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33화
33화 여기서 왜 나와?
황실의 호위 기사, 하르페는 이번 불침번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상관인 도미닉의 부름을 떠올렸다.
“이보게, 하르페. 슬슬 때가 된 것 같구먼.”
“때라면…….”
“셰인. 저 아이는 뛰어난 인재이지. 하지만 아직 인류에게 준비되지 않은 인재일세. 안타깝지만 여기서 정리해야겠어.”
하르페는 도미닉의 표정을 깊게 바라보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에서는 진정으로 안타깝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재 황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대국적인 일은, 저만한 인재를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업적이었기에.
인재욕이 강했던 도미닉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야간에 기회가 있을 걸세. 그들이 자네에게 도움을 줄 테니, 자네도 당분간 몸을 숨기고 있게나.”
그리고 이어지는 불침번의 시간.
도미닉의 말처럼, 기회는 얼마 가지 않아 금방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달려드는 다크엘프들.
그에 맞춰 하르페도 검을 뽑아 들어 그들의 장단에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적들을 막아 보겠네! 자네가 먼저 가서 이 사실을 기사단에 알려야 해!”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셰인은 크게 당황한 기색 없이 하르페의 말을 따라 뒤로 달려 나갔다.
그에 하르페는 계획했던 대로 다크엘프 둘을 놓쳤고, 놈들은 실수 없이 달려가던 셰인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큭……!”
짧은 단말마와 함께 셰인이 쓰러지기도 잠시.
“……끝났군.”
다크엘프들의 단검에 찔려 바닥에 쓰러진 셰인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게다가 셰인의 허리에는, 보랏빛 꽃이 피어나기까지.
죽음.
타깃의 확실한 죽음을 확인한 하르페는 그런 셰인의 주변에 서 있는 다크엘프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의 역할은 끝났다.”
그러면서 하르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남은 다크엘프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한 순간에 세 명의 다크엘프가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머지는 놈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나도 이제 몸을 숨겨야겠군.”
방금까지 자신을 위해 셰인을 살해한 다크엘프의 시체를 바라보는 하르페의 눈에는 깊은 혐오의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이종족은 인류의 적.
비록 황실의 대국을 위한 일이었기에 임시나마 손을 잡았지만, 그조차도 하르페에게는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한편, 하르페는 쓰러진 채 미동도 보이지 않는 셰인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쯧,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이 또한 인류를 위해서다. 그 희생을 내가 기억하마.”
이런 시기가 아니었더라면 황실에서 중히 기용했을 인재였겠으나.
하필 메자이아 대수림의 드래곤 하트를 거론하다니.
그러한 안타까움에 하르페가 뒤돌아 걷던 직후.
“나도 기억하마. 네가 가진 역겨운 위선과 그 기억을.”
“……!!!”
들려서는 안됐을 셰인의 목소리와 함께, 하르페는 경악하기도 전에 자신에게 들러붙는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 * *
외부에 알려진 굳건한 황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상 현 황실의 내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현 황제의 예기치 못한 건강 악화.
아직까지는 그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고 쓰러지며 그 뒤로 평생 일어나지 못한다.
그 와중에 다음 옥좌의 주인에 가장 가까운 이는 작금의 황태자, 제페르 디 와이어트 새뮤얼.
황태자인 새뮤얼은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자신의 수족을 늘리고 있었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본래의 황제와는 다르게 황태자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추켜세우고, 만약 따르지 않는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숙청했다.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현 황제는 그런 황태자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훗날, 역사대로 시간이 흘러 황제가 된 새뮤얼은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에 취한 황제, 전쟁에 미친 전쟁광이 되어 인류의 미래에 거대한 재앙을 가지고 온다.
하지만 그 재앙은 여러 악재들과 조직의 오랜 준비로 인해 만들어진 예정된 재앙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수많은 기사들은 황태자 새뮤얼의 대국적인 ‘합일’에 경도되어 있었고.
그리고 이번 탐사대에서 파견을 나온 황실 호위 기사단 또한 그런 새뮤얼의 손가락 중 하나였다.
‘황태자님께서 드래곤 하트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지만 않으셨어도…… 영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구먼.’
황실의 사람답게, 도미닉은 귀족이면서 동시에 천재인 셰인의 처리가 영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훗날 있을 ‘합일’을 떠올리면, 이는 충분히 필요한 일.
만약 이번 작전이 잘 먹혀 들어간다면, 이후에 필요한 합일에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그를 위한 희생이 아니던가.
‘언젠가 하르페에게 술이라도 사 줘야겠구먼. 이런 궂은일을 시켰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본인이 역겨운 위선자임을 알지만, 도미닉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광명은 언제 찾을는지.”
아무튼, 지금쯤이면 명령을 받은 하르페가 셰인과 다크엘프들을 처리하고 지금쯤 모습을 숨겼을 터.
기다리던 아침이 찾아오고, 새벽 동안 불침번을 서야 했던 셰인과 하르페가 사라지자 잠시 혼란이 일어났으나, 이내 곧 멀지 않은 장소에서 다크엘프들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암울한 침묵이 흘러갔다.
“……안타까운 일이로고. 하지만 여기서 그 둘을 찾으러 갔다간, 본대와 떨어질 위험이 있을 것 같구먼. 일단 이동부터 해야겠네.”
그런 도미닉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앞으로 나아갔다.
여태까지는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실에 도미닉은 속으로 작은 위안을 얻으며 걸었으나, 그가 알 수 없는 곳에서 그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 * *
서로 등을 맞대며 전투를 지속하던 디라일라와 아네이스는 클라인의 무용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럽다.’
‘천재라는 게 저런 걸 보고 말하는 건가?’
마력을 풀풀 풍기며 최전선에서 몬스터를 말 그대로 학살하고 있는 클라인의 모습이란.
분명 요람에 입장했을 때 당시만해도 성장속도 자체는 클라인이나 아네이스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셰인과 떨어지자마자 클라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단순히 마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그 마력 한 가닥 한 가닥이 적의 생명을 위협하며 움직인다.
검에서 망설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예전에 셰인이 가르쳤듯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따라 급소만을 노린다.
그리하면 남은 인원들이 알아서 급소를 타격당한 몬스터를 정리할 테니까.
그러한 살벌한 전투에 여태껏 무관심했던 탐사대원들의 시선이 클라인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대단하군…….”
“소문으로 역대 최고의 천재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허.”
몇몇은 순수하게 대단하다는 시선을, 또 몇몇은 재능이라는 잔인한 현실의 벽 앞에서 짧은 절망을 내비쳤다.
클라인의 본격적인 활약 덕분일까, 그동안 부진했던 탐사대의 발걸음이 빨라졌으나.
이런 탐사대에게 또다시 위험이 찾아왔다.
“다크엘프다!!”
탐사대가 찢어진지도 어느덧 5일차에 접어들 무렵.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던 다크엘프들이 다시금 전장에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극명히 달라진 점이 있었다.
확연히 다른 기세.
본능에 몸을 맡기듯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이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
직전에 느낀 낌새가 다르지 않았음일까, 적들은 공격을 피하고, 막으며 누군가에게는 경상을, 누군가에게는 확실한 죽음을 선사했다.
“아오, 이 성가신 것들!”
그에 라비아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마력을 개방, 순식간에 적들이 있던 공간에 화염에 퍼부어지며 시야를 가렸다.
한편, 한쪽에서 그들의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오르카는 어느새 자신에게 접근한 다크엘프를 마주했다.
[서른두 번째 가지의 나뭇잎, 오르카.] [……!] [그분의 뜻을 따라 이곳에 왔다. 이 말을 전하라 하더군.] [그분?] [시간이 없다. 이제부터 전달하겠다. 내용은──] [잠깐, 그게 도대체……!]내용을 들은 오르카가 다크엘프에게 무언가 묻기도 전에 그는 다시금 연무 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연무가 가셨을 때 더 이상 다크엘프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오르카가 혼란에 빠져 있기도 잠시.
“아직 전투가 가능한 사람들은 아직 경계 풀지 마! 경상인 사람들은 부상자들부터 먼저 옮겨!”
“아아아, 제이콥!”
“젠장!”
이번 전투에서 또다시 나온 희생자들 앞에서, 탐사대는 복수의 불길을 태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같은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오르카를 혐오 어린 시선을 바라보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로, 탐사대의 정신은 점차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 * *
잠에 빠져 있던 디라일라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걸음을 느끼고는 눈을 떴다.
하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요람 내부였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 정도에도 금방 눈을 뜰 정도로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진 디라일라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어?”
그러자, 그곳에는 오르카가 무릎을 굽힌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오르카 씨? 저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아니, 말 못했지 참.”
메자이아 대수림의 엘프, 오르카.
이번 탐사 기간 동안 몇 번이고 디라일라가 말을 걸어 보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눈길 한 번 준 적 없던 그녀가 오르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데 무슨 일로…… 라고 하기엔 말을 못하는데. 아, 답답해.”
언어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은 디라일라가 오르카에게 뭐라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던 그때, 오르카가 주변에 돌멩이를 주워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맞네. 그림은 그릴 수 있었지, 참.”
그러면서 디라일라는 그녀가 그리는 그림을 세심하게 바라봤다.
“이건 나고, 이건 오르카 씨고. 음, 그러니까 나랑 같이 어디를 가고 싶다는 건가? 아! 화장실?”
그런 디라일라의 말에 오르카는 잠시 인상을 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요즘 분위기가 영…… 그렇지?”
최근, 다크엘프의 등장으로 인해 오르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아진 와중에 그녀 홀로 움직였다간 탐사대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특히, 도미닉과 떨어지게 된 황실의 호위 기사들은 오늘 있던 다크엘프하고의 전투에서 동료까지 잃었으니.
당장 오르카를 보는 시선이 매우 흉흉했다.
저들에게 다크엘프든 엘프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을 테니.
괜스레 황실 호위 기사단원들이 머무는 쪽에서 시선을 돌린 디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바로 가요.”
여태까지 마치 인형처럼 표정에 변화가 적었던 오르카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했던 게 마음에 들었는지, 디라일라는 훌쩍 일어나 불침번들에게 말한 뒤 오르카와 함께 외부로 나왔다.
“흠흠. 그래도 여태까지 꾸준히 말을 건 보람이 있구나. 후후.”
그동안 이 엘프와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말을 걸었던가.
처절한 무시로 일관됐지만, 디라일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 인간들 사이에서 살기도 팍팍한 마당에, 같은 이종족끼리 말이라도 트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다 손가락이 몇 개 없는 걸 보면 분명 힘든 시간을 보냈을 터.
디라일라는 오르카가 자신에게 차가운 이유가 타인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 근데 우리 좀 깊게 온 거 아닌가요? 저기요, 어디까지 가세요? 아이 참. 여기에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이렇게 멀리 올 필요 없어요.”
너무 일행들과 멀리 떨어진 게 아닌가 싶었던 디라일라가 그리 말해 봤지만, 오르카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기요? 저기요! 여기서 더 멀어지면 위험해질 거 같은데!”
그렇게 디라일라가 뒤에서 부르기를 한참.
오르카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멈췄네! 아니 무슨 볼일 한 번 보겠다고 이렇게 멀리…… 까…… 지…… 어?”
그때쯤, 디라일라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 앞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등장한 존재는, 디라일라도 익히 알고 있던 존재였다.
“다, 당신은…….”
문제는 그가 홀로 등장한 게 아니라, 등 뒤로 십여 명의 다크엘프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검은 기운에 휩싸인, 새하얀 민무늬 가면의 사내.
셰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