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86화
86화 과거
회귀 전.
“안녕? 반가워. 거기 있는 게 꽤 답답해 보이네?”
검은 공간에서 셰인은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두 눈을 떴다.
그럼에도 여전히 끔찍한 어둠만이 보일 뿐.
“너는…… 누구지?”
“음, 글쎄. 과연 그게 중요한 걸까?”
중요하고말고.
셰인이 있는 이곳은, 하나의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지 않은가.
자의식이 생긴 질투가, 육체의 소유권을 지닌 셰인조차도 질투하여 주인인 셰인을 내면에 가둬 버리지 않았나.
이치에 맞지 않는 힘을 탐한 결과였다.
아무튼 소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소녀는, 이따금씩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고는 했다.
그 간격이 며칠인지, 아니면 몇 시간인지, 혹은 몇 년인지조차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정신적 공간.
이따금 말을 걸어오는 소녀의 존재는 셰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혹시 자신이 미쳐 버려서 상상 속 인물을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차라리 완전히 미쳐 버린다면 이 저주받을 공간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셰인은 스스로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차라리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고자 방향을 돌렸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당연하지만 신체의 주도권을 다시 되찾는 것이었다.
조직에 가담하고 수많은 마법적 지식을 터득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자신이 들었던, 이해하지 못했던 마법들도 다시금 뜯어 보고 해부하며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이 제법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일까?
의식의 최심부에 갇혀 지내기만 하던 셰인은 어느새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질투가 보고 듣는 광경을 공유할 수 있는 경지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의 결과는 가져올 수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소녀와 마주하게 됐을 때, 셰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라. 역시 대단하네. 벌써 거기까지 도달한 거야?”
이따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던 소녀가 질투의 자의식을 통해 셰인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소녀의 정체는, 유령에 가까웠다.
영혼이라 해야 할까.
그녀는 타인의 몸에 빙의된 채, 영혼의 상태로 셰인에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 대상은 매번 달라졌다.
때로는 고든이 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디라일라의 몸으로.
때로는 카르후의 몸에 빙의한 채로 셰인에게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그 역시 몇 번이고 물어봤으나, 그때마다 소녀는 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셰인은 그녀를 볼때마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정확히는 이 세계의 존재 같지가 않다는 말이었다.
“언젠가 다가올 때를 위해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거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해. 알았지?”
또한 틈이 날 때마다 저런 말을 내뱉곤 했는데, 실제로 회귀 후 셰인은 그 덕을 크게 봤다.
물론 소녀의 그 말 때문에 준비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지식을 탐구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때로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고는 했다.
“확실히 저쪽과는 다른 재미가 있단 말이야.”
“이쪽의 서고지기의 성향 때문이겠지?”
“무슨 말이냐고? 신경 쓰지 마. 그냥 넌 너대로 하고 있는 일을 하면 돼. 아하하.”
* * *
아무튼.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현재로 돌아와.
셰인의 질문을 받은 어둠의 정령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단지, 주인님의 영혼과 엮이는 과정에서 이 모습과 매우 흡사한 존재를 봤습니다.”
“…….”
그저 무의식의 일종일까.
어쩌면 오리진을 일으킨 여파로 인해 손상이 심각했던 영혼은 무의식중에 셰인이 가장 위태로웠을 당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던 말동무를 떠올렸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둠의 정령은 대부분 그 소녀와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나, 용암을 담은 듯한 주홍빛 눈동자가 아닌 셰인과 같은 로즈베리 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떨지 마라. 단지 생각할 게 있었을 뿐이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 일어나도록 해.”
“가, 감사합니다!”
어둠의 정령이 멋대로 일을 벌인 것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의 영혼이 어떤 꼴이 됐을지 몰랐으니.
다만 칭찬 또한 하지 않았다.
혹여나 다음에 쓸데없이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럼, 이름을 지어 줘야겠군.”
“……! 저, 정말입니까?!”
그에 어둠의 정령이 크게 기뻐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 대상을 부를 때 쓰는 게 아니다.
존재에 대한 가치성을 확보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존재가 가진 역사가 담기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어둠의 정령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셰인의 인정을 바라 왔던 것이다.
“이름은…….”
그러나 어둠의 정령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셰인의 말에 그 기쁨이 확 죽고 말았다.
“검둥이가 좋겠군.”
아무리 자신의 주인이 경외의 대상이라지만, 저건 아닌 것 같았다.
* * *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황태자 새뮤얼의 지원 아래 일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지지부진하던 연합국과의 협상도 빠르게 진행이 되며, 한참 여름을 지내고 있던 모험가들은 혹독한 아룬비다의 날씨에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춥다, 춥다 하더니만 진짜 장난 아니군.”
“어우. 이거 진짜 보통 격전이 아니었겠는데?”
“무슨 시체가 이렇게도 많은지.”
거기에 이곳저곳에 숨져 쓰러진 몬스터와 오크의 시체들은 이곳이 얼마나 격전지였는지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무려 50만 대군의 오크 군단과 15만의 몬스터 웨이브이지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당분간 무구를 다루는 업종에서는 행복의 비명을 지르리라.
아룬비다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상대하기가 까다롭지만, 그만큼 다양한 재료로도 쓰일 테니.
그렇게 오크의 근거지로 향할 준비가 차곡차곡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몇몇 중진들끼리 모이는 회의가 진행됐다.
가장 먼저 아룬비다의 영주인 제페르 디 나타샤 아나스타샤.
다음으로는 제국에서 파견된 저지먼트 단장, 올리버 G 대니얼.
마지막은 연합국에서 파견 온 하얀나무 모험단의 단장, 말셀러스였다.
말셀러스가 단장으로 있는 하얀나무 모험단은 비록 라비아타나 지금은 사라진 헤르메스 모험단과 비교하면 급수가 떨어지나, 활동량만 보자면 단연코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험단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말셀러스의 걸걸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그는 그 목소리만큼이나 큰 덩치의 소유자였는데,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그 턱수염으로 인해 제법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그와 다르게 두 눈동자는 마치 소처럼 순둥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사나이 말셀러스. 황녀님과 이곳의 주민들의 활약에 감동받았습니다. 제국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겁니까, 대니얼 경?!”
태도만 보면 이건 뭐 압박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말셀러스는 진심으로 이곳 아룬비다에서 일어난 전쟁의 결과에 감동하며 물은 것이었다.
반면 자신이 따르는 황태자의 입지가 좁아지긴 했으나, 황실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는 척했다.
“동감이오. 설마하니 이토록 훌륭하실 줄이야. 제국의 귀감 아니겠소.”
“와하하! 대니얼 경이 그리 말하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황녀님!”
“칭찬은 고맙군. 하지만 이 또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던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니, 서둘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이고.”
“암, 암! 그렇지요! 제가 너무 떠들기만 했군요. 바로 회의에 들어가시지요!”
회의의 주제는 아나스타샤가 말한 것처럼,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준비였다.
오크의 군대는 해체됐으나 아직 놈들의 근거지가 멀쩡히 남아 있는 상황.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놈들의 근거지를 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앞서 아룬비다를 무탈하게 지킨 덕분에 이번 회의에서 발언권이 강한 아나스타샤의 주도하에,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황태자 또한 이번 일의 경우 관망의 제스처를 취했기에 대니얼도 황녀의 의견에 별다른 토를 달지는 않았다.
군대의 편성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각개격파.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펠리스를 필두로.
연합국의 모험단은 말셀러스를 필두로.
황실의 군대는 저지먼트 기사단을 필두로 오크의 군단을 각개격파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리 효과적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대니얼의 말처럼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각개격파라 하더라도 이미 적의 군대가 와해된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그러나 곁에서 아나스타샤를 보좌하는 미미르가 그 말을 받았다.
“아룬비다의 특성상 굳이 분란을 만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음…….”
대놓고 이쪽을 적대하는 말이었다.
황태자의 사람으로 구성된 황실의 군대는 아룬비다와 섞일 수가 없는 조합이었으니.
가뜩이나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곱지 않은 아룬비다의 주민들이다.
굳이 분란을 만들어 저쪽이 물어뜯기 좋은 먹이를 줄 필요가 없는 일이지 않나.
대니얼도 그저 한 번 찔러 본 것뿐이었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대 편성을 마치고 작전 회의가 진행되며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다만, 이후 진행되는 전쟁의 구도는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오크들의 엘더 샤먼, 카르가토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지금의 상황을 정리했다.
오크는 인간들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일반적인 패배가 아니라, 처참히 대패하고 말았다.
대족장인 파가부탄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고, 50만 대군은 대부분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오크들의 번식력이 좋다고 한들 50만 대군은 쉽게 만들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아룬비다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어린 오크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고, 마력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뿐이던가?
조직, 무명의 개입으로 인해 산왕을 저버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반발이 일어났던가?
파가부탄의 리더십과 카르가토의 판단으로 그러한 오크들은 숙청하거나 혈마력을 거둬들여 노예로 부렸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불만이 쌓였으나, 이후 인간들의 비옥한 땅을 차지한다는 원대한 목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크들의 고향인 우르부라크로 돌아가자는 명목이 존재하지 않았나.
그런 와중에 이런 대패를 하고 말았으니.
그만한 군세를 다시 회복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애초에 현 상황까지 이끌어 낸 카르가토를 남은 오크들이 신용할지도 미지수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카르가토는 아예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단합되는 법.
현재 인간들은 자신들의 근거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테니,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금 권력을 붙잡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또 다른 대족장을 내세우면 될 터.
그렇게 카르가토가 오크들의 근거지에 도착했을 무렵.
그런 카르가토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가면을 쓴 한 명의 사내와, 그런 그의 뒤를 지키고 서 있는 수많은 오크 무리였다.
“늦었군. 종족의 수치여.”
“너는……!”
전쟁의 많은 패배 요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을 부린 사내는, 아룬비다의 날씨보다도 서늘한 눈동자로 그런 카르가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