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00)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00화(100/374)
100화 기억의 편린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고.”
연금술사들의 도시, ‘헤 드라반’은 도보로 20일 거리에 있었다.
“20일이면…… 꽤 길군요.”
“맞아.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야.”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블랙아웃의 시즌 종료까지 앞으로 두 달 조금 안 되게 남았다는 점이다.
“그 안에 이 필드의 계층단을 찾아야만 해.”
시즌 종료 시 등장하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포탈은 계층단의 바로 옆에 생성되는 만큼 앞으로 남은 58일 안에 계층단을 발견해야만 했다.
‘문제는 이곳의 계층단이 어디에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지.’
오르쿠타스의 전쟁 들판처럼 4계층 이상부턴 필드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다.
그만큼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많았고, 전투도 잦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떤 거? 보라색 안개?”
“아니면 마력이 없다는 점입니까?”
엘레노어와 에이든이 돌아가며 물었으나.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개 모두 심각한 문제인 건 맞는데, 그것보다 큰 문제는…….”
심각해진 준의 표정에 세 사람이 나름 긴장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식량이 없어.”
“……예?”
“뭐?”
말 그대로.
차원 팔찌에 보관해 뒀던 식량이 모두 다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이틀치 정도 남았나. 조미료라든가, 그런 것들 제외하면 말이지.”
“아……. 확실히. 저희, 임무를 나온 지 꽤 시간이 지났었지요.”
“맞아.”
준이 챙긴 식량은 석 달치였다.
오르쿠타스의 전쟁 들판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모한 식량도 만만찮았으니.
“그나마 포션이라든가 그런 쪽은 여유가 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식량이랑 식수야.”
“근처가 숲이던데. 동물을 사냥하는 건?”
“어렵지 않지. 그런데 다른 쪽에 문제가 있어.”
준이 연금술사의 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생명체들, 전부 오염됐다는데? 저 보라색 안개에.”
* * *
크기가 4미터에 육박하는 괴물이 땅을 박찼다.
“마야!”
에이든의 외침과 동시에 마야가 주변과 동화되어 자취를 감췄다.
한편, 에이든은 운광검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털뭉치의 괴물을 막아섰다.
콰앙―!!
불꽃이 튀면서, 에이든의 검이 괴물의 손톱을 막는 데 성공했다.
그 즉시 주변과 동화되어 있던 마야가 튀어나와 괴물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게륵―!
아칸더스의 송곳니에 목이 달아난 괴물이 그대로 쓰러졌다.
“후우…….”
“고생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준의 한마디에 에이든이 머리를 글쩍였다.
“방금 저희가 잡은 게…….”
“어. 토끼야.”
신장만 4미터에 이르는 보랏빛 털뭉치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토끼였다.
“낮에 마주쳤던 괴물은 사슴이었고…….”
“그놈도 강했지.”
오두막에서 마주쳤던 괴생명체-일지에 의하면 뮤턴트라는 괴물보단 아니었지만, 에이든조차 홀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먹을 게 많다는 정도인가…….”
마야는 벌써부터 괴물 토끼를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저렇게 변했어도 몬스터가 아닌 야생 동물로 취급되는지, 심장을 파괴해도 뮤턴트처럼 입자화되어 사라지진 않았다.
“리더. 해체 다 했슴다.”
“고마워.”
자연에 마력이 없어 마법을 쓸 수 없는 만큼, 준은 전투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을 주기 힘들었다.
차원 팔찌 내에 마력석을 보관해 둔 것이 있지만, 그건 비상용으로 남겨 둬야만 했다.
그 대신.
“됐다.”
꿀꺽―!
요리와 동료들의 케어를 전면적으로 준이 책임졌다.
“자,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슴다!”
“요리 진짜 잘하네.”
지글지글…….
해체된 토끼 고기는 생각 외로 맛있었다.
다양한 조미료로 감칠맛을 더하고, 거기에 완벽한 불 조절까지.
‘그때 했던 개고생이 여기서 빛을 볼 줄이야.’
일행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이 요리 실력은 준이 블랙아웃으로 내려오기 전, 지상에서 피땀을 흘려 가며 배운 것들이었다.
그땐 그저 무시받는 하급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아 했던 발악 중 하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빛을 보게 될 줄이야.
“아니, 왜 이런 음식 솜씨를 숨기고 있었어?”
“딱히 숨긴 건 아냐. 돈이 넉넉해졌으니 그걸로 시간을 아낀 것뿐이지.”
“다음부턴 자주자주 좀 부탁한다고. 크, 이것 봐. 토끼 갈비가 뭐 이렇게 맛있냐.”
일행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사이, 적당히 배를 채운 준은 마야가 처리해 둔 토끼 사체에 다가갔다.
“피는…… 적당히 모였네.”
목을 매만지자 벌써부터 비늘이 돋기 시작했다.
신체에 변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토끼 고기를 먹은 대가였다.
“서, 선배……. 지, 진짜 머리에 뭐가 생겨났습니다…….”
“풉, 푸하하핫!”
당황하고 있는 에이든을 바라보며 엘레노어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그의 머리 위에는 보라색 털뭉치 귀가 생겨났으니까.
“아니,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귀가 생기냐! 나, 궁금한 거 생겼어. 해 봐도 돼?”
“예, 예? 무슨 말씀입니까, 엘레노어 사제님?”
“잠깐만. 실례 좀.”
아악―!
털이 복식복실한 보라색 귀를 만지던 엘레노어가 대뜸 거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윽―?!”
“왁! 진짜 귀야? 으하하하핫!”
형태만이 아닌 신체 기관으로서 활용되는 것인지, 에이든이 새로 만들어진 귀를 꽉 막자 재차 엘레노어의 폭소가 이어졌다.
“으햐햐햐햑! 아이고, 아이고 내 배!”
“으으…… 너무하십니다…….”
“아니이~ 진짜 궁금한데 어떻게 참냐고.”
두 사람의 콩트를 지켜보던 준도 피식 웃었다.
“사냥도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고. 일단 오두막으로 돌아가자.”
슬슬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연금술사의 일지에 의하면, 괴물이 되어 버린 동물을 섭취하면 섭취자 또한 몸에 변이가 일어난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일행들은 그 해결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수한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다.
“보자…… 괴물의 피를 증류하고, 거기에 베이딘 허브랑, 외톨이 방울초의 뿌리 그리고…….”
다만, 언제까지 연구실의 마력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준은 이미 연구실 내부의 마력 포화도가 첫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연구실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이미 연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대다수는 구해 둔 상황.
남은 것은 연금술사들의 도시로 향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마력이 제한적인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
다행스럽게도, 그 문제점은 나름 해결할 방안이 있었다.
“됐다.”
4미터가 넘어가는 토끼의 사체에서 뽑아 온 혈액.
그 혈액을 토대로 다양한 약초를 배합한 결과를 바라보며 준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설마하니 [포션제조]가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는데.”
실린더 내부에 찰랑이는 푸른빛의 마력 액체.
“이름은 대략 ‘마력 유동체’라고 정할까.”
바깥으로 들고 나간다면, 어마어마한 화제를 끌 법한 발명품이었다.
“그 사람보다 내가 이걸 먼저 찾게 될 줄이야.”
본래라면 어느 한 NPC가 먼저 구해야 할 아이템이었다.
시기상, 아무래도 자신이 먼저 이곳에 도착한 듯했다.
‘그럼 이거,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 거지?’
꼬여도 단단히 꼬여 버린 스토리.
깊게 생각해 봐야 의미는 없었다.
당장은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보단, 생존이 더 급급했으니.
“어찌 됐든…… 이걸로 마력 수급은 해결이 됐어.”
찰랑이는 마력 유동체를 바라보며 준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전처럼 마법을 팍팍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된 상황이니.
그 뒤로도 준과 동료들은 총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일대 야생 동물을 잡아 마력 유동체를 확보하고, 추가적으로 식량 문제도 해결했다.
“아공간이 넓어서 다행이야.”
이전과 비교하면 텅 비어 보이는 연구실.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싹싹 챙겨서 차원 팔찌에 보관한 것이다.
“그럼, 이제 가 볼까?”
“이 숲도 만만치 않은데, 도시로 가면 얼마나 고생할지.”
“이것도 흔한 임무인 검까?”
“아니. 이건 그냥 조난당한 거야.”
“아하하…….”
* * *
도시로 향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들어진 가도를 쭉 따라 가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꽤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탐험의 기쁨일까, 에이든은 가도를 걷는 중에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 황성이 있는 거리 같군요. 그곳도 이렇게 돌을 깔아 가도를 만들었습니다.”
“꽤 기술적으로 진보되어 있던 시대였나 봐.”
“뭐, 그 연금술만 하더라도 그렇지. 애초에 마력 유동체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고.”
에이든과 마야는 모르고 있었으나, 엘레노어는 마력 유동체가 가진 무궁한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개발한 연금술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크르르르―!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도 도중에 몇 번씩 마주치는 변이 야생동물은 상당히 위험했지만…….
[윈드 커터]마법에 대한 내성은 상당히 적은 수준이었다.
‘마법 저항력을 가진 오크들을 상대하다가 이놈들을 상대하려니 속이 뻥 뚫리긴 하네.’
단순한 3서클 마법이지만, 준도 이제 5서클에 무르익었다.
똑같은 3서클 마법이라도 그 위력이 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마냥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 큰 덩치를 가진 놈들이 기척까지 죽인 채 수풀에서 튀어나올 땐 아무래도 제법 위협적이었으니.
마력도 한정적인 상황이라 [스캔] 마법을 돌릴 수 없는 만큼, 기습에 대한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고기는 냅두고, 피만 빼 가자.”
“알겠슴다.”
가장 바쁜 사람은 아무래도 준과 마야였다.
엘레노어야, 원체 사제인 만큼 담당해야 할 일이 없었고, 에이든은 전투 이외에 다른 일을 분담하기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반면 야생에서 생존은 마야가 주특기였고, 준도 일행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며 바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사냥으로 얻은 고기를 염지하고, 기름과 꿀을 발라 육포를 준비했다.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먹고 싶어?”
“아, 그건 아닙니다. 그……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곁에서 보고 있던 에이든의 물음에 준은 그런 그의 눈을 깊이 응시했다.
‘왜 저렇게 불안해하고 있지?’
에이든은 애써 티를 내고 있진 않으나, 깨어난 그날부터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항상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음. 그럼 고기 좀 얇게 쳐 줄래? 새끼손가락 두께만큼.”
“아!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마야가 토막 낸 부위를 에이든이 받아 얇게 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삐뚤빼뚤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는지 크기도 일정하고 속도도 준이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라졌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고기를 소금물에 담그면서 준은 에이든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역시 외신과 마주한 것 때문인가.’
준은 에이든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도 저것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기도 했으니.
‘정신력 관련 스킬이 적었을 때 저랬지.’
몇 년 후의 미래지만, 본래 게임의 스토리대로라면 에이든…… 아니, 에이드리안은 이전처럼 외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에이드리안의 정신력이 일정 수치 이하가 된다면, 폭주 이벤트가 일어났었다.
‘당장은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지속적인 관심은 필요해 보였다.
‘분노하고 있었다…… 라.’
에이든은 분노와 여러모로 거리가 멀었다. 항상 포근한 웃음을 짓길 좋아하는 녀석이니.
그런 녀석이, 잠들어 있는 동안 줄곧 거대한 분노를 마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거겠지.’
초대 황제의 기억.
에이든이 꿈속에서 본 것은, 분명 초대 황제가 남긴 기억의 편린일 것이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