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31화
31화 검은 꽃
실상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저지먼트 기사단을 위시한 황실의 기사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회귀 전 아네이스가 그들에게 철혈의 정의를 내린 것은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아네이스는 정의를 실현한 뒤의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결과적으로 그로 인한 뒷감당은 남은 이들이 해야만 했다.
그런 그녀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나, 보다 정리된 혼란을 준비하고 싶은 셰인은 아네이스가 가진 정의의 원인을 알아볼 이유가 있었다.
‘실수했군. 아네이스와 이렇게 빨리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
가능하다면 디라일라를 구하며 죽였던 저지먼트 기사단원의 영혼을 파헤쳐 봤어야 했다.
‘하지만 대신할 것은 있나.’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나은 단서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셰인은 수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아네이스와 도미닉의 일행들을 바라봤다.
* * *
수색이 진행된 지도 어느덧 보름.
충분한 휴식을 마친 일행은 다시금 탐사를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터널에 길잡이도 있으니 탐사가 쉬워졌군. 목표 지점까지 얼마나 걸리지?] [인간들의 기준으로 열흘 정도다. 그리고 인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동족은 너희 인간들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땐 어떻게 할 예정이지?] [굳이 이 인원들이 모두 들어갈 필요는 없지. 거기다, 당장 너의 동족들도 새로운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순간, 오르카의 걸음이 멈췄다.
잠시 셰인을 응시하던 그녀는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고, 재차 물었다.
[새로운 적? 동족들에게 적이 있다는 말인가?] [그래. 그들은 나와 비슷하지만, 보다 강경하게 너희 동족들을 노리고 있지.] [그들과 아는 사이인가?] [놈들은 날 모른다. 하지만 나는 놈들을 알고 있지.]메자이아 대수림의 드래곤 하트.
그 물건을, 조직이라고 해서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메자이아 대수림을,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엘프들을 꾸준히 압박하고 있을 터.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오르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지 않나? 너희 인간들이 던전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아카샤, 인간들의 신이라는 존재에 의해 시간이 붙잡혀 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동족들은 죽더라도 죽지 못하고, 살더라도 살지 못한다.]마치, 저주와 같이.
라며 오르카가 말했고 셰인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다.] [예외?] [내가 너에게 잠시나마 아카샤의 봉인을 해주했던 것을 기억하나.] [……설마. 그들에게도?] [그들에게 봉인을 풀 정도의 능력은 없다. 다만, 다른 방법으로 대봉인의 눈을 잠시 피할 방법은 있지.]아카샤의 대봉인은 언뜻 보면 완벽한 듯싶지만, 아예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오르카도 시간이라는 것 자체는 여전히 봉인되어 있으나, 육체적 자유는 되찾지 않았나.
디라일라 또한 마찬가지.
오히려 디라일라는 아카샤의 대봉인으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되찾은 이종족 중 한 명이었다.
대봉인에는 이렇듯 구멍이 존재하고, 그중 몇 개는 인간들의 신 아카샤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조직은 그 구멍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했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봉인되어 왔음에도 너희에게 정신적 타격이 없는 이유를 아나?] [아마도, 시간의 되새김 때문이겠지.]던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초기화가 된다.
죽었던 몬스터는 되살아나고, 파괴된 주변 지형이 원상 복구된다.
당연히 그로 인해 생겼을 정신적 피로도 초기화되기 마련.
그러나 이 던전은 어떠한가.
그제야. 오르카는 이곳까지 오면서 지나쳐 온 몬스터들의 부패된 사체들을 떠올렸다.
물론, 던전에 부패된 몬스터의 사체가 없을 이유는 없다.
만일 그들이 봉인되기 전에 죽었던 것이라면 이해가 되니까.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사체를 파먹는 애벌레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이 던전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제대로 흐르고 있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틀어졌다고 봐야 할 터.] [무슨 말인가.] [누군가에 의해 시간선이 갈라졌다는 말이다. 여전히 이곳은 봉인되었지만, 시간 하나만큼은 이어지고 있지. 그리고 이 비틀어진 시간선은 너희 동족들에게 제법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 있을 거다.] […….]오르카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 *
탐사를 진행한 지 얼마나 됐을까.
해를 볼 수 없는 지하의 특성상 시간 감각이 점차 흐려지고 있을 때부터, 탐사대는 이변을 감지했다.
“뭔가 이상하군.”
방금 막 전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애덤이 탐사대의 지휘관들을 모아 그리 말했다.
“음, 확실히. 저 벌레들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있네.”
“그렇소. 다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왠지…….”
“유인되고 있는 것 같아요.”
라비아타가 애덤의 말을 받아치고, 애덤이 추가적으로 이상함을 표할 때 일렉사도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구먼. 이상하게 길이 막힌 곳이 많았지.”
마지막으로 도미닉의 말처럼, 일행은 어디론가 유인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흐으음. 이 늙은이의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는 신중하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네만.”
“또다시 일정이 지체되고 싶지는 않으나, 도미닉 경의 말에는 찬성이오. 거기에 최근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시선 또한 느껴지고 있던데.”
“으음, 그런가?”
도미닉의 말에 애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감이라며 일축했다.
한편, 셰인은 애덤의 말에 속으로 살짝 놀랐다.
‘괜히 왕실의 기사단장이 아니란 말인가?’
이번 탐사대 중에서 애덤 측의 인원들은 전투력이 가장 떨어지는 편이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애덤의 기감이 예민했던 것이다.
그 라비아타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놈들의 시선을 애덤이 느끼고 있었다니.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놈들이 움직였나?’
어찌 보면 오히려 여기까지 왔는데도 지나치게 조용한 것이라 해도 좋았다.
조직의 성격상 자신들의 일에 방해될 이들은 일찌감치 치워 두는 치밀함을 보였을 테니까.
‘굳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도 알겠군.’
물론, 조직이 이번 탐사대를 쉽게 봐서 내버려 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많은 탐사대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
때가 되면 녀석들은 그간 준비해 둔 것들을 서둘러 풀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역시, 그게 나오기 시작하겠지.’
애덤이 느꼈다는 기척.
그것 하나만으로도 놈들이 준비한 카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셰인은 눈치챘다.
이제부터는 진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셰인이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토벌대에 그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당분간은 아카데미 일행들에게 떨어지지 말라는 말 정도만 남겨 둔 상황에서.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습이다!!”
평소처럼 지하 터널을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가장 먼저 라비아타와 셰인이 발걸음을 멈췄고, 그다음으로 애덤이 주춤한 순간, 주변의 발광석이 일제히 터지며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그 직전에 애덤이 소리쳤으나, 가뜩이나 얼마 되지 않던 발광석이라는 광원이 사라지고 동시에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크아악!”
“끄아아아!”
다급하게 일렉사의 모험단이 방패를 들어 방어에 들어갔으나, 공격해 오는 이들은 능숙하게 뒤에 있던 기사단을 노리고 들어왔다.
“이게 뭔 날벼락이야?!”
전방에 있던 라비아타의 손에서 불길이 치솟자, 금세 주변이 밝혀졌다.
공격해 오던 적들은 기분 나쁘게 꾸물거리는 정체 모를 그림자들.
탁한 보랏빛 기운으로 이루어진 녀석들은 어둠 속에서 탐험단의 목을 쥐어 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격렬한 전투.
클라인은 지난날까지 얻은 깨달음으로 보다 정형화된 용오름을 피워 내며 검을 휘둘렀고, 아네이스도 그 옆에서 백색으로 빛나는 오러를 흩날리며 적을 베었다.
디라일라는 흙으로 빗어진 창과 방패를 만들어 침착하게 전장을 컨트롤해 나갔으나, 전장의 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젠장, 이놈들 뭐야! 오러! 오러를 피워라!”
“으으…… 소용없습니다! 베어도 계속 움직입니다!”
“이, 무슨?!”
오러에 몸이 베였음에도 움직이는 적들이라니!
오러는 단순히 절삭력을 높이기 위해 발현하는 기술이 아니다.
수련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러에 베이게 되면 내부의 마력이 진탕이 되기에, 살상력의 차원이 달라진다.
하나 놈들은 그런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달려드니, 기사들이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커질 것 같자, 셰인은 직접 해결 방법을 말할까도 싶었으나, 이내 먼저 클라인이 소리쳤다.
“단순히 베는 것으로는 효과가 적습니다! 선이 아닌 면으로 공격해야합니다! 타격으로 공격하십시오!”
그에 기사들 몇 명이 곧바로 오러의 형태를 바꿨다.
대수림에 있는 동안 클라인도 상당한 활약을 해 왔기에 몇몇 기사들은 클라인을 내심 인정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그들은 황실이나 왕실에서 나온 이들이니만큼, 금방 전투의 흐름을 읽고 방식을 바꿨다.
오러를 형성하던 마력의 형태가 묵직하게 바뀌기 시작하자, 이내 클라인의 말처럼 효과가 나왔다.
“적은 타격에 약하다! 그 점을 명심하고 전투에 임하도록!”
가장 먼저 실천했던 애덤의 외침에 기사들도 응답했다.
그렇게 적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전장의 열기가 사그라졌다.
“후우…….”
쓰러진 적들의 모습을 보며, 일행들은 앞서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부터 살펴봤다.
“이게, 무슨…….”
적들의 공격을 허용한 이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시체 위에는 검은 꽃이 피어났고, 시체는 마치 모든 마력을 뽑아먹힌 것처럼 창백했다.
그걸 본 라비아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꼭…….”
동시에 라비아타의 시선이 오르카에게 향했고, 오르카는 쓰러진 적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게, 당신이 말한 적들의 수작인가?] [그래.]적들을 감싸던 보랏빛 기운이 사라진 그곳에는, 핏줄이 파랗게 올라온 엘프들이 쓰러져 있었다.
[다크엘프다.]* * *
탐사가 잠시 미뤄지고, 일행들은 다시 한번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메자이아 대수림에 이런 형태의 몬스터가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소. 하이엘 왕국에서 수십 년 동안 자체적인 탐사를 통해 알아본 사실이오.”
애덤의 말에 도미닉이 물었다.
“으음…… 하지만 그 탐사대가 중심부까지 온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고?”
그에 애덤이 아직 창백한 표정이 가시지 않은 오르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 확인된 외형만 봐서는 엘프와 매우 흡사합니다. 다만, 엘프는 저런 모습이 아니지요.”
“음, 그렇지.”
비록 아카샤의 대봉인에서 자유로운 엘프는 그리 많지 않으나, 적어도 그들이 아는 엘프에게 방금과 같은 특성은 없었다.
“라비아타 단주, 그대는 뭘 좀 아는 게 있소?”
그에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애덤이 물었고, 라비아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엘프라는 종족이 숲의 주인이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지?”
“물론이오.”
“그런데 사실 엘프라는 종족이 단순히 숲에서 강하기 때문에 숲에 사는 게 아냐. 애초에, 그들의 특성은 숲과 크게 관련도 없고.”
“흐음?”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엘프란, 숲에서 살아가는 종족이었기에.
“사막에서 사는 엘프도 있고, 극지방에서 사는 엘프도 있어. 애초에 엘프는 그저 주변 환경에 따라 적응이 달라지는 종족이란 말이지. 엘프들은 단지 숲이 지닌 마력의 정순함 때문에 그곳에 있는 거야.”
“그렇다면 저 엘프들은 무언가에 오염됐다고 보면 되는 겐가?”
대충 이해한 도미닉의 물음에 라비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요람에 무언가 변칙적인 일이 생겼나 봐. 숲 전체가 저런 마력에 휩싸이진 않았으니까, 일부만 저런 상태라는 거겠지.”
“흐음…… 어쨌든, 저들의 기습은 위협적이오. 놈들의 마력에 상처를 입는 순간 아까 희생당한 이들처럼 된다는 말이니.”
앞서 전투에서 죽은 인원들은 급소를 당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이내 죽음을 맞이했다.
상처 부위로부터 보랏빛 꽃을 피워 낸 채로.
“그런데 자네는 아까부터 거기서 뭘 하고 있나?”
한참 회의 중일 때, 도미닉이 셰인을 향해 물었다.
셰인은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시신으로부터 꽃을 채취했는데, 품에서 모노클을 꺼내 착용하고는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적을 상대하려면 그에 앞서 적에 대해 알아야겠죠. 그들이 남긴 꽃에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어 보고 있었습니다.”
“흐음, 일리가 있는 말이구먼. 혹시 무언가 찾은 게 있나?”
도미닉의 물음에 일행들의 시선이 셰인에게 모였다.
직접 오지도 않고 메자이아 대수림의 기상 현상에 대한 가설마저 새운 셰인이었다.
그가 직접 본다면 무언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셰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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