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53화
53화 인류의 그림자
독자적으로 개발한 공식을 풀어 버린다는 행위는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관점에서 큰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마법사란 무릇 자신이 만들어 낸 마법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그 비밀을 잘 간수해 뒀다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허나 셰인은 그런 일반적인 마법사로 살아갈 생각이 없기도 했고.
애초에 이 정도 공식은 마탑의 장로급 마법사들이 엘프들과 접촉하게 되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거, 차라리 정보를 풀어 마법사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크게 봤을 때 명성에 더 큰 도움이 됐다.
“허허, 우리 마탑에도 홍복이 찾아오겠어.”
케이튼이 껄껄 웃었다.
‘부럽다! 앞으로 이 소년의 명성은 오래토록 이어지겠구나.’
마법사는 물론 금욕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명예욕도 중요시하는 이들이다.
비록 셰인이 이번에 알린 공식은 기초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기초적인 만큼 근본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이후 정기와 관련된 마법이 발전할 때마다 셰인이 만든 공식이 그 밑바탕으로 깔린다는 의미이니, 이는 셰인의 명성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널리 이어질 것이다.
그것도 고작 1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말이다.
‘난 저때 뭐 하고 살았더라?’
물론 이제 한 마탑의 장로가 된 만큼 케이튼도 결코 젊은 시절 방탕하게 보내 온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셰인과 비교하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케이튼이 자아성찰에 들어간 사이, 셰인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케이튼 님. 저번에 말씀드린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 안 그래도 자네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착수에 나섰네. 아마 진행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을 것 같군. 엘프 측의 허가만 있다면 대수림에서 정기를 추출할 마법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걸세.”
일전, 셰인은 케이튼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을 당시 몇 가지 사업을 제안했었다.
대표적인 사업은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 정기를 추출하여 판매하는 것.
이후 정기를 이용한 회복 마법 스크롤을 만들 예정인 셰인은 분명 이게 먹힐 만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기가 담길 마법 플라스크를 개발할 마법사들의 영입이었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선 이런저런 사업을 진행해 본 장로 마법사인 케이튼이 이 일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하지만 보다 수월하게 하려면 자네의 도움도 필요할 걸세.”
“이번 기회에 연회에 참석하면 되겠습니까?”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군. 하하, 맞네.”
케이튼의 인맥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테지만, 메자이아 대수림이 개방된다면 그곳에 파견 나갈 마법사들을 설득할 인물도 필요했다.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며 돕겠습니다.”
“음, 그래 주게나. 그런데 이후 따로 일정이 있는가?”
“예. 곧 계급 심사가 있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군.”
연합국에서 주도하는 계급 심사.
이 때문에 아카데미에서도 5년차에 들어선 생도들이 지금도 바쁘게 준비하고 있을 터.
1년에 단 2번밖에 없는 이벤트이니만큼 케이튼도 이해했다.
“그럼 오늘부터 바로 연회에 참석할 생각인가?”
“굳이 일을 미룰 필요는 없겠지요.”
“알겠네. 그럼 나도 짧게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도록 하지. 같이 가세나.”
“예, 알겠습니다.”
* * *
전생에 셰인은 연회와 썩 인연이 없는 편이었다. 아니, 오히려 악연만 가득했었다.
때문에 연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일로 치부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전생과 다르게, 이번 생의 연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셰인이지 않은가.
어느새 연회가 지속된 지도 5일차.
마지막 날이니만큼 앞서 다른 날보다는 참여한 마법사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며칠 동안 케이튼의 소개로 마법사들과 연을 맺던 셰인은 시간이 남아 홀로 테라스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이제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챙겼나.’
메자이아 대수림이 개방되기까지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냈다.
이제 엘프들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인간과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면 굳이 셰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추가적인 이득이 절로 굴러 들어올 터.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이번 연회에서 만나길 기대했던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중간중간 이렇듯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기다리던 인물이 나타나지 않자, 머릿속에 계획을 다시 한번 정리하려 할 때였다.
“안녕하세요, 신사분?”
별안간 기다렸던 목소리가, 셰인의 뒤에서 들려왔다.
* * *
겉으로 보기에 현 제국은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 중이다.
실제로도 대외적으로 제국에 반하는 세력은 없었고, 계속되는 경기의 호황으로 국민들 또한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그러나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 현 1황녀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8년 전. 다음 황제로 내정되었던 올리시아의 첫째 오빠인 황태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비어 버린 황태자의 자리에 누가 앉을지에 대한 치열한 정치 공방이 오가고 있는 상황.
게다가 황제는 섣불리 후계를 지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유유부단하신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라버니가 너무 노골적인 게 문제야.’
황제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사람의 본성을 읽는 데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난 올리시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둘째 오라버니, 제페르 디 와이어트 새뮤얼은 교활한 뱀과 같은 사람이다.
그것도 극독을 품고서 수풀에 몸을 가리고 숨어 있는 뱀.
그러나 황제조차도 반신반의하고 있을 만큼, 평소 새뮤얼은 제 아버지를 닮은 인자한 웃음으로 주변에 녹아들어 있었다.
때문에 새뮤얼은 귀족들 사이에서 이미 황태자라 불리고 있으나…….
올리시아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아나스타샤 또한 섣불리 새뮤얼에게 이빨을 들이댔다가 지금은 북방으로 내몰리지 않았던가.
혹독한 날씨가 사시사철 이어지는 그곳에서, 매해 몰려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있으니 외부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터였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그렇기에 올리시아는 몸을 잔뜩 낮추고, 이후 자신의 힘이 될 인재를 모으러 다니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황실에 들어온 귀족들이 그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관점이 바뀌었다.
황실의 권력도 권력이지만, 실상 국제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들은 연합국에 소속된 귀족들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올해부터는 그런 귀족의 자제들이 모이는 연합국 아카데미에 시선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러 인재들이 눈에 띄었고, 그중에서 한 소년이 깊게 각인되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어깨 바로 아래까지 내려왔고, 짙은 로즈베리색 눈동자에서는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았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와인 잔 안으로 그의 눈동자 색과 같은 포도주를 흔들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바로 이 소년.
클레이튼 R 셰인.
무려 100년 만에 개방된 요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젊은 천재였다.
“안녕하세요, 신사분?”
올리시아의 말에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장인의 손길에 의해 탄생한 이 와인보다도 존귀한 자를 뵙습니다.”
단순한 움직임과는 다르게 그 태도에서는 품위와 절도가 느껴졌다.
“어머. 저를 알아보시나요?”
예상외인 것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올리시아가 가면을 쓰고 있었음에도 셰인은 자신을 바로 알아봤다는 것이다.
“제국의 꽃이라 불리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단 둘밖에 없는 분을 잊을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이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그때 아카데미의 복도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죠?”
“예.”
올리시아는 셰인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기복 없는 표정이라 감정을 읽기 힘들긴 했으나, 그렇다고 피하는 모습은 아니었으니.
그런 올리시아는 셰인을 보면 볼수록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어떤 사람이든 잠깐이라도 마주해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사람의 성향을 읽을 수 있었지만.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셰인에게서는 조금의 내면도 엿볼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잠시 침묵에 빠져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셰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제가 제국의 꽃이라 과분하게 불리고 있지만, 꼭 꽃이 벌을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찾아왔답니다.”
“과감하시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원하는 답변은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셰인의 말에 올리시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오라버니가 먼저 선점한 건가?’
나름 새뮤얼의 눈을 피해 인재를 영입하려 했던 시도는 무산되는 듯했다.
어쩐지 이만한 인재가 있음에도 새뮤얼이 직접 수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아쉽게도 저는 저지먼트 기사단의 아네이스와 약혼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제가 찾는 사람도 따로 있지요.”
“그렇…… 군요.”
이건 몰랐던 소식이다.
저지먼트 기사단이라면 최근 오라버니의 행보를 지지하고 있는 황실의 기사단이지 않나.
백사자의 오러를 휘두른 그들은 본래라면 정치적인 성향을 띄워서는 안됐으나, 7년 전. 그들의 단장이었던 린트베르크 K 로버트의 사망 이후부터 그와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로버트 단장의 딸과 약혼을 했다라.
셰인을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었으나, 생각보다 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이 사람이 괜히 줬을까?
올리시아의 본능이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예. 저는 대외적으로 가문에 얽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동생은 아닙니다.”
“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력을 챙기십시오.”
“……좋은 말씀이네요.”
물론, 클라인 또한 그녀가 생각하던 인재 중 한 명이긴 했다.
오히려 셰인이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는 클라인을 위주로 보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림자 밑을 잘 보셔야 합니다.”
“그림자…… 밑이요?”
“예. 생각보다 바닥에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귀물들이 떨어져 있기 마련이니까요.”
“음…….”
언뜻 듣기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철저한 정치 싸움으로 가득한 황실에서 새뮤얼의 눈을 피해 남몰래 자신의 세력을 챙기고 있는 올리시아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림자, 바닥.
때마침 이 연합국에는 인류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도시가 있지 않던가.
바닥 아래, 지하도시라는 존재가.
그리고 그 저지먼트 기사단원 중 한 명이, 최근 지하도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살리에르 백작의 저택에서 숨을 거뒀다.
대외적으로도, 황실에서도 그 사건은 저지먼트 기사단이 또다시 제국의 어둠을 바로잡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올리시아 또한 무언가 석연찮은 기색을 느끼긴 했으나,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듣고 보니 아무래도 무언가 미심쩍음을 느꼈다.
‘살리에르 백작은 한때 이름 있는 상단을 운영했었는데. 클레이튼 가문 또한 거대한 상단을 운영 중이야.’
그런데 그 클레이튼 가문의 자제와 저지먼트 기사단의 영애가 엮인다라.
이걸 과연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올리시아는 그렇지 판단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 귀중한 정보였다.
저지먼트 기사단이 지하도시와 얽힌 정황이 포착된다?
황실의 이름에도 악영향을 끼칠 터였으나, 그만큼 큰 약점을 잡는 것이라 봐도 좋았다.
저지먼트 기사단은 오라버니의 수족 중 가장 큰 손일 테니.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올리시아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귀한 정보였으나, 그걸 말하는 이가 바로 그 당사자인 셰인이었으니.
어떤 목적으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 준 걸까?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믿기에는 힘들었으나,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자신을 옮아매겠다는 이유로 새뮤얼이 함정을 파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저지먼트 기사단을 내건다?’
그 교활한 새뮤얼이 할 도박은 아니었다.
적어도 새뮤얼 또한 아직 올리시아가 가진 황실에서의 발언권을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니라 판단하고 있을 테니.
오랜만에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셰인이 입을 열었다.
“이런 일에 대해 도움이 되는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천 리 밖의 세상을 내다보는 녀석이지요.”
“……네?”
“베른슈타인 후작 가문의 차남을 만나 보시지요. 그리고 반드시 그를 영입하셔야 합니다. 결코 쉬운 녀석이 아니니 너무 마음 놓으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보다 서로의 진실된 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라겠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마당에 무슨 소리냐 묻기도 전에 셰인이 자리에서 떠났고, 홀로 남은 올리시아는 단아한 머리를 헝클었다.
“하아. 어렵네, 어려워.”
기껏 와서 인재를 낚아 보려던 올리시아는 뜬금없이 떠맡은 숙제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는 셰인이 남기고 간 와인잔을 들어 한 번에 입에 털어 넣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하늘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바라봤다.
‘클로이 오라버니…… 왜 그리 일찍 떠나셨나요. 올리시아는 너무 어렵네요. 이것저것. 모든 게.’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가면 같은 미소가 아닌 진짜 자애로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봐주던 첫째 오라버니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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