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32화
232화 함께 걷는다는 의미 (2)
올리시아는 의아한 얼굴로 셰인과 오스튼을 번갈아 쳐다봤다.
‘무슨 일……?’
어려서부터 사람의 분위기를 읽는 데 도가 튼 올리시아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일단,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에 올리시아가 말문을 열자, 오스튼이 죄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여 왔다.
“제 설명이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무슨 일인가요?”
그러자 오스튼이 셰인을 바라봤다.
마치 당신이 직접 설명하라는 것처럼.
이내 셰인은 올리시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예가 중요하십니까, 아니면 실리가 중요하십니까?”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둘 모두를 붙잡으려 하겠죠.”
“우문현답이셨습니다. 하나, 세상을 살다 보면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맞는 말씀이세요. 그렇다면…… 저는 실리를 택하겠습니다.”
죽음의 앞에서 명예가 얼마나 보잘것없었던가.
올리시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자, 오스튼의 눈가가 아주 잠깐 좁혀졌다.
한편, 레오나르드는 그런 오스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재미있군. 분명 내게 말한 그 계획이라는 것은 저 자에게 설명한 적이 없었을 터인데.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야.”
“그렇지.”
셰인도 그런 레오나르드의 말에 수긍하면서, 올리시아를 바라봤다.
“가면을 다시 쓸 예정입니다.”
“가면…… 이요?”
“예.”
그 말에 올리시아는 가면을 쓴 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본 적도 몇 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올리시아의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쓴 채로, 붉게 물든 눈동자만이 보이던 그 모습을.
“무슨 일을 또 꾸미고 계신 모양이군요.”
주로 셰인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서는 안 될 일에 가면을 꺼내 쓰고는 했다.
지난번 대륙적으로 일어난 테러 사태 당시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예. 지금쯤 타국의 협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이 됩니다. 맞습니까?”
“하아…… 네. 맞아요. 곤란한 상황이죠.”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연합을 구축하고, 인류에게 위협이 될 무명을 향해 전쟁을 선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얽힌 여러 이해관계가 그것을 방해했다.
아무리 명령 하나로 모든 것을 이룬다는 황제라 하더라도, 타국에 그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이번 흡혈귀 사태도 가능하면 빠르게 정리하고 싶지만, 다른 이들의 협력이 없는 이상 불가능하죠.”
그리고 그런 올리시아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레오나르드의 말을 들어 보면, 아직 흡혈귀들은 제 힘을 되찾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이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그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연합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 일에 가면이 필요하다면, 떳떳한 일은 아니겠군요.”
한숨에 가깝게 말하는 올리시아.
셰인도 그 말에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르드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레오나르드요?”
“그렇소, 인간의 왕이여.”
이어서 셰인이 설명했다.
“흡혈귀의 능력 중에는, 자신의 권속을 늘리는 것도 있습니다.”
“권속…… 마치, 마법사들의 패밀리어처럼 말인가요?”
“예.”
그 설명을 듣자마자 올리시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맙소사, 설마……?”
“예. 타국의 귀족들을 레오나르드의 권속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강제로.”
인간 사회의 뿌리를 흔들 만한 발언이었다.
* * *
“그래서 오스튼이 반대를 했던 것이로군요.”
올리시아의 말에 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황제라는 자리가 결코 스스로의 행보를 숨기지 않는 존재라고 하셨지요.”
“네. 맞아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실수를 숨기기만 해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황제는 언제나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존재.
그렇기에 올리시아는 아나스타샤와 함께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언젠가 인류에 평화가 찾아오는 그날.
자신들의 치부를 세상에 밝히기 위해서 말이다.
그에 셰인이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희생만 커질 것입니다. 우둔한 몇몇 존재로 인해 말이지요.”
“……그렇겠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흡혈귀로 인해 구울이 된 존재들은 흡혈귀가 제압되면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레오나르드가 베네딕트라는 흡혈귀를 제압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흡혈귀들이 언제까지고 잠자코 있을지는 모릅니다.”
분명 필요하다면, 구울들은 단번에 흡혈귀들의 영양식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필요 이상의 시선이 끌리지 않도록 흡혈귀들이 자제하고 있는 것뿐.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만 합니다.”
“…….”
셰인의 말에 올리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과격한 방법이지만, 몇몇 귀족들의 자유를 잃는 대가로, 그리고 그 기록이 황성의 어딘가에 남게 되는 것을 대가로 민간인의 희생을 막을 수 있을 터.
‘바보같이. 뭘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요.’
올리시아가 이내 다짐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던 그 순간.
“폐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오스튼의 말에 올리시아도 대답을 미뤘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셰인, 당신의 깔끔한 계획에는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지?”
“후폭풍입니다. 흡혈귀의 힘을 사용해 다른 귀족들을 조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어쩌면, 무명과의 전쟁 이후에 제국은 전 대륙과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또 얼마나 무고한 피해자들이 나타나게 될까.
“무명을 방치하는 것과 인간들 사이에서의 전쟁. 어떤 게 피해가 적을 것 같나?”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그러자 오스튼이 입을 다물었다.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올리시아의 앞에서 말을 꺼낼 수 없는 작전이었기 때문일 터.
셰인은 전생의 오스튼이라면 어땠을까 떠올렸다.
전생에서 오스튼은 인류의 희망을 이끈 책략가였지만, 그만큼 냉혈한이었다.
조금이라도 전쟁에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희생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 오스튼이라면 분명 여러 방법들을 떠올렸을 터.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이라 한다면.
“타국에게 보다 더 경각심을 심어 주는 것이겠군. 예를 들면, 귀족들의 몰살이라던가.”
“네?”
“…….”
올리시아가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오스튼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이 단번에 까발려진 것이다.
“폐하께는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이었나 보군. 폐하 모르게 진행시켰다면, 그에 대한 악명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오로지 너의 독단이었다고 공표할 생각이었나?”
정곡이었다.
다만, 그런 오스튼의 계획에도 빈틈은 있었다.
이미 연합국의 국가들은 겪었던 것이다. 귀족들의 몰살을. 그것도 제국의 수도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저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죽음으로는 저들을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그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이들이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셰인은 이런 문제점을 오스튼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에 앞서 올리시아의 눈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오스튼.”
“……예, 폐하.”
“저는, 더 이상 어수룩한 황녀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폐하.”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올리시아의 고운 눈가가 찌푸려졌다.
다른 이들에게 저 표정이 향했던 것은 본 적이 있으나, 그게 자신에게 다가올 줄은 몰랐던 오스튼은 마치 머리에 차가운 얼음물이 끼얹혀진 것 같았다.
“아뇨, 저는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에요.”
스스로의 화를 다스리려 하는 것일까. 올리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밤이 내려앉은 하늘을 보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다.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새뮤얼의 계략도, 나이가 든 육신 때문도 아니었어요. 마음의 병 때문이었죠.”
“…….”
“아직도 기억이 나요. 큰오라버니, 클로이가 살아 있던 시절. 폐하께서는 단호면서도 인자하셨으니까요.”
언제나 역사에 남을 황제로서 기록되기 위해 많은 일을 시행했던 전대 황제.
그러나 클로이의 죽음 이후부터 황제는 모든 일에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나 돼서야 그는 후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병은, 모두 침묵 속에서 시작되죠.”
만약 황제가 다른 자식들에게 자신의 심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스스로가 가진 짊어진 짐에 대해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황제의 오르골을 본 뒤로 수 없이 떠올렸던 부질없는 생각들.
그렇기에 올리시아는 생각했다.
“다시는 제게 무언가를 숨기지 마세요. 홀로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저와 상담을 하세요. 나와 샤샤처럼, 오스튼 당신도 제국을 함께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세요.”
진중한 올리시아의 말에, 오스튼은 차갑게 식은 머리를 흔들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폐하. 모두 제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알아요.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 따위는 없어요. 언제나 실수를 하고, 그걸 바꾸는 게 사람의 인생이니까요.”
“…….”
그제야 올리시아도 평소처럼 표정이 돌아왔다.
보는 사람이 절로 포근해지는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깊게 숙인 오스튼의 머리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런 오스튼의 귓가가 새빨개진 것을 본 이는, 셰인과 레오나르드뿐이었다.
* * *
사실, 오스튼도 셰인이 말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임을 모르지 않았다.
‘멍청한 실수를.’
그리고 셰인이 떠올린 방법을, 오스튼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오스튼은 그 계획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했다.
이는 오스튼이 인류애적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그 뒤로 이어질 후폭풍을 걱정했기 때문도 아니다.
애정.
살면서 자신이 갖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감정에 의해, 잠시 이성이 마비됐던 것이다.
‘인정하자.’
오스튼은 올리시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보좌관. 황제 폐하를 그릇된 마음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마음을 여태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지혜를 지닌 오스튼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명이 가지 않도록 외면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속일수록, 녀석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 무의식에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줄은 생각조차 못한 채.
‘난 이기적이었다.’
수도에 재앙이 찾아왔을 당시.
오스튼은 새하얀 도화지와도 같았던 올리시아가 점차 사람들이 가진 어둠에 물드는 것이 너무도 슬펐다.
언제까지고 깨끗하기를 바랐던 사람이, 어둠을 직시하고 괴로워했으니까.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라고 생각하며 독선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올리시아는 때 묻지 않은 도화지 같은 게 아니다.
물건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이고, 멋대로 뒤에서 휘둘러야 할 사람 또한 아니었다.
함께 걸어갈 사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자신이, 그리고 올리시아와 함께 추구해야 할 길임을 오스튼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셰인은 묘한 감정을 떠올렸다가, 이내 그 감정을 지워 냈다.
금방 사라진 그 감정이 의미하는 것은…….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단지, 눈앞의 두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에는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만이 떠올랐을 따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