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34화
34화 타오르는 미소
며칠 전.
전생에 다크엘프를 지휘한 적이 있던 셰인은 다크엘프의 마력이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하르페가 놓친 척 달려드는 다크엘프의 공격은 셰인으로선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황실 호위 기사단원 중 한 명인 하르페를 처리한 뒤, 셰인은 남는 시간 동안 상처를 치료하며 하르페의 기억을 정리했다.
그가 살아온 대부분의 쓸모없는 기억들은 지워 버리고, 황실과 연관된 기억들만 가다듬으며 정보를 수집하기도 잠시.
“별건 없군.”
대부분 셰인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제외하면,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황실과 얽힌 이해득실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
실상 이것도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던 부분이기는 했다.
그 기억의 내용은 현 황태자, 제페르 디 와이어트 새뮤얼이 드래곤 하트를 노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직과 연계하여 드래곤 하트의 일부분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얻고, 이번 탐사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들의 목적이었다.
굳이 새로울 것도 없는 정보라 셰인은 대충 머리 한편에 이 정보를 남겨 두고, 이내 약속된 시간에 맞춰 찾아온 다크엘프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은 명령받은 기억과 다르게 셰인이 멀쩡히 살아 있자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다크엘프들의 전투는 맥없이 끝나 버렸다.
어느새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셰인의 오리진을 품은 어둠이 다크엘프들을 향해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이대로 살육 기계로 만들기엔 아깝지.”
가뜩이나 그리 많지도 않은 엘프들이다.
하지만 그 적은 숫자만으로도 전생에 수많은 인류의 중진들을 암살하는 데 도가 튼 놈들이었고.
살려 둔다면 분명 쓸 일이 많을 녀석들이다.
셰인은 오리진의 일부를 엘프들에게 주입했다.
‘하기야. 그 정신 나간 녀석의 발명품이니.’
가뜩이나 이지를 상실해 표정 변화가 없던 다크엘프들이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는 입으로부터 탁한 무언가를 내뱉기 시작했다.
다크엘프의 몸에 스며들었던 오염된 마력과 찌꺼기였다.
[정신이 좀 드나?] [여, 여긴…….]어느새 셰인의 오리진으로부터 풀려난 다크엘프가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올려다본 셰인은,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쓰고 있었다.
* * *
셰인이 조직에 몸을 담고 있던 시간은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생각하면 이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일 뿐이지만.
셰인은 그 10년이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었다.
“거기에 있는 시간을 잘 이용하는 게 좋을 거야.”
타락한 자아에 밀려 스스로의 내면에 갇힌 셰인은 검은 머리카락에 마치 용암을 품은 듯한 주홍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를 떠올렸다.
그녀는 셰인의 진정한 자아를 알아차리고, 때때로 마주칠 때면 저런 식으로 시간을 잘 이용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했다.
내면에 있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녀의 말처럼 셰인은 스스로의 내면에 갇힌 상황에서도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락한 자아는 끝까지 자신을 물고 늘어지며 놓아주지 않았고, 스스로 지쳐 내면 속에서 완전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내면의 셰인을 괴롭혔다.
내면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음에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 같다가도, 1초가 10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기이한 개념의 공간.
남들에게는 고작 10년에 불과했을 시간이었을 테지만, 셰인에게 10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그곳에서 버텨 왔던 것이다.
때문에 내면에서 봐 온 외부의 지식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뜯어보며 이윽고 습득에 이르러 결국에는 더 진화하는 과정까지 다다랐으니.
결국 그 소녀의 말처럼.
셰인은 그 시간을 결코 헛되게 쓰지 않은 셈이었다.
* * *
잠시 과거를 떠올렸던 셰인은 이지를 되찾은 다크엘프들을 바라보며 그때 그 소녀를 떠올렸다.
‘너의 말처럼 됐군.’
단지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였기에 여러 정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
당장 지금으로서도 그 소녀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셰인은 어쩐지 자신의 회귀가 그녀와 매우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평소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에 기댄 판단이라 그 생각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지만.
‘당장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아무튼.
그때 그 소녀가 말했던 것처럼, 회귀 전.
타락한 자아가 받아들이던 정보를 모두 알고 있던 셰인은 눈앞의 다크엘프들에게 이성을 되찾게 하는 일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애초에 요람에 오기 전부터 다크엘프와 조우할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뒀으니.
[우리가, 어째서 이런 몸이 된 것인가.] [……설명해 다오. 너의 정체는 무엇이지? ]아직 오염의 여파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다크엘프들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셰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젠가, 어느 엘프에게 했던 것처럼.
[너희의 자유를 되찾아줄 자다.]셰인은 천천히, 그러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 * *
셰인이 다크엘프에게 이성을 되찾아 준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 엘프는 기본적으로 육체에 마력을 받아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엘프라고 해서 아무런 마력이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고,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걸 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셰인은 바로 그 마력 패턴을 분석하고,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물론 셰인이 그러한 마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장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다크엘프들에게 심어진 마력을 비틀어, 기존에 그가 알고 있던 마력 패턴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살기 위해서는 종족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맞다.]다만 문제가 있다면, 다크엘프들이 품고 있는 마력에는 당장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다크엘프들이 미완성품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크엘프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력을 충분히 보충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들은 이지를 상실했고, 조금만 싸워도 금방 마력이 바닥나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다크엘프들에게 남은 특유의 마력을 베이스로 두고, 셰인의 모조한 마력이 대신 소모되도록 유도하여 그러한 사태를 막고 있지만.
이도 언제까지고 이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다크엘프들에게 동족의 설득을 종용한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엘프이고 이지를 되찾은 만큼 동족을 배신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셰인을 적으로 두기에는 이미 그들은 너무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적들은 엘프들을 잡아다 다크엘프로 만들고 있었고, 그 수가 적은 엘프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력이 빼앗기는 것은 큰 위협이었으니.
물론 순전히 셰인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셰인 또한 그들의 처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단 하나의 조건만을 말하고 있었다.
[붉은 정령사초를 섭취하지. 그리고 너희 엘프의 수장을 만나러 가겠다.]붉은 정령사초.
정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그 독초는, 인간이 섭취할 시 그 섭취량에 따라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근원의 맹세도 하겠다.] [……!]고대의 종족들에만 알려져 있는 맹세.
이름이 거창한 만큼, 맹세를 어겼을 시의 페널티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는데, 이는 단순히 마력을 동결시키는 붉은 정령사초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따르도록 하지요.] [좋아. 그럼 먼저 너희의 오염된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군.] [예.]이후, 셰인은 자신의 마력이 허락하는 수준까지 다크엘프들을 받아들였고, 그 수는 총 14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14명의 다크엘프와 함께 등장한 셰인을 향해, 디라일라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당신…… 당신이 이번 일의 배후였어요?”
물론, 그녀가 충분히 해 봄직한 오해를 하면서.
그야 디라일라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셰인은 누가 봐도 흑막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동안 탐사대를 괴롭혀 온 다크엘프에게 둘러싸여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셰인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비슷하지만 다르지. 나는 이들에게 강요와 협박이 아닌 선택과 자유를 선사했으니.”
“무슨 선문답 같은 얘길…….”
“네가 보기에 이들이 지금껏 만나 왔던 녀석들과 똑같아 보이나?”
“어…….”
그제야 디라일라는 셰인의 뒤에 서 있는 다크엘프들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여태까지 만나 왔던 다크엘프들과 다르게, 그들의 눈에는 흐릿한 기운이 담겨 있지 않았다.
당장 지금도 호기심이 담긴 표정으로 자신과 오르카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자의 저주로부터 벗어난 이종족이 있다니. 거기에 땅의 종족이라. 오랜만에 보는군.] [우리의 형제 또한 있다. 어째서 저 둘이 함께 다니는 거지?] [정말, 저자의 말처럼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 걸까?] [……선택은 동족들이 해 줄 테지.]이러한 다크엘프들의 다양한 표정, 그리고 오르카의 평온한 얼굴에 디라일라는 일단 무조건적인 적의는 풀기로 했다.
“그럼, 우리가 상대했던 다크엘프하고는 다르다는 거, 맞죠?”
“그래.”
순전히 저 말을 믿어 줄 수는 없었으나, 일단 대화는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만, 오르카가 괜히 자신을 이 자리에 끌고 온 게 아닌 것 같았으니.
“그럼 무슨 일로──.”
그런 이유로 디라일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야,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네.”
“……?!”
“정말 그 다크엘프들이랑 상관없는 거, 맞지? 그랬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타오르듯 붉은빛을 머금은 머리카락의 여인, 라비아타가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 피어오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미소를 지으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