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9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99화
99화 늑대와 기사
지하 경매장에서 간신히 벗어난 1호는 미스 슈 패밀리의 간부들만이 이용하는 통로를 통해 5층으로 향했다.
‘겨우 살았나.’
경비대장은 허무하게 죽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번 일에 대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일을 일으키며 경비대장 정도야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지 않았나.
비록 경비대장의 밑에 있던 수하들마저 죽은 것은 뼈아팠으나, 그건 개장수도 마찬가지.
애초에 경비대장 자체가 개장수의 수하였던 만큼, 놈의 배신으로 인해 개장수의 손해만 크다고 봐야 했다.
‘이대로 주인님과 합류해서 지하 경매장을 정리해기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마지막에 등장한 민무늬 가면의 정체가 무엇일까.
토끼 신사야 앞서 시궁쥐에게 들었던 인물이었으니 그러려니 했으나, 민무늬 가면의 등장은 1호에게도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황태자의 들개마저 손쉽게 처리하던 다크엘프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래 봤자 장부는 이쪽에 있다.’
1호는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치지 않은 장부를 보며 그래도 속으로 안심했다.
만약 그 가면의 사내가 이 장부를 원한다면 이걸 통해 거래를 할 수도 있을 테니.
‘그러니 일단 돌아가야…… 응?’
그렇게 통로를 걸어 나온 1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고요하다.
물론 5층에서, 그것도 시궁쥐의 영역에 소란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 흔한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근처에 경비 겸 수면을 취하고 있을 거지들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전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나?’
어딘지 모를 불안감을 떨친 1호는 그리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가 빠르군.’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오는 길에 사람 하나 마주치지 못한 1호는 금세 시궁쥐의 거처까지 도착했다.
이곳에 있을 자신의 주인, 미스 슈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반긴 것은 수많은 거지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었던 것들이었다.
“어……?”
너무 충격적이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했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1호는 잠시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거…… 주인님 건데.”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은발에, 피가 흐르듯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의 위에 올라타 그런 1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냐. 넌 도대체……!”
시궁쥐의 전력은 1호조차도 다 파악하지 못했다.
워낙에 비밀스러운 것도 그랬지만, 그가 거느리는 거지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특급 암살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소녀의 의자가 되어 있었다.
“나……? 에블린. 주인님의 명령을 받아서 왔어. 근데…… 놓쳐 버렸네. 둘 모두. 그래도, 네가 찾아와서 다행이야. 그거 가지고 가면 주인님이 칭찬해 주시겠지.”
“뭣…….”
1호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피처럼 붉은 눈과 마주하자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된 듯, 온몸이 긴장하여 움직이지 못했다.
압도적인 포식자.
1호가 본 소녀는 그러했다.
“얘들아, 저걸 가져와.”
이 자리에는 1호와 소녀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저 소녀는 누구에게 저리 말하는 것일까.
설마 숨어 있던 누군가가 있는가 싶어 주변을 둘러본 1호였으나, 이내 그는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잡은 순간 소녀가 말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 시체가……!”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던 시체.
그리고, 소녀에게 깔려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켜, 소녀처럼 붉게 변한 눈으로 그런 1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죄송합니다. 물건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니, 괜찮다. 그래도 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여 보고하는 엘리엇의 모습에 금광 엘도라트는 그런 그를 탓하지 않았다.
“대신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어.”
“…….”
“그래, 거래 장부의 주인이자, 바깥에서는 귀족 살해자라 불린다지. 뭐라 부르면 되지?”
“아무렇게나 불러라.”
“그럼 대충 흰 가면이라 부르도록 하지. 그래, 흰 가면 씨. 나에게 볼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하하,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말이야. 고향에서는 시달린 게 좀 있었지.”
“그런가. 그럼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지. 거래를 하러 찾아왔다.”
“거래라…… 장부는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방금 막 들었는데.”
엘도라트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셰인을 바라봤다.
“내용물만 안다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장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도 있으니.”
엘도라트가 핵심을 찌르고 들어왔으나, 셰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네 목적은 고작 거래 장부 따위가 아니지 않나.”
“흐음. 마치 내 목표가 뭔지 아는 눈치인데.”
“지상.”
“음?”
“고향의 땅을 떳떳하게 밟는 것. 그렇지 않나, 황제의 피를 이은 자여.”
“……!”
셰인의 이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인물은 엘리엇이었다.
그는 순간 셰인을 기습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뒤이어 그런 그의 목 아래로 서늘한 감각이 느껴져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소환된 어둠의 정령, 아르카네가 칼날로 변한 팔을 그의 목에 두고 있던 것이다.
“크흐흐…… 그것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정체가 정말 너무 궁금해지는데…… 일단 그 칼은 좀 치워 주지. 이래봬도 내가 유일하게 믿는 수하라서 말이야.”
“아르카네.”
“예…… 주인님.”
셰인의 부름에 아르카네가 조용히 팔을 거두자, 그제야 엘리엇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말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슬그머니 시선을 뒤로 향한 엘리엇은 방금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눴던 소녀를 바라봤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에, 로즈베리 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방금 전, 엘리엇에게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것과 달리 다소곳한 자세로 셰인의 곁에 서 있었다.
‘도대체…….’
한편, 엘리엇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엘도라트는 여전히 눈앞의 민무늬 가면의 사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 정체를 알고 있다니 재미있기는 한데…… 날 어떻게 위로 올려 보내 주겠다는 거지?”
엘도라트.
본명은 제페르 디 퀘이어트 엘라인.
현 황제의 형제이며 황위 쟁탈전에서 패배해 지하도시로 들어와 42년 동안 버텨 온 사내다.
“애초에 너의 목적은 황실로 돌아가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건 진작에 포기했지.”
한때는 그러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이곳 지하에서 쥐새끼처럼 숨어 살다가, 언젠가 다시금 황위에 도전할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38년 전에 일어났던 흑마법사의 테러 사건.
그리고 그 후에 분노한 제국을 지켜본 엘도라트는 그 순간부터 황위 탈취에 대한 꿈을 완벽하게 접어 버렸다.
“그 빌어먹을 백염 앞에서는, 뭘 할 수가 없었으니까.”
지하도시에서 무력으로 가장 강했던 흑마법사가, 저지먼트 기사단 하나에 의해 붕괴되고 와해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본 엘도라트는 자신의 꿈을 진작에 포기했다.
“이제는 저 빌어먹을 인공 천장만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때문에 엘도라트는 그저 지하도시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만족했으나, 나이가 들어 갱년기라도 온 것일까.
여전히 그의 가슴 한편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남아 있었다.
황제 같은 게 아닌, 제대로 된 황족으로서의 권위를 이어 영지를 지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셰인의 확언에 엘도라트의 두 눈에 희미한 열망이 깃들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함에도 그는 지상으로의 귀환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영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런 영지가 남아 있지도 않겠지만.”
“흐음.”
“하지만 상당한 크기에 미래가 충분한 영지라면 있지. 어떤가?”
“그런 영지가 남아 있다고?”
그런 곳에 과연 황위 쟁탈전에서 패배한 황족을 보내 줄까?
하지만, 이어지는 셰인의 말에 엘도라트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추위는 잘 견디나?”
* * *
엘도라트와의 만남이 성사된 이후, 셰인은 금광이 따로 마련한 저택으로 몸을 옮겼다.
“정말 해내셨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미리 연락을 받은 애덤이 찾아왔다.
휘황찬란한 저택에 들어온 애덤은 자신의 정보망을 통해 한참 난리가 난 지하도시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었다.
워낙 이런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동네가 아니던가.
그 난리 속에서 목숨을 건진 손님들이 이미 관련된 소문을 쫙 퍼뜨리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이번 사태가 일어날 줄 아셨던 겁니까?”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애덤 또한 이번 습격이 경매가 끝난 이후, 물건이 넘어가는 시기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셰인은 예상이라도 한 듯 다크엘프를 대동하고 그 장소에 찾아갔다.
“다른 건 몰라도 황태자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겠지.”
“황태자? 들개를 말하는 겁니까?”
“그래. 놈 또한 사람을 풀어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고, 애초에 물건이 경매장에 넘어가기 전에 일을 처리하려 했을 거다.”
“아……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물건이 넘어갔지요.”
“그래, 맞아.”
다른 때라면 모를까, 이번 살리에르 백작의 장부는 지하도시를 한동안 시끄럽게 만들던 물건.
거기에 다른 층과 다르게 4층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경매장, 그것도 포 패밀리의 일원인 개장수에게 물건이 들어갔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마당에 소리 소문 없이 물건을 건네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셰인은 이를 해냈다.
“황태자 입장에서는 불안했겠습니다.”
“그래. 입찰자에게 물건이 건너가는 상황조차도 허무하게 놓치긴 싫었겠지.”
그러므로 입찰이 실패한 순간부터 황태자가 키운 들개의 난입은 필수적이었다.
“황태자가 만약 입찰에 성공했다면 어쩌실 생각이었습니까?”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지. 아무리 금화가 지하보단 지상에 굴러가는 게 많다지만, 몰래 쓸 수 있는 돈도 그럴까?”
“음. 확실히, 검은 돈의 양만 따지면 지하를 이길 수는 없겠지요.”
“그래.”
아무리 황태자라지만 지하 경매장처럼 비밀리에 진행되는 곳에 그만한 금액을 투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거기까지 이해한 애덤이 제3의 세력인 토끼 신사에 관해 물으려던 찰나.
“다녀왔어요, 주인님.”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온 에블린에 의해 그런 애덤의 말문은 닫힐 수밖에 없었다.
“바빠요?”
“아니, 안 그래도 널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가서 한 일은?”
“미안해요. 두 마리는 놓쳤어요.”
“시궁쥐와 미스 슈겠군.”
“네. 휘리릭- 하더니 후루룩- 사라졌어요.”
에블린의 황당한 설명에 애덤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에블린은 여전히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건 챙겨 왔어요.”
끼이익.
“헉!”
이어지는 애덤의 기겁한 목소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열린 문 너머로부터 기척을 숨긴 채 움직이고 있는 마흔 명의 노숙자…… 시궁쥐의 청부업자들이 서 있었으니까.
그들은 피처럼 붉은 눈에 초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에블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그중에는 청부업자들과 다르게 유독 옷이 멀쩡한 자가 껴 있었다.
얼굴도 익숙한 그는 지하 경매장에서 도주했던 1호였다.
“애덤. 네가 가진 능력을 각성시킬 때가 온 것 같군.”
“예, 예?”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려오는 말은 애덤을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