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5)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75화
75화 폭풍전야
“피의 기억이…… 읽히지가 않아…….”
엘더 샤먼의 느릿한 말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무너진 전초 기지 내부.
앞서 셰인을 포함한 특수 수색대가 다녀간 이곳은 이미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러한 보고를 들은 엘더 샤먼은 죽은 오크 샤먼의 피에 얽힌 기억을 읽어 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음~ 글쎄? 사실 우리도 그 늙은이가 만든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그에 대답한 사람은 이제 10살이나 됐나 싶은 소녀였으나, 그녀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엘더 샤먼의 앞에서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누가 알았겠어? 고든, 그 음흉한 늙은이가 그렇게 갑자기 죽어 버렸을 줄은.”
소녀의 말처럼,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조직의 핵심 간부로 있던 고든이 죽었다는 사실은 조직에게 꽤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그간 고든이 홀로 담당하고 있던 다양한 연구들도 일순간에 모두 멈춰 버렸고, 앞으로 큰일을 해 줘야 할 드래곤 하트도 끝내 온전한 형태로 라비아타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때문에 이렇게 북부까지 찾아와 흡혈귀의 마력을 사용하는 오크에게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때, 소녀의 곁을 지키고 서 있던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하하! 이거, 인간들에게 한 방 먹은 모양이군.”
“인…… 간?”
“그래. 옅지만 놈들의 냄새가 느껴져.”
2미터가 넘는 엘더 샤먼의 덩치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
꽉 끼는 정장을 차려입고는 구릿빛 피부의 스킨헤드를 쓸어 만졌다.
오크들의 시체를 보면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으나, 스킨헤드의 남자는 그럼에도 확신에 차서 그리 말하고 있었다.
“냄새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데?”
소녀의 물음에 스킨헤드 남자가 기존의 백부장이 썼던 건물을 가리켰다.
“저쪽인데? 저 건물로 들어갔어.”
“역시 개코라니까!”
“그 주둥이 뜯어 버리기 전에 닥쳐라. 난 곰이라고.”
이윽고, 엘더 샤먼은 기존의 이곳에서 죽은 오크 샤먼의 방에서 사라진 물건들을 확인했다.
“인간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것…… 같군.”
“일이 복잡하게 됐는데? 여기 있는 가죽들도 몇 개 챙겨 갔다는 건 너희들의 언어를 해석할 줄 안다는 거 아냐.”
“게다가 몬스터들이 싸운 걸 보면 그쪽으로 의심을 지우게 만들고 시선을 돌리려던 거 같은데?”
남자와 소녀의 말에 엘더 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대족장에게, 찾아가 봐야겠군…….”
인간들이 계획을 눈치챘다.
그들은 숫자도 적고 수명도 짧지만 그만큼 자신들의 위기에 민감한 종족이다. 이미 이쪽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들은 왔던 것만큼이나 신속하게 자신들의 본거지로 향했다.
곧 있을, 인간들과의 전쟁을 위해.
* * *
비록 올리시아가 전쟁을 한다고는 했으나, 전쟁이라는 게 하루 이틀 만에 뚝딱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대륙은 이제 막 한여름이 시작하는 와중에 북부의 원정을 위해 병사들이 입어야 할 보온 장비를 마련하고, 얼마만큼의 군사를 보낼 것인지, 그리고 그 군사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등 여러 모로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나마 연합국은 상황이 달랐다.
모험가들은 평소에도 험지를 돌아다니는 이들이기에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도 이윤 없이 움직이는 이들이 아니기에 제국에서 적절한 보상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먼저 움직일 생각 따윈 없을 터.
“한 달이라더군.”
아나스타샤의 그 말에 셰인과 미미르는 조용히 경청했다.
“먼저 보내 주는 물자들로 최대한 한 달 동안 버티라는 것이 황실의 뜻이야.”
“……더 빠르게는 안 되는 겁니까?”
“폐하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어. 그보다 더 빠른 원정은 아무래도 힘들 거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셰인이 준비한 포탈이라 해야 할까.
다급하다면 언제든지 황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었고, 1황녀인 올리시아는 보름 안에 선발대를 보내겠다 말했었다.
“그래도 마냥 절망적인 상황만 있는 건 아니지. 보상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한다면 모험가들도 선발대가 올 쯤에 찾아올 테니까.”
“그럼 중요한 건 앞으로 보름이겠군요. 오크들이 과연 그 전에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지…….”
미미르의 희망 어린 말이 나오기 무색하게 셰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크들도 움직일 겁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데?”
“오크들의 뒤에는 조직이 있으니, 놈들도 우리 쪽에서 눈치챘다는 것을 이미 확인 했을 겁니다.”
“조직이라…….”
전생과는 다르게 ‘무명’의 개입 이후, 오크들의 움직임은 확연히 빨라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몇 년 후에나 본격적으로 움직였을 오크들이 벌써부터 전초 기지를 지으며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어쩌면 전생과 다르게 이미 상당 부분 전쟁의 준비가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먼저 움직였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크들도 이쪽이 대응하기 전에 속도전을 걸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며칠 안에 오크들의 수작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셰인은 섣불리 밖으로 나가기보단, 성 내부에서 방어에 전념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남겼다.
보좌관인 미미르도 셰인의 의견에 찬성하니,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 *
“이야, 진짜 때깔 좋다!”
“그러게…… 언제 망가질지 몰라서 불안하기만 했던 무기들이었는데.”
그간 모아둔 몬스터의 부산물을 팔아 번 돈을 통해 물자를 구입하고 영지민들을 무장시키는 한편, 삼총사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성벽 앞 도랑을 손보며 돌아다녔다.
영지 내에 셰인을 제외한 단 하나뿐인 마법사, 미미르도 더없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거…… 놀랍군요.”
미미르는 셰인이 넘기고 간 보고서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마법사로서의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셰인의 보고서에는 마법으로 보수하거나 개선이 가능한 성내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마법사인 미미르가 알아볼 수 있도록 해당 문제들을 해결할 마법을 공식으로 적어 두기까지 했다.
그동안 셰인이 아룬비다에서 지내는 동안 꾸준히 준비해 온 보고서였기에, 그만큼 완성도가 훌륭했다.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같은 마법사로서, 셰인은 뭐랄까. 독특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이미 정해진 길을 걷는 반면, 셰인은 끊임없이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면이 보였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진 길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 길을 활용해 새로운 대로를 개척해 내니, 선배 마법사로서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셰인은 진보적인 마법사였다.
“공식대로 따라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군요…….”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셰인과 마법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싶을 정도였지만, 당장은 해야 할 일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한편, 셰인과 펠리스는 성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젠장. 누구는 도랑이나 파고 있는데.”
“그러게 말임다. 힘듬다.”
“야이 근육 돼지 새꺄! 삽질 100번에 허리 한 번 펴라고 했지!”
“너무함다, 해커스.”
그런 셰인과 펠리스를 바라보며 성벽 앞 도랑을 파고 있는 삼총사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펠리스가 귀를 휘적거리며 셰인에게 물었다.
“마법진 설치하러 가는 거냐?”
“그래.”
지금의 사회에서 마법사가 중요한 이유다.
공성전이 벌어졌을 때, 마법사는 단순히 멀리서 마법만 팡팡 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
지도를 펼친 셰인은 미리 체크해 둔 지점에 찾아가 다양한 마법진을 설치하고 다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을까.
첫 시작은 남들이 한참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황녀님. 정찰대의 보고입니다.”
“음…….”
며칠 동안 황실과 연합국의 중진들의 원거리 회의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느라 바빴던 아나스타샤는 두 눈을 감은 채 미미르의 보고를 들었다.
“반나절 거리서부터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감지됐다고 합니다.”
“규모는?”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라는 보고로군요.”
“그렇단 말이지…….”
매년 일어나는 몬스터 웨이브는 얼추 천 마리 내외에서 일어난다.
때문에 몬스터의 숫자를 눈대중으로 맞추는 데 이골이 난 정찰병들조차도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는 보고를 해 온 것이다.
이제 정말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룬비다 영지민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 * *
유려한 선을 그리며 검이 휘둘리자, 마지막까지 보고를 지키고 있던 진흙 골렘이 무너져 내렸다.
“으아앗! 이제 좀 끝내자, 망할 것들아!”
디라일라의 발 구르기 한 번에 대지가 요동치며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헤비 그렘린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발치에서 무수히 솟아난 대지의 창이 사정없이 헤비 그렘린들의 다리를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상을 입은 헤비 그렘린들을 향해 전격 마법이 쏘아져 나갔다.
단련된 쇠로 무장된 그렘린들이었으나, 오히려 전격 마법에 의해 내부에서 통으로 그을려졌다.
한편, 한참 입구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던 전투학과의 생도들도 전투의 마무리를 지었다.
“으아! 드디어 끝났다!”
“그러게…… 다들 고생 많았어. 어디 다친 곳은 없지?”
클라인의 물음에 방금까지 입구에서 침입해 오려던 그렘린을 막고 있던 알 로스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내가 누구냐, 알 로스 님 아니냐! 하하.”
해맑게 웃는 그의 뒤로 큰 챙 모자가 눈에 띄는 마법사 소녀가 다가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뒤에서 그렘린 몇 마리 상대한 게 전부면서 뭘 그렇게 대단하다는 듯 말하는 거야?”
“아니, 아르티아. 네가 마법 쓰는 시간은 뭐 거저 벌어지냐? 다 나랑 알렉스가 뒤져라 노력해서 만들어 낸 시간 아냐!”
“천박하긴. 뒤져라가 뭐니, 뒤져라가?”
“아오. 야, 알렉스. 너도 한마디 해 봐!”
“어…… 아, 아냐.”
“에라이.”
“흥, 쟤처럼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몰라.”
“뭐래. 지도 디라일라보다 밀리면서.”
“……! 너 지금 말 다 했어?”
“다 했다, 뭐!”
여느 때처럼 말싸움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클라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몇 번이고 말려 봤으나, 성격상으로 안 맞는 건지.
알 로스와 마법 연합의 총관의 딸, 아르칸 T 아르티아는 저렇듯 항상 말싸움을 해 댔다.
그러면서 클라인은 둘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평범한 인상의 소년.
형님과 함께 아카데미로 돌아오던 중, 던전 웨이브로 인해 위기에 처한 마을에서 인연을 맺어 자신의 하인이 된 이였다.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막 돌아왔던 시기, 뒤뜰에서 홀로 목검을 휘두르는 알렉스의 검을 본 클라인은 알렉스에게 검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원채 열정이 뛰어나고 무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알렉스를 클라인이 기껍게 본 것이다.
그 뒤로는 여러 던전을 함께 데리고 다니자 알렉스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마력을 깨우치는 게 늦은 탓에 마력 운용은 아직 미숙했으나, 알렉스는 다양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아무튼 다들 고생했어. 이제 그만 위로 올라가자.”
지난 한 달 동안 클리어에 전념한 고대 드워프의 전초 기지.
기대했던 드워프하고의 만남은 없었으나, 대신 땅 밑에 지어진 전초 기지를 차지한 헤비 그렘린들과 조우한 그들은 오늘에서야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드워프들의 보고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에이. 드워프제 무구 좀 들어보나 싶었는데.”
알 로스가 아쉽다는 듯 그리 입맛을 다셨다.
한 달 동안 어두운 땅 아래서 고생한 것에 비해 큰 이득은 없던 것이다.
“그래도 마석은 많네.”
“그러게…… 어?”
그때, 디라일라는 한쪽 구석에 정사각형 모양의 광물을 발견하고는 입술을 축였다.
“저기, 나 마석은 포기할 테니까 저거 하나만 주면 안 돼?”
“음?”
“어머, 이건…….”
그때, 아르티아가 광물의 가치를 알아봤는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으음…… 마법적으로 연구할 가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리 필요가 없겠네. 좋아. 나도 입찰은 포기할게.”
“저게 뭔데 그래?”
알 로스의 물음에 아르티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형상 기억 광물. 고대 드워프들이 성벽을 지을 때 쓰는 물건이야. 지금에 들어서는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광물인데…… 아직 연구가 덜 됐거든. 입찰 경매에 올리면 제법 값은 받을 수 있겠지.”
“뭐, 내가 써먹을 수도 없겠네. 그럼 나도 포기.”
“나도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음, 그럼 이건 디라일라한테 넘기기로 할게.”
“오예! 고마워, 다들!”
그렇게 원정을 끝낸 일행들이 한 달 만에 밖으로 나왔을 때.
알 로스가 신문팔이 소년이 들고 있는 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야. 클라인. 저거 네 형 아냐?”
“응?”
거기에는 대문짝만하게 셰인의 사진과 함께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다.
[메자이아 대수림의 비밀을 밝힌 천재 마법사, 클레이튼 R 셰인. 이번에는 북부에 얽힌 오크들의 혈마법을 발견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