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6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63화(163/374)
164화 순회
준이 덱스터의 방으로 향하고, 홀로 남은 에이든은 복도를 서성이던 중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형님.”
3황자, 하비에르.
평소 창백한 표정을 지닌 그가 이전보다 한층 더 하얀 표정으로 에이든과 마주쳤다.
“하비에르 님.”
“하하…… 단둘만 있을 때는 말을 낮춰도 된다 하지 않았소.”
“그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택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반가운 마음에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소.”
그러면서 하비에르는 자연스럽게 발코니로 향했다.
그 아래로는 오늘 하루 종일 사용된 야외 연회장이 눈에 들어왔다.
에이든은 그런 하비에르의 뒷모습을 조금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가 봤던 하비에르는 심신이 강하지 못한 인물이었으니.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소. 덕분에 조금 기운이 나는군.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실 테고.”
“…….”
“형님한테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겠지만, 어머니께선 상처가 많은 분이시오. 그만큼 내게 거는 기대도 만만찮으시지.”
현 후궁이자 하비에르의 어머니인 베네스는 과거 아우터 출신이었다.
지금의 황제가 직위에 앉고, 본격적으로 블랙아웃 내에 존재하는 아우터들과 화합을 맺기 위해 이루어진 혼인.
후궁인 베네스는 그런 아우터들의 많은 걱정과 우려, 그리고 희망이 담긴 짐을 짊어지고 황실에 들어왔다.
“아바마마의 시대가 펼쳐진 이후, 많은 아우터들이 제국의 밑으로 들어왔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는 많이 희석되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글과 이야기 등으로 많은 세대를 거쳐 왔고, 그들이 가진 상처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베네스는 그 수많은 상처들을 치유하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몸이 황제의 자리에 앉는 것이겠지.”
그만큼 베네스는 하비에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하비에르는 그런 어머니의 짐을 덜어 드리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벅찬 것은 어쩔 수가 없군.”
“……많이 힘드십니까.”
에이든은 그런 하비에르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그 대신, 그의 푸념을 들어 주고자 했다.
비록 에이든이 베네스에게 당했던 경험은 한때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였지만…… 감옥 같았던 황실에서 하비에르는 에이든이 짧게나마 좋은 추억을 지닐 수 있게 만들어 준 이였으니.
“힘들다면, 그렇소. 힘드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드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연회장을 넘어 성벽 너머 도시의 풍경에 향했다.
“과연 내 삶만큼이나 어머니의 삶이 덜 힘들까 하면, 그것은 아닌 듯싶소.”
황궁이라는 이름의,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해득실 속으로 찾아온 어느 부족장의 딸.
그녀가 가지고 있을 무게감과 비교하면, 하비에르의 고통은 그저 미숙한 아이의 투정일지도 모른다.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음?”
그러나 에이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꽉 막힌 황실 속에서 바깥으로 나오고, 한 마법사와 만나며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보내 왔다.
그리고 그런 에이든이 느낀 세상은, 언제나 새로웠다.
“분명 베네스 님께서 짊어지고 계신 짐이 무겁다 하지만, 하비에르 님께서 지고 계신 짐이 가볍다곤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처지에 놓였고,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었죠.”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지위가 자신보다 낮다고 하여 그들의 고민과 고찰, 그리고 그에 대한 발악까지 모두 별거 아니라고 여겨야 할까?
에이든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준과 함께 다니며 에이든이 깨달은 현실이 그러했다.
“그리고, 음…….”
“그리고?”
에이든은 잠시 자신이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하비에르의 저 고통을 생각하면…….
그때, 하비에르가 주머니 속에서 한 아티팩트를 꺼내 발동시켰다.
외부로 대화의 소리가 나가지 않게 만드는 고성능 아티팩트다.
“편하게 말해 주시오, 형님.”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하나가 아니야.”
“…….”
“네가 베네스 님의 짐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것은 너의 선택이지. 하지만 그저 짊어지기만 하는 것은 ‘가족’이라고 할 순 없잖아.”
“그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조금이라도 더 쉽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상의하는 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
에이든은 자연스럽게 준을 떠올렸고, 또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을 떠올렸다.
준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일이 없었고, 무슨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항상 동료들의 의견을 물었다.
동료들도 무작정 그의 의견을 찬성하기보단, 이유를 묻고 거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때론 준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답안이 나오기도 했고.
그들은 대장과 부하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내 의견을 말하라…… 그 어머니께 말이지.”
하나, 하비에르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투정을 진심으로 받아 주어 고맙소, 형님.”
“아니야. 나도 남의 일이라도 막 말한 것일지도 몰라.”
“아니오. 당장은 실천하기 어렵겠으나, 언젠가 내게 용기가 생긴다면…….”
어쩌면, 정말 어머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지.
비록,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가슴에 남은 것일까, 방으로 돌아가는 하비에르의 표정은 어두웠으나.
에이든은 부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상처가 낫는 과정이길 바랄 뿐이었다.
준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준은 테라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에이든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허허…… 아닙니다, 선배.”
“무슨 인생의 진리라도 깨달은 표정이냐고.”
* * *
“다음 일정이 정해졌어.”
그날 저녁.
준은 동료들과 함께 모여 앞서 두 황족들과 나눴던 일정을 설명했다.
“먼저, 순회 일정이 잡혔어.”
“이야…… 황족들이 직접 블랙아웃을 순회한다고?”
엘레노어는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걱정처럼 일정은 꽤나 타이트할 것이다.
“응. 황실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체크 포인트]들 위주로 진행될 거야. 최대로 올라갈 계층은 총 4계층까지고.”
“4계층까지면 일정이 엄청 길어지겠는데?”
“물론 길긴 하겠지만, 다행히 이동 거리가 그리 길진 않아. 알다시피 황실 휘하에 있는 [체크 포인트]들은 거리상 이점이 많은 곳들이니까.”
“그렇긴 하지.”
블랙아웃에도 시장 경제라는 것이 존재하는 만큼 도시와 도시의 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다.
그만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으니, 제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홍보할 목적인 이번 순회와 딱 알맞은 경로이기도 했다.
“그럼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딱히 이렇다 할 건 없어. 우린 어디까지나 얼굴 마담 역할에 가까우니까. 황족들에 대한 경호도 대부분 황실 기사들이 할 역할이기도 하고.”
소문에 의하면 9레벨에 도달했다는 천룡 기사단장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 아래 있는 부단장 또한 8레벨 초입의 강자.
그리고 7레벨에 다다르는 블랙가드 기사단장과 그 휘하 기사들이 모조리 붙은 만큼, 전력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결코 모자랄 일이 없었다.
“거기에 호위대상인 세 사람 모두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수준은 되니까.”
일단 1황자인 덱스터 본인이 6레벨의 실력을 가지기도 했고.
1황녀 나탈리는 상당한 마법 실력을 지녔으며, 3황자 하비에르도 4레벨 수준의 전투력은 지니고 있었다.
‘비록 3황자는 전투에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보니 흰고래 용병단이 호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날먹 의뢰지, 날먹 의뢰.’
비록 많은 시간이 소모되겠지만, 그에 비해 별다른 위험 요소 없이 황실의 보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이득이지 않겠나.
그런데 어째서일까.
왠지 모르게 안면이 까다웠다.
“…….”
“…….”
정면을 바라보니 마야와 엘레노어가 무서운 분위기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에 준은 서둘러 입을 열며 변명하듯 말했다.
“크, 크흠.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 창천교의 개입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다들 긴장 풀지 말라고.”
“다행히 입은 꿰매지 않아도 될 것 같슴다.”
“그러게. 이번에도 쉽다고 했으면 진짜 지팡이로 머리를 내려칠려고 했는데.”
그렇게 한 차례 위기를 극복한 준이 한숨을 내쉬고. 뒤이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맡은 임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부분에 불과해.”
“무슨 이유입니까?”
“현재 우리가 가는 최종 목적지는 따로 있어. 순회는 어디까지나 그걸 숨기기 위한 연막 작전에 불과하고.”
“최종 목적지?”
“응. 말했다시피, 이번 우리의 본래 임무는…… 창천교의 흔적을 찾는 거니까.”
적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이렇듯 시간을 소모하고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황실의 목적은 하비에르에게 수작을 건 창천교의 꼬리 잡기였다.
“그래서 블랙가드까지 같이 온 거구나.”
“그렇지.”
“그럼 최종 목적지라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데?”
“……3계층. 볼타인의 광석 지대야.”
그리고 그곳은, 현재 지노반이 사령관으로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 * *
한참 에이든과 하비에르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각.
준은 이번 의뢰를 요청한 두 황족과 임무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결과만 말하자면, 꼬리를 잡았어요…….”
1황녀, 나탈리의 나른한 목소리에 덱스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3계층일세, 마법사.”
“3계층이라면 혹, 볼타인의 광석 지대가 맞습니까?”
“네. 지금 제가 입수한 정보들과 블랙가드에서 보내온 정보들을 합산해 본 결과…… 창천교의 흔적은 3계층, 볼타인의 광석 지대로 향하고 있어요…….”
그에 준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황상 그들이 볼타인의 광석 지대로 향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아마 그쪽에 있는 사령관을 매수하려는 게 아닐까 싶네. 그치들의 패턴을 보면, 사람의 절박함을 주로 이용하는 것 같으니.”
“절박함이라면.”
“자네도 알고 있는 인물이지. 지노반 사령관. 지금은 작위를 박탈 당한 몰락 귀족 출신일세.”
“…….”
“정보에 의하면 그는 현재 꽤나 몰린 듯 보였다네. 검은 숲에서 여러모로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듯하군.”
준은 잠시 지노반을 떠올렸다.
나름 유한 성격을 지녔지만, 그는 인간적으로도 썩 괜찮은 사람이었으니.
그런 그가 과연 창천교와 손을 잡고 제국에 반하는 행위를 할까.
‘모를 일이지.’
덱스터의 말처럼, 창천교는 사람의 절망을 이용할 줄 아는 놈들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듯 내미는 손. 하나, 단 한 번이라도 잡는다면 끝난 거나 다름없다.
놈들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을 옭아매어 천천히 늪으로 빠뜨리길 좋아했으니.
‘부디 그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길 바라야겠군.’
그렇게, 창천교의 꼬리 잡기를 위한 순회가 시작되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6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