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28화
228화 진혈의 밤 (6)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그 가운데 흡혈귀에게 영혼을 빼앗긴 구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과 창, 혹은 갈퀴나 낫 따위들 들고 다가오는 구울들.
“······많아.”
“이 도시가 전부 함락되었군.”
기감에 잡히는 구울들의 수만 해도 오천이 넘어갔다.
작은 도시의 인구수와 거의 맞먹는 숫자.
“귀찮게 됐군.”
저들을 죽이는 일이야, 셰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영혼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
‘이들을 죽여 봤자 남는 게 없어.’
딱히 전략적으로 큰 위협이 되는 이들은 아니었으나, 이런 식으로 영혼을 제압당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면 이후 인류 간의 협력은 물 건너갈 터.
무명과의 전쟁에 방해가 된다.
‘잘도 머리를 썼군.’
어찌 됐든 등장만으로도 인류의 연합에 방해가 되는 흡혈귀들을 풀어 버린 이는 나태일 터.
셰인은 낮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봐, 머저리. 언제까지 숨어서 그렇게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이지?”
이지를 상실한 구울들을 향해 셰인이 말하자,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
그 모습을 지켜 본 아네이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런 말에 움직임을 멈춘 것일까?
“그 고결한 고대의 종족이라는 녀석이, 힘도 쓰지 못하는 인간들로 위협하다니. 이제 보니 신중한 게 아니라 겁쟁이일 뿐이었군.”
누가 듣더라도 가벼운 도발에 불과했지만, 둘을 포위하기 시작한 구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놓고 한다는 짓이 이런 수준이라니. 이러니 아카샤에게 봉인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
대놓고 들으라는 듯 얘기하는 셰인의 말에 아네이스가 그를 어처구니없는 눈길로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너무 뻔한 도발이 아닌가.
고대부터 살아온 흡혈귀가 당할 만한 게 아닌…….
그러나.
[우습구나, 인간.]상대가 진짜 도발에 걸려든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놀라울 정도였다.
* * *
힌트는 제법 여럿 있었다.
고대의 흡혈귀는 신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 실종 사건을 고대의 종족들이라 해서 눈치채지 못 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흡혈귀들은 과거보다 지금 더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행보를 감춘다는 행위 자체가 치욕적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까진 셰인이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제국 내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어느 정도 적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분명 자신들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정작 실종사태를 제대로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는 오스튼도 인정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왜 놈들이 이런 방식을 택한 걸까.’
아직 거기까진 셰인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오스튼은 나름의 답변을 내놨다.
‘무슨 시골 청년처럼 보이는군요. 한참 철이 없을 때 말입니다.’
그리고 직접 아셔의 말을 듣던 도중, 셰인은 이러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만약 흡혈귀들 중 모두가 나태의 뜻대로 움직인 게 아니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흡혈귀들 중에서도 아카샤의 봉인을 뚫고, 무명이라는 수상한 집단과 손을 잡으면서까지 나오고 싶은 놈들은 어떤 녀석들일까?
‘비교적 나이가 어린 흡혈귀들이겠지.’
어떤 종족이든, 어리면 어릴수록 스스로의 힘에 취하기 쉬우니까.
그리고 그런 셰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습구나, 인간.]허공에서 귀족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스스로의 권위를 알고 있는 자가 말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숨어서 우습다고 말하는 게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다. 너희 족속들의 수준이 어떤지 알 만하군.”
이어지는 셰인의 도발에, 상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 좋다. 친히 내 네놈의 피를 마셔야겠다. 물에도 뜰 것 같은 그 주둥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군.]‘진짜?’
평소 적의 심리 따위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아네이스에게, 고작 이 정도의 도발에 넘어오는 흡혈귀는 그야말로 놀라운 존재였다.
잠시 후.
셰인과 아네이스는 느껴지는 기척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방금까지 셰인의 마법에 의해 쓰러져 있던 아셔가, 한줌의 핏물로 변하면서 또 다른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인간.”
차가운 달빛 아래.
피 웅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었다.
마치 눈처럼 창백한 피부는 금방이라도 핏줄이 보일 듯 투명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투명한 피부와는 대조되도록 붉은 눈동자가 유독 요사스럽게 빛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셨군.”
“후우. 신선한 피의 향기가 나는구나. 특히 너. 아주 맛있어 보이는 향기다.”
흡혈귀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아네이스였다.
“나? 왜?”
도발을 건 것은 셰인인데 왜 자신을 지목한단 말인가.
아네이스는 잠시 의아해하던 중, 아까 아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그러자 아네이스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어느새 뽑아 든 아네이스의 검 위로 새하얀 백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흡혈귀, 베네딕트는 제 눈앞에 선 두 인간을 바라봤다.
‘마침 잘됐군. 먹음직스러워.’
무명이라 소개한 녀석들의 조력으로 던전 밖으로 나오게 된 그는 억지로 봉인의 틈을 찢어발기고 나온 탓에 과거의 힘을 좀처럼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온전히 힘을 되찾으려면 무명에서 제공한 인공 던전에서 거주해야 했는데, 그렇게 생활하게 된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나 버렸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흡혈귀에게 1년은 찰나와도 같다지만, 베네딕트로선 그 시간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인근 마을에서 납치해 온 인간들의 피를 처음 마신 이후부터 조바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몇 걸음만 나간다면 신선한 공기를. 그리고 세상에 널리 퍼진 수많은 생명체들의 생생한 피 맛을 볼 수 있건만.
이내 조바심은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크기를 키워 나갔다.
그러던 중에 마을 옆에 붙은 소도시에 눈앞의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맛있겠다.’
강력한 영혼이 느껴진다.
남자로부터는 그 크기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여자에게는 더 없이 탐스러운 향기가 났다.
마치 여러 향신료를 섞은 냄새일까.
“이런 냄새는 일찍이 맡아 본 적이 없거늘.”
고대 시절. 백 년이라는 시간도 더 살아왔던 베네딕트조차 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맛있는 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네이스의 몸에는 수십 명의 영혼들이 합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쾌해.”
그런 베네딕트의 시선을 알아챈 것일까.
새하얀 머리의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순백색의 기운을 검에 두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오러라는 것인가.”
로즈베리 눈동자를 가진 사내의 도발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흡혈귀라는 종족은 신중하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해왔고, 당장 눈앞에 있는 여인의 오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진정 봉인 전과 같은 종족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구나.”
인간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시대. 즉, 고대에는 흡혈귀들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종족은 굳이 건들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마력도 다루지 못하고, 한 줌도 되지 않는 움막을 짓고 살아가는 게 바로 인간이란 종족이었으니까.
그들은 사방에 흩어져서 살았다.
숲에서도, 강에서도, 바다 근처에서도.
매일같이 목숨이 위험한 바깥에서 살아남고자 그들은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그런 비참한 종족이었다.
마치 땅속의 개미처럼 말이다.
“고작 그런 종족이, 감히 내게 적의를 내비치다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한 모양이다.
이에 베네딕트는 바닥의 피 웅덩이를 띄워 하나로 뭉쳤다.
점차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얄상한 레이피어.
피로 이루어진 레이피어의 손잡이를 잡은 베네딕트는 자세를 취했다.
“인간. 고대의 검이 무엇인지 진정 보여 주도록 하마. 영광으로 알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네딕트의 레이피어가 섬광처럼 찔러 들어왔다.
쐐액-!
달빛을 머금은 레이피어가 그대로 아네이스의 심장을 관통하려는 순간.
아네이스의 검에 의해 간단히 막히고 말았다.
“흡!”
베네딕트는 그런 아네이스의 검을 통째로 꿰뚫을 생각이었으나.
생각 외로 아네이스의 검은 그런 베네딕트의 레이피어를 막아 내고, 더 나아가 다시 한 줌의 핏물로 되돌렸다.
“호오.”
베네딕트는 자신의 손에서 사라진 레이피어의 흔적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마력의 형상을 취하고 있으면서, 마력을 흐트러뜨리는가. 제법 재미있군.”
“넌 별로 재미없어.”
동시에 아네이스가 달려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마력마저 불태우는 백염. 그런 백염을 머금은 검은, 방금 자신이 막은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듯 거침없이 쇄도해 들어갔다.
푸욱-!
그대로 흡혈귀의 심장을 관통한 백염의 검.
그러나, 흡혈귀는 뚫린 가슴을 보면서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제법 괜찮은 유희거리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로군.”
아네이스의 검을 붙잡은 흡혈귀가 반대편 손에서 소환해 낸 레이피어를 찌르고 들어갔다.
“······!”
동시에 아네이스는 그런 자신의 검을 미련 없이 놓고 자리를 피했다.
허나 공중에 떠오른 아네이스를, 레이피어의 빛이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이에 아네이스는 두 손에 백염을 일으켜 레이피어를 다시금 핏물로 만들려 했지만.
“어딜!”
허나 이미 봤던 능력에 당하지 않겠다는 듯, 레이피어는 일순간 피의 형상으로 돌아가 백염을 피해 내곤 다시금 가시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파앙―!
아네이스의 손에서 다시금 백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엔 화력을 갖춘 백염이었는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착지한 아네이스.
그렇게 한순간의 공방이 무승부로 끝나는가 싶은 순간.
베네딕트는 활짝 웃고 있었다.
핏빛 가시가 스치고 지나간 아네이스의 팔뚝에서 핏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