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34화
234화 흡혈귀의 권속
계획대로 레오나르드의 힘을 빌려 귀족들을 조종할 생각이었던 셰인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녀석들도 1년 동안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겠지.”
“누, 누구……?”
그중 귀족들에게 포위를 당한 중년의 귀족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살려 달라는 듯 애처로운 표정이다.
“소속은?”
“데, 델루와! 델루와 왕국에서 온 사절단이오! 베나루스요! 살려 주시오!”
“그렇군. 너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흡혈귀에게 당한 건가.”
“흐, 흡혈, 흡혈귀?!”
중년의 귀족, 베나루스는 기겁하듯 소리쳤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흡혈귀에게 당한 이들이란 말인가?
그러자 그제야 이 자리에서 유일한 여성 귀족인 아를렛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베나루스를 덮치기 직전의 탐욕적인 시선은 어디로 가고, 냉철한 귀족의 표본과 같은 미소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흡혈귀라니……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시덥잖은 연기는 거기까지 하지. 안 그래도 방금 막 하나를 정리하고 온 길이니.”
“…….”
그런 셰인의 말에 아를렛은 가면을 벗듯 표정을 바꿨다.
미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냉철함만이 남았다.
“흡혈귀 일족을 정리했다……? 하. 그건 또 무슨 허풍인가요?”
“네가 믿고 말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나저나…… 그렇군. 네가 그 권속이라는 건가?”
“…….”
셰인의 로즈베리 눈동자가 옅게 빛을 띄웠다.
아를렛의 목덜미에서 시작된 붉은 실이 밖으로 이어져 점차 투명해지는 광경에 눈에 들어왔다.
앞서 베네딕트라는 이름의 흡혈귀와 구울이 연결됐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실이 보다 두껍고 견고해 보인다는 것일까.
실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치 않았다.
“……이거 놀랍네요. 인간이 벌써부터 흡혈귀의 권속에 대해 알고 있다니.”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투로군.”
“그야 그렇죠. 저런 열등한 것들과 제가 같은 것 같나요?”
“열등하다라…….”
경멸이 담긴 미소를 짓는 아를렛.
아를렛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지기 시작했던 손은, 항상 꿈꿔 왔던 과거의 젊음을 되찾은 지 오래였다.
“인간은 결국 늙기 마련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 영원한 젊음을 만끽할 수 있죠.”
“흡혈귀에게 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넘어간 것이로군.”
“하, 당연한 거 아닌가요? 늙어서 제대로 된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왕의 밑에 있는 시절도 끝입니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게 아닌, 영생을 통해 영원한 영광을 거머쥘 테니 말이죠. 바로, 흡혈귀라는 종족과 함께.”
“젊음과 영생이라…… 몇 년 전에도 그런 멍청이가 하나 있었지. 그 최후가 썩 비참했을 거다.”
“전대 하이엘의 국왕인가요?”
하이엘의 전대 국왕.
그 또한 젊음을 대가로 무명과 거래를 했었다.
결국 왕자의 난에 의해 목이 달아났지만 말이다.
“제가 그런 멍청한 작자와 같을 것 같나요? 그때와는 달라요. 당신들은, 그리고 제국은 결코 흡혈귀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질서로 만들어진 인간들의 사회는, 흡혈귀들의 힘 앞에서 무력할 뿐이죠.”
아를렛의 말은 넓은 의미로 봤을 때 크게 틀리지 않았다.
계급 사회로 이루어져, 왕국의 대소사는 귀족들에 의해 결정되는 게 현실이었으니.
흡혈귀들이 지금처럼 아를렛을 권속으로 삼거나, 혹은 구울로 만들어 버린다면 인간들의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대항할 방법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항상 궁금하단 말이지. 그림자에 숨어 움직이는 쥐새끼 같은 것들이, 왜 정작 정체가 들키고 나면 그리도 당당하게 나오는지 말이야.”
셰인이 마력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아를렛과 베나루스를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 즉 구울들도 흉성을 폭발시키더니.
“그아아아아!”
“캬아아악!!”
앞서 봤던 구울들과 다르게 붉은 기운을 흩뿌리며 셰인에게 달려들었다.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한 모양이군.’
권속만의 능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흡혈귀의 능력일까.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터더더더덩―!!
구울들의 공세는 그 흉흉했던 분위기와 다르게 허무하게 막혔다.
푸른빛의 막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
급격하게 자라난 손톱이 보호막을 수차례 내려쳤지만, 무소용이었다.
“귀찮군.”
구울들은 본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기에, 셰인은 일단 그들을 살려 두기로 했다.
황성에서 또다시 귀족들의 몰살이 벌어졌다간 어느 국가도 더 이상 제국을 신용하지 않을 테니.
“후…… 흡혈귀를 처리했다는 게 허풍은 아닌 모양이군요. 하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아를렛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를렛은 가만히 구울들을 막고 서 있는 셰인을 비웃으며 손톱을 길게 뽑았다.
구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길게 뽑힌 손톱이 맹렬한 기세로 찔러 들어왔다.
콰아앙!
앞서 구울과는 다르게 아를렛의 손톱은 확실하게 보호막에 데미지가 들어온 듯했으나.
“뭣.”
여전히 보호막은 깨지지 않았다.
“영혼을 팔아 얻게 된 게 고작 그 정도의 힘인가.”
“……!”
동시에 사방에서 소환된 마력탄이 아를렛을 노리고 쇄도했다.
넓은 방이었으나 전투를 하기엔 알맞지 않은 공간.
그런 공간에 수십 발의 마력탄이 쏘아지자 아를렛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으나, 완벽한 회피란 쉽지 않았다.
“꺄아아악!!”
동시에 움직일 줄 알았던 마력탄은 불규칙적인 순서로 쏘아졌으며, 동시에 속도마저 제각각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아를렛의 삶에서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이랄 게 전무했으니.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를렛의 몸 이곳저곳이 마력탄에 의해 꿰뚫렸다.
생전 겪어 본 적 없는 고통이 아를렛의 정신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했으나, 미지의 힘이 그녀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정신을 보호했다.
‘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더 강해졌군.’
아를렛의 목덜미에서 시작되는 실이 정확히 어디로 연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그에 대한 제약 없이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주, 주인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무슨 명령을 받은 것인지 아를렛이 허공에 중얼거리더니, 여전히 셰인의 보호막을 내려치고 있는 구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딜.”
아를렛과 다르게 구울들은 아를렛과 실이 연결된 상태였다.
아무래도 흡혈귀가 아닌 아를렛에게 당한 모양이다.
그들 사이에 연결된 실이 붉게 빛나려 한다. 베네딕트가 구울들을 흡수하기 직전에 보였던 모습과 흡사했다.
[단절], [쾌속], [필중]여태까지와 다른 기세로 쏘아진 마력탄이 허공을 꿰뚫고 지나갔다.
“뭐야?!”
동시에 구울들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구울들을 희생시켜 힘을 강화시키고 이대로 탈출할 계획이었던 아를렛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본래라면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구울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를렛이 당황하든 말든, 셰인은 곧바로 다음 행동에 나섰다.
그대로 아를렛을 향해 마력탄을 날린 것이다.
“흐윽…… 꺄아아아아!”
또다시 마력탄에 의해 전신에 꿰뚫린 아를렛이 비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
하지만 셰인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쓰러진 아를렛을 바라봤다.
흡혈귀의 권속이 되었으니 저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나온 붉은 실이 더욱 격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그렇게 쓰러진 아를렛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인의 목소리가 아닌, 중저음의 귀족적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의 주인인가.”
[그래, 맞다.]마치 인형이 몸을 일으키듯 신형을 바로 세운 아를렛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내 이름은 데르단테. 위대한 일족의 정당한 계승자이다.]“정당한 계승자라.”
혹, 흡혈귀들의 로드라는 자의 혈육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번에 봉인을 깨부수고 나온 흡혈귀들의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래를 하지.]“거래?”
[그래. 우리는 굳이 인간들과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뿐.]“…….”
[너희 제국에 과거 우리가 잃어버린 일족이 있음을 안다.]“그래서?”
[일족의 밑에 들어온 인간들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 대신, 그 아이를 우리에게 넘겨 다오.]그의 말에 셰인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스스로를 데르단테라 소개한 저 흡혈귀는 아직 레오나르드가 이쪽에 붙은 줄 모르고 있었다.
얼핏 듣기에는 제국이 데리고 있는 일족을 걱정하여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자신들을 위한 제물이 필요할 뿐일 터.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셰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결정했다.
“좋다. 한 달 뒤에, 거래를 하도록 하지. 장소는 알리야 왕국이 좋겠군.”
[한 달이라…….]상대는 이쪽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았고.
“그 흡혈귀는 현재 봉인되어 있는 상태다. 그걸 풀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지.”
[……좋다. 그때까지 우리도 인간들은 건드리지 않도록 하지.]임시 휴전 협상.
나쁘지 않은 결과였으나, 셰인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신뢰의 의미로 권속은 끊어 두도록 하지. 마음대로 해라.]동시에 아를렛과 연결되어 있던 붉은 실이 탁- 끊기며 아를렛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쯧. 이대로 두면 죽겠군.”
흡혈귀와 연결이 끊긴 권속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흘리는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아직 뽑아내야 할 정보가 많았고, 어찌 됐든 황성에서 타국의 귀족이 죽는 것은 좋지 않은 일.
이어서 소란 소리에 황성이 시끌벅적해지는 것을 느끼며, 셰인은 일단 아를렛의 상처를 탐욕의 기운으로 막았다.
한편, 베나루스는 아래쪽이 축축해지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피투성이로 변해 버린 방구석에서 쪼구려 있을 따름이었다.
* * *
이른 새벽.
흡혈귀의 권속이 등장했다는 충격적인 분위기가 방에 내려앉은 것도 잠시.
“큼큼…… 그렇다면, 이미 귀족들이 당했던 상황이란 말씀이군요.”
“그렇지.”
“으음…….”
오스튼과 올리시아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아까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새삼 진지한 회의였건만.
정작 자신들의 결심과 다르게,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타국의 사절단 대표가 흡혈귀의 권속이 되었다는 말이지, 지금?”
한편, 그런 어색한 분위기의 이유도 모른 채, 디라일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질문할 따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