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70화
70화 전초 기지 (3)
하늘에서 시체로 이루어진 비가 쏟아져 내린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하나같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인간들의 시체다.
혈마력을 다루고 죽음에 익숙하다 자부한 오크 샤먼조차도 겪어 본 적 없는 그 수많은 죽음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어떻게 고작 한 명의 인간이 이만한 수의 죽음을 겪는단 말이냐!”
주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크 샤먼은 눈앞에 펼쳐진 이 죽음의 비가 결코 허상 따위가 아님을 진작에 간파했다.
흔들리는 것은 오크의 정신뿐만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한계란 존재하는 법.
당연히 샤먼이 준비해 온 주술 또한 한계가 존재했다.
과도하게 많은 죽음으로 인해, 이를 환영으로서 재정립하는 샤먼의 주술 또한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샤먼이 황급히 주술에 손을 쓰기 시작했으나, 전초기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술은 샤먼의 명령에도 아무런 반응을 나타나지 않았다.
주술의 명령권이 강탈당한 것이다.
“어, 어떻게!”
“남의 것을 빼앗아 썼으면, 본인의 것이 빼앗기는 것도 각오를 했어야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샤먼은 셰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한 거냐!”
이게 혈마력의 큰 약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마법이나 주술에 대한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것.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마력은 명확한 소유권이 존재한다.
그러나 혈마력은 타인의 것을 빼앗아 쓰는 만큼, 자신이 쓸 수 있도록 개조하는 과정에서 마력의 소유권을 상실한다.
그렇게 되면 혈마력에 대해 더 깊은 이해도와, 거기에 쓰이는 마법 혹은 주술을 자세히 아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강탈을 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과거 고든 또한 그러한 점을 경계하여 혈마력의 본 소유자를 생체로 가공한 마스크를 만듦으로써 대처를 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크 샤먼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린 상황에, 셰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감당해 보도록.”
차갑게 쓰러진 시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수백, 수천, 수만의 시체가 동시에 팔과 다리를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장면은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는 상황에도 오크 샤먼은 자신의 주술이 타인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듯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단 말이다! 어찌 한낱 인간이 위대한 선조들의 주술을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시체에겐 말이 통하지 않는 법.
서서히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시체들, 이젠 수십만에 다다르는 시체들의 퀭한 눈동자가 오크 샤먼을 향해 갔다.
그 수많은 죽음을 마주한 오크 샤먼이 침을 질질 흘리며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꿈이로구나. 크허허허.”
끝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오크 샤먼은 미련하도록 자신에게서 벗어난 주술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시도했다.
그러자 반대로 주술이 술자인 오크 샤먼을 공격을 해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셰인이 주술의 통제 권한을 샤먼에게 돌려보내자, 그간 셰인이 감당하고 있던 통제력이 해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수많은 죽음의 환영을 감당하지 못한 주술이 오크 샤먼의 뇌를 까맣게 태우기 시작했다.
“크허허, 크헤헤헥!”
통제되지 않는 주술의 힘 앞에서 오크 샤먼은 칠공에서 피를 쏟아 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시체들 또한 정신이 무너져 가는 속도는 더더욱 부추겼다.
그런 오크의 발밑으로, 검은 이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죽으면 이쪽이 곤란하지.”
어느새 셰인의 오리진에 반응한 정령이 오크 샤먼의 발밑에서 그 심연과 같은 아가리를 열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 샤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술자가 사라진 주술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혈마력으로 이루어진 돔 형태의 구가 사라지고,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아룬비다의 하늘이 비춰졌다.
“크헉, 이 씨벌놈의 오크 쉑…… 으잉?”
그때, 허공에서 줄곧 숏 소드를 휘두르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케빈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어, 애송, 아니지. 뭐라 해야 돼? 아무튼 마법사 양반. 끝난 거요?”
“그래.”
그러자 케빈은 단번에 풀린 긴장으로 인해 다리가 풀려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푸, 푸하…… 씨부레 아주 뒤질 뻔했네. 아니 근데 이 양반들은 왜 쓰러져 있는 거야? 서, 설마 뒤진 건 아니겠지?”
케빈과 다르게 무심코 마력을 쓴 맥고완과 해커츠는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펠리스도 몸 이곳저곳에서 출혈을 일으킨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다행히 셰인이 주술을 금세 해제한 덕에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테지만, 정신적 데미지는 상당한지 곧장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일단 일행들을 챙겨라. 나는 저 건물을 좀 수색하고 오지.”
“어어, 알겠슈. 염병…… 그 뭐냐. 고맙수다. 덕분에 목숨은 건졌네.”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거 생긴 것과 다르게 부끄럼이 많은 모양이구먼. 크흠.”
케빈은 무안한 듯 그리 말하며 쓰러진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그 또한 주술의 여파로 인해 정신적 데미지가 상당한 탓에 몸이 잘 안 움직였지만, 아룬비다의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극한의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가 제법 잦은 편이었다.
제일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펠리스에게 다가가는 케빈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셰인은 그대로 백부장 오크와 오크 샤먼이 거주했던 건물로 향했다.
건물 내부는 이상한 약초향과 혈향이 동시에 퍼지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셰인은 그 두 향이 보다 강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오크 샤먼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마치 흑마법사의 연구실을 보는 것처럼 불쾌한 실험의 흔적들이 즐비해 있었으나.
셰인은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을 돌리지 않고, 동물의 가죽이 쌓인 장소로 향했다.
종이를 만들 줄 모르는 오크들이 대신해서 쓰는 말린 가죽 위에 동물이나 몬스터의 피로 오크어가 적힌 두루마리였다.
그것들을 빠르게 살펴보던 셰인은 이내 원하는 두루마리를 챙기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끄응. 이거 할 말이 없군.”
밖으로 나와 보자 펠리스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고, 케빈은 쌍코피를 흘리며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염병. 챙겨 주려는 사람한테 대뜸 주먹이나 날리고 말이야.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러게 누가 마력을 쓰라고 했나? 젠장.”
“거 미안하다니까.”
보아하니 샤먼의 주술로 인해 한가득 살기를 품고 있던 펠리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본능적으로 바로 앞에 있던 케빈에게 주먹이라도 날린 모양이다.
“두 번 미안하면 사람 죽이겠습니다, 그려. 손으로 막아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음 내 골통이 부서졌을 거 아닙니까.”
“크흠…….”
할 말이 없는지 펠리스는 덩치가 큰 맥고완을 둘러메고는 셰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필요한 건 챙겼나?”
“그래.”
“그럼 바로 움직여 보자고. 바깥에 있는 놈들도 슬슬 기어 들어오려는 것 같으니까.”
그러면서 펠리스는 한쪽에서 그 짧은 사이에 말라비틀어진 백부장 오크의 시체를 바라봤다.
“쯧. 살아 있는 오크는 밖에 있는 놈들 중에서 하나 골라 가져가야겠군. 미안하게 됐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고.”
“뭐, 그렇지?”
그렇게 떠날 채비를 갖춘 셋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맥고완과 해커츠를 둘러멘 상태로 미리 준비해 둔 밧줄을 이용해 가파른 협곡을 올라갔다.
* * *
“후우, 뒤지겠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작은 캠프를 차리니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맥고완과 해커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냥감을 찾을 겸 나갔던 펠리스는 그 사이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은 오크 한 마리를 기절시켜 데려왔다.
“아오, 마음 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네.”
“맞슴다.”
맥고완과 해커츠가 기절한 오크를 향해 이를 갈며 그리 말했으나, 그 말을 들은 케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둘에게 쏘아내듯 입을 열었다.
“내가 죽이고 싶은 건 너희들이다, 이 말종 새끼들아. 마력을 쓰지 말라 했는데 왜 써 가지고 뒤질 뻔하냐고.”
“아니, 그럼 오크 놈들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달려들어서 날 쥐어 패는데 그걸 가만히 맞고 있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맞슴다.”
“지랄. 말이라도 못하면.”
“크흠.”
한편, 자신도 당한 게 있기에 펠리스도 한차례 헛기침을 내며 일행들의 시선을 모았다.
“아무튼, 셰인. 살아 있는 오크의 표본은 구했고, 놈들의 근거지 탐색은 어떻게 됐지?”
“관련된 정보는 입수했다. 이제 복귀만 하면 돼.”
“그럼 이건 이제 터뜨려도 되겠군.”
그러면서 펠리스는 씨익 웃으며 손에 들린 푸른 신호탄을 들고 흔들거렸다.
길었던 특수 수색 작전이 끝맺음을 알릴 신호탄이었다.
* * *
늦은 시간.
눈과 함께 달빛이 내려오는 발코니에 선 아나스타샤는 북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 그녀의 뒤로, 미미르가 나타나 그녀에게 뜨거운 홍차를 가져다 건넸다.
“미미르.”
“오늘도 나와 계십니까. 며칠째입니까. 날씨가 찹니다.”
“걱정 마라. 그 정도로 나약하진 않으니까.”
“이렇게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해지겠지.”
셰인과 펠리스, 그리고 케빈을 포함한 삼총사가 오크의 근거지를 찾기 위한 여성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아나스타샤는 보름 전부터 발코니에 나와 늦은 시간까지 그들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긴장되십니까.”
“글쎄. 긴장이라는 걸 언제 해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래서 잘 모르겠어.”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좌천되다시피 온지도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14년 동안 당연하다시피 여겨 온 황실의 풍요로운 삶이 끝났을 때에도.
일방적인 적의만 보내 오는 아룬비다의 첫날밤에도.
해일처럼 몰려오는 몬스터 웨이브 속에서조차 긴장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아나스타샤였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긴장을 하고 있을까?
아나스타샤는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은 긴장이라는 것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익숙하지 않기에 모르고 있는 것일 뿐.
“황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그런 미미르의 기습적인 질문에도 심장은 오히려 차갑게만 느껴졌다.
황실.
저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도 빛나는 별과 같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긴장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미미르. 나는 그렇게 먼 미래까지 볼 줄 몰라.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사람이거든.”
이곳 아룬비다의 날씨처럼 냉철한 마음으로 여기에 서 있는 이유는, 저 먼 황실의 일 보다 최근 이곳 아룬비다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오크들이 마력을 쓰기 시작하고,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려 한다.
당장은 전조 현상에 불과했으나, 그게 현실로 다가온다면 과연 자신은 이곳 아룬비다를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위기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아나스타샤를 이곳에 서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미르는 탄식했다.
눈앞의 여인이 아장아장 걷던 시절부터 모셔 왔다.
그럼에도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이지 않나.
셰인이라는 소년의 제안을 들었을 때, 이곳 아룬비다보다 황실을 바라보는 자신과 다르게 아나스타샤는 당장 스스로가 이끄는 이곳 아룬비다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면모를 봐 왔기 때문에 아나스타샤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것이 아닌가.
미미르는 혹한의 날씨에 금방 식으려 하는 찻잔에 마법을 걸어 다시금 데우고는 여전히 북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황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름 황실에서 보내 왔던 시간이 길었다 보니, 사람을 보는 눈이 제법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따금 제가 가늠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런 이들은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게 올려다볼 정도로.
“……그래?”
“예. 그런데 또 그런 일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웃기게도 그것과 관련된 감이 늘어난다 이 말입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남들보다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 이곳 아룬비다에서도 여럿 겪었지요. 이곳의 특성상 높은 곳까지 가지는 못했지만요.”
그러면서 미미르는 황태자를 거론하며 살벌한 살기를 감추지 않았던 그 소년을 떠올렸다.
“그런데 셰인에게서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음? 반대로 그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하하. 오히려 지금 단계의 저조차도, 그리고 제가 황실에서 봐 왔던 어느 누구보다도 무엇 하나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
“황녀님을 보좌하는 이 미미르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믿은 그 소년 또한 믿어 보십시오.”
미미르의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보고 있던 하늘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하하, 그래. 확실히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둔 모양이야.”
“……이거, 타이밍이 제법 괜찮았군요. 하하.”
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느새 저 먼 북쪽으로부터 푸른빛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둘의 눈에는 저 푸른빛이 너무도 선명히 보였다.
앞서 셰인과 그 일행들에게 작전이 완료되면 터트리라 넘겨줬던 신호탄이 별천지인 아룬비다의 하늘에서도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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