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29화
229화 진혈의 밤 (7)
흡혈귀 베네딕트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일단 조금이라도 피를 흘리기만 한다면, 자신의 승리가 확실했으니.
피의 종족이자 피의 주인, 흡혈귀.
그가 바닥에 떨어진 아네이스의 피를 향해 손을 뻗자, 마력에 반응한 혈액이 그대로 공중에 떠올라 베네딕트의 입으로 향했다.
“뻔해.”
베네딕트의 입에 아네이스의 혈액이 닿으려는 순간.
딱!
푸확-!
아네이스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베네딕트의 입에 들어간 혈액이 백염으로 타올랐다.
“크읏?!”
순식간에 입안에서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간 백염은 이내 베네딕트의 얼굴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베네딕트는 살갗이 타오르는 격통 속에서도 무표정하게 자신의 손가락 끝에 상처를 냈다.
푸슉-!
작은 생채기에서 나올 리가 없는 엄청난 피가 쏟아졌다.
이내 혈액은 한 자루의 검으로 변했고, 베네딕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을 검으로 베었다.
이내 백염에 의해 핏빛 검마저 타오르고,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자살……?”
“아니, 자세히 봐라.”
“……!”
어느새 잘린 머리로 모여드는 핏물들.
아네이스는 그 피가 이어진 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구울 하나가 천천히 미라 같은 모습으로 메말라 가고 있었다.
“흡수하는 거야?”
“혈액만 있다면 불사의 몸이라, 이건가.”
그 모습을 지켜보단 셰인이 혀를 찼다.
그러는 사이 몸이 복구된 베네딕트가 손뼉을 쳐 보였다.
“대단하군. 고대에도 이 정도로 마력을 섬세하게 다루는 종족은 흔치 않았다. 인간 주제에, 날 감탄하도록 만드는군.”
베네딕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과거, 신격을 다루는 자들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상대가 없었건만.
물론 자신 또한 현재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봉인에서 임시로 풀려난 대가로 과거의 힘 대부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눈앞의 인간은 이제야 고작 20년은 살았을까 싶은 외모다.
“그대는 인간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인재, 그래. 그런 것이로군. 분명 인간들 사이에서도 유독 특출난 존재겠지.”
작은 마을부터 시작해 이 도시를 집어삼키면서 수많은 구울들의 영혼을 훑어본 결과, 저 정도의 무위를 지닌 인간은 그리 흔치 않음을 베네딕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유희도 좋긴 하지만, 이런 저급 피를 계속해서 마시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 슬슬 갈증에 미칠 것 같구나. 너의 그 달콤한 피를…… 반드시 마셔야겠다.”
한 줌의 마력이나 겨우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피로 목을 축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제는 강인한 자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본능적인 열망이 베네딕트의 머리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네딕트는 그런 본능에 자신의 의지를 실었다.
—–!
일대에 모인 구울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한 줌의 피로 화했다.
모인 구울 중 백여 명이 단숨에 죽음을 맞이하고, 일대에 피의 대지를 만들어 냈다.
“후우…….”
마력이 집중되자 피의 대지에서 수백 개의 핏방울이 공중에 떠오른다.
이윽고.
블러드 밤(Blood bomb).
콰과과과광―!!
일제히 터져 나가는 핏방울은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 나가며 셰인과 아네이스를 집어삼켰다.
“……!”
시야 전체를 채워 나가는 핏빛의 폭발.
아네이스는 셰인이 회수해서 던전 검을 받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쐐쇄쇄쇅-
아네이스로부터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수십 번의 참격이 터져 나왔다.
새하얀 백염이 깃든 검로는 그 자리에 남아 하나의 막이 되어 아네이스를 보호했다.
피의 폭발이 그런 백염의 막을 후려치지만, 그럴수록 백염은 더욱 타올랐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 백염이 사그라지고.
아네이스는 대지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검끝에서부터 시작된 백염이 일대로 퍼져 나가면서 피로 물든 땅을 불태웠다.
“…….”
셰인은 그런 아네이스를 바라봤다.
과거, 아네이스의 검에는 항상 생각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주변의 명령대로, 하라는 대로 움직이던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찾으려 했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부터 이해하려 한들,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차이점을 깨달은 아네이스의 검은 이제 본인의 뜻대로 움직였고, 그 행동에 망설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힘을 갈무리하지 못 했지만.’
회귀 전, ‘철혈의 정의’라 불리던 시절만큼 강해진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그 당시보다 그녀의 검은 더욱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한편, 셰인은 베네딕트에게 시선을 옮겼다.
타오르는 백염을 피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의 등 뒤에는 핏빛 피막이 번들거리는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큭…….”
얼굴에는 척 보아도 낭패감이 엿보였다.
지금 당장은 아네이스의 공격에도 멀쩡한 녀석이었지만, 놈도 방금 아네이스와 공방을 주고받으며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상대가, 이곳에 있는 수천의 구울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그 끝에 녀석이 찾은 해결책은 ‘후퇴’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본인이 택한 선택이 치욕적이라는 듯, 베네딕트는 모멸감이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한낮 인간 따위에게……!”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 아네이스를 노려보는 베네딕트.
그러나, 셰인은 그런 베네딕트의 도주를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셰인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쏴아아아아아!!
룬 마법 [쾌속]과 [필중], [중력]이 뒤섞인 마력탄 수백 개가 빛살처럼 날아든다.
이에 여태까지 셰인의 존재를 잊고 있던 베네딕트가 서둘러 피로 만들어진 날개로 자신을 보호했다.
“이건……?!”
수백 발의 마력탄이 단 하나도 빗나감 없이 피의 날개를 두드렸다.
그러나 이내 몸이 무거워진다고 느낀 순간, 베네딕트의 육체는 바닥으로 처박혔다.
“커헉?!”
마치 망치로 내려찍힌 못처럼 대지에 꽂혀 버린 베네딕트.
어떻게든 움직이기 위해 안달을 써봤으나,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이건…… 신격?! 아니. 그 마녀의 힘인가!’
입조차 꿈틀거리지 못하는 상황 속.
베네딕트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밤하늘 아래 빛나는 로즈베리빛 눈동자.
“자, 그럼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셰인은 벌레처럼 납작 찌그러진 베네딕트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마치 지나가는 돌을 보는 듯한 눈.
베네딕트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네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내게 말해야 할 것이다. 죽음이 축복으로 느껴지기 싫다면 말이지.”
그렇게 셰인이 천천히 손을 뻗을 때.
‘내가…… 인간 따위에게!’
이대로 잠자코 당할 수는 없었던 베네딕트가 피의 마력을 움직이려던 찰나.
“당했군, 베네딕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어둠이 내려 앉은 거리에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에블린이나 베네딕트와 같은 백발의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처럼 반짝거렸다.
베네딕트와는 다르게 어딘지 차분하게 보이는 흡혈귀는, 천천히 셰인과 아네이스에게 다가왔다.
“누구지?”
갑자기 등장한 흡혈귀는 셰인의 물음에 마치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나를 설명하기 이전에, 잠시 시간을 줄 수 있겠나.”
“…….”
셰인은 그런 흡혈귀의 모습을 바라보다,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중력의 힘이 약해졌는지, 베네딕트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한껏 표정을 구긴 채로.
“레오나르드……!”
“베네딕트. 봉인을 깨고 세상을 밤으로 물들이겠다며 나와 놓고, 결국 이런 꼴이 되었군.”
“닥쳐라……! 네놈이 그딴 말을 할 자격이 있나……?! 더러운 위선자 자식!”
“글쎄…… 위선자는 과연 누가 될지.”
그러면서 뒤를 돌아본 흡혈귀, 레오나르드는 뒤에 서 있는 셰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시간을 주어 고맙소. 내 이름은 레오나르드. 보다시피, 흡혈귀요.”
“…….”
“말수가 적은 사내로군. 그대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밤의 일족을 대신해 사과하겠소.”
“레오나르드……! 네놈 따위가 감히 일족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나의 동포여. 보는 눈이 없다면 입이라도 다물게. 그리하면 중간은 갈 테니.”
“무슨 헛소리……!”
베네딕트의 말을 무시한 레오나르드는 그대로 셰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한 것은 내 소개라고 하기엔 부족하겠지. 다시금 인사드리오. 나는 밤의 일족이자, 진혈의 흡혈귀. 그리고, 그대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그리운 존재의 오라비요.”
“……에블린.”
“응, 주인.”
그러자 셰인의 그림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발의 소녀.
에블린이 달빛을 맞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의 오빠라는군.”
“내, 가족?”
그러면서 에블린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나이가 더 많아.”
“하핫.”
그러자 레오나르드가 헛웃음을 지었다.
“나의 누이여.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정말 내 오빠야?”
“맞다. 신의 그물에 갇히기 전. 그리고 녹색의 괴물들이 우리의 요람을 덮치기 전. 나는 너를 품에 안고 요람 속에 대신 넣어 주곤 했지. 그것이 이리도 긴 시간이 되어, 다시 너를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레오나르드는 그런 에블린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둘의 뒤에 바닥에 처박혀 있던 베네딕트가 외쳤다.
“……! 진정, 그 꼬맹이가 요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것이냐. 드디어, 그 아이를……!”
“그립고도 감동스러운 가족의 상봉을 방해하는구나, 나의 동포여.”
“닥쳐라! 그 여자는 우리에게 자유를 되찾아 줄 열쇠란 말이다!”
“아쉽게도 너희들이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발견하고 말았군.”
“크흐흐…… 레오나르드. 오래전부터 네놈은 세상 만사가 제 계획대로 되는 양 굴어 왔지…… 하나 오늘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처음의 여유는 완전히 사라진 베네딕트가 마력을 움직이려 했다.
하나, 레오나르드가 먼저 움직였다.
“아쉽게도, 잠시 잠에 빠져 주게나. 나의 동포여.”
베네딕트가 뭘 하기도 전에.
레오나르드의 손은 어느새 피로 물든 채로 베네딕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크하악?!”
그렇게 레오나르드의 손에 뽑혀 나온 심장.
밖으로 나왔음에도 여전히 펌프질을 멈추지 않는 심장은, 이내 레오나르드의 손에서 터져 나갔다.
“더러운…… 위선자 놈이…….”
그와 동시에 베네딕트의 몸은 여타 다른 구울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
“이런…… 사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과하게 되었군. 기괴한 장면을 보여 주어 미안하오.”
그러면서도 손에 묻은 피를 핥으며 웃음 짓는 레오나르드.
그 모습이 못내 섬뜩해 보이기도 했을 터이나, 셰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