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3화
3화 단초 (2)
클레이튼 가문의 영지에서부터 아카데미까지 거리는 꽤 있는 편이었다.
때문에 평범하게 생각하면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아카데미에 가는 게 맞겠지만, 이 세계에서 텔레포트가 허용되지 않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제국의 황궁이 그러했고, 제국을 포함한 다섯 국가가 연합하여 만든 연합국이 그러했다.
셰인과 클라인이 가는 아카데미는 그 연합국의 정중앙에 위치했기에, 텔레포트는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아카데미를 향해 가는 마차 안.
클레이튼 가문의 기사단에게 호위를 받으며 가는 동안 셰인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5년 뒤. 녀석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셰인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조직, ‘무명’이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셰인이 타락하든, 타락하지 않든.
그들의 계획에는 변화가 없을 터.
그러려면 먼저 그때 다가올 풍파를 대비해 힘을 키워야만 했다.
동시에 셰인은 자신의 동생 클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던 용사.
끝없이 펼쳐진 역경을 뚫고, 제1군단장의 자리에 서 있던 자신마저 쓰러뜨린 클라인이니.
어쩌면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녀석은 지난 삶처럼 스스로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들을 쓰러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클라인은 얼마나 많은 절망을 겪었던가.
조직은 클라인을 죽이거나 타락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고, 클라인은 그 모든 것을 이겨 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다.
전설 속 영웅이 그렇듯, 녀석은 많은 것을 잃어 가며 영웅의 길을 걷는다.
셰인은 이번 생에서까지 녀석이 그런 일을 겪길 바라지 않았다.
‘그러려면 일단 내가 강해져야겠지.’
지금도 조직을 막을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으나, 당장 셰인의 능력으로는 모두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강해질 방법은 많다.’
굳이 타락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조직에 있었을 무렵 가지고 있던 정보들을 떠올리면 강해질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셰인이 떠올린 방법은.
‘룬 문자.’
현 인류가 알지 못하는, 고대의 종족 중 그마저도 선택받은 존재들만이 썼다고 알려진 마법 문자.
룬 문자를 다루던 대표적인 존재로는 드래곤이 있었다.
마법의 종주라 부릴 만큼 마법의 창조자가 쓰는 룬 문자라면, 마력의 절대량은 상관이 없어질 터.
듣기로 룬 문자를 터득한다면 마력의 총량과 상관없이 모든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적어도 셰인은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의 분석력으로도 룬 문자를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이었으니.
‘대신 응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셰인은 룬 문자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 어느 한 인물을 잠시 떠올리고는 이내 눈을 감았다.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며, 어느새 셰인과 클라인을 태운 마차는 산의 외곽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 * *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원 알렉스는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계 초소 바깥을 바라봤다.
언제나 똑같은 풍경에, 변하지 않는 공기의 냄새.
항상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교대 인원들.
그러나 오늘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언제나 조용하기만 한 마을에, 그 유명한 클레이튼 백작가의 사람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마을에 별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주 조용히, 여관에서 짐을 풀고 하룻밤을 머문 뒤 새벽 일찍 마을을 떠나니까.
마을의 촌장도 아닌 젊은 자경단원이 클레이튼 가문의 직계는커녕 그들을 모시는 기사조차도 얼굴을 멀리서나 보는 게 끝일 테니.
“여, 알렉스. 교대하러 왔다. 이 부러운 놈아.”
“왔냐.”
교대 타임의 동료 자경단원이 도착하니 알렉스가 씩 웃으며 맞이했다.
“아까 하보크 상단도 왔더만? 아주 진창 마시겠어.”
“진창 마시긴 뭘 마셔. 그래 봐야 내일 또 경계 근무 있어서 쓰러질 때까지 마시지도 못하는데.”
동료의 부러움이 섞인 말에 이렇듯 대답했지만, 알렉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동료도 아는 것이다.
술은 많이 못 마시겠지만, 술보다 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래도 그 사람들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라. 밖에 나가면 개고생이잖냐.”
“뭐 밖에 아는 게 있어야 나가든 말든 하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그러면서 알렉스는 동료와 교대를 마치고, 곧장 마을의 유일한 술집으로 향했다.
본래 여관의 창고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몇 년 전부터 클레이튼 가문의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마을이 제법 커져서 만들었다지만, 알렉스의 아버지는 그저 촌장이 클레이튼 사람들이 머무는 자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여관과 술집을 따로 구분지어 뒀을 뿐이라 말했다.
그리고 알렉스도 그 이유가 더 맞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낡은 술집입구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떠들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자, 마셔라, 마셔!”
“대장! 이걸로 그 일은 잊어버리자고!”
“오냐, 우리가 언제 내일을 생각하고 살았냐?! 마시자!”
거친 외모의 남자 열댓 명이 얼마 없는 술집의 좌석을 죄다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도 때마침 술집에 들어온 알렉스를 발견하곤 씩 웃으며 맥주잔을 추켜올렸다.
“어이어이, 이거 시골 촌놈 알렉스 아냐?!”
“으하하, 얼굴이 아주 보기 좋게 탔구만!”
“이제야 좀 남자답게 생겼어, 크하하하핫!”
하보크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단.
하보크 상단은 클레이튼 가문이 운영하는 클레이튼 상회에 소속된 상단이었다.
그들은 매년 이맘쯤에 클레이튼 가문이 이 마을에 찾아오는 것을 알고 똑같은 날에 비슷한 시간에 맞춰 찾아온다.
그리고 방금 알렉스를 반긴 이들은 그런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단이었다.
“웨이튼 단주님. 잘 지내셨습니까?”
“으하하하하! 단주님이란다! 아이고, 닭살 보여?! 내 팔 좀 봐!”
“야, 이 새끼들아. 요즘 세상에 저렇게 예의 바른 청년이 어디 있다고 놀리냐, 이 못 배워먹은 새끼들아! 니들도 단장님이라 불러!”
“일 없수다, 대장님! 낄낄낄!”
마치 오래 지낸 형제들처럼 그들은 서로 웃으며 농담을 주워 담았고, 알렉스는 그런 그들 사이에 어색하게 앉았다.
“그래, 오늘도 왔구나. 잘 지냈냐?”
용병단의 대장, 웨이튼의 말에 알렉스가 굳은 미소를 보였다.
“이 마을에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평소처럼 지냈습니다.”
“흐흐, 그래. 원래 그러고 사는 거지.”
“그런데 오늘도 그 일 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뭐, 그렇겠지. 원래 이쪽 양반들 생각이 다 클레이튼 사람들 눈칫밥 먹는 데 최적화됐으니까.”
“그래 봐야 뭐 달라지는 게 있기는 합니까?”
“그거야 모르지. 원래 인생이란 게 도박 같은 거 아니겠냐. 어느 쪽 도련님이 더 우세한가. 그 확률이 얼마나 한쪽에 치중되어 있는가. 그런 걸 따지는 거지. 그리고 거기에 올인 베팅을 때리는 거고.”
웨이튼의 말처럼 하보크 상단이 원하는 것은 클레이튼 가문의 두 형제에 대한 정보였다.
정확히는 셰인과 클라인, 그 둘 중 누가 가주의 자리에 가까운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럼 누가 더 우세한 겁니까? 보통 장남이 이어받지 않습니까?”
“농사나 술집 주인, 여관 주인처럼 배우면 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저 귀족 나으리들이 하는 일에는 재능이라는 게 필요하지. 단순하잖아. 장남보다 차남의 재능이 더 뛰어나면 차남이 받는 거다. 그리고 저 귀족 나으리의 가문은 방금 내가 말한 케이스고. 그런 거다.”
“…….”
그러고 보니.
언제 한 번 촌장님이 마을 어르신들과 하던 이야기에서, 장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올해 아카데미 휴식기가 시작하던 때, 장남이 아카데미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던가?
“그래도 배부른 소리지. 저 대단한 가문의 장남이 가주 후보에서 물러난다 해도 설마 땡전 한 푼 없이 쫓겨날까?”
분명 나 같은 놈이 평생을 일해도 만지기 힘든 돈을 받고 쫓겨날 거라며 웨이튼이 피식 웃었다.
“푸…… 아무튼, 나도 그런 신세나 돼 봤으면 좋겠군. 하다못해 그러면 저번처럼 뒈질 뻔한 일도 없을 거 아냐.”
언제나 지루한 마을에서 이런 바깥세상 이야기는 아주 재미난 이야깃거리였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해 주시던 허무맹랑한 용사의 이야기보다, 이런 쪽이 알렉스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꿈인 알렉스에게 그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란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새끼, 표정 보니 딱 우리 말론이 생각나는구먼.”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웨이튼의 말에 알렉스는 용병단원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그리 물었다.
말론.
알렉스처럼 다른 시골 마을 주민이던 그는 웨이튼에게 잘 보여 용병단원이 된 케이스였다.
알렉스는 지난번 용병단의 방문 때 그를 보며 굉장히 부러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다.
말론도 그런 알렉스의 시선을 즐기듯, 한껏 콧대가 높아진 모습이기도 했고.
그랬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왜겠냐.”
“……?”
“쯧. 우리가 묻어 줬다. 용병단에 흔히 있는 일이지 뭐.”
“에이, 저 촌놈 때문에 우리 대장님 기분 또 다운 되셨다!”
“대장, 어디 우리가 내일을 생각하고 살았답디까? 말론 그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우리도 잘 알고! 대장도 맨날 우리한테 말해 주는 사실 아닙니까!”
“맞아, 맞아!”
알렉스는 용병단원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용병들에게 죽음이란 늘 언제나 곁에 두고 사는 역병 같은 존재였으니까.
“후, 그래. 뭐, 그렇게 됐다. 새꺄, 그러니까 너도 괜히 용병 같은 거 하겠다고 깝치지 말고 니네 마을이나 잘 지켜. 여기서는 네가 고블린만 때려잡아도 영웅 소리 들을 테니까. 알겠냐?”
“그러고 보니…… 예전에 뵀던 다른 분들이 안 보이는데…….”
“어랍쑈, 대장. 이 새끼 이거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모양인뎁쇼. 이러니까 씨발 아무리 용병들이 뒤져나가도 새로운 놈들이 충당되는 거라니까! 어휴, 병신새끼. 하여튼 목숨 아까운 줄을 몰라요.”
“근데 우리도 그 병신새끼 아니냐?”
“맞는 말이다, 처맞는 말!”
용병들은 우울해지려는 분위기를 살려 보려는지, 더더욱 호들갑을 떨며 수다를 떨었고, 끝내 알렉스는 그들에게 있던 일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별거 아냐. 그냥 던전 웨이브가 터졌는데 하필 재수없게 우리가 그 근처에 있던 것뿐이지. 그나마 근처 도시의 기사단이 훈련을 위해 주변에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지. 안 그럼 우리도 다 뒈졌어.”
“……고생하셨겠습니다.”
“고생은 씨발, 좆빠지게 했지. 돈도 못 받고 말이야. 쯧, 그런 게 바로 개죽음이라고, 개죽음!”
그러면서 웨이튼이 술이 가득 담긴 잔을 쭉 들이켜 마셨다.
“아주 좆같았지. 숲 외곽에 난 길을 통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렸어. 너 그거 아냐? 몬스터 피어라고, 트롤쯤 되는 놈들은 대부분 몬스터 피어라는 걸 내뱉거든. 그걸 들으면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몸이 굳어 버리기 일쑤지.”
크아아아아-!!
“그래, 마치 저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잠깐.”
이야기를 하던 웨이튼이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술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쿠오오오오오오오–!
다시 한번 멀리서 들려오는 괴성.
“이런 씨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현실에서 들려오자 웨이튼의 표정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 * *
쿠오오오오오오오–!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또 누군가에게는 낯선 존재감의 소리였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혐오스러운 소리였다.
“시작됐군.”
그리 중얼거리며 일어난 셰인은 포효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정 기간 방치된 던전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현상, 던전 웨이브.
곧 있으면 녀석들은 마을을 향해 진군할 것이다.
셰인은 잠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때, 자신은 억지로 기사단의 지휘권을 뺏어 전장에 나섰다.
결과만 말하자면, 셰인은 결국 마을을 지키지 못했고, 마을 주민들의 원성을 샀으며, 그의 무능함은 이곳 용병단에 의해 소문이 나면서 셰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만심만 가득한 무능한 귀족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당시에는 클라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억지로 지휘권을 가졌으나, 그렇다고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죽은 가족의 시신을 품에 안고 원망에 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과.
억지로 지휘권을 잡고서도 실패한 자신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짓는 기사단원들의 눈빛뿐.
때문에 그날 이후, 셰인은 더 이상 남을 위해 살기 않기로 다짐했고.
더더욱 이기적인 성격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딱히 이제 와서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도 셰인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 했고, 셰인의 지휘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사고도 아니었으니 전적으로 그의 잘못만이라 할 수는 없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나서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은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훗날 ‘무명’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명성은 필수였으니.
이미 해질녘이 된 마을이 부산스러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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