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66)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66화(166/374)
167화 지노반
준이 지노반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지노반은 준과 일행들이 이곳에 왔음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따로 준을 부르지도, 그렇다고 찾아온 황족들을 극진히 대접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듯한 느낌이었지.’
그렇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황실에 반할 생각이 있었다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텐데.’
둘째로는 보탄이란 중년의 사내다.
어찌보면 지노반의 지인처럼 보였지만, 그의 손목에 감겨 있던 팔찌는 분명…….
‘원독사. 그 새끼가 지 수하들한테 끼워 둔 팔찌 같은데.’
원독사.
이전에 덱스터가 하비에르의 음식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말할 당시 준이 떠올린 범인의 이름이었다.
게임 내에서도 원독사는 창천교에서 독을 다루는 데 일품의 실력을 지녔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지독하게 특별한 능력 때문에 난관에 부딪친 적이 많았다.
‘그놈이라면 여태껏 독을 푼 흉수를 찾지 못했던 게 이해가 돼.’
그리고, 그런 놈의 수하가 지노반에게 찾아왔다.
준이 지노반이라는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그가 독을 쓰는 인물과 친구로 남아 있진 않았을 듯 싶었다.
그래서 시험해 봤다.
환각 마법을 쓰지 않은 채 고용인인 척 위장을 하고 그의 방에 찾아간 것이다.
물론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다.
이번 일은 준 혼자가 아닌 황실도 함께하는 작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준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1년 전의 내가 봤다면 미쳤냐고 멱살을 잡았겠군.’
당장 작년에는 에이든에게 사람을 믿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지노반이라는 인간을 믿고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튼.
지노반의 집무실에 도착하고, 그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봤음에도 입을 다물자 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리어 준이 능청스레 행동할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가.
‘괜히 사람 속 뒤집게 만드시는군.’
혹시라도 지노반이 변절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던 과거의 자신이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럼 이제 기다리는 것뿐인가…….’
그렇게 한동안 밖에서 대기하던 준은, 이내 볼일을 끝내고 나온 보탄과 지노반의 모습을 일별하곤 다시금 지노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준이 찾은 것은 다름 아닌 빈 꽃병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들어 있는 현상 기록기였다.
“음. 좋아. 잘 작동했네.”
그렇게 준이 떠나려던 찰나.
문득 [뛰어난 기억력]이 멋대로 발동했다.
아까와는 달라진 책상.
차이점은 딱 하나뿐.
꽃병 옆에 놓여진 낡은 책 한 권이었다.
* * *
지노반.
그의 삶에 있어서 절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은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는 언제나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가주와 가모 둘 모두 표정이 좋지 않으니 고용인들도 덩달아 불안해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바빴다.
-언젠가 이 집안에 웃음이 꽃피게 하고 싶구나.
지노반은 그런 간절함 속에서 검을 휘둘렀고, 다행히 그에게는 충분한 재능과 열정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자, 그의 부모는 지노반을 보며 점차 웃음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어난 검술을 인정받아 황실의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무렵.
절망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햇빛이 쨍쨍하던 어느 날.
평소처럼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던 그에게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사인은 임무 실패.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본래 기사에게 죽음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주변에선 혀를 끌끌 차며 애도를 표했지만,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지노반에게 그것은 하루가 끝났다고 잊혀질 사안이 아닌데도.
모두가 잠든 시각.
홀로 연병장에서 달빛을 비추는 검을 바라보던 지노반은 결심했다.
언젠가, 반드시 이 검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미소를 지어 주셨던 이 검술로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겠다고.
그리 결심했다.
* * *
현상 기록기는 비록 꽃병 안에 들어가 지노반의 집무실을 찍진 못했으나, 소리는 멀쩡히 기록했다.
-갑작스럽게 황자들이 찾아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보탄. 허허롭게 웃으며 저택에서 눈치를 보던 남자가, 지노반의 집무실에선 스스럼 없이 말을 내뱉었다.
-나도 모르오.
-모른다? 혹, 지노반. 네가 부른 것은 아니고?
-어찌 그러겠소, 삼촌. 난 이미 창천교와 함께하기로 맹세했거늘.
-말 조심해라. 안 그래도 최근 황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왔으니.
-수상하다니? 황실이 다녀간 곳이 이곳뿐만은 아니지 않소?
-황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님은 네가 가장 잘 알 것 아니냐. 여기까지 내몰렸으면서 그런 말을 하느냐?
-진정 좀 하시오, 삼촌. 애초에 우리가 여기서 무언가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민감하게 구는 거요?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란 걸 잘 알지 않느냐.
-여기까지 걸어온 것도 삼촌이오. 삼촌이 오지 않았음에도 황실은 이곳에 찾아왔고.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소.
지노반의 말에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지노반. 최근 하는 일에 여러 문제가 좀 생겨서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최근 독초를 구하던 녀석들이 블랙가드에게 꼬리를 밟혔어. 그것 때문에 나도 원독사 님께 여러모로 질책을 받았지.
-그랬군. 그래도 최근에 이쪽에서 구할 독초의 흔적은 순조롭게 발견되지 않았소?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그분께서 찾아오시겠지.
-끄응…… 그래. 그러는 너는, 악령구를 제대로 흡수한 거냐?
-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갑자기 이런 선물을 받을 줄이야.
-하, 조심히 다뤄야 할 거다. 그건 나도 아직 하사받지 못한 것이니.
묘하게 보탄의 목소리에서 질투의 감정이 느껴졌고, 반면 지노반은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일이오. 아무것도 없던 내게 왜 이런 귀물을 쥐어 준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만큼 네게서 재능을 봤다는 것이겠지. 실제로 네가 가진 검술은 대단하지 않더냐. 만약 형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기뻐 눈물을 흘리셨을 정도로.
-……아무튼, 이쪽 일은 잘 되어 가고 있소. 삼촌도 당분간은 몸을 숨기고 다니는 게 좋을 거요.
-그래, 알겠다. 너도 저 황족들 앞에서 실수하지 말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최대한 거리를 벌려 주고 있소.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아무래도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온 모양이다.
황실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걱정이 든 것일 터.
“보탄, 보탄이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입니까?”
“안타깝게도 없다네. 이렇게 된 거 나탈리에게 서신을 보내 봐야겠는데…….”
괜한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며(사실은 귀찮아서) 비조의 도시에 남아 있는 나탈리.
그녀라면 보탄이란 존재에 대해 알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 생각났소.”
“음?”
그때 입을 연 것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고 있던 하비에르였다.
“분명 어머님의 이름으로 계약 중인 어느 약초 상단의…… 행수라고 들었소.”
“약초라. 그러면 블랙가드에서 쫓던 자들과 무관하지 않겠구나.”
“……혹, 어머니께서 이번 일에 관여하신 것은.”
“그건 아닐 거란다. 베네스 님께서는 독…… 크흠. 꽤나 치밀하신 분이시니. 직접적으로 창천교와 얽히진 않으셨겠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긴 했지만, 실상 베네스도 자식이 마차 사고를 당하게 내버려 두진 않았을 터.
그게 창천교의 수작이라는 소식 또한 그녀의 귀에 들어갔을 테니, 창천교는 이제 후궁의 원한을 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마법사여. 그대는 어찌 이걸 구한 겐가?”
“지노반 사령관의 움직임이 영 수상쩍어 직접 움직였습니다. 허락받지 않고 독단으로 움직인 점, 사과드립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나, 나는 의외로 결과주의인 사람일세. 그 정도로 자네를 탓할 생각은 아니야. 그보다 지노반 사령관의 움직임이 영 수상쩍다라?”
“예.”
그러면서 준은 자신이 지노반이란 인간에 대한 느낀 점을 꽤나 상세히 설명했다.
처음 그에게 접근했을 때부터, 고블린 로드를 토벌하고 이어지는 공략전, 그리고 훗날 길레느 상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줬던 점 등.
“그는 비록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야망은 있었으나, 거기에 매몰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 이곳에 유배되었다면 충분히 그릇된 생각을 할 법도 하지 않나?”
“그러기엔 그의 인생에 굴곡이 원체 많지 않았습니까?”
“쌓였다 터졌을 수도 있지.”
“그렇습니다. 하여 저는 일단 그를 시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아까 내게 사과를 한 것이구나.”
만일 그때 지노반이 준을 향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면 일을 망쳤을 것이다.
겨우 잡은 창천교 일당들이 홀라당 도망쳤을 테니까.
물론 지노반과 보탄은 그 자리에서 잡을 수 있겠지만, 기껏 준비한 거대한 그물에 비해 두 사람은 너무도 작은 물고기였다.
한편, 덱스터는 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이 남자는 황실에 뜻이 없다는 것이로군.’
평소라면 아무리 성격 좋은 덱스터라도 크게 화를 냈겠지만…… 저만큼 자기 사람을 생각하는 자다.
그런 자가, 배다른 동생의 리더라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뭐, 되었다. 이 부분은 불문으로 치도록 하마.”
“황송하옵니다.”
“아무튼. 보탄, 보탄이라. 이자를 어떻게 구슬려 봐야 할까?”
지금이라도 놈에게 꼬리를 붙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 할까?
‘그러기엔 영 아쉽군.’
아마 그랬다간 자신들이 할 일은 크게 없어질 터.
‘기껏 블랙아웃까지 내려왔는데, 뭐라도 큰 걸 건져야겠지.’
자신의 동생을 해하고 제국에 전화(戰火)를 퍼뜨릴 놈들이다.
그런 놈들은 두 손으로 직접 붙잡아 닭 목 비틀 듯 비틀어 줘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마법사여. 그대에게 한 가지 더 묻겠네. 놈들을 어떻게 묶어서 끌어올 수 있을까?”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딱 한 가지. 이건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지?”
“3황자님의 음식에 독을 탄 놈을 잡을 방법입니다.”
* * *
덱스터는 지노반과 보탄에 관해 생각했지, 아직 그들이 언급한 원독사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준의 입에서 하비에르의 음식에 독을 탄 존재가 원독사라는 말이 나오자, 덱스터가 침중해진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원독사라는 녀석에 대해 알고 있나?”
여기서부터는 말을 조심히 해야 한다.
상대는 다름 아닌 황족. 그것도 황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1황자였으니.
그런 그의 앞에서 섣불리 거짓을 고했다간 준이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마냥 떡밥만 뿌릴 수는 없잖아.’
다름도 아니고 원독사다.
게임 내에서 그렇게 도망도 잘 치고 사람 빡치게 하는 데 선수인 그놈.
이번 기회에 그놈을 잡아 죽일 수 있다면, 이 정도 위험부담은 감수해 볼 만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