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9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93화
93화 거래 장부 (3)
불길한 기운을 담고 있는 검은빛의 검들이 허공에 떠다니며 주변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다.
이미 화려한 저택은 붉은 핏빛으로 가득했고, 그 참혹한 현장을 만들어 낸 것은 저 불길한 기운을 지닌 열 자루의 검이었다.
하나하나가 절정에 다다른 기사의 검술을 구사하는 저 악마의 검 앞에서 남은 기사들은 힘겨운 전투를 이어 나갔으나, 끝내 이겨 내지 못한 채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그리고 그런 학살의 현장에서, 민무늬 가면을 쓴 존재가 무심한 발걸음을 옮겼다.
“너, 너는 도대체 뭐냐. 무엇을 원하길래 이, 이런 짓을……!”
“…….”
“도, 돈이냐? 아니면 이종족? 가져갈 테면 다 가져가라. 그러니 제발 목숨만큼은……!”
가면의 존재, 셰인은 마치 한 번 본 연극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런 귀족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 무심함에 귀족은 순간 살아남은 줄 알았으나, 이내 가슴으로부터 화끈한 통증이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여태 자신의 사병과 기사들을 학살하던 검이 꽂혀 있었다.
“크, 크륵…….”
아무런 말도, 설명도 없이 그저 갈 길만을 걷는 저 존재가 마냥 두렵기만 하면서도, 이제 그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잠시.
“주인님. 먹어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희미해지는 의식 속, 뒤에서 들려오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 귀족은 더없이 불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으헥!”
셰인이 만든 어둠의 공간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있던 디라일라는 지하실에 도착하고서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으…… 다신 겪고 싶지 않아.”
원체 대지로부터 기억을 읽는 재주가 뛰어난 디라일라는 셰인의 그림자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에 지속적으로 압박을 당하는 느낌을 겪었다.
이는 셰인이 숨긴다 해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그런데 여긴 어디예요?”
“어느 귀족의 저택이다. 2년 전까지 활발하게 이종족 노예를 사들이고 있던 놈이지.”
“아, 아니 그런 곳에 저는 왜…….”
“네가 왜 도와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하지 않았나?”
“아니이…… 그게 이런 곳에 데려와 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에…….”
생명의 은인이니 이치에 맞다면 응당 가면의 존재에게 협력할 의지가 있던 디라일라였지만,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아야만 했다.
해서 자신의 집에 찾아온 가면의 존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며 물었고, 그 결과가 지금에 다다른 것이다.
“너라면 읽을 수 있겠지. 이 공간에 깃든 기억을.”
“으…….”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2년 전, 살리에르 백작에게 납치를 당했을 당시 그곳 지하실에서 겪었던 기억들은 디라일라에게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이로서,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이제 제법 힘도 좀 있고. 끗발도 있으니까 도움이 좀 되지 않으려나.’
나름 2년 동안 다양한 모험을 해 오며 명성을 알려오지 않았던가.
만약 이러한 형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무언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아니, 안 되겠구나.’
생각해 보니 이제 좀 끗발이 있다 한들, 제국의 황제조차 법으로 금지시킨 일을 버젓이 하고 있는 자들이지 않나.
디라일라는 그런 자그마한 희망을 일찍이 지워 버렸다.
“흐으윽…….”
대신 눈앞의 존재에게 자신의 도움으로 이런 놈들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울 의사가 있던 디라일라는, 천천히 이곳 저택에 얽힌 다양한 기억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중에서 가장 음습하고, 암울하며, 두려운 기억들.
모두 그 결말이 좋지 못했다.
디라일라는 구토감을 간신히 참으며─
“구웨엑!”
끝내 참지 못하고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 냈다.
대지에 얽힌 기억들은 하나같이 절망과 공포, 혼란, 짙은 슬픔, 세상에 대한 증오 따위로 가득했다.
마치 정신이 오염되는 듯한 기분,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는 그 감각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셰인이 그런 디라일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단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 낸 광경은 어떠했나.”
“어떻긴 씨발…… 좆같은 새끼, 잘 뒤졌다 싶죠. 썅…….”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긴 채 죽어 있는 귀족의 시체를 바라보는 디라일라의 표정이 절로 사나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대륙 곳곳에 생겨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어……? 그,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나름 이제 세상을 겪어 봤다 말할 수 있는 디라일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렇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셰인의 말에 디라일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
디라일라는 이런 기억이 한없이 펼쳐지는 세상을 떠올리자마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한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는 건데요……?”
“현재 그걸 실현시키려는 놈들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은 그걸 색출하는 작업이고.”
“음…… 그런데 이렇게 막 죽여도 될까요? 벌써 3명 짼데…….”
디라일라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죽은 귀족들도 켕기는 게 있기에 연합국 측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연합국에서 자발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실제로 이미 그런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걱정 마라.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니.”
“다른 계획도 있어요?”
“애초에 지금 하는 건 검증이었다. 이젠 거래 상대에게 찾아갈 차례지.”
“거래 상대라면…….’
“지하도시의 개장수. 놈에게 갈 예정이다.”
“개장수……?”
디라일라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셰인은 그런 그녀에게 이어서 말했다.
“네가 할 건 거기까지 길을 안내하는 것 정도다.”
“어…… 저는 그 개장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요.”
“가 보면 알게 될 거다.”
“음…… 알겠습니다.”
뭐가 됐든 나쁜 놈들 혼내 주겠다는데 빠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둘은 어둠 속에 녹아들어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 * *
통칭 개장수.
5층의 포 패밀리 중 암시장과 경매장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신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3명째로군.”
어두운 방 안. 희미한 마력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골동품으로 가득한 방 내부를 비추었다.
“음~ 그러게 말이야. 누군진 몰라도 아주 섹시하게 일을 벌이고 있네?”
그런 개장수의 말에 호응한 인물은 마약과 도핑, 그리고 윤락가를 운영하는 포 패밀리의 일원 ‘미스 슈’였다.
“목적이 뭐길래 저러는 것 같아?”
미스 슈의 물음에 개장수가 피식 웃었다.
“뭘 알면서 물어. 분명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겠지.”
현재 외부에서 귀족 살해자라 불리는 존재는 연합국 사회에서도 커다란 이슈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귀족 살해자와 피해자인 귀족을 욕했는데, 법으로 금지된 이종족 노예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사 결과 인간 노예도 적잖이 있었던 터라 더더욱 여론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상황.
그러나 둘에겐 그런 상황 따윈 알 바 아니었다.
둘은 이게 귀족 살해자가 자신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는 것을 진즉에 눈치챘다.
“장부가 진짜라는 걸 보여 주고 있군.”
굳이 검증까지 갈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살리에르 백작의 거래 장부가 진짜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곧 접촉해 오려나?”
“글쎄. 조심성이 많은 놈이니 어떻게 접근해 올지 모르겠군.”
“어머, 조심성 많은 사람들 다 죽었나 봐? 밖에서 저렇게 귀족을 살해하고 다니는 인간인데.”
“지하도시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능력만 봐도 알 법하잖아. 놈은 철저해.”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그러면서 미스 슈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채 다리를 꼬았다.
“그럼 이후를 기대할게~ 그래도 우린 쌍둥이 남매잖아? 같이 해먹자고.”
“약쟁이들이나 잘 관리해라. 다른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우리가 알아챘으니 그것들도 눈치를 챘을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럼 난 간다? 얘들아, 가자~”
그 말을 끝으로 미스 슈는 자신의 의자를 받치고 있던 노예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개장수는 그런 미스 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남매라고 해서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 특히, 나 몰래 다른 일을 꾸미고 있으면 더더욱. 안 그런가? 귀족 살해자.”
“…….”
골동품이 한가득 쌓여 있는 공간에서 민무늬 가면을 쓴 존재는, 언제부터 그곳에 있던 것인지 의자에 앉아 그런 개장수를 바라봤다.
“제법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군. 취미가 아주 고상해.”
지하 5층.
개장수의 저택에 도착한 셰인이 그리 말하자, 개장수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금화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버려 둔 물건들이지. 보는 눈이 없다면 사서 손해를 보는 법이야.”
“그럼 그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이지?”
“글쎄…….”
개장수는 가면의 존재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봤다.
수십 년 전.
어렸던 자신과 쌍둥이 동생이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봐 왔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 중에서 이만한 작자는 보기 쉽지 않았다.
“적어도 네가 깔고 앉은 골동품들보다야 위험해 보이긴 하는군. 함부로 먹었다간 배탈이 나겠어.”
“그런가. 생각보다 조심성이 많군.”
“이봐,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고. 이 지하도시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어디 무식한 힘 하나만으로 될까. 먹을 거 아닐 거 구분할 줄 알아야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이지.”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보이지?”
가면의 존재, 셰인은 제법 손때가 탄 두꺼운 서류 더미를 보였다.
“흐흐, 그거 아주 독이 그득그득 들어 있는 물건처럼 보이는군.”
“…….”
“하지만, 독극물도 쓰기 나름이겠지…… 동생에게 들어 보니 독도 약재로 쓰인다더군.”
“쓰기 나름이라는 거지.”
“거래 방법은?”
“낙찰이 되면 방범용 인챈트를 풀어 주도록 하지. 날짜는 다음 주 경매부터.”
“좋아, 좋아. 이야기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군. 이런 건 좋아하는 편이지. 알았다.”
“미리 말해 두건대…… 괜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방금 말했잖나. 독도 약재로 쓰인다고. 무식하게 혼자 처먹을 생각은 없어.”
개장수가 어깨를 으쓱이고, 셰인은 한쪽에 거래 장부를 두고 사라졌다.
“갔군…… 흐음.”
셰인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개장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래 장부를 확인했다.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시끄러울 것이라 생각했던 물건이, 상상 이상으로 쉽게 들어왔다.
이곳 5층은 제국에서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할 정도로 방비를 자랑하고 있지 않나.
모든 패밀리가 그렇겠지만, 경매를 담당하는 개장수는 특히 방비에 힘을 줬다.
단순히 경비를 세운다거나 함정을 설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대에 존재했던 드워프의 설계도를 일부 차용한 복도도 있었다.
개장수가 방비해 둔 이 복도는 적어도 그가 만든 이후 무단으로 통과한 인물은 없었는데.
셰인이 최초로 그곳을 통과한 것이다.
“위험하군. 위험해…….”
상대가 자신에게 적의가 없어서 망정이었지,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설마하니 대지를 다스리는 지하인이, 그것도 앞서 드워프의 전초 기지 던전을 클리어한 존재가 셰인의 곁에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개장수는 그리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만에 흘려 본 건지 모를 식은땀을 뒤로한 채, 그는 거래 장부를 따로 보관하며 이어질 경매의 보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애덤이 만들어 둔 근거지에 돌아온 셰인은 디라일라를 클레이튼 가문으로 보냈다.
한참 귀족 살해자의 존재로 인해 어수선한 상황에 괜한 사건에 휘말리는 것보다, 차라리 가문에서 보호하는 게 맞다 판단했고, 디라일라 또한 수긍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그래. 개장수에게 물건은 맡겨 놨다.”
“후우…… 가장 큰일은 해결됐군요.”
애덤이 한 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애덤도 이번 일에 적잖은 활약을 하고 있었다.
이 지하도시에서 포 패밀리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지.”
“……드디어.”
“그래. 하이엘 왕국의 2왕자에게 연락을 취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