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81화
81화 격전
어둠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산왕은 시간의 흐름을 바라봤다.
고대를 넘어 신화시대서부터 살아온 산왕은 세상이 창조되는 그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던 존재다.
고로 이 세상이 탄생하고 시간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간이 만들어 내는 강을 들여다볼 자격이 있었다.
인간들에게는 긴 시간이나 산왕에게 있어서는 잠깐의 단잠에 불과한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지금의 시간선 외에 길이 이어진 그 흐름을 지켜봤다.
마치 깊은 심해를 담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선이다. 분명 자신이 존재했던 시간선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가 않는다.
그에 산왕이 의아함을 느낄 때쯤, 현재의 시간선 속 작은 빛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작디작은 불빛.
그 불빛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금이 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찬란한 빛을 띠고 있었다.
산왕에게 있어서도 극히 찰나의 시간.
그는 그 빛을 본 직후에 그 짧은 시간 동안 탐욕이라는 감정을 느꼈으나, 이내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랬군.”
작은 불빛이 잠시나마 심해처럼 가려진 또 다른 시간선을 비추자, 그제야 산왕은 그 가려진 시간선 속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미있는 유희가 되겠어.”
바뀐 시간선을 이해한 산왕은 그렇게 꿈속을 헤매듯,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이 보낸 초대장에 상대가 응하길 기다리며.
* * *
셰인이 이곳 아룬비다에 오도록 추천한 인물이자, 학과시험 당시 담당관을 맡았던 지휘학과 수석교수, 리바이 벤자민은 한때 제국에서 알아주는 황실의 기사단장이었다.
그는 타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무위로 자신을 입증했고, 스스로의 시그니처를 깨달은 기사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리시아가 그토록 탐내던 인재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참전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은퇴 기사를 다시금 전쟁에 참여시키는 행위는 제국법상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고, 벤자민이 참전한다는 것은 결국 제국 스스로가 이번 상황을 위기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자명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벤자민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길 수 없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스스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왔다.
황실의 정치에 마음이 부러진 지금에서도 아나스타샤를 생각하는 그의 충심 때문이었다.
“전군! 진격하라!”
그런 벤자민의 명령에, 올리시아를 따르는 황실의 기사단이 말에 올라탄 채 랜스를 들고 돌격했다.
황실의 기사단이 품은 마력이 랜스에 담기고, 전투마가 투레질과 함께 질주를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최후방에서 주술을 외고 있는 오크 주술사들이었다.
“크와비타! 파 다르게르 워나후!”
그에 후방에서 나타난 인간들을 향해 주술사를 지키던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서 주술사들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주술을 걸어 둔 오크들은 일전 펠리스가 상대했던 백부장급 오크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을 무장한 놈들이라 하더라도, 단 한 번의 공격에 상반신 전체가 날아가면 불사라 할 것도 없이 죽기 마련.
벤자민은 번개처럼 흐르는 마력을 쌍검에 두른 채 태풍처럼 오크들 사이를 휘저었다.
뇌영(雷影).
번개와 같은 속도에 그림자가 쫓아가지 못하고 잔상만이 남겨진다.
그리고 그 잔상이 남고 간 자리에는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오크들이 쓰러져 있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사이클롭스의 마력을 휘감은 오크들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빛과 같은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채 목이 잘려 나갔다.
“막아라, 막아!!”
“뒤를 부탁한다, 형제여!”
“우르부라크에서 보자!”
결국 기사단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 오크들이 직접 기사단에게 뛰어들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혈폭.
몬스터의 야성을 담은 피를 터뜨리는 자살 기술.
백부장쯤 되는 능력을 지닌 오크들이나 쓸 수 있는 그 자폭에 대다수의 기사들이 휘말렸고, 전광석화로 움직이던 벤자민조차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자살한 오크의 핏물이 땅을 타고 주술사들을 지키는 방어막에 흡수되었다.
이젠 내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아진 농도.
부상자를 뒤로하고 다시금 정비한 기사단이 달려들어 남은 오크들을 정리한다.
기사단 또한 결코 적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나, 그 덕에 주술사를 지키던 최후의 오크마저 끝내 차가운 아룬비다의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느덧 주술로 강화한 방어막은 성벽처럼 튼튼하게 주술사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벤자민이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봤으나 이내 공격은 덧없이 튕겨져 나왔다.
“으음……!”
튕겨져 나올 때의 반발력이 상당하다.
방금, 전력을 다해 휘두른 탓에 벤자민은 자신의 찢어진 손바닥을 보며 신음을 삼켰다.
그때,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하는군, 벤자민.”
“……대니얼 님.”
“그래, 나다.”
사자의 갈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내.
명불허전 황실의 검. 저지먼트 기사단의 단장, 올리버 G 대니얼.
그가 백염의 오러를 휘감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좀 도와줄까?”
“그래주면 고맙겠군요.”
“으하하, 그리하지!”
그는 호탕하게 웃음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촤악-!
그러자 방금까지 벤자민의 검에도 일절 흔들림 없던 방어막이 단숨에 갈라졌다.
마력을 흡수하는 오러.
백사자의 오러 앞에서는 혈마력도 부질없이 사그라질 뿐이었다.
“쿠, 쿠와비타! 에루버 바크!”
그에 오크 샤먼들이 화들짝 놀랐으나, 이미 벤자민의 검은 움직이고 있었다.
일순간에 백 마리의 오크 샤먼 중 열이 목을 베였고, 뒤이어 저지먼트 기사단이 움직였다.
“전원! 황실의 정의를 보여라!”
기사단장 대니얼의 명에 기사단원들이 백염의 오러를 두른 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이 되는 샤먼이 정리되자, 엘더 샤먼, 카르가토가 두 눈을 부릅뜨며 토템이 달린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미리 준비해 둔 주술이 발동되며, 피의 막이 기사들을 감쌌다.
* * *
하늘에서 태양이 떨어진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 이가 어디 있을까.
이 비현실적인 광경은 몬스터의 야성에 잡아먹힌 오크들의 발걸음조차도 멈춰 세웠다.
태양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아래로는 아직 닿지도 않은 오크들의 피부가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불사의 몸을 지니게 되었다지만 고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몬스터의 야성으로도 견딜 수 없는 최악의 격통에 오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윽고.
결코 만나서는 안 될 태양과 대지가 맞부딪치자 말 그대로 공간이 소멸됐다.
오크들은 한 줌의 핏물도 남가지 못한 채 산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죽음은 곧 고통의 해방을 뜻했으니.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그 폭발 범위에 걸쳐져 있던 오크들은 사정이 달랐다.
신체의 절반이 녹아내렸다.
그럼에도 주술에 의해 끈질긴 생명력은 그들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섰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오크들이 죽거나 전투 불능의 부상을 입었다.
그에 라비아타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하나의 지옥도를 보며 기침을 내뱉었다.
“크으, 젠장. 아직 무리인가.”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얻었던 드래곤 하트를 이식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건만,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고 말았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또 몇 달 동안 요양해야 할 터.
“그러게 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런 라비아타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제임스가 한마디 내뱉자, 라비아타가 빽 소리 질렀다.
“이 새끼야, 네가 맨날 돈돈 이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온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 하트가 채 이식되기도 전에 달려 나올 줄 누가 알았습니까?”
“끄응…….”
사실 제임스도 속으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라비아타는 인간들의 세상에 간섭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여태껏 황실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화로 탑을 쌓아도 될 수준의 보상이 제시됐음에도 라비아타는 눈 하나 꿈쩍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인간들의 사건에 간섭한 것이다.
“뭐, 어쩌겠어. 받은 도움이 있는데.”
평생의 숙원이었던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지 않았던가.
그에 큰 도움을 주었던 셰인의 부탁이 있던지라, 라비아타는 특별히 이번에 한해서 이렇듯 모습을 내비친 것이다.
“그럼 들어가자고. 나머진 알아서 하겠지.”
그 많던 오크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본 라비아타는 욱신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포탈로 향했고, 제임스도 그런 라비아타의 뒤를 따라 포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세상에…….”
태양이 떨어진 이후.
그 광경은 성벽 너머에서 한참 전투 중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빠짐없이 전해졌다.
혹독한 이곳에서 난로 앞에서도 느낄 수 없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밤하늘이 밝게 빛나며 말도 안 되는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하늘이 분노하여 태양을 내린 듯한 광경.
그럼에도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전투를 멈출 수 없었다.
앞서 셰인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듣기도 하였고, 몬스터의 야성에 집어삼켜진 오크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성벽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위치에 태양이 떨어졌기에, 여전히 성벽을 넘어오는 몬스터의 수는 적지 않았다.
“흐읍!”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빛을 내는 이는 다름 아닌 클라인이었다.
황금빛 오러를 내뿜는 그의 주변으로 오크들의 시체가 쌓여 갔다.
평소에는 적의 핏방울도 몸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클라인이었지만, 전쟁에서는 그럴 겨를조차 남지 않았다.
자신이 활약할수록 죽는 사람들이 적어진다.
그 사실에 클라인은 더욱더 마력을 뿜어내며 적들을 일사불란하게 베어 나갔다.
그런 클라인의 곁에서 부상으로 인해 빠져 있던 펠리스도 워 해머를 휘두르며 오크의 머리통을 부숴 나갔다.
살아남은 이들은 클라인과 펠리스가 있는 방향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던 와중에 하늘 위로 따사로운 빛이 흘러내렸다.
라비아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태양이 아닌, 생명을 보듬는 엘프들의 정기가 모이고 모여 부상자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상처들은 눈에 띄는 속도로 회복되어 갔으니, 인간들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이것들아, 네놈들만 무적인 줄 아냐?!”
“죽여 버려 그냥!”
이어지는 전투 속.
끝내 아나스타샤 또한 대검을 뽑아 들어 전장에 나섰다.
일격필살.
한 번의 휘두름에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오크들이 쓰러진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혼란스러운 전장의 상황 속에서 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즈음이었다.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들아.]다시금 제 색을 되찾은 밤하늘의 위로, 진정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너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그 안에서, 민무늬 가면을 쓴 검은 망토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무(無)로 돌아가라.]허공에 떠오른 남자가 손을 움켜쥐자.
전장에 심연과 같은 어둠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