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52)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52화(152/374)
153화 혈족
사막은 본래 달리기 적합한 땅이 아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움푹 파이는 모래는 필요 이상으로 체력을 빼앗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은 그 자체로 필드 효과나 다름없다.
그러나 일행들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 5레벨에 접어들어 환경 적응력이 오른 것도 있지만, 준과 엘레노어의 보조가 컸기 때문이다.
“거리는, 얼마나 떨어졌어?”
거신병을 피해 달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일행들은 다행히 몬스터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대피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에이든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안색이 안 좋아졌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거동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문제가 생긴 것은 그날 저녁부터였다.
“큭……?!”
“에이든?!”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히 걷고 있던 에이든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에 황급히 엘레노어가 달려갔고, 그 이변은 마야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영혼이 흔들리고 있슴다!”
“도대체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 속, 준은 최대한 침착함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봤다.
보이는 것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신병뿐.
그때, 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놈…… 뭘 하고 있는 거지?”
거신병으로부터 기이한 마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마력으로, 그것은 마치 초음파처럼 거신병의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직 놈이 [파멸]을 쓸 정도의 거리는 아닌데?’
[파멸]은 놈의 중단에 위치한 보석에서부터 에너지가 모여 레이저 형태로 쏘아지는 원거리 공격 패턴이다.‘마력을 모아 쏘아 낸다는 특성상, 지금 마력을 퍼뜨리고 있는 행위와는 관련이 없어.’
뭐가 됐든, 저놈이 하고 있는 행위가 에이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젠장…….’
입술을 씹으며 일단 엘레노어의 진단을 기다리길 몇 분.
“정확히 무슨 상황이야?”
“후우……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까부터 에이든의 영혼이 무언가에 크게 흔들리고 있어.”
“역시 저놈이 문제인가.”
거신병의 등장 이후부터 생긴 이변.
이로써 놈이 에이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게임 내에서는 이런 거 없었는데.’
자신으로부터 생긴 변화인가, 그도 아니라면 그저 ‘이정준’ 시절 알지 못했던 게임 속 스토리인가.
‘뭐가 됐든 당장 도움이 될 정보는 아니다.’
여전히 가장 확실한 해결법은, 거신병과 에이든을 완전히 떨어뜨려 놓는 것.
하루 빨리 고대의 탑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막의 환경은 동료들을 돕지 않았다.
“젠장. 모래 폭풍이 좀 심하게 치는데.”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지?”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린 엘레노어가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리고 모래 폭풍 사이에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걸 봐선 그냥 평범하게 생긴 게 아닌 것 같아.”
마찬가지로 준도 주변의 마력 흐름을 읽으며 엘레노어의 의견에 동의했다.
“거신병이 개입한 건 확실해 보여. 쓰읍. 모래 폭풍까지 다룰 줄 알았던 건가?”
“문제는 단순히 모래 폭풍만 일으키려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야.”
에이든의 상태도 그렇고, 최근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엘레노어가 보기에도 저 모래 폭풍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것도 게임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패턴이다.’
준이 입을 열었다.
“마력 자체가 하나의 음율을 이루고 있어.”
“음율?”
“어. 좀 비유법에 가까운 표현인데, 마력과 마력이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파동을 사막 멀리까지 퍼뜨리고 있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잠깐. 준. 저 망할 고철덩어리를 만든 게 누구라고 했지?”
엘레노어의 물음에 준은 금방 대답했다.
“고대 엘프.”
“그리고 이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빌어먹을 몬스터 중 하나는?”
“……고대 엘프 악령.”
“그럼 저 고철덩어리가 보내고 있는 신호는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해석하지 않아도 난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 침입자가 있으니 와서 때려 죽여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 내에서 거신병이 깨어났을 때, 몇 안 되는 위험 요소가 바로 고대 엘프 악령이었다.
다만 그땐 지금처럼 거신병이 직접 부르기보단 어쩌다 마주치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뭐가 됐든 최악의 상황이잖아…….”
준이 급조해 만든 땅굴 안에서 엘레노어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되어 다가왔다.
* * *
일행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모래 폭풍이 소멸되고, 이른 새벽이 되었을 때.
땅굴을 파고 지상으로 돌라온 일행들이 보게 된 것은 검은 밤하늘 아래 빼곡이 들어차 있는 악령들이었다.
그 숫자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수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에이든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엘레노어의 신성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
어떻게든 일어나 검을 뽑으려는 에이든을 만류한 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팔자는 어디 가도 쉽게 가는 법이 없군.”
하룻밤에 저만한 숫자의 악령들이 도대체 어떻게 모여든 것일까.
게임 내 지식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며 준이 서클을 움직이려 할 때.
-어서오십시오.
사막을 까마득히 채운 악령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에 준의 눈도 커졌다.
“뭐라고?”
-오래 전 사라진 우리의 혈족께서 찾아오셨군요.
“무슨…….”
여태까지 봐왔던 악령들과 달리, 눈앞에 있는 악령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에 준도 그렇고 다른 일행들도 당혹감에 빠져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악령이 이어서 말했다.
-혼란스러우시리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악령의 시선은, 아직까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에이든에게 향했다.
-우리의 정신이 이 세계에 대항하기까지 그리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자신들을 따라오라는 듯, 막대한 사막 악령 군단이 길을 열었다.
정말 왕을 모시듯, 그 기세가 사뭇 깍듯하다.
‘저놈들을, 믿어야 하나?’
몇 가지 대화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저쪽과 달리 이쪽은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당신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에이든이 물었다.
준이 뭐라고 해석하기도 전에 에이든이 저들의 말을 알아 들은 것이다.
그에 깜짝 놀라 준이 그를 바라보자.
-이곳에서 저희에게 죽으라고 명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진 필요 없습니다. 대신, 우리를 안내해 줄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주십시오.”
-그리하겠나이다.
대답하던 악령이 손을 흔들자, 저 뒤로 무수히 많던 악령들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흐트러지며 자취를 감췄다.
“……모두 죽은 겁니까?”
-아닙니다. 혈족이시여. 단지 있던 곳으로 돌아간 것 뿐. 우린 모두 저 수호신의 부름에 따라 잠시 찾아왔을 뿐이옵니다.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레노어가 조심스럽게 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쟤들이 에이든을 자신들의 왕 비슷한 걸로 떠받들고 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블랙아웃이잖아.”
“…….”
무어라 쏘아 말해 주고 싶은데 너무 당연한 말이라 엘레노어는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이곳은 블랙아웃.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이 예측하기 힘든 땅이었다.
* * *
결국 일행들은 고대 악령들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현재 혈족께서 겪고 계신 현상은 영혼 공명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영혼 공명?”
옆에서 듣고 있던 엘레노어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쟤들이 혈족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네. 영혼의 파동이 비슷해서 생긴 일이야.”
“정확히 무슨 상황인 건데?”
“아마 에이든의 선조 중 한 명이 저 엘프들의 피를 이어 받은 것 같아. 다른 황족들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 들어 본 없으니, 아마 에이든의 모계 쪽에 속한 일이지 않을까?”
그런 정보는 준도 모르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현상이 있었으면 이곳 사막에서 처음 악령들과 마주했을 때부터 일어났어야 하지 않았나?
“저 거신병과 관련된 건가?”
“아마도.”
아직 예측일 뿐이지만, 준은 아마 높은 확률로 거신병의 동력원인 푸르스름한 구체를 떠올렸다.
그게 발동되면서 사막 엘프들의 정신이 잠깐 돌아왔고, 그로 인해 에이든을 알아보게 된 것이지 않을까.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에 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
“예. 단지 제가 황실에 들어왔을 땐, 그저 바구니에 담긴 채 황제 폐하께서 저를 데리고 오셨다고만 들었습니다.”
즉, 황제를 제외하면 황실의 그 누구도 에이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비사 같은 게 있던 건가.’
아무튼.
그렇게 일행들이 악령을 따라 가는 방향은, 정확히 거신병이 있는 방향이다.
“왜 우리를 놈에게 인도하는 거지?”
준의 물음에 에이든이 악령에게 묻자, 악령이 곧바로 대답해 왔다.
-혈족께서 우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입니다. 수호신의 내부에 그것이 담겨 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신기해. 지금 보니까 저 녀석들, 몬스터가 아니야.”
“무슨 말이야?”
“으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이런 현상은 나도 처음이라.”
[심안]을 지니고 있는 엘레노어는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듯 보였다.그때, 옆에 있던 마야가 대답했다.
“실이 생겼슴다.”
“실? 맞네, 맞아. 잘 보니까 실이 보여. 저게 영혼을 대신하고 있는 건가?”
엘레노어와 마야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악령들은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게 몬스터로서의 의지가 아닌 본인들의 의지로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에 준은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의 후반부에서 그것과 비슷한 현상을 몇 번 본 적이 있던 것이다.
‘그 게임 속 설정이 지금부터 이어지고 있던 건가? 그런데 그게 고대 엘프와 에이든이 연관이 있었을 줄이야.’
이 정도 떡밥이라면 굳이 게임 내가 아니라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을 법한 정보였는데.
의외로 그런 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대부분의 게임 유저들도 모르고 있던 정보일 듯싶었다.
‘그러고 보니 에이든이 바람 속성과 잘 맞는 체질이긴 했지.’
특별한 수련법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보통 사람들에겐 자연 속성과 친화력이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이든에게 바람 속성의 친화력이 있는 것은…… 고대 엘프의 피가 이어졌기 때문일까?
그렇게 일행들이 거신병 앞에 도달했을 때.
-수호신이여. 고귀한 혈통께서 찾아오셨노라. 문을 열거라.
마치 왕 앞에서 그러하듯, 거신병은 무릎을 꿇고 에이든의 앞으로 손을 사뿐히 놓았다.
타고 올라오라는 듯, 녀석의 거대한 손이 모래사막 위에 놓이고, 흉부 쪽의 기관이 열리며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저기로 가면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혈족이시여.
“저 안에서 무엇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들어가시면 ‘그것’이 당신을 맞이해 줄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준은 마력을 집중해 거신병의 흉부에 생긴 공간을 바라봤다.
“안심하고 다녀와도 될 것 같다, 에이든.”
“그렇습니까?”
“어. 내가 데려다줄게.”
아직 영혼 공명 상태로부터 회복되지 않은 에이든을 부축한 준은 거신병의 손을 타고 올라갔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