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80)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80화(180/374)
181화 슬레이어 해안섬(5)
슬레이어 해안섬에서 보내는 시간은 여러모로 알찼다.
“씨바, 됐다! 으하하핫! 됐어, 됐다고!”
그간 고생이 많았던 엘레노어는 줄곧 연습하고 있던 부여 마법을 신성 마법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고.
캉! 카가각!
“하단이 비어 있소!”
“흐윽!”
에이든은 시간이 날 때마다 천룡 기사단을 찾아가 대련을 했다.
“실력이 대단하군.”
“저게 고작 검을 잡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움직임이란 말인가?”
“저기서 저렇게 비틀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마치 짐승 같은 움직임이로군. 무척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잖아.”
뛰어난 에이든의 재능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사들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후욱…… 후욱…….”
그리고 마야는 준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마력을 고갈시켜 그릇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성능은 확실해.’
미친 듯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한 달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확연할 정도로 마력의 양이 많아졌다.
물론 엄청나게 성장했느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일종의 준비 자세 같은 거야.
-준비 자세? 그게 무슨 말임까?
-스킬북이나 마력의 총량을 늘려 주는 영약 등 같은 걸 얻을 기회가 생기면, 그 효과를 최대한으로 뽑을 수 있다는 말이지.
-원리가 어떻게 되는 검까?
-설명해 줘?
-……아님다.
미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마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복수에 점차 다가가고 있음에 자그마한 희열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멀었어. 적어도 아버지처럼 이문까진 도달해야 해.’
아니, 그 이상 강해져야만 한다.
아버지는 놈에게 패배하고 말았으니까.
꽉 막힌 줄만 알았던 부족의 기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건 모두 이 용병단에 들어왔기에 가능했던 일.
마야는 다연스럽게 자신의 단장이 있을 방을 바라봤다.
“……고맙긴 한데, 도와줄 수가 없슴다. 미안함다.”
며칠 전부터 어째서인지 무척 바빠 보이는 준을 떠올리며, 마야가 방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끄응…….”
방 안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수많은 서류들.
지난 며칠 동안 차일스가 구해 온 자료들이었다.
“괜히 지금 하겠다고 했나…….”
생각보다 처리할 양이 많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10년 동안 급격한 성장을 이룬 이들을 찾고, 직접 만나서 타락한 정령이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블랙아웃.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곳이고, 히든피스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찾아 하루아침에 엄청난 강자가 탄생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10년 사이에 쌓인 데이터는 준의 상상 이상이었고…….
“상상 이상으로 그렇게 확 떴다가 죽은 사람들도 많군.”
그들을 모조리 대조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끄응.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당장 하지 말걸 그랬나?”
어차피 몇 년 후에나 일어날 일, 벌써부터 여기에 몰두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지도 몰랐다.
“에휴. 안 되겠다. 머리를 좀 식혀야겠어.”
그러면서 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던 찰나.
똑똑.
“누구시오?”
“벨레스요.”
“……?”
라네스 마탑 출신의 마법사가 자신을 찾아왔다.
혹시 저번 대결에서 승복하지 못하고 찾아온 것일까?
‘그럼 좀 많이 실망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자, 벨레스가 기겁한 듯 뒷걸음질을 쳤다.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방안의 모습에 놀란 것이다.
“이, 이게 전부 뭐요?”
“아…… 별거 아냐.”
“전부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되어 있군…….”
실제로 준의 문서는 전부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 바빴다면 미안하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어 걱정되어 와 봤소.”
“……?”
언제는 이쪽한테 품격이 없다고 도발하더니, 이젠 걱정되어서 왔다고?
‘미친놈인가.’
이렇게 사람이 바뀌니 도리어 무서울 지경이다.
어째 눈빛이 맑아진 것 같기도 하고…….
‘……맑은 눈의 광인?’
오싹해진 준이 살짝 뒷걸음질을 치자, 들어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벨레스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보아하니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듯하군.”
“댁과의 대결 이후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오는 인간들이 많은지라.”
“아아, 그랬나. 미안하오.”
“…….”
“크, 크흠. 사실 그대와 대화를 나눠 보고자 왔소.”
“대화? 무슨 대화?”
아무리 라네스 마탑이 게임 속 스토리상 아군에 가깝다곤 하나, 준은 여전히 벨레스가 이렇게 다가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그대와 마법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소!”
“토론?”
“그렇소. 나는 뛰어난 마법사라면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믿어 왔소. 하지만, 그대의 마법을 본 직후 나의 생각이 오만했다는 깨달음을 얻었소.”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 사정은 왜 말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이전처럼 건방지게 나오는 것도 아닌지라, 용병으로서의 몰상식함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 그대의 마법은 내가 봐 왔던 그 어떤 마법보다도 아름다웠소. 최소한, 내가 보고 이해한 마법 중에서는.”
“그러니 마법 토론을 하고 싶다?”
“그,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진정성이 없겠지만…… 일전에 내가 그대에게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소.”
이걸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머리를 식히려던 참이었지.’
거기에 준도 마탑의 마법에 대해서는 제법 관심이 있었다.
다름도 아니고 전투 마법에 특화된 라네스 마탑이지 않은가.
눈앞에 있는 마법사의 자질도 썩 나쁘지 않았다.
벨레스가 가진 재능이야 앞서 대련을 통해서 겪어 보기도 했고, 무려 황족이 둘이나 찾아온 이곳에 마탑을 대표해서 찾아온 인물이었으니.
“흠……. 뭐, 해 봐서 나쁠 건 없겠군. 일단 앉아라.”
“……!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처음에는 가볍게 대화나 나눌 요량으로 시작한 만남.
그러나 벨레스는 준의 생각 이상으로 유용한 인물이었다.
마법이 아닌, 정보 쪽에서.
* * *
한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법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가던 중이었다.
“……해서, 내 마법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효율을 극대화 시킨다, 라는 거야.”
“대단하군! 솔직히 부여 마법을 이런 식으로 쓴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소. 일반적인 마법 스크롤이 아닌, 다른 마법과 연결시키기 위한 마법이라니. 마치 정교한 기계 장치처럼 느껴질 정도요. 만드는 것도 굉장히 어렵거니와,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메모라이즈(Memorize)]라는 마법에서 착안한 거지.”
“과연. 새삼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구려.”
“……갑자기?”
“그야 그대는 이렇게 매일 같이 마법에 매진하고 있지 않소? 그에 비해 나는 마법사로서 마법에만 몰두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겠다고 연회에서 한참 시간을 버리고 다녔으니…….”
비록 저렇게 말했으나, 벨레스도 마법에 투자하는 시간은 여타 마법사들 못지않았다.
오히려 재능이 있는 만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야말로 마법을 사랑하는 마법사였으니.
“연회라…….”
“이번에도 그렇소. 어제 저녁에는 볼레틱 자작과 대화를 나누다 하루를 다 보내고 말았지.”
“볼레틱 자작하고……?”
“그렇소. 그는 평소 수속성 마법에 관심이 제법 있던 모양이더군. 내 빙속성 마법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그에 관한 질문을 제법 많이 했었소.”
“음……. 그런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식의 대화는 영양가가 없더군. 할 때는 즐거웠는데 말이지.”
거기까지 듣던 준은 머리 위로 조명이 켜지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을 활용해서 볼레틱 자작과 관련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슬슬 입에 발동이 걸렸다.
“나라고 해서 항상 마법만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근육도 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해.”
“음…… 여유를 가지라는 거요?”
“그래. 취미를 가져도 좋고, 다른 곳에 몰두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가장 좋은 것은 명상이겠지만……. 네가 보기에 어제 볼레틱 자작과의 대화는 지루하기만 했나?”
“그건 아니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예술에 제법 관심이 있소. 특히 어제 그가 보였던 죽은 동생의 초상화는 내게 여러모로 많은 감동을 주었지.”
“……죽은 동생의 초상화?”
볼레틱 자작에게 동생이 있었나?
이건 꽤 눈여겨볼 만한 정보다.
“그렇소. 볼레틱 자작의 남동생은 여러모로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지. 열셋이라는 나이에 대단한 재능에 눈을 뜨고,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으니.”
다만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지고 말았다고 한다.
기사가 되기 위한 수행 중,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비운의 천재였지. 죽기 전까지 여러 추문에 휩싸여 있었으니.”
“추문이라면?”
“혈통과 관련된 이야기였을 거요. 아버지가 다르다고 했던가.”
“……그건, 좀 타격이 크겠군.”
“그렇지. 그래도 만약 그런 추문을 이겨 내고, 쭉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쯤 꽤 유명한 기사가 되었을 거요. 외모 또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했으니.”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했던 모양인데.”
“한번 보시겠소?”
그러면서 벨레스가 현상 기록기를 꺼냈다.
“……이걸로 찍은 건가?”
“그렇소. 자작의 눈을 피해 몰래 찍어 두었지.”
“어째서 이걸 몰래?”
“자작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소.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예술품을 평생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소!”
역시 미친놈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현상기록기를 재생시켰고.
그것을 본 준의 눈은…….
“……!!”
더없이 커졌다.
“이 그림은……!”
“하하. 그대도 알아보는 거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오. 화가가 누구인지 대단히 궁금할 정도로. 아마 내 생각에는 에멜리 가문의…….”
뜬금없는 벨레스의 추리가 시작되었지만, 그중 단 한 마디도 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준은 오로지 현상 기록기에 재생되고 있는 그림에만 집중했다.
[뛰어난 기억력]을 쓸 필요도 없이, 게임 속에서 봤던 그림이었기에.‘왜…… 보스몹을 죽이면 나오는 장식용 아이템이 여기 있는 거냐?’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볼레틱 자작의 동생.
그가 죽은 것은 대략 10년 전의 일이다.
그 사실이 떠오르기 무섭게 준이 널부러져 있는 서류들을 헤집었다.
갑작스러운 준의 행동에 당황한 벨레스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워낙 심각한 표정의 준을 보곤 조용히 고개만 방 밖으로 나갔다.
무언가 마법적인 깨달음이라도 얻었다고 오해한 듯했다.
벨레스가 나갈 때까지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자료를 찾길 한참.
“찾았다.”
정말 벨레스의 말처럼, 정확히 10년 전.
볼레틱 자작의 동생과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볼레틱 자작……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냐?”
게임 속에서 이곳 슬레이어 해안섬의 보스 몬스터는 총 두 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인간형 몬스터에 해당되는 녀석을 죽일 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벨레스가 보여 주었던 초상화다.
‘인간형 몬스터……. 그럼 높은 확률로 10년 전에 죽었다던 볼레틱 자작의 동생이 여태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럼 그 동생은 어디에 숨겨 둔 걸까?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