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4화
4화 단초 (3)
쿠오오오오오–!
그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다름 아닌 클라인이었다.
고작 17살의 나이에, 클라인은 저 멀리 떨어진 산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진득한 살기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것이다.
동시에 방 한편에 세워진 검을 집고 곧장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 클라인 보다 조금은 느리지만 기사단에서는 가장 빠르게 반응해 나온 사람은 그들을 여기까지 호위해서 온 기사단장, 레이어드였다.
“도련님!”
“예.”
둘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던전 웨이브.
물론 클라인은 그걸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실전에서 몬스터와 싸워 본 경험도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으니.
그럼에도 클라인은 뛰어난 본능적 감각에 맡겨,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먼저 마을 주민부터 대피시켜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다들 들었나!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곧바로 마을 동쪽으로 모여라!”
“알겠습니다!!”
뒤늦게 나온 기사단원들이 부산스럽게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그 뒤를 이어 셰인이 걸어 나왔다.
“클라인.”
“형님.”
“던전 웨이브구나.”
“……맞습니다.”
설마하니 형님도 그걸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는지 클라인의 눈동자에 잠깐 놀라움이 서렸다.
결코 형님을 얕봤기에 보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저 형님이 놀라울만큼 침착했기에.
“어찌하겠느냐?”
셰인의 물음에 클라인은 잠시 주춤했다.
본래 그가 알고 있던 형님이라면 여기서는 자신에게 묻기보다 먼저 명령권을 쥐려 했을 테니까.
형님은 존중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몬스터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형님을 존중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런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린 클라인은 셰인의 물읍에 답하고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마을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때문에 저는 레이어드 기사단장과 함께 먼저 녀석들을 타격할 생각입니다.”
“그래라. 지휘권은 너에게 맡기마.”
레이어드도 그런 차분한 셰인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 역시 셰인이 저렇듯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휘권까지 클라인에게 맡겼다.
물론 진짜 지휘권은 기사단장인 레이어드에게 있겠지만, 클라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그는 굳이 자신이 지휘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 기사단원 5명은 남기고 가거라. 나는 여기서 마을을 지키겠다.”
“……알겠습니다.”
이건 명령에 가까운 요구였지만, 클라인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어쨌든 마을을 지켜야 할 비상 전력은 있어야 함이 옳았고, 마을의 자경단원으로는 저 멀리서 들려온 몬스터 피어를 이겨 낼 이는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몸 성히 다녀오거라.”
그런 셰인의 말에 클라인과 레이어드 기사단장 둘 모두 어깨를 흠칫거렸으나,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은 변한 셰인의 행동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이번 소동을 마무리해야 했으니까.
* * *
몬스터 피어가 들리자마자 웨이튼 용병단은 곧장 자신의 화주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이미 전투태세를 갖춘 클레이튼 가문의 기사단이 분주하게 밖을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단원들은 마력이 실린 목소리를 내며 시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젠장. 쪽팔리게…….”
그때, 때마침 숙소에서 나온 단주와 눈이 마주친 웨이튼은 그런 단주의 명령을 기다렸다.
“끄응, 웨이튼 대장. 어떻게 하면 좋겠나?”
“단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번 웨이브보다 따로 있지 않습니까?”
“크흠! 그렇지.”
단주는 이런 웨이튼의 눈치가 퍽 마음에 들었다.
웨이튼의 실력은 평범한 용병대의 평균보다 아주 살짝 높은 정도였으나, 단주의 기분을 알아서 맞춰 주는 행동력만큼은 상위급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때맞춰 웨이튼이 한 기사를 붙잡고 상황을 물었다.
“기사님! 혹시 외부로 몬스터 토벌에 나서시는 겁니까?”
기사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의 차림새를 보고는 표정을 풀었다.
“그래, 맞다. 기사단장님과 함께 나갈 예정이다.”
“지금의 병력만으로는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혹시 이쪽 병력을 피해 마을로 오는 몬스터는 없을지…….”
“그건 걱정 마라. 우리 쪽도 5명이 남기로 했으니.”
기사의 말에 웨이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가만 보자, 분명 차남의 실력이 어지간한 기사단장들보다 실력이 좋다고 했었지. 그럼 분명 차남 쪽이 토벌대에 포함되겠군?’
계산을 마친 웨이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 그럼 혹시 저희가 전선에 나가는 걸 도와도 되겠습니까?”
“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물론 병력은 조금이라도 더 있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굳이 용병단의 힘까지 빌릴 필요성이 있나 싶은 기사였다.
그만큼 기사가 믿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런 기사의 기색을 읽은 웨이튼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여 녀석들이 전선을 넓게 가진다면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겠습니까. 이래봬도 전장 밥만 10년이 넘게 먹은 몸입니다. 던전 웨이브도 몇 차례 겪어 보았지요.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럼, 5분 뒤에 동쪽 경계 초소로 오도록. 늦으면 기다리지 않고 갈 것이고, 만일 이쪽 지휘관님이 허가하지 않는다면 물러나야 한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기사는 다시금 바쁜 발걸음을 옮겼고, 웨이튼은 뒤에 서 있는 단주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분명 외부로 나가는 쪽이 차남일 겁니다. 제가 그쪽에 최대한 시야에 들어오게 할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후후후, 웨이튼. 역시 자넨 나와 계속 함께 가야겠네.”
“별말씀을.”
그렇게 웨이튼이 이제 막 술기운에서 벗어난 동료들을 부르려 할 때.
“웨, 웨이튼 님.”
“응? 알렉스. 무슨 일이냐. 너도 들었잖냐. 어서 사람들 대피시키지 않고 뭐 하고 있어?”
“혹시. 된다면 저도 함께 나갈 수 있겠습니까?”
“뭐?”
그러자 언제나 호탕한 웃음을 짓던 웨이튼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
고작 시골이 시시하다는 이유로 마을을 떠나고자 하는 애송이 놈이 건방지게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 웨이튼의 표정을 알아본 알렉스가 급하게 변명을 내던졌다.
“저도 압니다! 제 부탁이 무례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제가 나고 자라곤 고향입니다. 고향의 위기에서조차 도망치는 머저리가 어떻게 바깥세상에서 살아남겠습니까?”
“개소리 하지 말고 넌 주민들이나 대피시켜. 그게 네 고향을 위한 일이다. 알겠냐?”
“이미 사람들은 대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코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웨이튼 단장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여기서 주먹으로 코뼈를 뭉개 버리면 알아서 돌아가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먹고 주먹을 올리려 했으나.
“절대로 도와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바깥세상을…….”
“……쯧.”
웨이튼은 알렉스의 두 눈을 응시했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다.
전장에서 숱하게 봐 왔던, 전장의 병아리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눈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것은, 과거 첫 전장에 나섰던 웨이튼조차 갖지 못했던 눈동자였다.
“뒈지거든 날 원망하지 마라.”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웨이튼이 등을 돌렸을 때, 때마침 숙소에 나온 어느 한 남자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척 보자마자 20살이 채 되지 않는 미소년이 숙소 밖을 나오고 있었다.
흑발을 길게 묵어 늘어뜨린 소년.
누가 보더라도 귀족과 같은 복장을 입고, 로즈베리 색상의 눈동자로 웨이튼에게 잠깐 시선을 보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클레이튼 가문의 장남인가?’
듣기로는 제 동생의 재능을 질투하고 능력은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귀족이라 들었다.
‘가능하면 얽히고 싶지 않은데.’
모든 귀족들이 그러진 않겠으나, 능력도 없으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귀족에게 괜히 걸렸다간 제 명에 못 살고 죽기 마련이다.
실제로 주변 용병단 단주 중 한 명도 그런 식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정리당한 걸 들어 보지 않았던가.
‘그래도 선두에 나가진 않는다니 다행히 얽힐 일은 없겠군.’
* * *
‘어디서 봤었지.’
셰인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기사단과 웨이튼, 그리고 알렉스의 뒷모습을 보며 짧은 생각에 잠겼다.
셰인은 알렉스의 이름도,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으나, 묘하게 얼굴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전에 자신이 이 마을에 왔기 때문에?
아니다.
전생에도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촌장도 봤었지만, 셰인은 그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다 못해 촌장도 아닌 고작 마을의 자경단원 하나를 기억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보다 미래에 만났을지도 모르겠군.’
지금이 아닌. 먼 미래에서.
아마 좋은 관계로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생의 셰인과 좋은 관계인 인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그쯤 되어서 셰인은 알렉스에 대한 관심을 껐다.
그런 셰인을 향해 기사단원 중 한 명인 로드윌이 다가왔다.
“도련님. 마을에 방책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예?”
“그리고 용병들은 마을 주민의 호위로 물려라. 여기 있어 봐야 도움이 되진 않을 터이니.”
용병대는 끝내 기사단을 따라가지 못했다.
기사단을 따라간 인물은 전령 역할을 수행할 웨이튼과, 주변 지리를 잘 아는 마을 주민인 알렉스뿐.
그 외 용병대는 마을에 남아 주민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기사단원 로드윌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잠시 지었으나,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진 않았다.
자존심 강한 셰인의 말에 토를 달아 봐야 좋을 것도 없었고, 실제로 마을이 위기에 처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로드윌의 표정에 그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한 셰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에, 아까 그 피어의 주인은 누구일 것 같나?”
뜬금없는 질문에 로드윌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트롤의 피어였습니다.”
“맞다. 그것도 살기가 진득한 피어였지.”
“예.”
셰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트롤이 그저 무식한 재생력과 근력만 있을 뿐이라 생각하지.”
“……그 외에 다른 게 있습니까?”
로드윌의 입장에서, 트롤과 마주친 적도 없던 셰인이 저런 말을 하는 게 어찌 보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로드윌은 그런 셰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트롤은 영리한 몬스터다. 또 기습과 같은 함정을 팔 줄도 아는 녀석들이지.”
“함정…… 말입니까?”
로드윌이 알고 있는 트롤은, 무식한 재생력과 바위마저도 일격에 부숴 버리는 근력으로 적을 몰아치는 몬스터였다.
그런 녀석이, 함정 따위를 판단 말인가?
“토끼를 잡는데 늑대가 사력을 다하겠나?”
“…….”
하기사. 트롤에게 있어서 기사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은 그저 먹기 좋은 사냥감에 불과할 터.
“자연에 있는 트롤들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적을 파악하고,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 힘을 발휘하지. 혹은, 자신이 이길 수 없다 판단하면 기습 같은 나름의 작전이라는 것도 펼친다.”
몇 번이고 트롤과 싸워 봤으나, 트롤에게 그런 면모가 있었음은 처음 알았기에, 로드윌은 조용히 그런 셰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니 트롤은 함부로 몬스터 피어를 내뱉지 않는다. 굳이 있다면, 사냥감을 상대할 때 정도. 그것도 아까처럼 살기가 진득한 피어가 아닌, 적의 발을 묶어 두기 위한 용도다.”
“그럼 아까 트롤의 피어는 무엇입니까?”
“트롤이 살기 섞인 피어를 내지르는 경우는 두 가지 뿐. 하나는 많은 수의 적을 앞에 뒀을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
“자신의 주인을 위해 파수꾼의 자리에서 벗어나 사냥꾼이 되었을 때다.”
주인?
무리 지어 다니지 않기로 유명한 그 트롤에게 주인이라니?
로드윌은 그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셰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저 산등성이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마력의 불꽃과, 고함 소리.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