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9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92화
92화 거래 장부 (2)
시간이 흐를수록 소문은 점차 지하도시에 넓게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살리에르 백작의 거래 장부가 지하도시에 풀렸다는 정도의 지라시에 불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에는 다양한 살점이 붙기 시작했다.
살리에르 백작의 숨겨진 아들이 거래 장부를 통해 돌아온다더라.
누군가 숨겨진 거래 장부를 통해 거물들을 협박하고 있다더라.
등등. 다양한 지라시가 덧붙여졌으나, 그중 가장 사람들의 지지를 사고 있는 것은 곧 4층의 지하 경매장에 거래 장부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연막작전이군.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야.”
“연막이라면……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셰인의 말에 애덤은 금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왕실의 정치 놀음을 지켜봤던 기사단장 출신이라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장부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고 싶은 존재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요.”
“가장 의심해 볼 수 있는 건 제국인가.”
“살리에르 백작의 출신 때문입니까?”
“맞다. 애초에 살리에르 백작은 현 황태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니만큼 신경이 쓰일 테지.”
“……괜찮으시겠습니까? 황실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일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애덤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황실이 이곳 지하도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쌍둥이 황녀에게 빌미를 주는 꼴이 되겠지만, 적어도 장부를 타인에게 빼앗기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지였으니까.
“딱히 상관없다. 어차피 장부가 누구에게 넘어가든 상관할 일은 아니니. 오히려 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하지만 반대로 너무 큰 관심을 끈다면 물건을 넘기는 과정에서도 분명 잡음이 심할 겁니다. 경매장에 물건을 올리는 과정에서부터 작업이 들어올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과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하도시의 생태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애덤은 예리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왔다.
확실히, 경매장의 시스템상 판매자의 신원을 확실히 숨기거나 경매품의 도난을 방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지만.
경매품을 경매장에 넘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까지 경매장 측이 책임을 지지는 않을 터.
물론, 어지간한 무리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경매를 담당하고 있는 패밀리가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상대가 같은 패밀리거나 황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지.”
하지만 셰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고 일단락을 지었다.
그러자 애덤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눈앞의 청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왔는지 여실히 봐 오지 않았던가.
나중에야 듣게 된 일이지만 메자이아 대수림 때부터 아룬비다의 오크 남하 사건까지.
저 청년이 가지고 있는 혜안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다해 따르기로 한 것이고.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 이상 관여하는 것은 수하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황실에서 따로 연락이 왔습니다. 1황녀 측입니다.”
“안 그래도 언제 연락이 올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심스럽게도 접근했군.”
2년 전, 1황녀 올리시아에게 새뮤얼이 지하도시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애덤이 지하도시에서 자리를 잡아 가며 올리시아와 조심스러운 커넥션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오랜만이죠? 얼굴을 보는 건 1년만인 것 같네요.
“오래만입니다, 황녀님.”
-네. 잘 지내고 계시죠? 1년 전이랑 다르게 훨씬 남자다워지셨네요.
“감사합니다. 황녀님께서도 더 아름다워지셨군요.”
-어머, 감사해요. 그래도 제 동생과 지내다 보니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네요?
“…….”
설마 올리시아에게도 말한 건가.
-그런 표정 지으실 거 없어요. 제 동생이 원래 어릴 때부터 소유욕이 제법 있었답니다? 제게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어요.
“……그렇습니까. 몰랐던 사실이군요.”
-평소에는 욕심이 없다가도 한 번 자기 거라 정한 건 죽어도 내놓는 법이 없었답니다. 참참,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말이죠. 최근 지하도시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 또한 황녀님께서 연락을 주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셰인의 말에 올리시아가 묘한 미소를 띄웠다.
현재 아룬비다의 토벌 이후, 아나스타샤와 더불어 올리시아의 주가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실상 아룬비다의 맹주인 아나스타샤보다도 더 그러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봐도 좋았다.
정치에 영 관심이 없어 최소한으로 활동하는 아나스타샤와 다르게, 올리시아는 지난 2년 동안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지금도 셰인에게 시험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황녀가 직접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소문에 관해 듣게 된 건 보다 전이에요. 다만, 오라버니 쪽에서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탓에 저로서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어찌 보면 너무 새뮤얼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셰인은 올리시아가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살리에르의 거래 장부는 현 시점에서 새뮤얼에게 있어 가장 민감한 약점이었으니.
그럴 때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는 추후를 위해 정보만 얻어 두는 것이 올리시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이었으리라.
“황실 측에 이렇다 할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런 셰인의 물음에 올리시아가 비로소 제대로 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번에는 자신이 한 발 앞섰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들개’가 움직일 것 같아요.
“들개라…….”
-어머, 혹시 알고 계셨나요?
“들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이 움직이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올리시아의 정보력이 앞섰다.
들개는 새뮤얼이 살리에르 백작만큼이나 세밀하게 관리 중인 사냥개들이다.
저지먼트 기사단이 명분을 앞세워 움직인다면, 그들은 음지에서 활동한다.
정치적 방해물을 정리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새뮤얼이 철저히 숨겨 둔 병력.
‘본래라면 1년 뒤에나 움직일 녀석들이 벌써부터 활동을 시작했군. 그만큼 황태자도 급해졌다는 말이겠지.’
그리 생각한 셰인이 이어서 말했다.
“만족스럽군요. 알겠습니다.”
-충분한 거래라 생각해도 될까요?
“예. 나중에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확실히 제법 괜찮은 정보를 얻은 만큼, 셰인은 가면을 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아참, 그리고 한 가지 허락을 맡고 싶은 일이 있어요.
“허락, 말입니까?”
일어서던 자세 그대로 멈춘 셰인이 되물었다. 제국의 황녀가 허락을 맡아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듣던 셰인은 이내 두 눈을 감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셰인의 허락을 맡을 만한 사안이었다.
“예. 상세한 계획 내용과 함께 보내 주십시오.”
올리시아와의 대화를 끝으로, 셰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할 채비를 갖췄다.
뜨거운 감자에 불과한 소문에, 불을 지필 시간이 찾아왔다.
* * *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하도시에 퍼지고 있던 살리에르 백작의 거래 장부와 관련된 소문은 이제 더욱 덩치를 불려 가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쯤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는 한 서서히 줄어들어야 했으나, 그런 기색 없이 소문은 점차 덩치를 키워만 갔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거래 장부가 경매장에 올라오리라는 소문보다는 이를 활용해 누군가 이득을 보려 한다는 음모성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에 애덤이 셰인에게 의문을 표했으나, 오히려 셰인은 주제와 다른 소문을 더 키우라고 명령했다.
“준비해야 할 게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부채질만 하도 충분해.”
“음…… 알겠습니다.”
때문에 황실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오히려 소문을 가라앉히고 싶어 했으나, 애덤의 활약으로 더욱 음모성 추측이 가득해지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지하도시와는 달리, 지상에서는 거래 장부와 관련된 소문은 아는 사람이나 알 법한 내용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어느 날 일어난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평소처럼 조용한 아침.
디라일라는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기를 맞이해 커피와 부드러운 빵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아카데미 졸업 후. 지난 2년 동안 바쁘게 움직인 만큼, 디라일라도 상당한 돈을 모아서 이제는 혼자 그럭저럭 지낼 만한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아, 청소를 한번 싹 해야겠네.”
하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 온 탓에 기껏 전세로 뽑은 집에 먼지가 제법 쌓여 있었다.
해서 차분한 아침 식사만 끝내고 오랜만에 집안 청소를 해 볼까 싶던 그때.
“푸흡?!”
그러한 마음으로 신문을 펼친 디라일라는 신문의 절반 이상을 채운 대문짝만 한 사진을 보고 마시던 커피를 뿜고 말았다.
“뭐뭐, 뭐야?!”
어째서 지금 상황에 데자뷔를 느끼는 걸까.
[특종! 2년 전에 등장했던 귀족 살해자. 또다시 출몰했나?] [하루 사이에 죽은 두 명의 귀족들! 귀족 살해자의 목표는 이종족 노예의 자유?] [속보! 현 의장 헤일로 마일드. 아직까지 사건을 조사 중. 섣부른 판단은 너무 이르다.]“아니, 그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그간 잊고 지내던 가면의 사내를 떠올린 디라일라는 갑자기 활동하기 시작한 그의 모습을 보며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안락하기만 하던 이 원룸이 갑자기 감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쾅쾅쾅!
“힉.”
“안녕하세요! 디라일라 양! 매일속보에서 찾아왔습니다!”
“안에 계십니까?! 우리도시에서 온 기자입니다! 잠깐 인터뷰 가능하시겠습니까?!”
벌써부터 특종의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몰려왔다.
이제는 제법 인간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파악한 디라일라는 숨소리마저 죽인 채 지금의 상황이 일단락되기를 기다렸다.
‘으아아! 이런 관심은 사양이라고!’
난데없는 기자들의 외침 속.
디라일라는 양쪽 귀를 막고 없는 척 두 눈을 꾹 감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이미 과거에 제국의 심문까지 받았던 몸이지 않나. 이제 와서 알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찾아온단 말인가.
거기에 귀족 살해는 중죄 중의 중죄로 통하는 만큼 괜히 연류되었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본다.
‘집에 남아 있던 식량이 얼마나 있더라…….’
해서 자진 감금 생활을 각오하고 있을 무렵.
거짓말같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멈췄다.
“어?”
“제법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군.”
“어어어억?! 헙!”
“걱정 마라. 외부에 우리 목소리가 나갈 일은 없으니.”
의자에서 그대로 뒤집어 자빠진 디라일라가 황급히 두 손을 입에 가져다대는 것을 보며.
가면의 사내, 셰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