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95)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95화(195/374)
196화 알을 깨는 새
처음 하비에르가 자신의 세상을 제대로 인지한 것은, 에이든과의 만남 때부터였다.
에이든.
에이드리안 룬 와이본 아르시오.
‘왜 태어났니’라는 뜻의 ‘와이본’을 지닌, 출생 자체가 황실의 오점인 사람.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황실에서 눈치를 봐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그 어떤 권력도 갖지 못한 채 유배지로 내던져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비에르. 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부터가 아우터 출신의 여인이었고. 그 어떤 배경도 없이 황실에 들어서지 않았던가.
어디를 가도 적이 넘쳐나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베네스가 하비에르에게 과한 기대를 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타고나길 소심했던 하비에르에게 그것은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혐오하며 상처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상처뿐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하비에르는 어릴 적 친구였던 에이든이 반갑기도 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위로를 얻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저리 밝단 말인가.’
그러나 하비에르가 본 에이든은 자신처럼 어둡지도, 세상을 피곤하게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머지않아 찾을 수 있었다.
올려 묶은 검은 머리카락의 실버블루톤의 눈을 가진 마법사.
그가 에이든의 정신적 지주였다.
“처음 내가 용병대에 들어갔을 때, 날 도와줬던 사람이 바로 선배셨어.”
모든 것이 어리숙하기만 했던 시절.
당시의 에이든은 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침을 받았다.
검술에 대해서는 딱히 말해 줄 게 없었지만, 다른 동료들과 포지션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라든가.
블랙아웃 내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든가, 이것저것.
용병대가 전멸하기 전에도 준은 말 잘 듣고 따라오는 에이든에게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용병대가 전멸했을 때도, 날 구해 준 건 선배셨지.”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준에 대해 설명하는 에이든은 정말 빛나 보였다.
한때는, 잠깐이지만 질투가 나기도 했다. 자신에겐 왜 저런 사람이 없었을까.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니.’
에이든은 준을 만났기에 변한 게 아니다.
그가 직접 자신을 감싼 세상의 벽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왔기에 준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나는, 나는 어떻지……?’
어머니. 베네스.
아아, 불쌍한 내 어머니시여.
자신의 처지보다 어머니를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했다.
그럴 수밖에.
바깥세상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하비에르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가장 확실한 방어 기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 또 그런 어머니를 의지하고 있는 여러 아우터들을 위해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일이라 애써 생각했다.
또다시 가면을 쓰고, 그저 지친 심신을 에이든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냈다. 그거면 족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 왔다.
그러던 중, 또다시 바깥에서 그의 요람을 두들겨 왔다.
‘지노반 사령관.’
승진의 불모지이자, 유배지라고도 불렸던 3계층, 볼타인의 광석 지대의 사령관.
처음에는 그저 우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목숨을 걸고 큰형님과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던가.
다만 그의 존재가 메말라 버린 하비에르의 심정에 무언가 변화를 줄 정도였냐고 한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황실의 기사들만 해도 대의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사정을 듣게 된 그날. 하비에르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날은 원독사의 사후 처리를 하느라 주변이 한참 분주했던 날이었다.
그럼에도 딱히 할 게 없던 하비에르는 지노반의 몸 상태를 볼까 싶어 그의 방으로 찾아갔었다.
그때, 방 안에서부터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 그날 밤. 연병장에서 나는 결심했었지. 언젠가 이 검으로,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겠다고.
한 남자의 다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하비에르는 괜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는 자신처럼 어쩔 수 없는 목표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지노반의 말은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려 주었다.
-목적은 좋았다네. 하지만 수단이 잘못되었어. 오로지 검만을 추구했다면, 기사든 용병이든 하물며 떠돌이 검잡이든. 뭔들 상관있겠나.
가히 번개가 쳤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 하비에르를 덮쳤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진실로 이끈 듯한 느낌.
그에 둘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도 방 앞에서 멈춰 서 있다가, 준이 나오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도망쳤다.
그때부터 하비에르는 지노반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봤고, 그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수단이…… 잘못됐다고?’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어머니의 말을 의심한 적 없었고, 그럴 용기조차 없던 하비에르에게, 처음으로 ‘의심’이란 단어를 심어 준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선 아우터들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신다.’
모든 아우터들의 희망이었고, 그토록 젊고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이렇게 표독스러워질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자신이 반드시 황좌에 앉아야만 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삶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 방법 말고는 다른 건 없는 걸까?
정말 그러할까?
한 번 싹트기 시작한 의심은 좁았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바꿀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고찰하고 고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또다시 어머니라는 그림자가 하비에르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비에르를 황좌에 앉히기 위해 베네스가 어떤 삶을 살아왔던가.
이제 와서, 자신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바뀔까.
두려웠다.
어머니의 변할 시선도 두려웠고, 그런 어머니 앞에 서게 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아아. 나는 이토록 나약한 존재로구나.’
하나의 명확한 답도 내리질 못하고, 스스로가 품은 의문조차 확신을 갖지 못한다.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런 자신이 과연 황제의 자리에 어울릴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어머니가 떠올라 그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자신이 비참했다.
그 모든 것이 어지럽게 어우러져,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던 그때.
‘물어보자.’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느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스스로 더 망가지기 전에, 아픈 자신을 누군가가 돌봐 주길 바랐기 때문일까.
그 끝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마법사.
준이었다.
에이든도, 지노반도 그를 만나면서 삶에 변화를, 마음의 평화를 가졌으니까.
하비에르는 그가 자신을 바꿔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 *
“그래서, 그날 그대에게 찾아갔던 거요.”
“……그러셨습니까.”
현재로 돌아와.
갑작스럽게 병문안을 온 하비에르.
그는 에이든이 함께 있는 이 병실에서 자신이 그간 겪어 왔던 고민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마치 신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이 짊어진 죄를 내뱉는 사람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 것이다.
전투로 인해 다쳐서 쓰러진 두 사람 앞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 압박을 토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제정신이었다면 환자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처참하게 구겨져 있는 하비에르의 표정은, 병상에 누워 있는 준이나 에이든보다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만큼 그가 심리적으로 몰려 있다는 말이었고.
준과 에이든. 두 사람 모두 그런 하비에르를 이해했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와서 이야기해 준 게 어디냐. 진짜 고맙다.’
오히려 준은 감사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안 그래도 준에게 하비에르는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
지금이야 창천교의 수작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다곤 하나.
그래도 여전히 창천교는 하비에르가 먹음직스러워 보일 터.
거기에 아직까지 베네스라는 존재가 암약하고 있는 만큼, 완전히 마음을 놓기도 어려웠는데.
그런 하비에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과 에이든에게 고민을 토로하러 왔다.
이는 정말 큰 변화였고, 준의 마음속에서 하비에르의 위험도가 꽤 낮아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먼저…… 생각하신 것처럼. 하비에르 님께서 황좌에 앉지 않으셔도 아우터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솔직히 말해서, 황좌의 자리에 앉았다고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국은 넓다.
그냥 넓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전 인류의 통합을 이룬 최초의 국가.
당연히 대륙의 범위가 아닌, 전 세계적 범위다.
그런 국가에서 터지는 문제가 어디 한둘일까?
그리고 그 모든 문제가 하나하나 황제를 통해서 해결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제국은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 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귀족들의 존재다.
귀족이라는 자들이 그저 혈통 하나만 믿고 자리에 앉아 아랫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만 내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그런 인간들도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 얼마 가지 못해 귀족이라는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만큼 제국의 귀족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봐 왔던 귀족들 대부분은…….”
“하하……. 하비에르 님. 제 고향에선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입니다.”
“으음……?”
“뭐, 지금 상황에 쓰일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황실의 귀족들이 하는 일이야, 황실의 일에만 몰두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더 밖을 보시면 황실의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의무를 지닌 귀족들은 많고 많습니다.”
모든 귀족들이 어떻게 황실의 정치에만 신경을 쓰겠나.
그리고 황실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수도와 거리가 먼 대부분의 귀족들은 거의 독립한 수준으로 황실하고 연이 없지 않던가.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정에 맞춰 사건을 해결하고, 자립심을 기르고 있습니다.”
“자립심…….”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일 국가인 제국에서 자립심을 기르는 것은 언뜻 보면 쿠데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제국은 그런 이들의 통제를 최소한으로 낮췄다.
이 또한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너무 강력한 통제는 때론 반발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자신들의 참견이 없더라도 잘 이겨 나간다면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행정적, 실질적으로 모두 이득이라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예. 그리고 하비에르 님도 가능한 일이십니다.”
“내가……?”
“예.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십시오. 그게 굳이 황제라는 자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한들, 하비에르 님께서 오로지 아우터들만을 위해 고민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당장 그의 아버지만 하더라도 블랙아웃 혹은 지상에 존재하는 아우터들을 제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의 계획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이유는, 황제라는 자리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방법을 찾아보면 많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비에르 님도 그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답이라면.”
“벨레스. 다름 아닌 라네스 마탑의 마법사인 그에게 접근하신 이유가 있으시지요?”
“……!!!”
그 순간 하비에르는 놀란 토끼 눈으로 준을 바라봤다.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는데.
눈앞에 있는 이 마법사는 귀신같이 알아차렸으니까.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