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71화
71화 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나 (1)
“크하, 뒤질 뻔했다!”
“따뜻한 물에 씻고 싶슴다…….”
“거기에 맥주 한 잔 걸치면 인생 끝이지. 흐흐…….”
녹초가 된 삼총사가 비투론 성벽을 넘어서자, 경계를 서거나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룬비다의 주민들이 하나둘씩 시선을 보내 왔다.
삼총사야 밖에 자주 드나들지만, 펠리스가 직접 나서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펠리스는 어깨에 무언가 커다란 자루를 들고 있었다.
“이봐, 케빈. 뭐 하다가 온 거야? 펠리스 님은 또 언제 나가셨고.”
그에 경계를 서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물어 오자, 케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이 걱정 없이 사는 것들아!”
“뭐래. 아주 지랄을 해요, 지랄을. 어디 몬스터라도 잡고 온 건가? 크기를 보면 얼추 오크 같은데. 펠리스 씨. 뭡니까?”
펠리스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좀 더 있다가 말해 주지. 그보다 황녀님은?”
“뭐 그렇게 숨길 게 있다고…… 음, 평소처럼 위에 계시지 않겠습니까? 새벽에 미미르 님이 밖으로 나가긴 했는데.”
“그래? 그럼 잘 전달된 거군. 알았다. 계속 수고해라.”
“아 진짜 계속 숨길 겁니까? 예?!”
그러한 질문을 뒤로한 채, 삼총사는 먼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고, 셰인과 펠리스만이 성 내부로 들어갔다.
1층에 들어가자, 평소처럼 갑옷을 입고 있는 아나스타샤가 둘을 반겼다.
“고생했다, 제군들. 그게 오크인가?”
“예. 놈은 지하에 내려놓을까요?”
펠리스의 물음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셰인. 그대는 나와 따로 얘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남은 펠리스마저 성의 지하로 향하고, 셰인은 아나스타샤를 따라 그녀의 집무실로 향했다.
“미미르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잘도 그런 이야기를 당사자 없는 곳에서 말하더군.”
“황녀님께서 거절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이 험한 아룬비다의 주민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계신 분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명령을 따르는 이들만 남았으니.”
섬뜩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또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제법 힘든 청소였지.”
“그럼 또 청소해야 할 시기가 찾아오겠군요.”
“……어린 나이에 제법 말에 살기가 담겨 있군.”
미미르가 말이 맞았다.
눈앞의 이 소년이 품고 있는 살기는, 아나스타샤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살기였다.
살기라는 것은 다양하다.
전장에서 적을 죽이기 위해 병사들이 내뿜는 가공되지 않은 거친 살기와.
1:1 상황 속 서로를 향해 남긴 비수를 위해 흐르는 정제된 살기.
혹은 정치 속에 담긴 음험한 살기 등.
그 모든 것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발현된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소년의 살기는,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감정이 없는 살기라고 해야 할까.
셰인이 의도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살기는 마치…… 무기물을 죽이려는 듯한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생명체를 죽인다는 의식 없이, 그저 테이블 위에 쌓인 먼지를 치우는 듯한…… 그런 살기였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저렇게 되었을까. 아니면 태생부터가 저런 살기를 가지고 살아온 걸까.
그런데 어째서 저 기운이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아나스타샤는 자신과 불과 4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이 소년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걸 굳이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내 오라버니에게 비수를 날리려는 것 같은데.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오라버니가 말이지…….”
아나스타샤는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오라버니를 떠올렸다.
기묘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쌍둥이 누이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다.
1황녀인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는 그저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호감을 이끄는 이다.
반면 오라버니인 제페르 디 와이어트 새뮤얼은 올리시아와 비슷하게 미소라는 가면으로 표정을 가리고 있지만, 정작 올리시아처럼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니다.
후천적으로 배워서 만들어 낸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의 소년과 자신의 오라버니가 겹쳐 보였다.
살기.
그래, 살기다.
어릴 적, 새뮤얼은 이따금 벌레를 잡아 죽일 때와 같은 표정으로 타인을 향해 그러한 시선을 보냈던 것이 기억났다.
다만 눈앞의 소년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쨌든 벌레 또한 생명체라는 것이고.
눈앞의 소년이 가진 무기질적인 살기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물으셨었지요.”
“그랬지.”
“그때 황실의 호위기사단장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죠. 그들의 목적을.”
정확히 말하자면 영혼을 흡수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지만.
관련된 정보는 아나스타샤 또한 이미 외부에 정보원으로서 파견된 램퍼트 모험단의 일렉사의 보고로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인류만을 위한 유일한 나라. 하나로 통합된 인류의 나라. 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듣기에는 좋으나, 실질적으로는 독재 정치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길어 봐야 3년에서 5년. 곧 계획이 진행될 겁니다.”
물론 셰인의 개입으로 인해 전생과 달리 조직과 불화가 생기긴 했으나, 새뮤얼의 계획은 고작 그 정도로는 막을 수 없다.
“흐음…… 내가 그 말을 왜 믿어야 하지?”
이쯤에서 아나스타샤는 한 번 셰인을 떠보기 위해 그런 질문을 했으나.
“여전히 제국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이곳 아룬비다보다도 더.”
“……!”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 * *
아나스타샤와의 만남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셰인은 평소처럼 방 주변으로 방음 마법과 알림 마법을 펼치고 자리에 와 앉았다.
타인의 영혼을 해체하는 과정에는 아무래도 비교적 주변을 향한 경계가 무뎌지기 때문이다.
아직 오크 샤먼의 영혼을 해체하지 않은 상황.
셰인은 복귀하는 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는 낡은 테이블 위에 물건들을 늘어뜨렸다.
오크 샤먼의 영혼을 살펴보기 전에 앞서, 일전에 지하 감옥에서 죽인 오크의 토템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흔히들 인간이나 이종족이 쓰는 물건에는 옅게나마 염(念)이 존재한다. 특히 토템처럼 신성시되는 물건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염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물건이라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셰인은 한참 동안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토템을 살펴봤다.
먼저 마력을 부여해 별다른 반응이 없는지 검토하고, 오리진도 마찬가지로 사용해 봤으나 역시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한참을 비슷한 방법으로 알아봤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물건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이걸 사용했던 이들에게서 찾아봐야겠다.
아직 어둠의 정령에게 붙잡혀 절규하고 있는 오크 샤먼의 영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셰인의 의지를 읽은 어둠의 정령이 여태껏 여러 번 해 왔던 그 일을 능숙하게 시작했다.
“이건 좀 멀쩡하군.”
앞서 지하 감옥에서 봤던 오크와 다르게, 오크 샤먼의 기억은 파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차이가 있는 걸까.
여태까지와 다르게 셰인은 오크 샤먼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훑어봤다.
그런 와중에, 대략 50년 전.
늙은 오크 샤먼이 아직 한참 어린 오크였던 시절.
샤먼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신전으로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크의 손재주를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정교하고 또 거대한 신전 앞.
그그그극─
신전에 걸맞은 거대한 석문이 천천히 열리자, 셰인은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뭐라 해야 할까.
세상에 동떨어진 존재를 범접했을 때의 느낌.
그와 동시에.
[흥미롭구나.]‘……!!’
석문 너머로부터 정체모를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셰인은 직감했다.
이는 기억 속 샤먼에게 걸려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몰려들어와 셰인을 옥죄었다.
마치 세상이 빙글빙글 돌다 못해 무너지고,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자신의 방인지, 아니면 낯선 오크들의 신전인지.
이는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셰인의 영혼이 뒤흔들렸기에 일어난 일이다.
수천의 엘프와 해츨링의 마인드 로드에 간섭했을 때도 이 정도의 존재감을 느끼지는 못 했다.
마치 타락으로 인해 만들어진 질투의 인격이 세인을 의식의 수면 깊은 곳에 가뒀을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농후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머리로 경종이 시끄럽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셰인의 내면에서 방금 막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정령이 울부짖었다.
항거 할 수 없는 절대자로부터, 제 주인을 지키고자 사냥개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그 울부짖음에는 깊은 공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운명의 폭포를 거스르고 헤엄쳐 온 아해야. 너로 인해 세상의 운명이 뒤바뀌었구나.]이어지는 질문에 셰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두려워서?
아니.
대관절 저 존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온몸이 눈앞에 있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부들부들 떨려왔으나, 그의 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철저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셰인은 왜 자신이 이 상황에 기시감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무명에 있었을 적, 무명의 정상에 있던 존재와 마주했을 때가 바로 이러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존재감은 오히려 그 당시 겪었을 때보다 더욱 농후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빠르게 자신의 상황과 과거에 있던 일들을 정리해 가며 지금 상황에 대해 유추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절대자. 드래곤. 대수림. 프리실라. 북부의 오크. 그리고.
‘산…… 왕?’
아룬비다에 오기 전, 프리실라에게 북부에 관해 물었을 때 들었던 산왕의 존재.
때마침 자신은 오크의 영혼을 해부하고 있지 않았나.
고대 시절, 산왕이 존재한 북부에 들어간 마지막 종족 또한 오크였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었다.
그러자 의지와 상관없이 잔뜩 굳어 버린 몸에 의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상대방으로부터 호기심이 느껴졌다.
그 간단한 감정의 편린마저도 셰인의 정신이 뒤틀리는 듯했다.
[호오. 그래, 맞다. 언젠가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었지.]‘어떻…… 게 내게 간…… 섭한 거지……?’
[재미있구나. 나를 보고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그래, 그 토템은 오크들이 나를 섬기기 위해 만든 것이지. 거기에 너의 존재가 운명을 바꾸었다. 이 우주의 신인 아카샤가 이를 허락했구나.]‘아카샤……?’
다시 한번 셰인의 영혼이 크게 흔들렸다.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을 가진 것처럼, 무거운 무게감이 짓누르는 듯했다.
[아쉽지만 이 이상 말해 줄 수는 없겠구나. 그래…… 우리는 다시 한번 만날 운명이다. 너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어. 그때가 된다면 우린 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테지. 진정 영웅의 길을 걷고 있는 아해야.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고대하고 있으마.]“……!”
순식간에 거대한 존재감이 흐릿해진다.
그에 셰인이 무언가 더 묻기도 전에 산왕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어느새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셰인은 신음 한 번 흘리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진 토템을 바라봤다.
“……역시, 쉽지가 않군.”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뜻하지 않는 타이밍에 등장했다.
이게 앞으로의 계획에 무슨 차질이 생길까.
셰인으로서도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 * *
미미르가 황실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나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앞서 미리 연락을 취하고 중요한 일이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흘이나 걸린 것이다.
물론 황제는 이 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룬비다의 이변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긴 여전하군요.”
그리고 정작 그 만남이 성사됐을 때도, 미미르는 생각했던 것처럼 온갖 모욕만 당해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오크가 마력을 쓴다고?] [설사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그 미개한 오크들이 어떻게 몬스터를 끌어모아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다는 말이오?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믿어 주던가 하지.]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마당에 우리 보고 병력을 일으키라는 말씀입니까?] [혈마력이라 했소? 고든은 이미 죽었고, 흑마법 전쟁 당시에 그들의 뿌리는 뽑혔소. 그런데 하물며 인간도 아닌 마력도 쓰지 못하는 미개한 오크들이 쓴다니. 농담도 정도껏 하셔야지.]탁- 타닥- 타다닥- 탁-
황실의 정치 귀족부터 북부의 영주들까지. 하나같이 목청을 높이며 그리 말해 왔다.
특히 북부의 영주들은 자신들의 이권이 걸린 일이라 더더욱 눈빛이 곱지 않았다.
아룬비다의 혹독한 날씨 특성상, 군대를 일으키려면 보통 많은 물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탁- 타닥- 타다닥- 탁-
미미르는 오히려 그런 그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어찌 저리 생각과는 조금도 다르지 않게 움직이는지.
회의 당시 일정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책상에 튕기던 미미르는 그리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없이, 그저 말만 번지르르하게 내뱉으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하다못해 일을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조사대를 파견하겠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설마하니 황제를 눈앞에 두고도 헛소리를 내뱉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는 듯 우롱에 가까운 태도를 일관했다.
진정 제국을 걱정한다면, 50년 전 오크들의 남하 사태를 떠올린다면 저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태도를 보고 미미르는 속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그야.
탁- 타닥- 타다닥- 탁-
“정겨운 소리네요. 그렇죠?”
그래야만 자신들의 작전대로 이야기가 흘러갈 테니.
미미르는 그리 생각하며, 늦은 밤에 자신의 객실로 찾아온 여인을 반겼다.
“어른스러운 여동생이 아직 귀여울 때 천둥소리가 무섭다며 제 방문을 두드릴 때마다 냈던 소리였죠.”
가을 보리밭을 연상케 하는 백금발의 머리카락.
숲을 떠올리게 만드는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테이블을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며 그리 말했다.
“그래서, 할 말이라도 있나요, 미미르 경?”
1황녀.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가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