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58화
58화 강철의 숲, 강철의 여인 (1)
북부의 아룬비다는 매년 인력 부족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제국으로부터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지역이다.
아카데미에서도 파견 의뢰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기로 소문이 난 장소인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교통이 불편하다.
워낙 기후가 좋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룬비다 지역은 전술적인 특성상 거대한 산맥의 중턱에 위치해 있어 이동하는 데도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흐음…….”
“괜찮으십니까?”
앞에서 들려오는 길잡이의 목소리에 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을 만하다.”
“인내심이 대단하시군요.”
길잡이의 물음에 셰인은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험준한 산맥으로 인해 이곳은 기사들에게도 한 번에 오르기에는 강당한 강행군을 요구하는 곳이다.
기사들보다 체력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셰인으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차라리 고든을 상대했을 때가 편했군.’
그나마 프리실라에게 받은 정기가 아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마법사님께서 이곳까지 파견을 오신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데, 어쩌다 한 번씩 오시는 분들은 가는 데만 일주일 이상이 걸립니다. 셰인 님께서는 그분들에 비하면 대단하신 거죠.”
“굳이 칭찬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남은 거리는 얼마나 되지?”
“이제 반나절 정도만 가면 됩니다. 다만 기지 근처에는 몬스터가 서식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예?”
길잡이는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마력탄을 발견했다.
“벌써부터 신고식이 시작된 모양이야.”
동시에 수십 개의 마력탄이 허공에서 서로 튕겨지며 주변 바위 사이로 날아가자.
깨개개갱-!!
이곳저곳에서 아이스 워 울프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산맥의 위에서, 오연하게 서 있는 셰인은 길잡이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몬스터들의 피 냄새가 더 퍼지기 전에 움직이지.”
“아, 알겠습니다!”
* * *
“음. 도착했다고?”
“예, 황녀님.”
한 여성의 담백한 목소리에 부하로 보이는 이가 무릎을 꿇은 상태로 대답했다.
언제나 영하로 내려가 있는 날씨로 인해 얼어붙은 창가로 산란한 빛이 여성을 밝혔다.
옅은 실버블루 톤의 머리카락은 잔뜩 해진 머리끈에 묶여 어깨 아래로 내려왔고, 한 겨울의 얼어붙은 호숫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은빛 눈동자는 감정이 메마른 듯 보였다.
“여기서는 황녀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저도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제게는 영원히 황녀님이십니다.”
“고집 하고는.”
제페르 디 나타샤 아나스타샤.
제국의 두 송이 꽃 중 하나로 불리며, 1황녀의 쌍둥이 자매인 그녀는 현재 아룬비다 영주이며, 동시에 전초기지인 비두론 성의 성주이기도 했다.
그녀의 담백하고 고저 없는 목소리만큼 그녀가 쓰고 있는 집무실은 삭막하기만 했다.
갑옷이 걸려 있는 갑옷 거치대와 책상, 그리고 쌓여 있는 다양한 서류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 메자이아 대수림을 개방한 영웅이라.”
“과연 일렉사가 알려온 정보대로의 사람일지 궁금하군요.”
“듣자 하니 메자이아 대수림의 탐사가 시작된 이유도 그 소년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예. 그가 학과시험을 통해 발표한 논문으로 시작된 사건이었지요.”
아나스타샤는 거의 보름 전, 일렉사가 보내 온 보고서를 떠올렸다.
일렉사는 이곳 아룬비다의 출신으로, 스스로가 외부의 소식을 알리는 정보원이 되겠다며 지원자들을 차출하고 나간 여인이었다.
밖으로 나간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상당한 명성을 쌓은 그녀 덕분에,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곳에 있음에도 외부의 소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 짓는 성격에, 감정 변화가 극도로 적다. 반면에 소문과 달리 동생인 클레이튼 L 클라인을 상당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전투력 또한 마법사치고 근거리에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으며, 마력탄을 위주로 기상천외한 방법을 구사하며 전투를 치른다. 학술적 능력이 뛰어난 것을 넘어 비범하게 느껴지며, 라비아타 모험단주에게도 인정받는 모습을 곧잘 보였다.’ 이렇단 말이지. 그런데 그런 인재가 여기까지 직접 왔다는 말이고.”
“그렇습니다. 일렉사도 처음에는 얕보고 있다가 한 번 크게 데였었죠.”
“맞아. 그랬었지. 갑자기 아룬비다 영지의 모든 몬스터 부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요구해 왔다고 했던가?”
메자이아 대수림의 초입 단계에서 셰인을 무시하던 행보를 보였던 일렉사는 이후 그의 능력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저러한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당시 그 보고서를 받고 얼마나 황당했던가.
물론 아룬비다에서 나오는 특산물이라고는 넘쳐 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해체해서 얻게 되는 마석과 부산물 정도가 전부였다.
이걸 외부로 넘기는 것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일 테지만, 특유의 험한 지형 탓에 그마저도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마차도 다닐 수 없는 가파른 산맥을 타고 올라오는 마당에 무슨 무역을 하겠다는 건지.
1년에 2번씩 오는 지원품을 받는 것도 적지 않은 예산을 제국에서 감당하고 있으니, 상인들 입장에서 아룬비다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셰인은 저러한 요구를 해 왔고, 일렉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실상 오히려 거래가 된다면 아룬비다의 이득이었다.
가뜩이나 잔뜩 쌓여만 있는 악성 재고들을 처리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허락을 하긴 했는데, 여기까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어.”
“영특한 소년이라 들었습니다. 분명 머릿속에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 뜻이 있겠지요.”
“그러길 바라야지.”
“황녀님. 황족으로서의 처신을 지키시지요.”
갑자기 이어지는 충신의 조언에 아나스타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런 말도 안 했다.”
“아무리 우리 아룬비다에 오는 파견원이 없다지만, 첫날부터 황녀님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은 황족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궁금한데.”
“참으시지요.”
“…….”
“황녀님.”
“쯧. 알겠다. 미미르, 그대가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지.”
“혹여 몰래 나가시면 아니 됩니다.”
“내가 그리 신용이 없나?”
“그렇습니다.”
“……황족의 체면을 지켜 다오.”
“제게 믿음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그러하겠습니다, 황녀님.”
얼굴에 겨울 한파에도 꿋꿋할 것 같은 철판을 깐 채로 내로남불을 시전하는 충신, 미미르의 말에 결국 황녀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직접 얼굴을 보긴 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결국 미미르가 집무실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아 서류를 읽던 아나스타샤는 방금의 상황을 개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저런 녀석이 충신이라고…… 음…….”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방금 미미르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이걸로 592번째 거짓말을 쳤군. 다시 생각해 보니 충신이 맞는 것 같아.”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일렉사가 보내 온 보고서를 찾아 다시금 읽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아룬비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의 영주님이시자 정당한 황실의 일원이신 제페르 디 나타샤 아나스타샤 2황녀님의 보좌관인 카시아스 H 미미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아룬비다 영지로 파견을 오게 된 클레이튼 R 셰인입니다.”
미미르는 생각보다 고풍스러운 셰인의 태도에 속으로 살짝 놀라움을 느꼈다.
18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메자이아 대수림을 개방한 영웅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 뻗대는 느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태도엔 오만함이나 방만함은 한 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 메자이아 대수림을 개방한 영웅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제국의 미래가 밝음을 새삼 느끼는군요. 황녀님께서는 몰려 있는 집무로 인해 나오시지 못하셨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합니다. 제국의 북부를 책임지고 계신 분이지 않습니까.”
“예. 일단 오는 길에 노고가 많으셨을 테니, 피로를 좀 푸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피로는 이후에 풀기로 하고, 파견과 관련하여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성을 한 바퀴 돌면서 그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미미르는 셰인의 옆에 서서 걷기 시작했고, 셰인도 그런 미미르를 따라 걸어갔다.
“먼저 이곳 아룬비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외부적으로 알려진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국의 북부를 책임지고 있음에도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단도진입적으로 말해서, 이곳 아룬비다는 모든 것이 부족한 영지입니다.”
미미르는 영지의 장점보다 단점을 부각시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장점이 없는 것도 그러했지만, 그 과정에서 셰인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본래 아룬비다는 과거 황실에서도 꽤 큰 신경을 쓰고 있던 영지였습니다. 언제 푸른 오크들의 남하가 이루어질지 모르니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첫 푸른 오크들의 남하가 이루어진지도 어느덧 50년째.
그동안 전초 기지로 세워진 비두론 성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오크들의 침공을 막아 왔다.
하지만 50년 전과 같이 폭풍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거기에 이 혹독한 환경은 지원 인력마저 끌고 오는 게 순탄치 않았다.
몇 년이고 바깥세상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이런 영지에 누가 자원을 해서 오겠는가.
그에 반해 꾸준한 오크들의 침입 시도와 함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 사상자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영지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에 제국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리니.
전투에 능한 사형수나 중한 범죄자, 그리고 정치에서 밀려난 황족 혹은 귀족을 파견하는 것으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외부에서 좋지 않은 이유로 끌려온 이들의 사기가 좋을 리 없었고, 지금은 이렇듯 제국에서도 방치한 영지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아나스타샤의 또 다른 이명은 ‘꺾인 꽃’이지.’
셰인의 생각처럼 그녀가 제국에 있을 당시에는 기사도를 내세우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아나스타샤다.
그러나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이곳, 아룬비다에 좌천되어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가 단 1년도 버티지 못하리라 생각했으나, 아나스타샤는 그저 겉으로만 기사도를 내세운 여인이 아니었다.
고작 14살이라는 나이에 좌천되어 온 아나스타샤는 지난 7년 동안 이곳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그뿐이던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던 지휘권자의 권한을 되살리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영지를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굳이 환경적인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제국에서 버려진 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던가.
제국에서는 이제 꺾인 꽃이라 불리는 아나스타샤가 이곳을 평생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여기까지 미미르의 설명을 모두 듣게 된 셰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음에도 셰인의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미미르는 긴가민가해졌다.
‘의도를 알 수가 없군.’
그저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을 채우러 온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고행의 길을 걷는 기사처럼 단련을 위해 찾아온 것일까.
여태까지 이곳으로의 파견을 신청한 이들은 대부분이 그러했고, 간혹 아나스타샤의 관심을 얻어 황실과 끈을 만들어 보겠다며 찾아오는 이들 또한 있었다.
물론 전부 더 이상 황실과 연을 유지하지 않기에 헛된 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충 파견 기간만 채우고 떠나 버렸지만.
과연 이 소년은 그들 중 어디에 포함되어 있을까.
아니면, 아직까지 미미르가 만나 보지 못한 쪽에 속해 있을까.
‘당장은 지켜봐야겠군.’
한참 전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이 소년이 무슨 연유로 찾아왔을지.
미미르는 보다 시간을 두고 보는 쪽을 선택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