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5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53화(153/374)
154화 고대의 탑(1)
거신병의 흉부에 생긴 공간.
그 앞까지 도착한 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 안에서 정령의 기운이 느껴져.”
“정령, 말입니까?”
“그래.”
보통 정령이라 하면 자연을 사랑하고, 이따금 자연 친화력이 높은 인간과 계약을 한다…… 라는 설정으로 여겨지지만.
이 세계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정령들은 계약은커녕 의사소통도 안 됐고, 설사 통한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 세계에 ‘정령술사’라는 클래스가 없는 이유였다.
다만 아주 간혹 인간과 계약을 하는 정령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준의 손에 끼인 반지, ‘몽환’이 그러했다.
“그런데, 저 안에 있는 녀석은 일반적인 정령들과 좀 달라.”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도 확신해서 말하긴 힘들지만…… 몬스터 특유의 기운이 없어.”
인간에게 무조건 적대적인 몬스터의 기운이 아니다.
아마 악령들이 본인들의 의지를 되찾게 된 것처럼.
저 정령에게도 비슷한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다.
“네가 어떻게 저 고대 엘프들과 대화가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아마 안쪽에 들어가도 비슷할 거야. 일단 그 정령과 만나고 와.”
“아……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악령과 거신병이 이쪽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왠지…… 절박함도 느껴졌었어.’
에이든은 자신들을 이곳까지 안내한 악령을 떠올렸다.
그리곤 거신병이 만들어 낸 공간 안쪽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순간,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 * *
숲이다.
그러나 평범한 숲 같지는 않았다.
평생 살면서 숲을 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청량한 공기를 품고 있는 숲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렇게 낯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에이든은 이곳이 고향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으음…….”
에이든은 자신이 마주하게 될 정령을 바라봤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하나, 평범한 바람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생명을 품은 듯, 평온하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그 안은 거칠고 사납다.
에이든은 무심코 정령으로 추정되는 것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람이 에이든의 손에 휘감겨 그의 전신을 에워쌌다.
이윽고…….
“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전신에 스며드는 듯한 감각.
마치 하나의 생명이 그의 몸에 의탁한 듯, 자연스럽게 그의 내면에 깃든 바람은 마치 안도한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바람의 정령…….”
그게 에이든의 몸에 깃들었다.
그것을 깨달은 직후, 주변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 * *
그 뒤로 에이든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어났냐?”
그리고 그런 에이든의 머리맡에서 준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
“몸은 좀 어때?”
“어…… 개운합니다.”
“그렇겠지. 바람의 정령하고 계약했으니까.”
“바람의 정령…… 아!”
그제야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린 에이든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거신병과 악령은 어떻게 됐습니까?”
“악령들은 자기들 소원이 성취됐다면서 모두 사라졌고, 거신병은…… 저기 봐.”
준이 가리킨 곳에는 마치 거대한 산이 무너져 내린 듯 균형을 잃고 쓰러져 내린 거신병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완벽하게 파악한 건 아닌데, 대충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준과 동료들이 유적에서 발견했던 푸르스름한 구체.
그것은 다름 아닌 정령의 알이었다.
말이 알이지, 정확히는 정령의 봉인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안에 바람의 정령이 봉인되어 있었어. 어떻게 그걸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봉인된 정령이라니……?”
“극도로 희귀한 현상이지. 블랙아웃 내에서 몬스터가 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준이 가진 ‘몽환’도 비슷했다. 대신 몽환의 경우에는 알이 아니라 이 반지에 봉인되어 있었지만.
“그런데…… 아직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긴 잠에 빠져 있어. 성장기 같은 느낌으로. 녀석이 깨어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럼 당장 쓸모는 없는 걸까?
아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준은 에이든의 손짓, 몸짓을 보며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음을 느꼈다.
바람의 정령과 잠깐 동안 동화된 경험은 알게 모르게 에이든의 성장을 가속시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강화 계열 마법에도 더 영향을 받겠지.’
적응하려면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다.
‘이야……. 게임 속 주인공은 길을 가다가도 기연을 얻는구나.’
갑작스러운 거신병의 등장에 위기를 겪었지만.
생각 외로 일은 시시하게 끝났고, 에이든은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게 됐다.
‘뭐가 됐든 갑자기 생긴 위기가 기회로 바뀐 건가.’
다행히 거신병과 싸울 일이 없었던 것만 해도 어디인가.
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일행은 다시금 모래 사막을 걸었다.
이전보단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고대의 탑을 향해서.
* * *
사막 한가운데 오도카니 세워진 고대의 탑.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는 입구를 열고 일행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 여긴 무슨 공간입니까?”
에이든의 물음에 준은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첫 인상은 새하얗다, 였다.
사물의 윤곽조차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 세상이 하얀 공간.
새하얀 도화지로 만들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은 텅 빈 공간이 일행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대기실이야. 저 문을 넘어가면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거고.”
준이 가리킨 방향에는 검은 문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생긴 게 마치…….
“꼭 계층단을 넘을 때 보는 문 같습니다.”
“그러게.”
모르긴 몰라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지 않을까.
“그런데 먼저 할 게 있어.”
“무엇입니까?”
“……쉬자.”
그 말에 일행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 필드와 유적지, 그리고 거신병과 악령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쌓여 있었기에, 일행들은 고대의 탑이고 나발이고 당장 피곤한 몸을 곱게 누이고 싶었다.
* * *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잠에서 깨어난 준은 동료들의 면면을 살펴보곤 쓰게 웃었다.
‘많이들 피곤했겠지.’
그럴 만도 했다.
5계층은 그만큼 일행들에게 힘든 곳이었으니.
하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준은 조용히 차원 팔찌를 열고, 그 안에서 두 개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세계수의 뿌리였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그 고생을 해 가며 얻은 세계수의 잎이었다.
멘트러스가 떠나기 전 준에게 넘겨준 것으로, 준은 그것을 하나로 포개어 마력을 부여했다.
그러자 은은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 빛에, 준도 잠시 넋을 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으음…….”
“…….”
“쿠울…….”
잠든 동료들이 한층 더 편안해진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걸로 ‘그 녀석’에 대한 1차적인 대비는 끝냈나.’
완성된 물건을 내려다본다.
언젠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줄, ‘세계수의 정기’였다.
* * *
이틀.
일행들이 몸의 컨디션을 다시금 끌어올리기까지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몸이 나른함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마지막으로 깨어난 마야가 고양이처럼 바닥에 몸을 늘어뜨렸다.
“그만큼 격하게 움직였다가 시체처럼 잠만 잤는데 멀쩡할 리가 있나. 그래도 이제 일어나야지. 밥이나 먹자.”
“으으…….”
전신으로 귀찮다는 것을 표현했으나, 그러기엔 코에 닿는 향기가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끝내고.
“푸하.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러게.”
“이게 인생이지. 크.”
마지막으로 그릇을 비운 엘레노어를 끝으로, 일행들은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여긴 대기실이라고?”
“맞아. 이 안에 있는 동안에는 어떤 위협도 없지.”
“그건 편하네. 그럼 위로 올라가서 또 죽어라 싸워야 하는 건가? 쉴 틈 없이?”
“그건 아냐.”
고대의 탑은 하나의 시련을 끝낼 때마다 이곳과 같은 휴식처를 제공한다.
그중에는 다소 특별한 공간도 있으니.
“특별한 공간?”
“그건 직접 가 보는 게 좋을 거야. 다만 그보다 앞서, 설명해 줄 게 있어.”
그러면서 준은 품에서 ‘세계수의 정기’를 꺼내 일행들에게 보여 줬다.
“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선배.”
“음. 네가 가진 고대 엘프의 피가 반응하는 것 같네.”
“하하. 뭐랄까, 신기하군요.”
여전히 에이든은 자신에게 고대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음에 어색해하고 있었다.
“이건 말하자면 일종의 통신기구야.”
“통신기구?”
엘레노어가 살짝 관심을 보였다.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는 걸 보면 평범한 통신기는 아닌 모양인데.”
“맞아. 고대 엘프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지.”
“영혼끼리 이어 주는 검까?”
이쪽에 민감한 마야가 정답을 맞췄다.
“이 안에 담긴 세계수의 기운을 우리와 연결할 거야. 다만 이렇게 보면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세계수의 정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연락을 취하는 데 거리 제한이 없다는 거지.”
이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블랙아웃 내에서는 정보의 교류가 그리 쉽지 않았다.
블랙아웃은 각 계층마다 거리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랙아웃 내에서는 정보 조직을 운영하려면 필연적으로 사람의 숫자와 실력이 중요했는데.
이것만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 대단한 거 같긴 한데. 우리가 따로 떨어져 다니는 일도 그리 많은 건 아니잖아?”
“잘 생각해 봐. 제한이 없다고.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아! 기흉노파?”
“맞아.”
과거, 적성에서 준은 기흉노파와의 전투 중 그녀가 만든 주술 세계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외부와 어떤 소통도 불가능하고, 오롯이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는데.
세계수의 정기는 그런 환경에서도 통신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티팩트다.
“상위 계층에서는 간혹 기흉노파가 썼던 주술과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는 게 그리 드물지는 않잖아.”
“그렇긴 하지…….”
“확실히 선배 얘길 들으니 엄청 대단한 물건 같습니다.”
에이든과 엘레노어도 금방 그 효용을 알아봤는데, 마야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음…….”
“왜 그래, 마야?”
“이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검미까?”
드물게 마야가 이쪽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준도 눈을 빛냈다.
아마 마야가 가진 능력과 관련해서 작은 깨달음을 얻게 만들지도 몰랐으니.
다만.
“미안하지만 아직 온전히 설명해 주긴 힘들 것 같다. 나도 그 원리를 정확히 깨우친 게 아니거든.”
엘레노어는 아직 이쪽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으니, 가능하다면 샤일록과 멈샤르에게 조언을 받아야 할 터.
“알겠슴다. 나중에 알려주는 검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준비를 마친 동료들은 다시금 윗층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봤다.
“그럼 슬슬 출발할까? 이곳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