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6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63화
63화 변화, 그리고 대응 (1)
늦은 밤. 아나스타샤와 미미르가 한참 회의에 들어가고 있을 무렵.
“흐아암.”
비두론 성 내부,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감옥을 지키고 있는 경계병은 멍한 표정으로 흔들거리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새는 영 조용허네잉…….”
올해로 마흔에 들어선 경비병은 오랜 시간 이곳, 비두론의 지하실에 위치한 감옥을 경비해 왔다.
그런만큼 이곳에 대한 역사도 상당히 빠삭했는데, 최근에 들어온 신입은 그런 선임 경비병의 혼잣말에 반응해 물었다.
“예전에는 안 이랬어요?”
“엉? 아. 그치. 지금이야 황녀님이 오신 뒤니까 이렇게 텅 비어 있긴 한데…… 흐흐, 어디 입 좀 털어 볼까잉?”
“어, 넵. 궁금합니다.”
안 그래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아룬비다이지 않은가.
신입은 몹시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선임을 바라봤고, 선임은 피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공짜로?”
“에이, 설마요. 여기 쩐 있습니다.”
“흐흐, 그래. 억울하거들랑 말아라잉? 나중에 너도 너 후임한테 똑같이 말해 주면 되니까.”
“물론이죠, 헤헤.”
신입이 내미는 담배 한 개비를 받은 선임이 입술을 적시며 시동을 걸었다.
“아따, 언제였더라? 그래, 일단 황녀님이 오시기 전과 후의 차이를 말해 줘야겠지?”
아나스타샤.
제국의 두 송이 꽃이라 불리는 그녀가 아룬비다의 영주로서 오게 된지도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전까지 아룬비다는 말 그대로 무법지대라 해도 좋았다.
툭하면 살인이 일어났으며, 힘이 곧 진리고 자리였다.
다양한 파벌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서로에게 신경전을 펼쳐 댔다.
“그중에서도 이곳 지하실은 진실의 방이라고도 불렸었제잉.”
“진실의 방이요?”
“엉. 와서 묶이고 좀 몇 대 맞다 보면 없던 죄도 술술 불었거든. 아주 하루하루가 피 마르는 나날이었지.”
“와. 그럼 황녀님이 오신 이후부터 달라진 겁니까?”
“어? 어. 맞지, 맞어. 그때가 아주 죽여줬지.”
현재 아룬비다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2황녀에게 우호적이지만, 그 당시에 살아남은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
2황녀는 결코 리더십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갔으야.”
“예? 죽어요? 여기서요?”
“그지. 지금이야 너처럼 해 봐야 탈세 정도 한 놈들이나 여기서 살아남지. 예전에는 살인범이나 강간범도 툭하면 들어왔으야.”
“아…… 다른 선임분들에게 들은 것 같습니다.”
“그제. 그런데 그런 것들이 황녀님이 황녀로 보였겠어? 죽일 대상이거나 강간할 대상이었제.”
선임은 당시의 분위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땐 제국에서 황녀님을 버렸다는 말이 절로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기제. 근디야, 이게 웬걸. 본토에서 보내 온 게 꽃이라 불리는 황녀가 아니라 칼 든 망나니였네?”
“예에?”
지금으로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신입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자라고 무시하고 덤벼든 놈들은…… 흐, 아야, 여기 지하실이 왜 그렇게 깨끗한지 아냐?”
“어, 글쎄요?”
“7년 전에는 이곳이 사시사철 아주 피 냄새가 옴팡진 곳이었다 이 말이야. 신선한 피부터 갈색으로 죽은 피까지 아주 다양했다니께.”
“허, 허어…….”
설마하니 그런 시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신입은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옴마, 너도 보니까 딱 여기 알맞게 생긴 인재구마잉. 벌써 기대되지?”
“아래 있는 건 사람이 아니잖아요.”
“흐흐, 그지. 그 육시럴 놈들 때문에…….”
선임은 괜히 말하다가 말았다.
이곳에 오래 있었던 만큼 알고 지내던 주민들도 많았고, 그중에는 오크들에게 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이들도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다.
“쯧. 마음 같아서는…… 응?”
“예?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여. 방금 뭔가 본 것 같았는데 잘못 봤나 봐.”
“에이, 저 그런 거 안 통합니다.”
“어허이, 이놈이? 됐다, 그래. 잘못 본 거지.”
선임은 어째서인지 방금 촛불 아래 그림자가 이상하게 움직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저 야간 근무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뒤이어 후배와의 수다를 이어 갔다.
* * *
지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셰인은 철창 아래, 특수한 마법 가공 처리가 된 쇠사슬로 꽁꽁 묶인 푸른 피부의 오크를 내려다봤다.
얼굴이 함몰된 상태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녀석은 입에 재갈까지 물려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셰인을 바라보는 놈의 눈빛엔 아직 투지가 남아 있었다.
“눈빛은 볼만하군.”
셰인은 나름 녀석을 인정했다.
이런 투사(鬪士)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싫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악역의 자리에 서야만 할 때가 존재하는 법이다.
“어쩌면 나도 놈들과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 아니, 근본적으로 본다면 한없이 닮아 있을지도 몰라.”
언젠가 제국을 위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던 어느 한 늙은 기사가 떠오른 셰인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털어 냈다.
“하지만 내 악의에 선의가 희생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나를 증오해도 좋다. 투사여.”
적어도 너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나.
인류의 적으로서.
나는 그 적의 목을 베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망나니가 되어 주리라.
그런 스스로의 다짐 속에서 오리진을 일으킨 셰인은,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집어삼켜지는 오크를 바라보며 두 눈을 감았다.
깊디깊은 셰인의 정신 속에서 오크의 영혼이 잘근잘근 분해되어 갔다.
그리고 한 오크의 삶이, 통째로 셰인에게 옮겨져 들어왔다.
언젠가 있을 복수의 나날.
두 번의 패배로 이어진 종족의 암울한 미래.
그러나 이제는 없을 실패를 다짐하며 일으키는 거룩한 전쟁의 준비.
그리고.
-아파.
-힘들어.
-난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해?
-누가 좀 구해 줘.
오크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느 한 소녀의 처절한 좌절.
“이건…….”
한 영혼에 다른 영혼이 뒤섞여 있다.
아주 작은 파편, 티끌에 불과했으나 이는 결코 흔치 않는 상황.
셰인의 뇌리로 지난날 프리실라와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혹시?’
생각지 못한 가설이 떠오른다. 셰인의 머리가 급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방금, 일반적인 정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중요한 단서를 잡았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볼일이 끝나 돌아가려던 그때, 셰인은 문득 비쩍 말리 비틀어진 오크의 시체를 바라봤다.
무언가 걸려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강인한 전사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아 두려던 것뿐.
그러나 그 우연이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냈다.
“저건…….”
오크의 목에 걸려 있는 자그마한 토템.
아룬비다의 산맥을 표현한 것인지, 산이 조각되어 있는 토템에 셰인의 시선이 끌렸다.
별다른 마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나무 조각에 불과했으나.
셰인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셰인의 눈은 특별하다.
대상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만큼, 사물에도 그 영혼에 담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물건에 담긴 염(念)의 색깔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크가 가지고 있는 가죽 갑옷이라던가 다른 물건에서는 오크가 사용하던 것처럼 강렬한 붉은색이 눈에 띄었는데, 단 하나.
저 토템만큼은 달랐다.
색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는 특별한 일이었다.
어떤 물건이든 만든 자에 의한 염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거기에 토템이라는 물건은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적과 같은 역할이니만큼 염이 강하게 배어 있을 수밖에 없는 물건인데.
왜 저것에서는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을까.
마치 색으로 가득 찬 세상에 홀로 무채색을 띠고 있는 듯했다.
“…….”
셰인은 어둠의 정령을 시켜 오크의 목에 걸려 있던 토템을 끊어 손에 쥐었다.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군.”
이제 진짜 목적은 다 끝냈기에, 그제야 셰인은 다시금 어둠 속에 파고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이 되자 미미르에게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보고가 들어갔다.
“흐음…….”
차가운 감옥 아래.
얼굴이 함몰된 푸른 피부의 오크가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풀썩 쓰러져 있는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오크어를 모르기에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생각이었습니다만…… 자결인가요?”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새벽 동안 후임과 수다를 떨었던 경비병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분명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간 흔적이 없었는데, 교대자와 교대하기 전 확인차 들어가 보니 오크가 저런 상태로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선임 경비병은 지금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자결 방법이라도 있던 모양입니다.”
아쉽긴 했지만 타살의 흔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마력을 쓸 수 없던 오크가 마력을 썼으니만큼, 그에 대한 부작용일지도 모를 일이리라.
미미르는 그리 판단하고 일을 그 자리에서 마무리했고, 지난 밤 아나스타샤와 주고받았던 대화를 떠올렸다.
‘특수 수색대를 더 빨리 준비해야겠군요.’
오크들이 무슨 일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미미르는 아나스타샤와 그들이 무엇을 준비 중인이 알아보기 위해, 아룬비다의 깊은 협곡으로 들어갈 특수 수색대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셰인이었다.
“무력으로만 본다면 다른 사람도 많아. 하지만 셰인이 가지고 있는 기감은 나보다도 뛰어나더군.”
한때 기사의 황녀라 불리던 아나스타샤가 하는 말이다.
무력으로만 봤을 때는 이곳 아룬비다에서 가장 뛰어난 그녀가 직접 판단한 내용이었으니, 이는 믿을 만한 정보였다.
언제 몬스터들의 기습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룬비다에서 셰인이 가진 기감은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력인데, 이게 또 복잡했다.
‘황녀님이 가시는 게 가장 확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의 지휘관이 직접 가는 것은 위험도가 너무 높았다.
거기에 제국 측에 보낼 서류를 준비하려면 미미르가 직접 나서서 제국으로 향해야 하는데, 미미르를 제외하면 서류 작업을 할 사람이 아나스타샤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그 사람밖에 없군요.’
미미르는 머릿속에 떠올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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