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84화
84화 제국의 영웅들
“오크들의 군대는 와해됐다.”
“…….”
“오크 대족장의 죽음은 확인되었고, 남은 살아남은 패잔병들만이 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지.”
“…….”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아나스타샤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아룬비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전쟁의 승리가 결코 달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지 멀쩡히 살아남은 이들보다 사상자가 훨씬 더 많았고, 그중에서는 목숨을 잃은 이들이 태반이었다.
전쟁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기 마련.
거기에, 전쟁의 마지막.
붉은빛과 함께 하늘 높이 승천한 검붉은 용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남기고 떠나갔다.
“고개를 들어라, 용사들이여. 너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몇몇이 고개를 들어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오크들이 성벽을 넘어왔을 때,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던 사람.
명부상실 이곳 아룬비다의 맹주이자, 자신들이 따르는 강철의 여인.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얼굴에 자부심을 띄웠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앞으로도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을 테지. 만일 그럴 때가 찾아온다면 지금처럼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현실을 봐라. 우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제국을 지킨 영웅이다.”
항상 부동의 자세로 이곳 아룬비다를 지키고, 언제나 흔들림 없던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디 찬 아룬비다의 바람마저도 그녀의 눈물을 식히지 못했다.
미미르는 그런 황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치와 거리가 멀고 머리를 쓰는데 귀찮아하는 아나스타샤였지만, 이곳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모두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라.
‘먼 길을 돌아왔군요.’
이곳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범죄자다.
강도와 살인, 그리고 엇나간 길을 걸어가던 이들이 대부분.
제국의 사람들은 이들을 더러운 범법자라 침을 뱉고, 이곳에서 흘리는 피는 마땅히 치러야 할 응징이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들은 틀림없는 범죄자다.
그렇기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자 그 누구보다도 이곳 아룬비다를 수호하려 애쓴다.
그런 그들의 노력마저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
아나스타샤는 저들이 그 누구보다 이번 전쟁의 주인공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 아룬비다에 오게 되면서 얼마나 많은 악인들을 봐 왔던가.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온 이들은 이곳에 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아나스타샤는 그 누구보다 앞서서 검을 휘둘렀고 정의의 철퇴를 내렸다.
그렇게, 그녀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많은 피를 흘려 이곳 아룬비다의 맹주가 될 수 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남은 이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있는 이들 밖에 없다.
경쟁자에게 아내를 잃어 복수심에 불타오른 사람.
누군가에게 모함을 받아 사형수가 된 사람.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부탁에 그 생을 직접 마감시켜 준 사람 등.
누군들 사연이 없겠나 싶겠지만, 이곳 아룬비다에는 특히나 바깥에서의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온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곳에 스스로 찾아와 자신들의 삶을 마감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아룬비다를 이번 전쟁에서 지킬 수 있었을 것이며, 앞으로도 누가 지킬 것인가.
아나스타샤는 눈앞에 있는 이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는 사실에 황녀는 눈물을 흘렸고, 이곳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충성을 맹세한 여인의 눈물을 두 눈으로 응시했다.
더 이상 그들의 눈빛에 슬픔과 두려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나아가자.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을 우리의 손으로 끝맺음을 지으리라!”
“““우와아아아아!!”””
* * *
“새뮤얼 님.”
그 부름에 황태자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한 발 늦었다고 합니다.”
“쯧. 이번에도 절 실망시키는군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후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겠죠. 너무 욕심이 많았으니.”
최근 황태자와 그의 지지자들은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차적으로 메자이아 대수림의 개방으로 생겨난 교역 루트의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차적으로 살리에르 백작의 죽음 이후 연합국 지하도시의 동태를 살피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거기에 이번 아룬비다의 사건으로 인해 군대를 차출하는 등.
이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결하려 하니 당장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역시 인력이 부족하군요.”
특히 살리에르 백작이 거느리고 있던 지하도시의 인력이 전부 소실된 것은 너무 큰 손실이었다.
이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해 왔던 일이었기에.
이종족 노예를 소지한 귀족의 살인 사건이 두 번이나 일언 탓에 관련된 귀족들 또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상황이지 않던가.
“조직도 별 도움은 안 되고 있고…….”
아니, 오히려 방해되는 감이 컸다.
무명은 새뮤얼에게 허락도 맡지 않고 제국의 북부를 탐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와 관련된 소식을 조직원으로부터 듣게 된 것도 바로 얼마 전이었다.
놈들은 이번 기회에 1황녀와 2황녀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희생이라 생각하라며 말해 왔고, 훗날 필요한 순간을 위해 오크의 병력을 빌려 준다는 말로 새뮤얼을 꼬드겼다.
그 때문에 못 이기는 척 군대를 일으킬 준비를 늦췄다.
아룬비다가 무너지고, 북부의 영지가 제법 큰 손실을 받았을 때 영웅처럼 등장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리되면 1황녀와 2황녀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대로 다음 왕좌를 향한 길이 더욱 견고해졌을 터이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오히려 그 선택은 다른 쌍둥이 황녀의 등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이후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눈에 선했다.
언제나 눈치 싸움에 급급하기만 하던 몇몇 정치 귀족들은 이참에 두 황녀에게 붙어 유리한 자리를 점하고자 할 테지.
그나마 아나스타샤의 경우에는 거리도 멀거니와 애초에 그녀 스스로가 정치에 별다른 뜻이 없기에 안심할 수 있었으나, 다른 한 명은 달랐다.
“귀찮게 하는구나, 동생아.”
1황녀, 올리시아.
여태까지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왔으나,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 은밀함 속에서 칼을 갈고 있다 들었다.
특히 이번 아룬비다에 선발대를 보내는 과정에서 올리시아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몇몇 올리시아를 따르던 가신들이 이번 아룬비다의 원정에 대해서 목소리를 얼마나 높였던지, 이전에 몬스터 웨이브와 오크 군단의 남하를 부정했던 새뮤얼의 가신들은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도 수그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곁에서 그 혼잣말을 듣고 있던 가신은 그 서늘한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이전까지의 여유는 사라지고, 차가운 분노만이 남겨진 모습.
“오랜만이야, 이런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라고.”
찰나의 순간 짐승처럼 두 눈을 빛냈던 새뮤얼은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가면 같은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이런…… 미안합니다. 잠시 감정이 격해졌군요.”
“아, 아닙니다. 황태자님.”
“아무튼 아룬비다에 관련된 일은 포기하도록 하죠. 대신 뒷말이 없도록 전쟁의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예.”
“이번 일로 흔들리는 가지들이 있다면, 바로 쳐내도록 하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새뮤얼는 자신 밑에 있으면서도 다른 형제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가신 따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렇게 가신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새뮤얼은 다시금 책을 펼쳤다.
그러나 책의 활자가 읽히는 대신,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렇게 왜 그리 어리석게 떠나가셨습니까, 형님…… 형님이 계셨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전 황태자.
제페르 디 셰르다 클로이.
만약 그가 지금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새뮤얼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의 가면을 씌운 채,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새뮤얼이 아룬비다와 관련된 일을 깔끔하게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저지먼트 기사단의 활약이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적의 중요 간부를 죽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더라면 보다 정치적 거름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저지먼트 기사단은 오크들에게 대족장 다음으로 중요한 엘더 샤먼을 놓치고 말았다.
전장에 나타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용만 아니었더라면 분명 잡았을 터이나,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그때로 돌아간다 한들, 당시에 굳었던 몸이 움직였을지는 모를 일이니.
제국은 뒤늦게 부랴부랴 군대를 일으켜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아룬비다로 향했으나, 그들이 할 일이라고는 패잔병이 되어 돌아다니는 오크나 몬스터 따위를 정리하는 것뿐.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간 군대는 보다 깊은 북부로 향할 준비에 들어섰다.
여기까지가, 여태 기절해 있던 셰인이 듣게 된 정보였다.
“그렇군요.”
“그래. 그렇지.”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침대에 누워 있는 셰인을 바라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썼지?”
“…….”
“썼네, 썼어. 그치?”
“…….”
“왜 이러실까. 나한테는 그렇게 쓰지 말라고 해 놓고. 안 그런가?”
“……예. 썼습니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전 중 셰인과 보내온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나스타샤는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셰인을 대했다.
반면, 셰인은 그런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저 얼굴이 보기 싫었다.
정령을 통하지 않고 물리력을 일으키는 오리진.
셰인은 전쟁 당시, 산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본인의 오리진에 물리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은 셰인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아나스타샤가 쓰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가 상상 이상의 파괴력에 본인 스스로가 통제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셰인 스스로에게 굉장히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스스로가 가진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짓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어 봤기에.
셰인의 약점을 잡은 아나스타샤는 그 부분을 집요하게 노려 댔다.
평상시 미미르에게 당하는 것을 풀기하도 하는 것처럼.
“비밀리에 기절한 너를 끌고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오리진을 본격적으로 터뜨리기 시작한 셰인은 산왕과의 전투 후, 그대로 의식을 잃고 전장 한가운데 쓰러졌다.
앞서 자신과 비슷한 기운, 오리진을 느꼈던 아나스타샤가 가장 먼저 정체불명의 용이 나타난 장소로 향했고, 그 결과 셰인을 데리고 올 수 있던 것이다.
“이것저것 숨기는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런 건 천천히 듣도록 하지. 설마 황녀 앞에서 뭘 숨기지는 않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아나스타샤가 제국의 정치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셰인 또한 그녀에게 어느 정도 자신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녀의 말처럼 모든 것을 말해 줄 생각은 없지만.
그러는 한편, 셰인은 아나스타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에 홀로 남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셰인이 마법을 사용하던 도중, 갑작스레 등장한 용으로 인해 마력이 꼬여 그 여파로 부상을 입은 상태라 일러 뒀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선 셰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나스타샤는 카르후의 공격을 한 차례 막은 것만으로도 영혼에 금이 갈 정도였다.
물론 그전에도 꾸준히 써 왔을 테니 영혼이 상해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리 쉽게 금이 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방어가 아닌 공격.
그것도 산왕을 향해 그만한 힘을 폭주시켰던 셰인은 어떠한가.
거울을 들여다본 결과, 놀랍게도 셰인의 영혼은 조금도 상처를 입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런 말이었나.’
셰인은 폭주 후, 어렴풋이 기억나는 산왕과의 대화를 떠올려 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