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38화
38화 끝나 가는 탐사 (3)
“에엑! 저기,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그런 중요한 건…….”
탐사대의 시선을 끌게 된 디라일라가 기겁을 하며 거절하려 했으나, 셰인이 그 말을 끊었다.
“너에게 모두 맡길 생각은 없다. 네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어, 그럼 다행인데. 마지막 말은 꼭 필요한 말이었니?”
“다만, 디라일라. 너의 역할이 중요한 건 달라지지 않았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곳의 대지는 의지력이 강한 이곳의 식물과 연결되어 있다.”
“어, 그렇지.”
“이제부터 나는 엘프들이 만든 마법진을 손볼 예정이다. 그 주체를 나무에서 흙으로 옮길 생각이지. 너는 거기에 맞게 이곳의 대지와 동화율을 높여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끄응. 아냐, 한번 해 볼게.”
당황스러운 요구였으나, 이내 디라일라는 마음을 고쳐먹고 셰인의 말에 따랐다.
그녀 또한 생도 신분이기 이전에 한 명의 모험가였고, 팀장의 말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셰인은 엘프들의 마법진을 개조하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고, 바닥에 앉아 이곳의 대지와 교감하던 디라일라를 향해 라비아타가 다가왔다.
앞서 셰인의 부탁을 받은 라비아타는 디라일라의 옆에 마찬가지로 앉아 속성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불을 다루는 마법사로서 이름 높은 라비아타답게, 그녀는 속성에 대해 순도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 것처럼, 자연도 성향이 서로 다르기 마련이지. 불이라고 다 같은 불이 아니고, 대지라고 다 같은 대지가 아니란 말이야.”
“아…….”
“아마 밖에선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거야. 네가 가진 속성 친화력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뛰어났을 테니까.”
“네, 네. 맞아요.”
라비아타의 말처럼, 이곳의 대지는 바깥과는 달랐다.
오랜 기간 나무와 함께 해온 메자이아 대수림의 대지는 디라일라에게 호의적이기는 했으나, 외부처럼 맹목적인 믿음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지. 엘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의 자연과 친화력을 쌓아 왔고, 그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거든.”
이어서 라비아타는 설명했다.
“그런데, 너는 네가 가진 재능 때문에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착각이요?”
“그래. 너희 지하인들이 가진 건 속성 친화력만은 아니야.”
“……?”
“고대에 지하인들은 대지의 주인이었어. 그 엘프들마저도 자존심을 뒤로하고 지하인과 친분을 유지할 정도로, 땅에 있어서만큼은 지하인들이 으뜸이었단 말이지. 이게 왜 그런지 알아?”
“음…… 잘 모르겠는데요.”
“엘프는 다방면으로 친화력이 뛰어나. 자신들의 마력패턴을 자연과 맞추면서 그로 인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머무는 자연과 하나가 되지. 이런 숲을 제외하고도 엘프들은 사막과 설원 지대에서도 잘 사는 이유가 바로 이거란 말이지. 그런 그들이 왜 지하인과 친분을 유지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단순해. 바로 지배력 때문이야.”
“지배력이요?”
“그래, 지배력. 지하인이 특별한 이유가 뭔지 알아? 속성 지배력이라는 힘은, 어느 한 종족을 대표하는 힘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인간들도 속성 친화력은 알아도, 지배력에 대해서는 모르지. 적어도 인간들 중에 지배력을 소유한 사람은 여태까지 한 명밖에 없었어.”
얼마 전, 어둠이라는 속성을 지배하고 있던 셰인을 떠올리며 라비아타가 이어서 말했다.
“어느 한 종족이라면, 설마?”
“맞아. 드래곤. 유일하게 속성에 있어서 절대적 지배력을 지닌 종족들. 지하인의 지배력은 비록 드래곤에게는 밀리지만, 그렇다고 드래곤이 지하인보다 대지를 더 잘 다뤘던 건 아니야. 친화력과 지배력. 이 두 개 모두를 갖춘 존재는 너희 지하인이 유일하거든.”
“으음. 그런데 잘 믿기지가 않네요. 그 드래곤보다 지하인이 더 대단했다니…….”
디라일라에게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그만큼 드래곤이라는 이름에는 무게감이 있었으니.
그러나 라비아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드래곤은 속성 지배력이 대단한 만큼, 친화력은 없었다고. 그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야. 말하자면, 당근과 채찍의 개념이지. 그런 의미에서 엘프들은 나무가 자라는 땅만큼은 지하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던 거야. 만약, 지하인들이 자신들의 지배력일 행사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들이 말라 죽었을 테니까.”
“아…….”
그런 라비아타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디라일라에게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방법을, 찾은 거 같아요.”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 본 디라일라가 맑은 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라비아타는 작게 감탄했다.
종족 자체의 특성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던 자기 종족의 특성을 말만 들었다고 파악하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으니.
‘꼭, 이 녀석만 그런 건 아니지.’
디라일라를 제외하더라도 클라인과 아네이스의 재능 또한 결코 만만찮았다.
라비아타로서는 이런 인재들을 곁에 둔 셰인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 * *
한편, 아네이스는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네이스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흐르는 기세를 읽을 줄 알았고, 그렇기에 도미닉과 황실 기사단이 다시금 탐사대에 합류 한 순간부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변화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럴수록 아네이스의 귀는 점차 민감해져 갔다.
사람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고, 다양한 정보를 머릿속에 풀어내며 점차 스스로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자 지난번에 도미닉이 해 왔던 제안을 떠올렸다.
정의.
저지먼트 기사단과, 도미닉의 황실 기사단이 아네이스에게 항상 말하는 단어.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아네이스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그게 무엇일지 여전히 아네이스는 알 수 없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질문하고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직 정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네이스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의심의 싹을 틔우기엔 충분하다는 사실을.
* * *
“클라인.”
“형님?”
셰인의 부름에 클라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많이 성장한 것 같구나.”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나, 클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다.
전투를 치를수록, 클라인은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힘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힘은 넘쳐 난다.
그 어떤 적도 클라인의 검 앞에 대적할 수 없었고, 실제로도 갑충형 몬스터들은 클라인의 검 앞에서 자신들의 방어력을 자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클라인은 스스로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기교였다.
넘쳐 나는 마력과 그걸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의미다.
여태까지는 그러한 불편함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외부에서는 언제나 넓은 지형에서 싸울 수 있었고, 고작해야 만나 본 고블린들은 전력으로 싸울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그나마 트롤을 상대로 어느 정도 힘을 보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력을 다 해 본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좁은 지형에서 산성액을 내뱉으며 돌진하는 곤충형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고, 땅 내부를 헤집고 등장하는 몬스터의 날렵함은 그 어떤 몬스터들에게서도 겪어 본 적 없는 까다로움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도 클라인이 가진 힘은 일당백의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으나, 그럴수록 스스로의 실력이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보다 잘할 수 있음에도 그럴 수 없다.
여태까지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한차례 셰인과 강제로 떨어지게 되면서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다 보니 그러한 결과에 다다른 것이다.
“드디어 벽에 다다랐구나.”
셰인의 그 짧은 말에서 클라인은 곧바로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벽…….”
여태까지 특별히 벽이라는 것을 느껴 본 적 없던 클라인은 아직 그걸 스스로 깨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클라인. 마력이라는 게 무엇일 거 같으냐.”
“마력, 말입니까?”
그 질문은 누가 들어도 난해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라인은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주저하는 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마치 저를 지켜주는 단단한 성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성벽은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서, 다가오는 상대에게 절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적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단단한 성벽.
그러나 벽은 움직이지 않는다.
클라인은 그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 이런 클라인의 심정을 본다면 미친놈이 아니냐며 욕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클라인의 마력 컨트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진정한 재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본인은 생각이 달랐다.
“언제나 제 뜻대로 움직여 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닌 거 같습니다.”
거기까지 말을 들은 셰인은 미세한 웃음을 지었다.
“스스로가 성벽이라 말해 놓고, 성벽이 움직이길 바라는구나, 클라인.”
“아…… 하하.”
그 말에 클라인도 스스로의 비유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다.
“클라인. 너의 문제는 다른 누구에게 말해도 제대로 된 조언을 듣기 힘들 거다.”
“왜…… 그렇습니까?”
“그야, 세상에 너 같은 천재는 또 없을 테니까.”
“음…….”
대놓고 자신을 세워 주는 말에 클라인이 부끄럽다는 듯 콧등을 긁었으나, 셰인은 이 말에 한 치도 과장을 섞지 않았다.
그만큼 클라인이 가진 재능은 천재들 사이에서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홀로 고고히 태어난 새는 자신을 챙겨 줄 동료나 가족이 없다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클라인이라는 이 새는, 나는 법을 배우기도 이전에 자신의 날개가 얼마나 큰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니 날려고 해도 날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력을 측정해 본 게 언제지?”
“한 8년은 된 것 같습니다.”
9살.
그때부터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클라인의 재능은 이미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당시 특별 주문했던 마력 측정기가 한계치에 다다르게 측정될 정도였으니, 클라인의 마력 순도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면?
클라인은 스스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독수리나 다름없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조만한 기회가 있을 테니.”
“기회라면…….”
“그때가 찾아오면, 걱정하지 말고 네가 가진 모든 마력을 풀어 봐라. 그럼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알게 될 테니.”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다. 조언이랄 것도 없으니.”
어차피 때가 되면 찾아온다는 것을 미리 말해 준 것뿐이기에, 셰인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마력 패턴을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로써 준비는 서서히 끝을 맺고 있었다.
이 길었던 메자이아 대수림의 탐사를 완벽하게 끝마칠 준비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