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56화
56화 산왕
일차로 왔던 사절단이 돌아간 뒤, 장로들과 회의를 마친 프리실라는 짐짓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휴우. 이런 일은 또 오랜만이네요.”
정치. 엘프와는 영 연관이 없는 단어였다.
엘프들은 고대시대부터 상대가 누구든 자신들의 숲에 다른 종족이 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왔다.
간혹 허락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채굴을 위해 찾아오는 드워프나 지반의 마력을 취식하기 위해 찾아오는 지하인 정도뿐.
그랬기에 이런 정치적인 일을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요. 그 거름으로 삼아도 모자랄 존재들이 등장했으니.’
프리실라는 한쪽 탁상 위에 올려진 고든의 머리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고든. 수면기에 든 엘프들을 납치해 다크엘프로 만들었던 빌어먹을 혈마법사.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 머리가 반쯤 박살이 난 상태다.
셰인이 말하길 스스로를 ‘무명’이라 칭하던 그들의 존재는 엘프들에게도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 메자이아 대수림 내에서 엘프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방어 수단인데, 그걸 무력화시키지 않았던가.
이 와중에 탐욕에 젖은 인간들과 전쟁을 하는 것은, 수천의 엘프를 다스리는 여왕으로서 맞지 않는 판단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몇몇 장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번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면, 그에 걸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는…… 아.”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던 프리실라는 숲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두 귀를 쫑긋 새웠다.
“안 그래도 지루했던 참인데. 잘됐네요.”
프리실라는 자신의 정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면을 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셰인 님.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나 확인할 겸,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
“물어볼 거요?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었네요?”
셰인의 말에 프리실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수림의 개방과 관련해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존재가 바로 셰인이지 않은가.
이후 일어날 일을 마치 예지라도 하듯 풀어 놓은 덕에 인간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아무튼, 북방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음. 뜬금없네요. 북방이라…….”
프리실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감았다.
고대에는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종족들의 왕국이 지어졌고, 또 하루가 지나면 무너지기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살벌했던 시기였으니만큼, 잠시 기억을 더듬을 필요성이 있었다.
“환경을 물어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뭐가 궁금하신 걸까요?”
“북방의 푸른 피부의 오크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산왕의 존재.”
“으음……. 푸른 피부의 오크, 라는 건 저도 처음 들어 봐요.”
프리실라의 말에 셰인은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제국이 북부로 발을 뻗었을 때만 해도 당시에는 푸른 피부의 오크는 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드러낸 만큼, 고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생각해봄직 했다.
“하지만 오크라는 종족 자체에 관련된 기억은 좀 있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 오크들은 그리 대단한 종족은 아니었어요. 하루가 다르게 싸웠고, 매우 전투적이었죠. 하지만 그런 성격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힘에서는 많이 밀렸어요.”
인간들과 비교해서 오크들은 신체적으로 월등하나, 그렇다고 고대에 잘나가던 종족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마력을 다룰 줄 모르며, 신체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수인족에게 밀렸으니.
다만 압도적인 번식력과 호전적인 성격으로 인해 굳이 먼저 건드리는 짓을 하는 종족들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종족들이 오크를 귀찮게 봤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오크라는 종족을 두려워해서 피한 건 아니거든요.”
그게 오크들에게 오만함을 불러 왔다.
“그 당시 새롭게 부임한 족장은 제법 야심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자신들의 수를 이용한다면, 다른 종족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거죠.”
아예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생에 제국은 그 어마어마한 오크들의 뿌리를 뽑느라 한동안 고생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인해전술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단순히 숫자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들은 첫 상대부터 잘못 건드렸어요. 하필이면 흡혈귀를 건드리고 말았죠.”
이곳,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상대한 고든이 썼었던 혈마법의 모체.
흡혈귀는 그야말로 두려움 그 자체인 종족이었다.
조용히 자신들만의 고성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식사의 시간이 찾아오면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 주기가 찾아오는 시기만큼은 대부분의 종족이 숨을 죽였는데, 이는 엘프들조차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본래라면 흡혈귀를 건드렸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물론 흡혈귀들에 의해 부락 몇 개가 날아가긴 하겠죠? 그러나 오크들은 기어코 선을 넘고 말았답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
오크들은 흡혈귀의 고성에 기습적으로 난입해, 어린 흡혈귀들의 생명을 앗아 갔다.
가뜩이나 종족의 수가 턱없이 모자란 흡혈귀, 그중에서도 로열이라 불리는 진혈의 흡혈귀의 핏줄을 건드린 것이다.
이후 터져 나온 흡혈귀들의 분노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일 터.
“단 하루. 오크들의 본거지인 우르부라크가 괴멸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어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오크들은 단 하룻밤만에 몰살. 수백의 오크들만이 도망쳐 간신히 멸종을 피할 수 있었답니다.”
태생이 게으르고 움직이지 않는 흡혈귀들이었으나, 한 번 움직이면 전 대륙의 종족들이 숨을 죽인다.
프리실라가 말하기를, 그 당시 하루라도 전투가 일어나지 않으면 기적이라 불리던 고대의 대륙에서는 놀랍게도 며칠이나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혹여나 흡혈귀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문으로 듣기에 당시 족장의 아들이었던 오크가 추악한 발악 끝에 도주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는 자신을 따르는 몇몇 오크들만을 데리고 북상했다고 했죠.”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에도 고서가 남지 않았다니. 신기한 일이야.”
“아마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시의 인간들 또한 마력을 다루지 못했던 것은 똑같았고, 혹여나 자신들의 행동으로 흡혈귀들의 시선이 끌릴지 몰라 두려워했을 거예요. 음, 당신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때의 인간들은 그저 다른 종족들의 귀찮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던 거니까요.”
“있던 사실을 수치로 여길 생각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모든 종족의 승리자는 결국 인간이었으니.”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긴 하네요.”
여기까지 듣고 난 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의 오크들에 대한 기원.
흡혈귀들에게 전멸당한 오크들이 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분명 산왕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음…… 그런데 흥미롭기는 하네요. 그 푸른 피부의 오크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셰인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프리실라의 얼굴에도 의문이 떠올랐으나, 그 결이 달랐다.
“애초에, 그곳에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인데 말이죠. 역시 인간들의 신인 아카샤가 무슨 짓을 벌인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푸른 오크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그 산맥은, 산왕이 살고 있는 곳이거든요.”
“그건 알고 있다.”
“어머,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산왕이 거주하는 그곳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어요. 애초에 당시 흡혈귀들이 오크 족장의 아들을 내버려 둔 이유도 산왕이 거주하던 북부로 갔기 때문이거든요.”
알아서 죽을 길을 가는데 굳이 쫓아가서 죽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산왕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지?”
“으음.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답니다. 산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저 남들이 지어 준 것일 뿐이고,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존재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거대한 산맥의 주인을 보고 산왕이라 부른 것뿐이죠.”
“그런가.”
아쉽지만 그 오랜 시간을 살아온 프리실라조차 모른다면, 더 이상 따로 알아낼 방법은 없을 듯했다.
‘어쩔 수 없나. 부족한 정보는 직접 가서 챙겨야겠군.’
여기서 놈들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직접 가서 얻으면 될 일이다.
그쯤 생각을 정리한 셰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프리실라가 그런 셰인을 멈춰 세웠다.
“아, 그러고 보니 가지고 계신 정기를 상당히 소모하셨던데.”
“내버려 둬도 알아서 사라지는 기운이니까.”
“그렇긴 해도, 우리는 그러니까…… 음. 인간들의 언어로 동업자, 라고 하는 사이잖아요? 혹시 모르니 다시 채워 드릴게요. 이제 와서 셰인 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엘프들도 곤란해요.”
프리실라의 입장에서 셰인은 한편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지만, 또 유일하게 무명이라는 조직에 대해 현 시점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프리실라의 말에 셰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셰인이 가진 오리진과는 영 조합이 맞지 않았고, 어둠의 정령 또한 극도로 불편해하기에 지금도 자신의 그림자에 숨겨 둔 상태였지만……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오지 않겠나.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프리실라의 정기는 쓸 방도가 많았다.
“좋아요. 앞서 드린 정기가 조금 혼탁해졌으니……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정기로 채워 드릴게요.”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알겠다.”
이전처럼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 프리실라가 셰인의 내부에 깃든 자신의 정기를 회수하고, 새로이 정기를 불어넣었다.
그때처럼 숲 내음이 셰인의 코끝을 스쳐 지나가고, 프리실라는 평소처럼 웃음을 지었다.
“다 됐어요.”
“음.”
이전처럼 풍족하게 채워진 생명력에 육체가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만한 정기라면, 치명상을 입더라도 한 번은 회복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가 봐야겠군.”
“참, 성격도 급하시네요. 아직 제 말은 다 안 끝났다고요?”
“할 말이 더 있나?”
“이전에 셰인 님이 말했던 그 사람이 왔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눈을 떴을 거 같은데…….”
“……그런가. 지금 바로 보러 가지.”
결국 일이 일어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셰인이 움직일 준비를 하자, 프리실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쩐지 제가 일방적으로 부려 먹어지는 기분이네요.”
“어차피 거래로 이루어진 일이 아닌가.”
“그 거래에 제가 북방에 관한 정보를 말해 줘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잖아요?”
맞는 말이기는 했다.
거기에 이렇듯 써먹을 수 있는 정기도 받지 않았던가.
“여왕으로서의 체면도 있답니다. 나중에 제 부탁도 하나쯤 들어 주세요.”
“알겠다. 그렇게 하지.”
어차피 조직을 상대하려면 엘프들의 조력도 필요하기에. 셰인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가 볼까요? 그, 하이엘 왕국의 기사분께요. 이름이…… 애덤이라 했었죠? 꽤 중한 상처를 입고 왔더라고요.”
“살아만 있으면 된다. 그가 가진 특유의 감각은 여러모로 유용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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