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5)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85화
85화 정령의 변화
비늘 대신 이빨이.
총명기 있는 눈동자에서는 피눈물이.
넘치는 정기가 흘러나와야 할 입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흘러나오는 용.
이는 셰인이 전생에 직시한, 승천하지 못한 용의 후손인 라비아타를 본떠 만든 형상이었다.
전생의 라비아타는 조직의 함정에 빠져 타락한 드래곤 하트를 섭취하게 되면서 타락에 오염되었고, 조직조차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무력적인 면에서, 당시 라비아타는 셰인이 봤던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강력했다.
당시의 그녀는 메자이아 대수림을 모두 불태우고서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죽음을 맞이했었다.
셰인은 무의식중에 순수한 파괴의 화신이었던 당시의 라비아타를 떠올렸고, 지금에 이르러서 그 모습이 탐욕의 오리진에 의해 재현되고 있었다.
타락한 용이 아가리를 열고 달려든다.
산왕은 그런 용의 아가리를 글레이브로 크게 베어 냈으나, 글레이브는 순식간에 이빨로 이루어진 비늘에 의해 삼켜졌다.
그대로 용에게 씹어 삼켜진 파가부탄의 육신은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지기 시작했다.
‘글렀군.’
산왕의 본체라면 힘이 흡수되기도 전에 용을 찢어발겼겠지만, 이 육신은 그만한 힘이 없었다.
그렇게 분해되어 이제는 산왕의 티끌만이 남은 영혼은, 붉은 하늘을 마주했다.
그곳에는 왕좌에 앉은 채, 세상을 오시하듯 내려다보는 셰인이 앉아 있었다.
“그대가 이겼다. 이로써 나와의 내기에서 이긴 존재는 네가 세 번째로구나.”
“하나는 알겠는데, 다른 하나는?”
“오래전 고향을 잃고 내게 찾아온 어린 오크였지. 그는 작은 몸으로 스스로의 부족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사이클롭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단다.”
마력조차도 쓰지 못하는 오크가, 수십 마리가 목숨을 걸고 달라붙어야만 죽일 수 있던 사이클롭스를 홀로 잡은 것은 산왕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었다.
그렇기에 오크를 수호하는 신이 되어, 아카샤의 대봉인에서도 그들이 봉인되지 않도록 지킨 것이다.
“재미있군.”
“아무튼, 운명의 강을 거슬러 온 아해야.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그 물음에 셰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정해 둔 것은 있었으나, 막상 앞에 닥치게 되니 다른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오게 된 이유.
만일 그것을 자신의 분석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른다면.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의미이지 않나.
그러나 셰인은 생각을 달리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신화에서부터 살아온 저 산왕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해의 영역.
셰인은 이치에 맞지 않는 힘을 탐할 머저리가 아니었다.
“손상된 영혼을 복구하는 힘. 그걸 가지고 싶다.”
“……현명한 질문이구나. 그래, 영혼의 손상은 존재 그 자체를 멈추게 만들지. 아주 위험한 일이야.”
산왕의 영혼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빛무리에 불과한 저 모습 때문에 알아볼 수 없었으나, 영혼 그 자체가 기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게 적지 않은 유희를 안겨 준 여인이다. 비록 다른 시간선에서의 일이었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지.”
그런 셰인의 의중을 읽은 것인지 산왕은 가볍게 덧붙여 말했다.
“손상된 영혼을 복구하는 방법에는 총 세 가지가 있단다. 첫 번째로는 시간.”
“시간?”
“그래.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르면 손상된 영혼은 자연스럽게 복구가 되지. 하지만 이는 살아 있는 자에게 해당되지 않는단다.”
“그럼 소용이 없겠군.”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두 번째로는 영혼의 각성. 흔히 너희 인간들이 ‘환골탈태’라 부르는 경지에 다다르거나, 영혼 자체가 성장하여 격을 탈피하는 경우지.”
“……마찬가지로 쉬운 일은 아니고.”
“영혼이라는 것 자체가 상처를 입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복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란다.”
“마지막 방법은?”
“너희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마력의 근원. 그걸 섭취하게 된다면 손상된 영혼을 복구할 수 있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방법을 강제적으로 일으키는 방식이지.”
“……부작용이 있겠군.”
마력의 근원.
몬스터가 섭취할 경우, 존재를 탈피해 더 상위의 개체에 다다르게 되는 돌.
셰인이 앞서 어둠의 정령에게 먹인 희귀한 광석이다.
다만 이는 인간이 섭취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인간은 마력의 근원을 섭취하면 체내 마력이 폭주하며 사망에 이르니.
수많은 마법사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모두 실패.
실험에 참여한 인간은 모두 사망에 이르렀기에, 끝내 연합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불법으로 지정하고 아예 막아 버렸다.
“너희 종족은 아카샤라는 신을 배출한 종족이지 않으냐. 이미 그 이상 근원이 성장할 방법은 없는 것이지. 이는 이치에서 벗어난 일이기에, 세계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영혼이 곧 근원이지 않나. 성장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탈피가 가능하다는 거지?”
“영혼과 근원은 다른 이치란다. 근원은 종족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값을 의미하는 것이고, 영혼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이지.”
“…….”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감은 잡혔다.
혹시나 싶어 마력의 근원을 안전하게 섭취할 방법에 대해 물었으나.
“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탄생하지 않은 지식은 모른단다. 작은 아해야. 너는 그 길을 스스로 걸어야만 해.”
“…….”
“다만, 이래서는 나와의 내기에서 이긴 자에게 주는 보상으로는 적절치 않은 감이 있구나.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 이걸 받거라.”
산왕은 정사각형의 큐브를 넘겨 보냈다.
“이게 뭐지?”
“어느 위대한 대마법사의 서고란다. 이제는 신이 되어 버린 한 사내가, 아직 인간이었을 적 간직해 둔 서고이지.”
“아카식 레코드……!”
인간의 신. 아카샤가 승천한 서고의 이름.
그저 떠도는 전승에 의하면 우주의 진리가 저장된 공간이라 했던가.
그러나 산왕은 그런 셰인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달라. 아쉽게도 그 서고는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란다. 말 그대로 서고일 뿐이지. 굳이 말하자면…… 그래. 아카식 레코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단다. 하나의 티끌 정도조차 되지 않지.”
“……그런가.”
“실망한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아니, 전혀. 오히려 다행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셰인은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탐하려 하지 않는다.
전생에 이미 한 번 겪어 봤던 일이었으니.
그렇다고 이 물건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아니다.
무려 신이 인간이었을 적 남기고 간 서고. 그게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니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안에 있을 지식이 얼마나 방대할지는 셰인조차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그걸로 만족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때, 여기까지가 대화의 끝이라는 것을 고하듯, 산왕의 말이 이어졌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이번 잠은 즐겁겠구나.”
“잠?”
“세계에서 방출된 내가 이렇게까지 개입하지 않았더냐.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차례란다.”
“그런가.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겠군.”
“그렇지.”
이 신화시대의 흔적으로 남겨진 존재가 꾸는 꿈은 어떠할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꿈이 이어질까.
필멸자인 셰인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내 선물이란다. 더 이상 내게는 필요치 않는 것이지.”
“……?”
사그라드는 산왕의 편린으로부터, 푸르스름한 작은 빛이 셰인에게 흘러 들어와 흡수되었다.
“선물은 본래 내용물을 모를 때가 두근거리는 법. 그것의 사용 방법은 네가 스스로 깨닫길 바라마. 그럼 잘 있거라.”
“…….”
그렇게 산왕의 편린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분명 드래곤의 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수면기에 들어갈 터.
뜻밖의 존재가 개입된 이 사건은 이렇게 아무도 몰래 끝이 났다.
* * *
그리고 현재.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영혼이 예상과 다르게 멀쩡한 것을 확인한 셰인은 어둠의 정령을 불러냈다.
산왕이 말했던, 셰인이 이미 걷고 있는 길이라 했던가.
회귀 후, 셰인이 마력의 근원과 관련됐던 적은 어둠의 정령뿐이었기에 확인차 어둠의 정령을 불러냈건만.
“음…….”
“주, 주인님…….”
어찌 된 일인지.
정령에게 뜻밖의 변화가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셰인을 닮은 로즈베리 색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차 있다.
이전, 거의 짐승에 가까웠던 외형은 어디로 가고 한 소녀가 오들오들 떨며 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셰인의 드넓은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사태에, 어둠의 정령이 자그마한 입을 열었다.
“그게…….”
때는 셰인이 산왕과의 대화가 끝나고, 전투의 여파로 인해 정신을 잃었을 당시로 돌아간다.
어둠의 정령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셰인의 상태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감정의 영역에서 많은 것을 공유했는데, 본래 존재의 어두운 감정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보니 이는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던 중, 셰인이 산왕과의 전투에서 오리진을 자신에게 거치지 않고 곧바로 쓴 탓에 셰인의 영혼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이는 어둠의 정령에게 소멸의 위기였다.
도무지 어찌해야 될지 모르던 그때, 어둠의 정령은 자신의 내면에 깃든 마력의 근원을 떠올렸다.
정령의 티끌이었던 자신이 지금의 존재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물건.
셰인의 곁에서 영혼에 대한 이해력을 갖췄던 어둠의 정령은, 아직 자신이 채 소화하지 못한 마력의 근원을 황급히 집어삼켰다.
그리고 셰인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매개로, 오리진이 자신을 거쳐 넘어갈 때처럼 마력의 근원에 담긴 힘을 셰인에게 건넨 것이다.
명백한 도박에 가까운 행위였으나, 그만큼 당시 셰인의 영혼은 위태로웠다.
다만 그 과정에서 셰인의 영혼에게 생긴 균열이 너무도 거대한 탓에 남아 있는 마력의 근원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했고, 한 번 복구되기 시작한 셰인의 영혼은 탐욕스럽게 어둠의 정령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의도치 않게 셰인과 영혼이 극히 일부 뒤섞이게 된 존재가 다시금 탄생하게 된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주인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일을 저지른 제게 벌을 주십시오…….”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짐승 같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아담해진 체구로 소녀와 같은 모습을 한 채 저리 말하는 이 장면은 누가 본다면 파렴치한이라 욕할 테지만.
셰인의 생각은 거기까지 뻗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며, 남모를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왜 그 여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저 소녀의 모습은, 셰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어느 한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 유일한 셰인의 말동무.
때문에 이번 생에 몇 번이고 찾아보려 시도했던 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둠의 정령을 보며 셰인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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