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31화
231화 함께 걷는다는 의미 (1)
“어서 오세요, 셰인.”
아직 햇빛보단 어둠이 더 짙은 시각.
올리시아는 오스튼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셰인을 맞이했다.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셨네요.”
“예, 폐하.”
언제나처럼 짧게 인사를 마친 셰인.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창백한 피부의 한 남성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해 왔다.
“안녕하시오. 인간의 왕이여. 나는 밤의 주인이자 진혈의 흡혈귀 일족인 레오나르드라고 하오.”
자신을 소개한 레오나르드가 핏빛의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올리시아를 바라보자, 그녀 또한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진혈의 일족을 황성에서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삶이란 본래 예상치 못한 일이 번번이 일어나는 법이오. 나의 긴 삶에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지.”
그러면서 레오나르드는 오스튼에게 시선을 옮겼다.
“특이한 인간이로군. 머리에 마력이 쌓이다니. 그게 가능한 종족은 고대에도 몇 없었건만.”
“……바로 알아보셨군요. 반갑습니다. 올리시아 황제 폐하의 보좌관, 오스튼입니다.”
“나도 반갑소.”
짧은 인사를 마친 레오나르드는 가볍게 분위기를 전환할 생각이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의 시대가 지나가고, 인간들의 시대가 찾아왔음을 새삼 깨닫고 있소. 이토록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니.”
“고대의 종족에게 그렇게 들으니 참으로 기묘하네요.”
“어찌 아니겠소? 인간이란 종족은 여러모로 신비롭군.”
레오나르드는 셰인의 생각보다 훨씬 수다스러운 흡혈귀였다.
이곳에 오는 내내 인간들의 문화를 구경하며, 많은 흥미를 보였었다.
“이렇게 보여도 나름 과거에는 여행이 취미였소. 다른 종족들의 문화를 보며 지식을 채우는 재미로 긴 세월을 보냈었지.”
특히 그중에는 우연히 지나오다 보게 된 극단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던 레오나르드였다.
한 존재가 여러 인간 군상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했던가.
아무튼 그런 레오나르드의 가벼운 담화는 일행들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제법 낮추게 했다.
“생각보다 인간들에게 적의가 없어서 놀랐네요.”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소.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흡혈귀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직접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를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오.”
본격적으로 본론에 들어가자, 레오나르드는 방금까지 호기심이 가득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진혈의 종족들이 움직인 것은 종족 전체의 뜻이 아니오.”
“흐음…….”
“비교적 젊은 흡혈귀들, 그중에서도 인간들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급진파에 해당되는 이들이 나선 것이지.”
레오나르드의 설명은 이러했다.
현재 흡혈귀라는 종족은 두 갈래로 나눠진 상태다.
종족의 원로 흡혈귀들의 보수파와 젊은 층으로 구성된 급진파.
이렇게 나눠진 이유에 대해서 레오나르드는 인간들의 신, 아카샤를 꼽았다.
“이런 말을 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진 모르겠지만, 우리 일족은 신의 그물…… 그러니까 인간들의 신, 아카샤의 대봉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시간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소.”
던전 혹은 요람에 봉인되어 있는 종족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현재 봉인된 상태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반복되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인간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진혈의 흡혈귀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을 기억하고 있소. 물론, 그로 인한 깨달음 따위는 얻을 수 없었지. 대신 우리 종족은 받아들인 것이오.”
“신에 의해 시간이 빼앗겼음에도 말입니까?”
오스튼의 물음에 레오나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종족은 강한 힘을 타고났소. 그만큼 알고 있는 것도 많지.”
흡혈귀라는 종족은 밤을 활용하여 세계의 시선을 가릴 만큼 격이 높은 종족이었다.
그만큼 세상의 흐름을 볼 줄 알았고, 그들은 언젠가 이 세상에 신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셰인은 그런 레오나르드의 설명에 문득 밤의 사랑을 받는 흡혈귀처럼 대지에게 사랑을 받는 한 인물을 떠올렸다.
‘디라일라. 녀석과 같이 봤던 나카르 사막의 기억 속 지하인의 예지와 비슷한 이유인 모양이군.’
그렇게 셰인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레오나르드의 설명은 이어졌다.
“세상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것이 있소. 우리 흡혈귀들은 강인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만큼 세상이 정해 둔 선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렇기에 흡혈귀들은 신의 탄생과 함께,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비록 우리는 신의 그물에 오랜 시간 갇히게 될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 그물이 거두어질 때가 올 것임을 모르지 않았소.”
때문에 흡혈귀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아카샤의 대봉인에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족의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
일족의 젊은 흡혈귀들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아카샤의 대봉인이 끝난 이후, 원로 흡혈귀들과 대립하고 줄곧 냉전이 이어졌다고 한다.
“싸움은 있었을지언정 전쟁은 없었소. 애초에 다 부질 없는 짓이었으니까.”
자기들끼리 죽인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되살아난다.
그런 쓸모없는 일을 할 정도로 그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 대신 젊은 흡혈귀들은 봉인을 깨부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계획은 조금도 성과를 거두지 못 했다.
그렇게 그들이 지쳐 있었을 무렵.
“그들이 찾아온 것이지.”
무명의 7군단장. 나태.
“처음으로 우리의 영역에 찾아온 낯선 인물은 당연하게도 젊은 흡혈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소.”
“그 자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는 것이로군요.”
“그렇소, 인간의 왕이여. 놀랍게도 무명이라는 단체는 일시적으로 신의 봉인을 무력화 시켰고, 그 틈을 타서 젊은 흡혈귀들이 일제히 밖으로 뛰쳐 나온 것이오.”
“레오나르드 씨도 그 중에 포함된 것이로군요.”
올리시아의 말에 레오나르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소. 젊은 흡혈귀들과는 목적이 달랐지만 말이오.”
“목적이요?”
“아까 말하지 않았소? 나는 여행이 취미라고.”
“아…….”
설마 그게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줄이야.
올리시아는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당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레오나르드의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봉인에서 벗어났다고 한들, 우리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소. 나도 지난 1년 동안 힘을 복구해야만 했지.”
“힘을 복구했다면…….”
“부정하진 않겠소. 대부분은 몬스터의 혈액이었지만, 개중에는 인간들도 적지 않았지.”
“…….”
“한 생명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소. 그에 대해 논할 자격이 나에겐 없기도 하고. 하지만 내게 먹힌 이들은 대부분 중대한 죄를 지은 이들이더군. 믿을지 말지는 왕께서 해야 할 선택이오.”
“……알겠습니다.”
대부분 그 희생양들이 산적이었다는 설명에 올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현재 레오나르드는 굉장히 신사적으로 나오는 것이니까.
그리고 대화를 하는 중에 올리시아가 파악한 레오나르드라는 흡혈귀는 고작 그 정도로 거짓말을 할 만큼 자존감이 없는 인물도 아니었다.
“의외로군. 그런 인간적인 감상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셰인의 말에 레오나르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굳이 노리고 그랬던 것은 아니오. 그저 지나가다가 먼저 덤빈 자들을 상대했을 뿐이니. 과거에 했던 일과 다를 게 없지.”
그렇게 레오나르드는 세상 밖으로 나온 이후, 본래라면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명에 나온 그 나태라는 작자가 하는 말을 듣게 된 이후, 한가로이 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소.”
레오나르드가 나태에게 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의 동생에 관한 것이었다.
“불타는 도시에서 내 누이가 왕의 곁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소.”
나태가 보여 준 영상 속 소녀.
어릴 적 자신이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버렸지만, 레오나르드는 그저 영상으로 본 것만으로도 소녀의 정체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지. 유일하게 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은 일족. 그것은, 그동안 신의 봉인을 완벽하게 파훼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온 급진파들에겐 더 없는 희소식이었소.”
“어째서인가요? 이미 봉인은 풀고 나왔을 텐데.”
“억지로 봉인을 깨고 나온 여파로 우리의 힘은 대부분 잃어버린 상태요. 그걸 모조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로 할 테지.”
물론 그동안 인간들이 당하기만 하고 있으리라는 법도 없었고, 밖으로 나온 흡혈귀들은 그때까지 참을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 앞에서 내 누이를 제물로 바치겠다더군.”
설마하니 그 흡혈귀의 친족이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내뱉었다고.
레오나르드는 들끓는 살심을 다스리고, 조용히 그들의 계획에 참여하는 척하면서 에블린의 흔적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마주친 것이 여기 있는 인간이었소.”
수백 년에 가까운 시간 만에 이뤄진 가족 간의 재회.
그러나 에블린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나이는 내가 더 많아.”
“물론, 그럴 테지. 누이여.”
그럼에도 레오나르드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흡혈귀라는 종족 자체가 그렇다나. 자신이 독특한 축에 속한다고 했다.
“그 제물이 누이라는 사실은 물론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오. 하지만 그 외에도 내가 그들을 막으려고 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소.”
“그 다른 이유라는 게 무엇인가요?”
“같은 일족끼리 상잔을 하는 것은 우리 종족의 최대 금기이니까.”
“금기요?”
“인간들의 시점에서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오. 내게 먹힌 이들의 기억을 보면, 인간들은 혈족 간의 투쟁도 그리 드물지 않은 모양이니까.”
“그렇긴…… 하죠.”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올리시아는 잠시 새뮤얼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레오나르드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금기로 정했다 해도 그러지 않을 수 있나요?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이성적이지 않을 텐데요.”
“맞는 말씀. 하지만 저주가 깃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오.”
“저주…… 요?”
“아마 이 사내는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설명해 주겠소. 우리 흡혈귀는 아무리 서로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해당 일족이 살해를 당한다면 반드시 복수하오. 그 존재가 어디 있든, 세계 끝에 있다 하더라도 쫓아갈 테지.”
“아…….”
그에 관한 이야기라면 에블린과 오크들의 내막에 대해 들으면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룻밤만에 오크를 멸족시킬 뻔했다고 했었죠.”
“그렇소. 그 자리에는 나도 있었지.”
“그런데 그게 저주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이를테면 본능 같은 것이오. 우리 일족은 그 수가 적은 만큼, 동족의 죽음에 굉장히 민감하오. 이는 이성의 영역이 아닌 본능의 문제요.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 마력 한 줄기조차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불가항력이다…… 이 말씀이로군요?”
“그렇소. 그러니만큼, 일족이 일족을 죽이는 일만큼은 기필코 자제하는 것이오. 동족을 죽이는 순간부터, 끊이지 않는 복수의 순환이 돌아가는 수가 있으니까.”
“생존을 위한 본능이 반대로 생존을 위협하기도 하는 아이러니라니…….”
“물론 아예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오.”
“방법이라 하면?”
“우리 일족의 왕. 로드께서 사형 명령을 내린다면, 동족상잔을 한다 하더라도 본능이 반응하지 않소. 로드의 명령이 더 위에 있으니.”
“그거 참 여러모로 편리하군.”
강한 만큼 강력한 제재가 있었음에도 흡혈귀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로드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런 셰인의 비꼬는 말투에 레오나르드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듣기에는 그리 들릴 수도 있겠구려. 하나, 생각하는 것만큼 편리하진 않소. 로드께서는 결코 쉽게 움직이지 않으시니까.”
로드를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레오나르드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어찌 됐건 필요한 정보는 모두 들었다.
다른 국가에서는 알지도, 알 방법도 없는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접수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 증언을 토대로 각국에 전달, 흡혈귀를 물리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올리시아의 표정이 환해지려던 찰나.
“셰인.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조금 더 미뤄 줄 수 있겠습니까?”
“네?”
옆에서 들려오는 오스튼의 목소리에, 올리시아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한편, 그런 오스튼의 제안을 들은 셰인은.
“왜 그래야 하지?”
더없이 무감정한, 그래서 더없이 섬뜩한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