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33화
233화 삶의 목적과 사소한 변수
타국의 귀족들을 흡혈귀의 권속으로 만든다.
이것은 어찌 보면 수도 언데드 창궐 사태 당시, 타국의 귀족들이 몰살을 당했을 때보다 더 위중한 사건이 될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은 그저 빈자리를 남기고 떠날 뿐이지만, 그들을 조종하는 것은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문제였으니까.
이번 계획에 있어서 오스튼이 극구 반대를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무명과의 전쟁 이후, 제국은 다른 국가들과 결코 풀리지 않을 앙금이 남게 될 터.
전쟁이 끝나게 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올리시아는, 그런 미래를 예상하고도 허락한 역대 최악의 황제가 될 테고.
“전쟁이 끝난 이후라…….”
다만, 셰인은 단 한 번도 무명과의 전쟁 이후의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추측해 본 건, 인간들 사이에서의 전쟁이 무명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것 정도.
그러나 덜 위험하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본래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사안이었지만, 올리시아의 결단과 오스튼의 책임감을 보고 있으려니 셰인의 생각도 깊어졌다.
그렇게 황성의 옥상에 올라와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보고 있을 때, 레오나르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대는 마치 삶의 목적이 없는 것 같군.”
“삶의 목적?”
“그렇소. 내 인간 세계를 경험한지는 극히 짧았지만, 여태까지 내가 봐 왔던 인간들은 모두 미래를 향한 목적이 있었소. 그게 허황되든, 아니든 말이오.”
레오나르드는 자신이 처음 흡혈을 했던 인간에 대해 말했다.
“산적이었던 그 자는 별 볼일 없는 무력을 가지고, 언젠가 자신이 속한 산채라는 것의 주인이 되길 바라더군. 물론 그에 대한 노력은 그리 깊게 하진 않았소.”
“…….”
“하지만 그런 꿈은 가지고 있더군. 하나의 목적이었지. 신기하게도 인간의 목적은 매일 달라지더이다.”
어느 날에는 예정된 날짜에 산을 지나갈 상인을 털어먹기 위해 활을 다듬고.
또 어느 날에는 근처 다른 산채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검을 벼린다.
그러다가도 고작 전날에 자신이 꿍쳐 둔 술을 훔친 동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독심을 품고.
근처 마을의 어여쁜 처자를 보더니 그 여인의 호감을 사는 상상을 하며 여러 미래를 꿈꾼다.
“그토록 인간은 다양하고 복잡한, 또 시답지 않으면서도 그 시답지 않은 목표로 현실을 살아갔소.”
레오나르드의 말에 셰인이 답했다.
“나에게도 삶의 목표는 있다.”
무명의 멸망.
그것만이 셰인이 가진 삶의 목표였다.
“글쎄…… 그건 목표라기보단 수단에 불과한 것 아니오? 누군가를 쓰러뜨린다는 것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일 테니까.”
그러면서 레오나르드가 아래에 있는 정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고양이 같은 짐승에게 당한 것일까. 피를 흘리며, 날개가 부러진 새 한 마리가 쌔액- 쌔액-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모습.
레오나르드가 그런 새의 피를 끌어와 마시자, 새의 눈이 잠시 붉게 변하다가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레오나르드의 마력이 잠시 움직이는가 싶더니, 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하늘 위로 날아갔다.
“저 새의 방금 목표는 해방이었소.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통 없는 죽음을 꿈꿨지. 그러나 방금 나에게 치료를 받자마자 목표는 달라졌소. 부상이 낫기 무섭게, 먹이를 찾아 나선 것이오. 보아하니 둥지에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군.”
“…….”
“이렇듯, 삶의 목표라는 것은 이렇소. 정해진 하나만이 길이 아니지. 그대의 계획을 듣고, 저 두 사람이 무명과의 전쟁 이후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대에게는 그런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소.”
레오나르드는 그런 셰인을 보며, 미래가 결여된 존재 같다고 했다.
마치 아카샤의 대봉인에 갇힌 이종족들처럼.
“목표라는 것은 이처럼 다양하고, 또 쉽게 변하길 마련이오. 그대의 삶에도, 여러 변수가 발생할 것이고 그에 따른 변화가 찾아올 테지.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만큼 큰 이유는 아닐 것이오. 삶이란 극히 사소한 일에도 변화하기 마련이니.”
그러면서 레오나르드는 달을 등진 채 빙긋 웃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여행의 목적지가 달라지는 내 발걸음처럼 말이오.”
“……새겨 듣도록 하지.”
“후후. 인간들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하더이다. 나는 아직 젊지만, 방금은 꼰대 같았겠군. 그래도 내가 한 말이 그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여행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지나가던 인연 하나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오. 그런데 그대는 내 누이를 구한 것으로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소? 이 정도야 당연한 일이오.”
참으로 악명에 걸맞지 않는 특이한 흡혈귀다.
셰인은 그렇게 생각했고, 또 동시에 스스로가 내뱉은 말처럼 레오나르드의 말을 새겨 들었다.
삶의 목표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당장 셰인의 목표는, 어찌 됐든 귀족들을 구워삶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드의 말처럼.
삶의 목표라는 것은 정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델루와 왕국의 사절단 대표로 찾아온 베나루스는 고급스러운 잔에 담긴 와인을 흔들며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얼굴과 다르게 그의 머릿속은 묘한 열기를 띄고 있었는데.
“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
직업상 언제나 표정을 관리해야 하는 습관 때문에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그는 오후에 있었던 회의를 떠올리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황제의 곤란한 표정이라니. 참으로 귀한 장면이지 않은가.”
황녀 시절부터 제국의 꽃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황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럼에도 황제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이번 사안의 주도권이 이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권력의 맛이라는 거군.”
베나루스가 적을 두고 있는 델루와 왕국은 연합국에서도 특히 작은 소국이었다.
국토 자체는 상당히 넓은 편이었으나, 그 대부분이 산을 끼고 있는 지형이라 농업으로 살아가기도 힘든 나라.
그나마 던전이 많이 있는 덕분에 수많은 모험가들이 찾아왔고, 관련 산업을 주축으로 굴러가고 있는 왕국이었다.
다만 그마저도 빠듯한 탓에 사절단의 대표였던 베나루스는 항상 어깨를 당당하게 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자국의 위상이 곧 사절단 대표의 위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이, 저 제국의 황제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거기서 느껴지는 배덕감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등골을 타며 뇌를 찌르고 있었다.
여인을 품에 아는 것보다도 더한 쾌감.
그게 부질없는 쾌감이라는 사실은 머리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쩌겠나.
베나루스의 삶에서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던 일이었으니. 그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도 이대로 계속 줄타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델루와 왕국은 소국인 만큼 주변 국가들의 눈치도 많이 본다.
그만큼 흘러가는 판을 보는 눈이 좋다는 말이었는데, 그런 델루와 왕국의 사절단 대표인 베나루스도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슬슬 어느 정도 협력을 하는 모습은 보여야겠지.”
제국을 제외하면, 연합국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하이엘 왕국과 베첼리 왕국이 제국의 손을 들었다.
지금 당장은 그 외에 다른 소국들이 힘을 모아 그들을 압박할 수 있었지만, 이 이상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하이엘 왕국은 비록 무력적인 측면에서 보면 부족해 보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제국과 베첼리에 한해서일 뿐. 거기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베첼리 왕국은 기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만큼 무력적인 측면에서 강점을 보이고.
거기에 제국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이 신경전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왔다.
“누구십니까?”
“알리야 왕국의 아를렛이에요. 약속했던 시간대로 찾아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베나루스는 잠시 시계를 바라보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알리야 왕국을 포함해 네 명의 사절단 대표들이 서 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하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이미 한 잔 걸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거 혼자 있으니 적적해서 말이오.”
델루와, 알리야, 알리아티아, 앤토메니아, 브레클린, 엘레노아.
모두 이번 회의에서 제국을 압박하기 위해 모인 국가들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자, 이 중 알리야 왕국의 대표인 아를렛 백작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한 여성인 그녀는 어딘가 생기가 넘치는 듯 보였는데, 베나루스는 그게 자신처럼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기에 그런 듯싶었다.
“그럼, 이후의 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볼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아를렛 백작이 소속된 알리야 왕국은 그나마 이곳에 모인 국가 중에 국력이 강한 국가였다.
자연스럽게 그녀가 리더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이번 사안에 대한 주제가 흘러나왔다.
“이제 슬슬 당근을 흔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작은 베나루스였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 주변의 눈치를 봤겠지만, 술도 조금 들어간 것에 더해 이 이상 황제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나오는 것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자인 만큼 강자의 인내심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베나루스만 했던 모양이다.
아를렛 백작이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나도 아를렛 백작과 같은 생각이오. 지금 제국이 가진 이권이 한둘이 아니건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가지고 올 수 있겠소?”
“적어도 메자이아 대수림의 마력 광산과 관련된 이권 정도는 받아와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클레이튼 후작가가 가진 이권을 조금 챙겨 와도 될 것 같군.”
이어지는 사절단 대표들의 말.
베나루스는 그런 그들을 보며 방금까지 배덕감에 행복의 비명을 지르던 뇌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진심인가, 이 작자들?’
현재 제국의 위상이 조금 꺾이긴 했어도, 제국은 제국이다.
인류의 첫 왕국으로 발돋움한, 역사적인 국가.
그 위명만큼이나 엄청난 힘을 가진 제국을 필요 이상 압박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들이 말하는 이권이라는 것은 쉽게 가지고 올 수도 없는 것이었고.
“베나루스. 그대의 생각을 저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국이라는 이름에 너무 겁을 집어 먹을 필요는 없어요. 결국 아쉬운 건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
무명의 활동은 분명 대륙적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 심각성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었다.
당장 베나루스만 하더라도 연합국에서 시작된 테러 사태 당시 큰 피해가 없기도 했고.
그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아예 판이 깨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를렛이 비웃듯 베나루스를 바라봤다.
“판을 깨뜨린다고요? 저 제국이요? 다름도 아니고 제국의 수도가 무명이라는 단체에 의해 함락 됐었어요. 저 콧대 높은 제국의 황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명과의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명과의 전쟁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비단 이번 흡혈귀 사태만 보더라도 눈에 훤히 보이지 않은가.
당장은 그 활동이 적은 탓에 큰 위협은 없었지만, 만약 황제가 발표한 사안의 절반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될 게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황제가 그런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러니 적당한 이권, 그리고 위치를 보장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도 대비를 해야 함이 옳았다.
그런데 왜 저런 선택을……?
그에 베나루스가 의아함을 느끼며 모인 귀족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아를렛을 향해 있었다.
‘뭐지? 무언가…….’
이상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이런. 베나루스. 아무래도 상대가 제국이라고 해서 제법 긴장을 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동시에 아를렛이 테이블 아래로 발을 움직였다.
천천히 베나루스의 발목에 닿아, 위로 슬금슬금 올라온다.
아를렛 백작은 최근 얼굴에 생기가 도는 만큼 이유 모를 색기가 감돌았는데, 그 순간 베나루스는 그런 아를렛 백작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붉게 빛나는 아를렛 백작의 눈동자가 보였다.
동시에 베나루스는 형용할 수 없는 쩌릿함이 몸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전신을 감싼 듯한…….
“그 긴장을 풀어 주도록 할까요……?”
그와 함께 아를렛과 들어온 귀족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베나루스가 그리 생각하던 순간.
“사소한 변수라…… 이런 것도 사소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곳에는 없던 제삼자의 목소리.
가까스로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것은.
로즈베리빛 눈동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