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40)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40화(140/374)
141화 필드 보스 방어전(4)
준이 마력의 출력을 올려 [플레어]로 트롤의 사체를 녹여 버리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놈에게 이변이 나타났다.
핏빛의 붉은 액체가 마치 살아 있는 젤리처럼, 텅 비어 버린 놈의 두 머리와 심장, 그 외에 여러 부상에 스며들며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이미 물러서라는 준의 외침에 따른 모험단원들은 마치 악마의 심장 소리처럼 맥동하는 놈의 사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맥동과 함께 놈의 몸을 일부 잠식한 붉은 액체에서부터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
그제야 헤르텍스가 이 현상이 가리키는 의미를 일부나마 이해하고 비명처럼 소리쳤다.
“침식 현상이다!!”
두근!! 푸화아아악!!!
그 직후, 놈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양의 붉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하얀 안개를 물들여 갔다.
이들의 시야가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진영이 붕괴되는 것은 머지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 * *
“끄응……. 얘들아. 주변에 있어?”
“예, 선배. 괜찮으십니까?”
“저 여기 있슴다.”
“나도 있어.”
붉은 안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나가고, 대지가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를 잃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침식 현상입니까……?”
본래 새하얀 안개로 가득했던 필드는 이전의 풍경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뀌었다.
먼저 하얀 안개는 어디로 가고, 침식 지대의 붉은 안개가 외부와의 공간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무는…….”
“만지지 마. 몬스터의 사체로 만들어진 것들이니까.”
“예, 예?!”
[체크 포인트]로 향하는 목조 건물을 제외하면 별 다른 게 없던 들판은 어느새 피처럼 붉은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 되었다.“정확히는 몬스터의 마석으로 만들어진 거긴 하지만……. 그보다, 다들 몸에 이상은 없어?”
“없슴다.”
“나도.”
“저도요.”
그 말에 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라면 정신력 관련 디버프가 걸렸어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딱히 그들의 정신에는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기존 스토리보다 훨씬 이른 타이밍에 쓴 건가.’
준은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어느 한 존재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놈이 준비한 실험대에 올라온 것이었군.’
이 현상은 창천교가 본격적으로 침식 현상을 컨트롤하기 직전에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평소 침식자의 등장을 예측하는 마야가 그러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침식 현상은 ‘놈’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었으니.
그런데 그 등장 시기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본래라면 몇 년 뒤에나 등장했어야 했는데.
‘내가 모르고 있던 본래 이 세상의 역사, 혹은 나로 인해 생긴 변수인가.’
둘 중 무엇이 정답일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고.
뭐가 됐든 당장은 살아남는 게 1순위였다.
“침식 현상 중 ‘군주’에 해당되는 놈이야. 다들 긴장해.”
“……그놈이 왜 여기에.”
일행들 중 유일하게 ‘군주’ 타입의 침식자를 인지하고 있던 엘레노어가 식은땀을 흘렸다.
몇 가지 타입을 가지고 있는 침식자 중 상당히 까다로운 타입.
본래 놈은 5계층 이상의 상위 계층에서만 등장했는데.
이례적으로 4계층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빠르게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예.”
평소 호기심이 가득한 에이든도 무거운 분위기에 짧게 대답하고 검을 들어 사방을 경계했다.
“군주 타입의 침식자는 우리가 전에 상대했던 군영과 달리 단일 개체이면서 아니기도 한 녀석이다.”
“……그게 무슨 말임까?”
“일대에 몬스터의 시체가 있으면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흡수하고, 주변의 나무들처럼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외에도 결계 밖에 그림자 병사를 일으켜 세우기까지 하지.”
그러면서 준은 마야를 바라봤다.
“마야. 침착하고 내면을 관조해 봐. 평소와 다른 게 있지?”
“……어떻게 아셨슴까?”
“난 다 아는 수가 있어.”
준의 말처럼.
마야는 아까부터 선조의 영혼들이 침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일전에는 겪어 본 적 없던 현상으로, 마야의 눈빛이 흔들렸다.
평소 시끄러운 노인네들이 이토록 조용해지니 반대로 불안해진 것이다.
“보통 침식 현상이 벌어지면 함께 일어나는 결계인 [의식의 전장]과는 다른 타입이야. [단절의 전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
말 그대로 외부의 모든 것을 단절시키는 힘을 가진 능력은 어지간한 기술이 아니고서야 파괴하기가 힘들었다.
“마력도 느껴지질 않습니다.”
허공에 손을 올린 에이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까다로운 녀석이지. 단, 우리한텐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리 말한 준은 차원 팔찌를 열어 그 안에서 마력 유동체를 꺼내 동료들에게 건넸다.
“마력이 부족하면 망설임 없이 사용해.”
“알겠습니다.”
그와 함께 준도 전력을 다하기 위해 초커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언령 해석 중…….] [해석 완료.] [언령, ‘게으른 순례자의 오디세이’의 영향력을 20% 하향합니다.]단숨에 마력 유동체 세 개를 사용한 준은 끌어모은 마력을 모아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쿠오오오오오…….
“나왔군.”
붉은 나무로 이루어진 숲 사이에, 육중한 덩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트롤의 형상을 하고 있던 괴물은 이전과 전혀 달라진 끔찍한 몰골로 숲 사이를 헤쳐 나오고 있었다.
* * *
“군주 타입의 침식자가 왜 여기서……!!”
“당황할 시간이 없다! 서둘러 괴물 놈들을 죽여라!”
“흰고래 용병단이 사라졌습니다!”
“망할! 침식자 놈들이 데리고 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저계층도 아니고 4계층에서 사냥하던 자들이다.
이런 이변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가 해야 할 일을 빠르게 파악했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그림자 괴물들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젠장, 검이 들지 않아!”
“물리 저항력을 가진 놈들이다! 인챈트 스크롤을 꺼내라!”
“고스트 타입의 몬스터와 싸운다고 생각해!”
“대신 방어력은 형편없는 놈들이야! 몰아붙여!”
이렇게 된 거 살아남기 위해 의기투합한 모험가들은 하나가 되어 사납게 달려들었다.
“흰고래 용병단이 결계 내부에서 버티고 있다!”
“지금 이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나중이 피곤해져!”
이번 ‘군주’ 타입의 침식 현상에 대해 알고 있던 모험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들의 말처럼, 안쪽에서 군주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전멸하게 되면 그 힘을 흡수한 군주가 결계를 허물고 일대에 소환된 몬스터들을 더욱 강화시킨다.
문제는 그렇게 침식 현상이 일어난 곳은, [체크 포인트] 마저 집어삼키며 유일한 피난처마저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아아…… 이런. 생각보다 잘 버텨 주고 있군요. 하긴, 아직 미완성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들의 정신 침식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어난 병사들도 영 비실비실합니다. 역시 개선할 점이 한둘이 아니네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새삼 남자는 목숨을 잃은 기흉노파와 엔베르만의 존재가 아쉽게 느껴졌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침식 현상을 연구하는 이들이 그 둘뿐인 것은 아니지만, 그 둘 모두 꽤나 높은 퀄리티의 결과를 가져다줬던 것이다.
이번 침식 현상은 그런 둘이 남긴 자료를 통해 대충 짜깁기 식으로 만들어 냈지만…… 역시 좀 시원찮았다.
“잘만 만들어졌다면 이곳의 성역도 집어삼킬 수 있었을 텐데…… 아아,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그리 혼잣말을 내뱉던 남자는 저 멀리 보이는 ‘성역’, [체크 포인트]를 바라봤다.
“하지만 뭐…… 괜찮겠죠. 시간은 우리에 편일 테니까요……. 아니,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인간의 왕이 눈치 빠르게 움직인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에휴…… 일거리가 산더미라니까요…….”
한탄하듯 내뱉은 남자는 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술로 푼 남자는 나른한 표정으로 결계 내부에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특이한 인간인데…… 아쉽네요. 지금 데리고 간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텐데…….”
귀찮은 ‘규칙’만 아니었더라면 당장 실력을 발휘해 데려갔겠지만.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뭐어…… 기회가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나른한 표정이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빛내며 남자는 마지막으로 결계 내부의 마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 * *
“온다!”
트윈 헤드 트롤의 몸을 잠식한 군주는 이전과 달리 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놈을 하찮게 보고 방심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생성된 이 붉은 숲의 기운이, 서서히 놈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마야. [혼령난무]는?”
“못함다. 노인네들이 없어서 마력이 너무 많이 필요함다.”
슬슬 선조들이 없더라도 그 힘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된 마야였지만, 그만큼 위력도 약해졌다.
저만한 상대를 죽이려면 몇백 번은 베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써 줘. 놈에게 타격이 가도록.”
“알겠슴다.”
“에이든. 너는…….”
“놈의 시선을 끕니까?”
“아니. 일대의 나무들을 베어.”
“예?”
“말했잖아. 이 나무들은 몬스터의 사체로 만들어졌다고.”
“……아!”
에이든이 가진 ‘파괴자의 가죽’은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하며 사용자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가져다주는 아티팩트.
따라서 그 몬스터의 생명력으로 만들어진 이 숲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파괴자의 가죽에게 먹일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엘레노어. 연습한 대로, 나는 큰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네가 다른 부분들을 커버해 줘.”
“알겠어.”
저런 대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자잘한 마법 몇 번을 사용하는 것으로는 타격을 주는 게 불가능하다.
‘가장 큰 놈으로 준비한다.’
아직까지 이론으로밖에 준비하지 못한 그 마법.
동료들에게 필요한 보조 마법은 오로지 ‘몽환’에게 맡긴 채, 준은 곧바로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마야가 먼저 움직이며 녀석의 시선을 끌기로 했다.
[힘널 오브 라이트] [라이프 실드 오브 라이트]엘레노어의 보조 마법이 들어오고, 뒤이어 준의 몽환이 부여계 마법을 펼쳐 마야의 장비에 인챈트를 마쳤다.
그러자 마치 그림자처럼 숲에 숨어든 마야가 군주를 향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크다.’
침식의 영향인지, 트윈 헤드 트롤의 몸체는 이전보다 더욱 비대해졌다.
그 크기만 하더라도 이젠 9미터에 다다르는 수준.
마야의 입장에선 고개를 까마득히 올려야 놈의 머리가 보일 수준이었다.
‘리더의 말대로 녀석을 홀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
혹시나 싶어 ‘복수의 비수’를 놈의 무릎 사이 연골을 향해 던져 봤으나,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피해는 주지 못 했다.
깊숙이 박혀 들었지만 회수와 동시에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대로 회복한 것이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은…….’
냉정히 판단해서 지금의 마야에겐 단 한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혼령난무]를 의식하게 만든다.’
파악을 마친 마야가 숲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며 녀석의 발치까지 도달했다.
타타타탓!
그대로 놈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혼령난무]를 적용시킨 무기가 놈의 다리를 가르며 지나간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저만큼 거대하다는 것은, 노릴 곳도 많다는 점이니.
[혼령난무]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반드시 적의 급소를 노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이는 저런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를 상대할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
쿠거어……!
짧은 사이에 열 번의 상처를 냈다. 그러자 녀석에게도 반응이 왔다.
마치 모기를 쫓듯, 바위처럼 거대한 손이 날아든 것이다.
“마야, 조심해라! 놈이 충분히 힘을 축적했어!”
공중제비를 돌며 손바닥을 피한 마야는 멀리서 들려오는 준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 즉시 [혼령질주]를 발동.
쿠웅!
방금까지 마야가 있던 곳에 군주의 거대한 발이 내리찍혔다.
“……!”
분명 아까까지 거북이처럼 느렸던 놈의 동작이 한순간이지만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이런 게 있었슴까…….”
먼지 사이로 몸을 숨긴 마야가 재차 눈을 빛냈다.
평소라면 준을 힐난 섞인 표정으로 노려봤겠지만.
“…….”
마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놈들을 죽이기 위한 연습 상대로 최적이지 않슴까……!!”
그사이 마력 유동체 일부를 흡수한 마야가 아칸더스의 송곳니를 꽉 움켜쥐고 재차 달려들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4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