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1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13화(113/374)
114화 예언
아울베어의 사체는 생각 외로 꽤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요리는 의외로 아덴이 직접 했고, 준은 곁에서 조미료를 건네는 정도에 그쳤다.
“덕분에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흘흘, 아닐세. 나야말로 자네들처럼 젊은이들을 만나 기분이 좋구먼. 이렇게 대화를 해 본 게 얼마만인지.”
“세속에서 떨어져 계시던 겁니까?”
“비슷하다네. 뭐, 온갖 오지를 떠돌아다녔지.”
그래서 복장이 저런 상태인 건가.
준은 몇 벌 챙겨 온 의상들을 떠올렸다.
“혹, 의상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으음? 그래도 되겠나?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네. 껄껄.”
대충 체구를 가늠해 준이 옷을 건네주자, 이제는 좀 멀끔하게 보였다.
“이거 신세를 졌구먼.”
“별거 아닙니다. 아덴 님께선 제국을 지켜주시는 검이시지 않습니까.”
“끌끌. 언제 적 이야기인가. 나는 은퇴한 지 꽤 됐다네.”
그런 것치고는 과하게 정정하지 않은가.
거기에.
‘아덴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자주 등장했던 캐릭터였지.’
스토리의 진행 상황에 따라서 적이 될 수도 있고,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자다.
그렇기에 잘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잘 보여 두는 게 좋았다.
“음음.”
그사이 일행들은 대부분 식사가 끝났지만 마야는 아직까지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일행 중 가장 체구가 작은 그녀였지만, 식사량은 가장 많았다.
“끌끌. 왜소하지만 복스럽게 잘 먹는구먼.”
“그런 편입니다…… 만.”
왜소하다?
그제야 준은 마야를 비롯한 일행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
“왜 그러나?”
“그 혹시…….”
“아하. 내게 자네의 환각 마법이 통하지 않은 게 의아한 겐가?”
그랬다.
현재 준은 환각 마법으로 자신과 엘레노어의 나이를 중년쯤으로 맞춰 뒀다.
에이든도 서른 초반쯤으로, 마야는 보통 성인 여성의 체구로 설정해 뒀는데.
아덴은 일행들을 보고 젊다거나 마야에게 왜소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꽤 섬세한 마법이긴 했네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네. 그런 몸이거든.”
“……이거, 실례했군요.”
걸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상대방에게 말하지도 않고 환각 마법을 건 것은 당연히 좋게 보일 수가 없는 행위다.
“흰고래 용병대?”
“……맞습니다.”
“클클클!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갑자기 그런 거대한 명성을 얻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히려 현명한 조치였어.”
하지만 아덴은 조금도 불쾌한 기색 없이 말했다.
“걱정 말게. 자네의 환각 마법은 훌륭했어. 아마 나 이외에 다른 이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걸세.”
“……다행이군요.”
“그래. 자세히 말해 주긴 복잡하지만, 내 몸은 마법이 잘 통하지 않거든.”
그 말을 듣고 준은 아차 싶었다.
마도불침.
마법의 저항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자가 얻을 수 있는 신체 능력.
게임 속에서는 아덴을 상대할 때 마법사 캐릭터를 쓴 적이 없어서 놓친 디테일이었다.
아군일 때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아니라서 자세한 스펙을 몰랐고.
“그렇게 긴장할 거 없네. 나는 딱히 자네들에게 바라는 게 없거든.”
“그렇군요.”
“흠흠……. 그런데, 이렇게 면면을 확인해 보니 명성이 헛된 느낌은 아니로군.”
그러면서 아덴은 일행들의 면면을 훑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다면 이 늙은이가 자네들이 겪은 모험을 들어 봐도 되겠나?”
나이가 들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삶의 낙이라며, 아덴이 홀홀 웃었다.
“안 될 게 있겠습니까.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준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론에서 제일 뜨거운 화제는 오크 로드겠지.”
“에이든. 네가 설명해 볼래?”
“제, 제가 말입니까?”
“같은 검사인 만큼 네가 잘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부터 에이든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계속 아덴과 말을 섞어 보고 싶은 눈치였다.
“크흠! 그럼…… 대신전을 발견한 후부터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아덴의 등장으로 올라갔던 긴장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아덴 또한 에이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나름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옆에 팔과 다리가 잘린 아울베어만 없다면, 모닥불 앞에서 손주와 할아버지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 * *
늦은 시간이 되어서 일행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고, 아덴은 홀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흠흠. 재미있는 청년들이로군.”
흰고래 용병대.
처음 소문으로 들었을 땐 과장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그들을 만나 보니 과연 헛소문은 아닌 듯 보였다.
“그 친구가 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구먼.”
자신의 오랜 친우를 떠올리며, 그가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런 나날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건만.”
언제였을까.
아덴은 한 지하 던전에서 어느 주술사의 환영을 보았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제국의 미래를 점쳤고, 그 이후 오랜 오지 생활을 끝냈다.
어쩌면 그저 미친 주술사의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오랜 연륜이 쌓인 아덴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저 빛나는 인재들이 등장한 것도 그 예언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 변화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진행되느냐, 겠군.”
어쩌면 변화의 바람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이른 아침이 되자, 일행은 다시금 출발했다.
어느새 아덴도 마차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에이든은 마치 손주처럼 아덴의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경사가 꽤 심한걸.”
혼자 마부석에 앉은 준이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도 잠시.
“잠깐. 골렘, 멈춰라.”
[밝은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왜 그러는가?”
“뭔가가 추락한 흔적이 보입니다.”
“으잉……?”
그러더니 아덴도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비교적 최근 생긴 듯싶네.”
그 말에 준은 조심스럽게 ‘현상 기록기’라는 아티팩트를 아공간에서 꺼내들었다.
“엘레노어. 이걸로 이 주변 좀 찍어 줘.”
“알겠어.”
이어서 준은 조심스럽게 비탈길 아래를 바라봤다.
[밝은 눈]이 이번에도 제 실력을 발휘했다.“저 아래 마차의 파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호오. 눈이 좋구먼? 그럼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플라이 마법이라도 배워 뒀나?”
그 물음에 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플라이 마법은 회피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쓸데없이 마력은 많이 잡아먹어서 굳이 익히진 않았다.
그 대신.
[아이언 피스트]허공에 소환한 쇠주먹이 주먹을 펴고, 준이 그 위에 올라탔다.
“에이든, 마야. 너희는 엘레노어를 지켜 줘.”
“알겠습니다.”
“옛슴다.”
“아덴 경께서도 타시겠습니까?”
“아닐세. 내가 타면 자네 마법이 흔들릴 걸세.”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가시죠.”
허공을 부유하는 [아이언 피스트]를 조종해 비탈길 밑으로 내려온 준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혀를 찼다.
“이런…….”
높이가 높이인 만큼 마차는 그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마차 안에 있던 이는 모두 죽어 있었고.
혹시 몰라 준이 [스캔]을 돌리자, 다른 곳에서 생명 반응이 느껴졌다.
“아덴 님.”
“아아. 저쪽이구먼.”
박살 난 마차에서 뜯겨져 나온 천장이 널브러진 곳 아래.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아니……?”
그걸 본 아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쓰러져 있던 것이다.
“자네가 왜……?”
창백한 회색빛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 의식을 잃어 있었다.
그를 본 준의 눈이 더없이 깊어졌다.
‘3황자.’
하비에르.
게임의 스토리상…… 제국의 반역자이자, 왕관의 찬탈자.
-저주스러운 황족들이여.
-나는 너희가 증오스럽다.
-나를 이렇게 만들고,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 버린 너희가!
-세상에 유일한 내 혈육마저 무너뜨린 너희가!
-나는 증오스럽도다.
제국에서 일어나게 될 비극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인물이 사망 직전의 상태로 나타났다.
* * *
과거의 준이었다면 눈앞에 있는 황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죽였지.
눈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황자는 철옹성과 같았던 제국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하지만 지금의 준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당장 곁에 서 있는 아덴의 존재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스토리에 허점이 있다. 불완전한 게임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황족을 죽이는 건 너무 큰 도박이다.’
잠깐 사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준이 아덴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리 말한 준은 곧바로 황자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저만한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천운이군.”
“펜던트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아티팩트의 보호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 참으로 다행이야. 어서 위로 올라가지.”
“그 부분은 아덴 님께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자네는?”
“저는 현장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여분의 ‘현상 기록기’를 꺼내고 주변을 기록했다.
“아! 그렇지. 그럼 잘 부탁하겠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불러 주고.”
“알겠습니다. 위에 저희 신관에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를 말인가.”
하비에르를 어깨에 짊어진 채, 아덴은 비탈길을 평지처럼 뛰어 올라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준은 홀로 남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중요한 분기점이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다름도 아니고 3황자라는 지위를 가진 이가 사고를 당했다?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밝은 눈]을 극한까지 발휘하고, 전생자의 기억까지 끄집어 올리며 주변을 둘러봤다.이윽고.
홀로 남은 준은 쓰러진 마차 잔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
죽어 있는 마부의 사체를 응시했다.
* * *
준이 올라온 것은 그로부터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선배!”
“아, 에이든. 저쪽은 좀 어때?”
“곧 깨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쪽은 엘레노어에게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저, 선배. 그런데 저 사람…….”
“……알아?”
설마 3황자와 에이든이 안면이 있었나?
“예. 그, 조금. 알고 지냈었습니다.”
“오.”
아닌 척했지만 준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게임 내에서도 딱히 에이든과 하비에르의 스토리상 접점은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엔…… 조금 어울려 지냈습니다. 아주 잠깐이긴 했습니다만.”
“그리 끝이 좋진 못했나 보네.”
“예. 딱히,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아, 저분이 잘못한 건 없었습니다. 그저…….”
잠시 뜸을 들이던 에이든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분의 어머니가 조금…… 여러모로 위험한 분이십니다.”
“…….”
후궁, 베네스.
여러모로 복잡한 이미지를 가진 여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끼치자 준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일단, 알겠어. 너는 저쪽을 봐줘.”
“알겠습니다.”
그에 준은 한쪽에서 멍하니 허공을 주시하고 있는 마야에게 다가갔다.
“다녀왔슴까?”
“어. 그런데 마야. 이 식물에 대해 아는 게 좀 있어?”
준이 들고 온 것은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검은빛의 꽃이었다.
“……? 뭠미까. 그걸 왜 리더가 들고 있슴까?”
“오다가 주웠는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꽃 같아서.”
“갔다 버리는 검다. 그거 들고 있어 봐야 좋을 거 없슴다.”
“자세한 설명 좀 부탁할게.”
“으음. 저도 부족의 주술사에게 들은 검다. 그 꽃은…….”
꽃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들을 때쯤이었다.
엘레노어 쪽으로 갔던 에이든이 외쳤다.
“선배! 깨어났습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