 늙기는커녕 보다 젊어진 듯 보였다.
“어서 와라, 셰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가주님.”
“……그래. 너도 무탈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가족끼리 있는 장소에서도 셰인이 가주라 부른 탓인지, 로웰의 얼굴에 잠시나마 씁쓸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많이 바쁜 것 같더구나.”
“가주님만 하겠습니까.”
셰인의 말은 딱히 겸손 같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 로웰은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메자이아 대수림의 마석 광산 산업은 당연하고, 그를 기반으로 여러 곳에 발을 걸쳐둔 덕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였다.
특히 최근에는 수도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탓에, 보통 바쁜 게 아니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너와 클라인이 아니었다면 중앙의 멍청이들에게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두 분의 폐하께서 잘해 주고 계신 덕분이지요.”
“수도에서도 소문이 파다하더구나. 너와 그 오스튼이라는 청년이 제국의 실세라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목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요.”
셰인의 농담 아닌 농담에 로웰도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후작위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허, 고맙구나. 자식을 잘 본 덕을 보게 됐구나.”
후작위.
이번 제국의 수도 사태 이후, 수도의 복구에 가장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클레이튼 가문은 두 황제의 명으로 후작가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제국에 후작이 탄생한 것은 그야말로 오랜만이었던지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졌더랬다.
“아무튼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가서 좀 쉬거라.”
“예. 가주님.”
그렇게 홀로 남게 된 로웰은 셰인이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정말 다 컸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부자 관계는 쉽게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올바른 관계일지도 모르겠군.’
셰인과 클라인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앉게 된 로웰은, 이따금 생각을 정리할 때면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가족보다는 일을 중시하며, 그마저도 셰인에게는 대부분의 관심을 끄고 살았던 자신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셰인과 하하호호 웃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애초에 나와 녀석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올바른 부자 관계에 정해진 답은 없다.
서로 대화의 수가 적다 하더라도 결국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가. 로웰은 그 정도만 기억되더라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셰인도 비슷할 테지.
그렇게, 어느새 홀로 나아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로웰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식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것을 치워 주는 것뿐이었으니.
* * *
오랜만에 가문으로 돌아오자, 셰인의 직속 고용인인 마리아가 그를 맞이했다.
4년 전에는 아직 앳된 티가 제법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완숙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
“도련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음. 오랜만이군. 나야 보다시피…… 너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
그러면서 셰인은 마리아의 왼쪽 손에 끼어 있는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헤헤…….”
그러자 마리아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나저나 클라인은 어디에 있지?”
“아마 지금 시간이면 연무장에 계실 거예요.”
“바로 가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변화한 영지와 다르게, 저택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연무장에 도착했을 무렵.
한쪽에 입구로부터 등을 지고 앉아 있는 클라인의 모습이 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얼굴.
그러나, 클라인의 마력에 대한 분석이 끝난 셰인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