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87화
87화 반란
며칠 전.
셰인은 손에 들린 두 개의 물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산왕에게서 받은 것인데, 하나는 직육면체의 아카식 레코드.
다른 하나는 푸른빛을 띄우는 구였다.
그중에서도 셰인은 푸른빛을 띠는 구를 먼저 살펴보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성스러운 검을 쥔 채, 가면을 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클라인.
며칠의 전투 끝에 셰인은 그런 클라인의 검에 가슴을 꿰뚫렸고, 그로 인해 질투의 자아가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이 푸른빛의 구에서는 당시 셰인이 느꼈던 신성함이 담겨져 있었다.
다만 눈앞의 푸른 구체는 전생에 클라인이 휘두르던 성검보다 파괴적인 성향이 더 짙었는데, 이건 아마 클라인의 성검에 담겨 있던 기운과 주인이 다른 탓에 일어난 일인 듯싶었다.
“그런가. 이게 바로 신성이라는 것이군.”
그 힘에 대해서는 셰인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위압감이 좀 있어 보이는 수준에 불과했으니.
전생의 경우, 클라인은 당시 성검으로 오리진을 무력화시키는 용도로 썼다.
그 덕분에 질투의 인격이 사라진 것이니.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산왕의 신격은 용도가 많이 다른 듯 보였다.
셰인은 한쪽에 치워 뒀던 오크의 토템을 꺼내 들었다.
“보다 지배 쪽에 치우쳐져 있다라.”
그 즉시, 셰인은 이 신성의 사용법이 무엇이고, 산왕이 왜 자신에게 이것을 넘겨준 것인지 의도를 파악했다.
“제법 괜찮은 선물이야.”
셰인은 그런 산왕의 신성을 망설임 없이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
* * *
늙은 오크 바투칸은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평소와 같이 산왕의 신전을 지키고 있었다.
“세월이…… 변했군.”
세월이 흐르면 시대도 바뀐다지만, 오크들에게는 그러한 격언이 그다지 통하지 않았었다.
이 혹독한 북부에서는 별달리 변화라 할 만한 게 없었으니.
그러나 요 몇 개월 간, 오크들은 너무 많은 격변의 시대를 지나오고 있었다.
자신들을 무명이라며 다가온 이들의 등장이 그 시작이었다.
현 대족장인 파가부탄과 엘더 샤먼 카르가토는 무명과 손을 잡고 오크 종족을 거두어 준 신을 배반했다.
인간들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을 되찾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족 포식을 강행했고, 이를 거부한 동족은 모두 노예로 만들어 버렸으니.
주로 성인식을 막 치른 오크들은 그런 이를 따라 과거를 잊고 더 이상 신전을 찾아오지 않게 됐다.
그나마 바투칸은 신전을 지키는 신전지기인 터라 그 격변에서 살아남아 노예 신세로 전락하는 꼴은 면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동족을 포식하고 강해지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는가.
바투칸은 그 의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감았던 눈을 떠, 한쪽에 묶여 있는 한 소녀를 바라봤다.
마치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 중 하나를 닮은 찬란한 은발을 가진 소녀는, 의식이 없는지 쇠사슬에 묶인 채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
“애초부터 우리 오크에게 영광이란 있었는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 있는 흡혈귀 소녀.
그녀의 피는 오크들에게 특별한 힘을 가져다주었고, 이 혹독한 북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원래부터 오크라는 종족은 다른 종족에게 기생하여 살아남아 왔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에 자신이 뭐라 말을 덧붙이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비록 자신들의 고향, 우르부라크를 멸망시킨 종족이었으나…….
애초에 원인을 따지고 본다면 저 어린 것들의 목숨을 먼저 취한 오크들의 오만이 그 이유였으리라.
반면에 인간들은 어떠했던가.
바투칸은 50년 전 인간들과의 전쟁 당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오크 중 하나였다.
이미 50년이나 흘러 버린 세월이지만, 바투칸의 머릿속에서 그때의 장면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50년 전에 마주했던 인간들은, 마치 오크라는 종족이 꿈꿔 왔던 미래 같았다.
다른 종족의 것을 탐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종족.
비록 그 육체는 나약할지언정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심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서로 단결하여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이들.
그 모든 것이, 바투칸에게는 눈부시면서 동시에 절망을 선사했다.
이미 오크들의 내전은 일어났고, 패배했다.
어쩌다 이리 되었단 말인가.
북부의 초대 대족장, 아르가투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사이클롭스를 죽였다.
당시의 그 기적은 자신들의 신마저 놀래킬 정도이지 않은가.
그 영광 앞에 오크들은 미래를 봤다.
하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러한 미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패배할 테지.”
영광 없는 오크들에게 진화란 없다.
다른 존재의 것을 탐하는 것만으로는 고향을 되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오크로군.”
“……!”
그때. 그런 바투칸의 뒤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그 자리에는 어둠에 휩싸인 채 민무늬 가면을 쓰고 있는 존재가 서 있었다.
“……누구시오. 이곳은 무명에서 온 그대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장소가 아니오.”
그에, 바투칸은 조직에서 찾아온 인물이라 생각하고 축객령을 내렸다.
실제로 파가부탄과 카르가토 또한 조직과 협력은 했으나, 이곳 신전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놨으니.
신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걱정하기 보단, 오크에게 마력의 원천인 흡혈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가면의 존재는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쇠사슬에 걸려 있는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나가라 하지 않았소!”
“아름다운 존재로군.”
바투칸은 당장 저자를 내쫓으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풍겨 오는 기세는 바투칸으로 하여금 항거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면의 존재, 셰인은 말을 이었다.
“늙은 오크여. 과거의 영광을 아는 오크여. 그대는 이 존재가 아름다운 이유를 알고 있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소.”
“이 흡혈귀라는 종족은 기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하여금 흡혈을 하여 살아가는 종족이지. 다른 종족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음이야.”
“…….”
“그럼에도 이들이 그토록 강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
강함.
오크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바투칸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모르겠소. 이 비루한 오크가 그런 것을 알기나 할까.”
“이들의 존재가 곧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이요?”
“다른 존재로부터 승리하고 이긴다. 이는 세상에 가장 간단한 법칙 중 하나가 아닌가. 흡혈귀라는 이 종족은 그 누구보다 세상이 정한 법칙에 잇따르는 존재지.”
인간도 마찬가지다.
밭을 기르고, 동물을 키우며, 때가 되면 잡아먹는다.
한데 이게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아니.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특히 강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그에 대한 이유 따위는 없다. 그저 세계가 설계한 대로 태어났다는 게 전부지.”
“……그렇다면 모두 부질없는 짓 아니오?”
“아니지. 그렇다면 그들의 것을 배우고, 그게 안 된다면 비슷해지려고 해야겠지.”
“그게 지금의 지경에 이른 것이지 않소.”
“달라. 너희는 너희의 의지가 아니지 않나.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이 힘을 다루려 했나? 이 힘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자신들의 한계를 맛보았나? 아니지. 너희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어. 그저 아기 새마냥 어미가 식사거리를 잡아 오도록 기다리며 머리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지.”
“……!”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면, 오크가 단순히 무식하기만 할 뿐인 종족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단히 착각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마력을 다루지도 못하면서, 마력을 사물에 담을 줄 아는 종족이다.
비록 몇몇 선택받은 샤먼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나, 어찌 됐든 종족 그 자체가 해낸 일이라는 말이다.
“이제 그만 둥지를 떠나 날개를 펼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둥지를 떠나다니.”
“너희 군단은 패배했다.”
“…….”
“그리 놀라지 않는군.”
“예상은 했소. 50년 전에 마주했던 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그래, 맞다. 인간은 그리 쉽게 당하지만은 않지. 너희 50만 대군은 끝내 인간의 성벽을 제대로 넘어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으며, 15만의 몬스터 대군 또한 차가운 이곳의 대지와 하나가 되었지.”
“……그러는 그대는 누구요.”
“너희들이 따르는 신의 대변자.”
“뭐라?”
그러자 바투칸의 두 눈이 사나워졌다.
종족의 치부를 말하는 것도 괜찮았다.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
신전에 찾아온 것도 참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신전에서, 자신들의 신을 모욕하는 말 따위는 도저히 들어 줄 수 없었다.
“너희의 신은 더 이상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라는 대변자를 보냈지.”
“헛소리!”
“이걸 보고도 그리 생각하나.”
동시에, 셰인은 거인에게 받았던 신성을 내보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그 빛은, 바투칸으로 하여금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
“그, 그걸 어떻게……?”
너무도 익숙한 저 빛은 자신들의 신, 산왕이 신탁을 내릴 때 내뿜던 빛이지 않던가.
뿐만 아니라 종족이 신을 경배하기 위해 만든 토템에 신성을 깃들도록 만들 때, 신전지기인 바투칸이 항상 봐 오던 빛이었다.
지배자로서 느껴지는 힘.
이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그 신격이, 다시금 바투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된 연유로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소?”
“산왕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와 내기를 했고, 내가 승리했지. 산왕은 더 이상 이 세계에 관여할 수 없게 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셨는가…….”
바투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의 대변자.
그 말은 허언이 아닐 테니.
“무엇을 바라시오.”
“나는 신처럼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대등한 존재는 될 수 있지.”
“대등……?”
“너희의 고향, 우르부라크를 되찾을 수 있는 힘을 내주지. 대신, 너희는 내게 협력해라. 너희가 신에게 버림받게 만들고, 또 너희의 믿음을 저버리게 만든 이들에게 칼을 들어라.”
“무명에서 온 자가 아니었군…….”
바투칸은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감았다 이내 다시금 셰인을 직시하며 말했다.
“우리 종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소?”
“가서 전해라. 너희 종족을 이끌던 신의 대변자가 찾아왔노라고.”
“……그리하겠소.”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기지를 지키고 있던 오크를 포함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예 오크들은 셰인이 전해 온 처참한 종족의 패배에 분노했다.
노예가 된 오크들 또한 자신들의 처지가 그저 종족의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으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이처럼 가장 밑자리에서 참고 견뎌 왔던 것이다.
그러나 패배했다.
대족장은 그 죄를 묻기도 전에 죽음에 이르렀고, 그런 대족장의 앞잡이였던 엘더 샤먼, 카르가토는 자신의 몸뚱이만 영위한 채 이곳을 향해 찾아오고 있단다.
대부분의 오크들은 이게 자신들의 신이 실망했기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앞장 선 오크는, 그래도 한때 오크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던 신전지기, 바투칸이었다.
“신전지기! 너는 저 정체도 알 수 없는 자를 종족의 일에 끌어들이는가!”
“대족장님의 호의로 살아남은 그 명줄을 앞당기는구나!”
당연히, 노예와 반대파 오크들을 감시하기 위해 남겨진 오크들은 곧장 무기를 쥐어들며 위협해 왔으나.
“당장 일족이 어떤 길로 나아가는지도 모르는 버러지들이 말이 많구나.”
이어지는 셰인의 말에 오크들이 당장 흥분을 하고 나섰다.
“감히!”
“죽어라!!”
상대가 어떻게 오크어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반란을 부추기려는 저자를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되었기에, 그들은 곧장 무기를 쥐고 셰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셰인의 그림자가 일순간 늘어나더니, 어둠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공세를 막아 냈다.
“인간!”
“아니, 다른 무언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전신에 검은 갑옷을 차 려입은 채, 양손은 셰인의 오리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이빨이 이를 막아 냈다.
마음 같아서는 감히 주인님께 무기를 들이댄 놈들의 사지를 찢어 버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이 또한 셰인의 명령이었으니.
“오크들이여. 너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50만 대군은 모두 고향 땅조차 밟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인간들의 성벽은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으며, 그 너머로 인간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대족장 파가부탄은 죽음으로서 50만 동족의 죄를 갚지 못했고, 엘더 샤먼 카르가토 또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비굴하게 살아남았다. 그럼, 이제 너희가 선택할 시간이다. 어찌할 테냐.”
셰인은 그런 노예 오크들을 바라봤고, 그들의 두 눈에는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족장이 인간들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정말이오?”
그중 한쪽 팔이 잘린 오크가 그리 물어 오자, 셰인은 품에서 하나의 토템을 꺼내보였다.
“그건…….”
“대족장의 증표!”
“정말 패배했단 말인가!”
그러자, 대족장 측에 서 있던 오크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