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23화
223화 진혈의 밤 (1)
“최근 실종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실종자?”
“예. 문제는 그게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안은 아니군.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온 건 아닐 텐데?”
식물로부터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엘프들의 정보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오베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밝히지 못했다고?”
“예. 식물들의 기억이 읽히지 않습니다.”
“이런 사태가 이전에도 있었나?”
“……예.”
그런 오베른의 얼굴에는 옅은 공포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뭐였지?”
“우리 엘프가 식물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자연의 마력을 다루기 때문이지.”
“맞습니다.”
인간들이 쓰는 마력과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마력의 소유권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연의 마력을 체내에 쌓는 것으로 자신만의 마력을 만들지만, 엘프들은 자연에 있는 마력 그 자체를 따로 가공하지 않고 사용한다.
이는 그들이 자연의 사랑을 받는 종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자연에게 사랑을 받는 종족은 우리 엘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음. 지하인이 비슷하긴 하지.”
대표적인 예로 디라일라가 있지 않았던가.
나카르 사막에서 보았던 지하인들 또한, 디라일라처럼 대지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 외에도 대표적인 종족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길 바라야겠군.”
“……흡혈귀. 그것도 밤의 구애를 받는, 밤의 주인. 진혈의 흡혈귀입니다.”
* * *
클라인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난 이후였다.
“클라인. 눈을 떴구나.”
“아, 형님!”
이틀 동안 푹 잔 덕분인지, 클라인의 안색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날뛰던 마력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황.
클라인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저 때문에 고생을 하셨다고요…….”
“아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
“후우…….”
그러면서 클라인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형님. 몸이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야 멀쩡하지.”
“다행입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그러나 클라인은 진심으로 셰인의 몸 상태를 걱정하듯,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심장이 있는 가슴을 향해서.
“뭘 본 거냐.”
“…….”
셰인의 물음에 클라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형님께는 뭘 숨길 수가 없군요.”
“너 얼굴에 다 티가 나니까 그런 거다.”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클라인은 자신의 황금빛 마력을 손에 일으켜 보았다.
“황성에서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쓴 자와 싸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긴 전투의 마지막에, 그자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는 것까지는 성공했습니다만.”
“…….”
“부서진 가면의 너머에 형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으로.”
결국 클라인이 본 것은, 다른 시간선에서 자신과 질투의 자아가 벌였던 전투였다.
‘이래서였군.’
셰인은 그동안 클라인의 성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무명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셰인 스스로의 힘도 중요했지만, 인류 마지막 희망인 클라인의 성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클라인의 성장은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지만, 클라인의 배움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전생에는 저 정도의 무위를 지니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능 자체는 그때와 다를 바 없을 테지만…….
‘겪는 상황이 다름에도 당시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하고 있었지.’
전생의 클라인은 무명의 침공 이후 수많은 동료들을 잃게 된다.
개중에는 가문의 사람들도 있었고, 아카데미에서 사귄 친구들도 있었다.
하나 모두, 무명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슬픔을 겪었기에 클라인은 용사로서의 재능을 꽃피워 무명 최대의 난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 클라인은 전생과 다른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성장이 눈부시도록 빨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고 있었을 테지. 다른 시간선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영향을.’
비록 동료의 죽음을 곁에 둔 것은 아니었으나, 클라인은 여러 위기를 겪었다.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셰인과 떨어지기도 했고.
아룬비다에서 생에 첫 전쟁을 겪었다.
수도 테러 사태 당시에는 알렉스가 사경을 헤맸으며.
작년 수도 사태 당시에도 수많은 기사들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러한 경험들이, 아카샤의 신격과 연결되어 있던 클라인에게 무의식적으로 다른 시간선의 영향을 받게 했을 터.
‘그런 상황에서 직접 아카샤와 연결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니.’
셰인은 클라인의 위기를 자신의 서투른 판단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했다.
‘더 신중했어야 했나.’
그런 짧은 후회도 잠시.
지금은 그런 후회에 기댈 때가 아니었다.
“클라인. 잘 들어라.”
“예.”
“너도 이번에 겪었겠지만, 네 마력은 평범한 마력이 아니다.”
“……언젠가 설명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지금인 것 같구나.”
세르데타인 방어전 당시 셰인은 클라인의 마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신의 힘을 전장에 현현시켰었다.
“저도 그때를 떠올려서 해 봤습니다만…….”
“어땠지?”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을 머무르던 도중, 아까 말씀드린 이상한 풍경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검으로 셰인의 가슴을 꿰뚫은, 다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장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봤던 장면은 너무도 생생해서 도저히 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네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네 마력에 깃든 힘의 주인과 마주해야 할 날이 찾아올 거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이르다.”
“…….”
“그때 말씀하셨지요. 신이 선택한 용사의 힘이라고.”
“그래.”
“도대체 형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
셰인은 클라인의 눈을 바라봤다.
마치 바다가 깃든 것처럼 푸른 눈동자는,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셰인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 클라인에게 알릴지 말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셰인은 여태까지 자신의 봤던 역사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고 진실을 알려 줄 사람도 제법 생겼으나, 여전히 셰인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건 내가 들고 가야만 하는 짐이다.’
신격에 대한 지식과 함께 시간이 가진 특성에 대해 분석해 왔던 셰인은 이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서가 말했던 붉은 시간선.
바로 지금의 시간선은, 다름 아닌 셰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가 셰인을 기점으로 새롭게 만든 시간선.
그렇기에 자신만이 아는 본래 시간선의 정보를 누군가에게 함부로 넘겼다가는, 그 누군가는 필시 셰인과 깊게 연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셰인은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종착점은 오로지 자신 홀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
다른 누군가를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클라인도, 아나스타샤도. 그 어느 누구도.
그렇기에.
“지금은 알려 줄 수 없구나.”
“형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셰인을 바라보는 클라인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자신을 믿지 못해서 안 알려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려 주지 않는 셰인의 얼굴에서는, 너무도 큰 수심이 느껴졌기에.
그 무게감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 더 이상 묻지 못했을 뿐이다.
“제가 형님이 가진 짐을 함께 짊어질 수는 없는 겁니까?”
“고맙다, 클라인.”
그러나 셰인은 다시 한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아무런 고저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클라인은 그 목소리에서 처절함을 느꼈다.
지금은 그저, 고맙다는 셰인의 말이 더없이 진심임을 깨달은 것으로 클라인은 수긍해야만 했다.
* * *
별이 수놓은 밤하늘을 유유히 거니는 구름이 달빛을 숨겼다.
흡혈귀 소녀. 에블린은 그런 밤하늘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마침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올리시아가 그런 에블린을 발견했다.
“에블린. 오늘은 웬일로 밖에 나와 있네요?”
“응.”
“표정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표정? 난 다를 거 없는 거 같은데.”
“후후. 꼭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랍니다.”
방금도 여러 귀족들과 대화라는 이름의 진검승부를 하고 온 참이지 않던가.
그런 올리시아에게,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녀의 표정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게 분별이 가능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누군가요?”
“응.”
“흐음…….”
그러면서 올리시아는 에블린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흡혈귀라는 종족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게 없었지만, 참 무서운 종족이라고 생각됐다.
그동안 올리시아에게 어디 암습이 한 번도 없었을까.
황제가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여러 차례의 습격이 찾아오곤 했다.
심지어 독도 한두 번 들어 있던 것이 아닌지라, 올리시아는 물 한 모금도 조심스럽게 마셔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에블린에 의해 철저히 막히고 말았다.
모든 주동자가 피가 빨린 채로.
개중에는 마스터에 다다른 실력자들도 적잖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에블린의 손에 의해 모두 처리되었다.
‘어쩌면 새뮤얼을 그렇게까지 몰고 간 것은 셰인뿐만이 아닐 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런 식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올리시아는 에블린을 내심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샤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만요.’
이렇게 작고 귀여운 여동생이라니.
“에블린이 하는 말이니, 가볍게 넘길 수는 없겠죠. 셰인에게 전해 봐야겠어요.”
“아냐. 이미 왔어. 주인.”
“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폐하. 잘 계셨습니까.”
“하아…… 폐하라고 부르는 것치고는 행동은 영 아닌 것 같네요.”
황제의 침소에 이렇게 멋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올리시아는 짐짓 삐진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요?”
“에블린의 동족. 흡혈귀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셰인의 말에 올리시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당사자인 에블린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에블린.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군.”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였다.
* * *
“각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실종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요……?”
“아직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닙니다.”
고작해야 작은 마을에 청년이나 처녀들이 모습을 감추는 정도였다.
“흡혈귀라니…… 여태까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잖아요?”
먼 전설에나 존재했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걸까.
“아직까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무명에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에블린은 올리시아를 지키면서 여러 흔적들을 남겼다.
무명이라면 그런 흔적을 놓쳤을 리 없을 테니, 에블린의 존재는 진작에 파악했을 터.
‘애초에 아룬비다에 에블린이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전생에 무명은 이런 식으로 흡혈귀를 활용하지 못했다.
애초에 진혈의 흡혈귀는 고대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할 힘을 지닌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종족의 자부심이 높은 엘프들조차 한 수 접어 줄 수준이니, 그런 그들을 풀어 줬다간 무명에서도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그럼에도 풀었다는 건.’
시간을 더 끌어 볼 심산이라 파악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의문이긴 했어요. 무명이라는 자들은 인간으로도 구성이 되어 있지만, 개중에는 이종족도 있잖아요? 그들은 분명 던전에 봉인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해야 정상인데.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거죠?”
“아카샤의 대봉인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허점은 분명 존재하지요.”
“생명의 탄생 말인가요?”
아카샤의 대봉인에 허점은 이미 인류에게도 널리 퍼진 상태였다.
임산부의 뱃속에 있는 아이, 아직 알에서 부화하지 않은 이종족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은 던전 내에서 부활을 하고, 던전 내에만 있다면 여타 다른 동족들처럼 시간이 반복된다.
그러나 모든 성장의 가능성을 포기한다면, 던전 밖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현재 엘프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종족들은 그렇게 던전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흡혈귀들도 그런가요?”
“또 다른 허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신격이 깃든 물건이 있다면, 던전 밖으로 나오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아……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아마 그럴 겁니다. 여태까지 나온 적이 없었으니.”
아직 나온 적도 없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올라왔으나, 지금 할 질문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걸 쉽게 풀어 주지도 않을 터이고.
“아무튼, 대책이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오스튼을 부르도록 할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