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74)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74화(174/374)
175화 잡는 손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
“사령관 보직 해임입니다.”
“……그런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지노반.
준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시군요.”
사실 말이 처벌이지, 볼타인의 광석 지대는 그야말로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비록 명예롭지 못한 방법으로 물러서는 것이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가벼운 처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노반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솔직히,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기가 벅차군.”
이해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그에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까.
다만, 충격도 한 번에 받는 게 낫다는 준의 논리상,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들어 봐서 알고 있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적,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사령관님께 시간이라는 파란 약을 드려야 할지, 아니면 현실의 빨간 약을 드려야 할지 고민 중인 겁니다.”
“파란, 빨간 약……?”
“어떻게, 들어보시겠습니까?”
“뭔진 모르겠지만, 그 빨간 약이란 걸 주게나.”
“보탄. 그 사람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됐습니다.”
보탄이 처음 이곳에 찾아 온 직후,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준은 곧바로 클로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거기에 더해, 소식을 듣게 된 덱스터도 1계층에 남아 있는 나탈리에게 편지를 보냈던 상황.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보탄, 그 사람은…….”
“과거 내 부모님의 죽음을 사주했다는 것 말인가?”
“……!”
생각지도 못한 지노반의 반응에 준이 입만 뻐끔거리자, 그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잠깐 혼자 있고 싶군. 자리를 비켜 주겠나?”
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 *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본래라면 진작 마지막 순회 장소인 4계층으로 향했어야 함이 맞았지만, 이번 사달이 어디 보통 사건이었나.
두 황자가 암살을 당할 뻔하고, 창천교의 습격까지 이어진 마당이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독버섯이 등장하면서 광산은 아예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 탓에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광부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이에 대한 구제책, 그리고 커진 사건을 해결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다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준과 동료들만이 붕 뜬 시간을 보내고 있을 쯤.
다시금 지노반이 준을 불렀다.
* * *
“보탄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처음 이곳에 나를 찾아왔을 때부터였지.”
부모님의 장례식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인 적 없던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자네가 내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네.”
“지상의 블랙마켓에서 있던 일과 관련된 편지였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보탄 또한 블랙아웃과 지상을 오가며 약초를 파는 상단 소속이지 않았던가.
따라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조금씩 알아보던 중 여러 소식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상단 내에서 보탄의 입지가 커지기 시작했을 시기다.
“그가 상단 내에서 입지를 크게 키웠을 때가, 마침 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더군.”
“거기서부터 의심하신 겁니까?”
“그래. 우리 가문의 돈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는 투자 사업으로 뒷돈을 받아먹은 채 잠적했었지.”
다만, 지노반은 그 사건이 자신의 부모님과 관련이 있는지까진 확신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당시 보탄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부모님을 중심으로 모이려 했다는 것뿐.
‘실제로 보탄은 소송에 중심이 될 그의 부모님을 암살했다.’
산적의 습격으로 위장한 암살.
그것이, 준과 황실에서 알아낸 보탄의 과거였다.
“역시 그랬군. 그러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기도 했지.”
그리고 그 이야기까지 듣게 된 지노반의 반응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결국 그의 말로는 자네와 나. 둘 모두 알고 있지 않나.”
“……그렇죠.”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여태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한 가지,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무엇입니까?”
이번 사태의 진상?
혹은 창천교에 대한 정체?
그도 아니라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무엇이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이어지는 지노반의 질문은 준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나에 대한 처우가 너무도 가볍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어찌 보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었다.
비록 지노반이 이번 사건에서 혁혁한 공을 쌓았다곤 하나.
어찌됐든 대역죄인과 같은 핏줄을 지니고 있기도 했고,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창천교라는 조직을 단독으로 조사하려던 중 역으로 이용당할 뻔했으니.
거기에 그가 관리하고 있는 볼타인의 광석 지대도 이번 사태로 보통 큰 피해를 입은 게 아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 있어야 할 터.
그럼에도 지노반이 보직 해임에서 끝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자네가 힘을 써 준 겐가?”
“제가 위에 보고드린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전말 정도입니다.”
이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준이 뭘 하기도 전에 덱스터가 지노반을 옹호했으니.
“이런 식으로 기회가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군.”
“기회라 하심은?”
“내 일기장을 봤다면 알고 있을 걸세. 내가 이 검으로 무엇을 꿈꿔 왔었는지.”
사용한 흔적이 가득한 롱 소드. 그것을 뽑아 든 지노반이 부드럽게 검을 쓰다듬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긴 민망하지만, 자넨 내가 절망한 채 쓰러질 줄 알았겠지?”
“……크흠.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걱정하긴 했습니다.”
“하하. 그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네.”
“잘, 정리되신 겁니까?”
“어느 정도는. 솔직히 말해서, 내게 기사란 검사로서 걸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기사였다. 어려서부터 그것을 봐 오며 성장한 지노반에겐, 당연한 일이리라.
“때문에 검으로서 성공하겠다는 내 야망은 어찌 보면 기사로서 정상에 올라가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지.”
“…….”
“하지만 내 안에 타락한 정령이 깃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떠올렸을 때. 정말 많은 후회를 하게 되더군.”
대충 무슨 기분일지는 알 것 같았다.
그간 자신이 놓쳐 왔던 수많은 기회들이 떠올랐을 테지.
“목적은 좋았지만 수단이 잘못되었어. 오로지 검만을 추구했다면, 기사든 용병이든 하물며 떠돌이 검잡이든. 뭔들 상관 있겠나.”
“……그 말씀은.”
설마 이제 기사의 길을 포기하고, 용병으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것일까?
준이 혹시? 하는 눈빛을 띠자, 지노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자네를 보니 용병이라는 것도 참 힘들어 보이더군. 그렇지 않나?”
“……하하. 뭐, 눈치 볼 곳이 많긴 하지요.”
최근 자신의 행보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준이 흰고래 용병대를 이어받기 전에도 그는 동료들의 눈치를 참 많이도 보고 살아왔지 않았나.
물론 기사 출신인 지노반이 감히 그런 취급을 받겠냐마는.
“그렇다고 내가 평범한 용병대에 들어가기엔 용병대장이 눈치를 많이 볼 것이고, 내가 직접 용병대를 이끈다 한들, 잘할 자신이 없더군.”
그래서,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딱 한 번. 자네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해 봐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길레느 상회와 연결해 주게.”
“길레느, 말씀이십니까?”
“내 상행은 할 줄 모르겠다만, 누군가를 지키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에 깜짝 놀란 준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기사왕이란 칭호는 포기하더라도…… 그래, 수호왕(守護王) 정도는 노려봄직 하지 않은가?”
기사. 그것도 황실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을 정도로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자가 제 발로 들어오다니.
‘클로이, 그 녀석 엄청 좋아하겠는데.’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도 예의상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
벽에 걸린 제복이 아닌, 자신의 검을 바라보고 있는 지노반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런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돈에 대한 욕심이 많지만, 그만큼 사람에 대한 욕심도 많은 녀석이니 지노반 님의 선택을 환영할 것입니다.”
“하하. 그리 말해 주어 고맙네.”
“바로 편지를 보내도록 하죠.”
“빠르군. 잘 부탁하겠네, 준.”
“쾌차를 기원하겠습니다, 지노반 님.”
해가 저물어 간다.
달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홀로 남게 된 지노반은 달빛을 비추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그때와 다를 게 없군.”
* * *
준이 지노반의 사령관실 밖으로 나올 무렵.
누군가가 복도 저편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
누가 찾아오기라도 했던 걸까?
그런 의문도 잠시.
‘고용인이었을 수도 있지.’
한창 분위기가 살벌할 때 아니던가.
누군들 사령관실에서 나오려 한다면 기겁하고 도망치려 할 것이다.
그렇게 준이 향한 곳은, 덱스터와 하비에르의 숙소였다.
그곳은 얼마 전의 사태로 인해 이젠 아예 모습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천룡 기사단이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게.”
“황자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비에르 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네.”
“그렇습니까?”
“그래.”
그 정도 이야기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활약 덕분일까.
천룡 기사단도 생각 이상으로 준과 동료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아, 왔군. 지노반 경은 어땠지?”
“다행히 기운을 차린 모습입니다.”
“그런가? 하하, 다행이군. 다행이야.”
“한데, 그에게 생각 이상으로 관심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자네라면 그리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지노반 경은 이런 곳에 머물 인재는 아니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다름도 아니고 황실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기사이지 않나.
엘리트 중 엘리트였고, 인맥과 기회만 있었더라면 높은 수준의 기사단에 들어갔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해서, 내 따로 그를 기용할까 생각하고 있었다네.”
“……정말이십니까?”
설마했지만 정말 저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할 줄이야.
엘리트라곤 해도 황실에 지노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만 있겠는가?
하나 덱스터가 보기에 지노반은 꽤나 신용할 수 있는 기사였다.
‘보고에 의하면 이 마법사도 사람을 참 까다롭게 본다지. 이런 남자가 그토록 신용하는 사람이다. 실력도 괜찮고 재능도 뛰어나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한 자질을 갖게 될 테지.’
무엇보다 스스로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몇 번이고 준에게 협력하고, 별다른 확신도 없으면서 준을 믿고 움직인 남자다.
그만한 강단을 가진 기사가 어디 흔하단 말인가?
‘이런 걸 보고 드레이크 잡고 알도 먹고 레어 털고 기연도 얻는다는 말이겠지.’
[의념]이라는 스킬로 원거리에서 독을 음식에 주입하는, 말도 안 되는 위험 대상을 토벌한 것은 물론이고.이번 사태로 인해 창천교의 세력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위험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지노반이란 기사를 얻어가는 것도 충분한 수확이라고 봐야 할 터.
‘슬슬 나도 내 사람을 보다 기용하고 싶고 말이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아덴과 벤. 언젠가 자신도 그런 기사를 직접 뽑아 키워 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덱스터다.
그런 그에게 지노반은 충분히 매력적인 패였다.
그러나.
“저, 덱스터 님.”
“음? 무슨 일인가. 말해 보게.”
“그게 사실…….”
그리고 이어지는 준의 설명과, 지노반이 갖게 된 새로운 다짐은.
“……가서, 술을 대령하라.”
“…….”
생각 이상으로 1황자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 * *
-어휴.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네요…….
평소처럼 술에 찌든 광대처럼 목소리에 고저가 잘 느껴지지 않는 남자가, 독 포자로 가득한 광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정말 죽어 가는 목소리였다.
-아덴, 그 노망 난 할아범은 정말 지독하게도 강하네요…….
잠시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간 아덴. 그리고 저계층에서 ‘규칙’을 어긴 대가까지.
-정말,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마음 같아서는 이번 일도 다른 이들에게 시키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고생은 자신이 해야 했으니.
그럼에도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목표를 구해 오기 위함이었다.
-원독사……. 제 부탁을 잘 들어주었군요. 기특합니다. 짝짝짝…….
원독사.
아니, 원독사를 집어 삼킨 정령의 ‘씨앗’을 거둬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디까지 흔들어 줄지, 기대가 되네요…….
이번 일만 끝나면, 맹세컨대 당분간은 이렇게 나서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한 그는, 광산 구석에 처박힌 ‘씨앗’을 들고 자취를 감췄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