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96)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96화(196/374)
197화 각자의 시간(1)
황좌에 앉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
역대 제국에서 그 규율이 깨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황제가 되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모두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제국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크나큰 유혈 사태도 여러 번 반복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온건하게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때론 여생을 그저 조용히 살아가기도 했고.
누군가는 수도와 먼 곳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기도 했으며.
이곳, 블랙아웃으로 내려와 제국의 골칫거리와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블랙아웃의 가혹한 환경 특성상 황족의 이름은 버려야만 했으나.
그 선택지를 고른 이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다름 아닌.
“라네스 마탑의 마탑주. 라네스.”
“…….”
준의 말에 하비에르는 말 하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라네스 마탑주의 본명은…… 하하. 굳이 입에 담긴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녀의 과거 이름엔 ‘에이드리안’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들어갔을 터란 점이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은 대대로 이어져 온 황족의 퍼스트 네임이다.
“라네스 님은 전전대 황좌쟁탈전에서 탈락하신 분이셨죠. 사실, 당시 그분의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반강제적인 일이었습니다만.”
당시의 라네스는 어려도 너무 어린 나이에 황좌쟁탈전에 들어가게 됐고, 현명했던 그녀는 곧바로 포기 선언.
당시 황제의 자리에 가장 가까웠던 전전대 황제에게 지지표를 던진 후, 깔끔하게 황실을 나와 마법 공부에 몰두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외부 활동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그마저도 모자라, 그녀는 라네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그 이름으로 마탑까지 일으켜 세웠다.
이것이 게임 내에서 라네스 마탑이 그토록 황실에 우호적인 이유였다.
“나름 그분과 만나 볼 생각이 있으셨던 것 아닙니까?”
“……마, 맞소. 그런데 그대는 도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세간에는 비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아예 찾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라네스와 관련된 정보는 알 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그저 괜히 입 밖으로 내 봐야 좋을 게 없으니 쉬쉬하고 있을 뿐.
“그분을 직접 만나 보십시오.”
“그, 그러고 싶었소. 하지만 어머니께서 절대 용서치 않으실 텐데.”
“하하…….”
그 말에 준은 살짝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또 무슨……?”
“허락보단 용서가 쉽다.”
“…….”
“설마 베네스 님께서 하비에르 님을 내치시겠습니까?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식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
“그리고 라네스 님을 직접 뵙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 뒤에 베네스 님을 설득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런 건가…….”
“예. 하비에르 님. 아무리 고민하고 고심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벽에 부딪히십시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벽에 한 번 부딪히고 넘어진다 해도 망가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하비에르 님은 아직 젊지 않으십니까.”
그러면서, 준은 자신의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 그래도 베네스 님께 제가 이런 말씀을 올렸다는 건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하하.”
그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에, 하비에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하비에르가 저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방을 나선 하비에르.
그 모습을 본 에이든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 속마음을 다 아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아니, 오히려 그럼 무섭다고.”
“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아무튼, 이번 사태도 어떻게든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밖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만요.”
그 말에 준이 고개를 돌려 [체크 포인트]의 풍경을 바라봤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임에도 섬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그에 혼비백산이 되어 탈출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니 살짝 희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늘은 밝은데 비는 미친 듯이 내리니까 더 그런 것 같네.’
실제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멀뚱히 서서 그런 하늘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도 제법 보였다.
“이번 일정이 끝나면 어느 정도 휴식이나 하자고.”
“예……. 최근 꽤 바쁜 일정이었죠.”
이번 임무만 하더라도 올해 블랙아웃 시즌의 절반 가량이 소모됐다.
의뢰를 받은 시점도 몇 개월 지났던 때라, 이제 남은 시즌은 채 4개월도 남지 않은 때였다.
이제 와서 5계층으로 향하기도 애매한 시간.
괜히 저번 시즌처럼 뭐 하러 나갔다가 아슬아슬하게 복귀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뭘 하는 게 좋겠습니까?”
“글쎄.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준이야 할 일은 차고 넘쳤다.
아직 보완이 필요한 마력 유동체도 그렇고. 그가 계획 중인 하위 계층에서부터 흰고래 용병단의 영향력을 넓히는 작업도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클로이가 해결해 주겠지만, 준이 직접 관여하기 시작하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터.
‘최근 창천교의 행보를 보면, 분명 필요한 일이긴 해.’
무척 조심스러웠던 게임 내 행보와 달리 지금은 굉장히 파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대응하려면, 밑에서부터 튼튼하게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뿐인가?
당장 6서클에 오른 만큼, 스스로를 되돌아 볼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에이든이나 다른 애들의 일정이 좀 아쉬운데.’
무려 5계층에서 활동이 가능한 동료들을 마냥 묵혀만 둘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각자 따로 수련하라는 것 또한 용병단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면 6계층으로 향할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올해 막 5계층에 들어섰을 뿐이고, 가 본 5계층도 연금술사의 도시 헤 드라반과 모래바람 언덕 정도이지 않나.
보다 색다른 5계층을 탐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던 와중.
“어이구. 환자들이 있는 방 치곤 냄새가 나쁘지 않구먼.”
“어!”
폭우가 내려치고 있는 방의 창문이 덜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표표한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도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사내.
검혼 아덴이었다.
“허허허. 다들 표정이 괜찮은 것 같아.”
“아덴 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비바람이나 피하자고 온 걸세.”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하는 말이었지만, 준은 그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아무렴. 무려 제국의 검이라 불렸던 사람인데.’
자리가 자리인 만큼,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 것일 터.
실제로 아덴은 에이든의 몸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곤 아주 뻔뻔한 얼굴로 준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이 아이를 좀 데리고 가도 되겠느냐?”
허락을 구하는 물음이었지만, 어투는 거의 통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용병단장으로서 쉽게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준이 물었다.
“데리고 간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어차피 너희도 남은 시즌 동안 일정이 애매할 것 같더구나. 늘그막에 할 것도 없는데, 이 아이 좀 가르쳐 보면 어떨까 싶다.”
“예, 예?!”
당연히 의문을 품으며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사람은 에이든이었다.
“그게 무슨…….”
“내 지금까지 지켜보니 네가 가진 재능이 썩 나쁘지가 않더구나.”
“가, 감사합니다.”
“감사까지 받을 건 아니고……. 그 말은 오히려 자네가 들어야지.”
“…….”
아덴은 이미 에이든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준과 에이든.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에 새삼 놀라지는 않았다.
“테어딘. 그 친구에게 들었다. 그 도살승인지 땡중인지 하는 녀석과의 전투 마지막에, 이상한 힘을 썼더랬지?”
“아.”
과연.
황실 직속의 기사단, 블랙가드를 이끄는 사람답게 테어딘은 에이든이 마지막에 썼던 황족 특유의 마력을 바로 알아봤다.
거기에 8레벨을 앞두고 있는 실력자인 만큼 에이든의 마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닫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아덴을 찾아갔던 것일까.
“그래서인 게다. 그리고 테어딘, 고 녀석도 같이 갈 게야.”
“저, 저 같은 사람이 함께 가도 괜찮은 겁니까?”
에이든이야 물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아덴의 위치가 위치이지 않은가.
모든 검수들의 우상이었고, 제국에는 그에게 검 한 번 섞어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엘리트로 자존감이 높은 황실 소속의 기사들조차 그러할진대.
에이든은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 채로 준을 바라봤다.
“그, 선배는…….”
“이잉? 저 친구는 같이 와 봐야 할 것도 없을 텐데.”
아쉽게도 아덴은 준까지 따로 데려갈 마음은 없는 듯 보였다.
‘이미 혼자서 잘하고 있구만.’
딱히 준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덴이 보기에도 준은 혼자 잘 성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아하니 이번 전투에서 6서클에 다다른 듯했다.
거기에.
‘고것이 이런 인재를 놓칠 리가 없지.’
준에게는 이미 임자가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덴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뭐, 때로는 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도움이 될 게다. 바로 옆에 있기에 알지 못했던 점을, 오랜만에 보면서 깨닫는 법도 있을 테니까.”
“아.”
그럼에도 아직 고민인 걸까.
에이든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에 겨운 것 같았지만, 답은 준이 내주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엇.”
“에이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이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란 걸.”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너도 느꼈지? 도살승과의 전투에서.”
“…….”
다시금 그때가 떠오르자, 에이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직 제 실력이 도살승에게 미치진 못했습니다.”
블랙아웃에 온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하는 말치고는 아주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힘이 약해서 동료를 지키지 못하는 것보단, 오만하고 발칙하게 사는 게 훨씬 나았다.
“이번 기회에 또 벽을 깨부수고 와.”
“……그럼 바람의 정령은 어떻게 합니까?”
“아, 걔? 뭐,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번에 힘도 많이 써서 잠을 좀 길게 잘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해.”
안 그래도 준 또한 바람의 정령에게 보다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달리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우선순위가 조금 밀려 있었지만, 준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내 서클에 풍속성도 깃들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기왕 이렇게 시간이 생긴 거, 관련된 마법이나 알아볼 참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마. 테어딘, 그 친구도 데려가야해서 할 일이 많겠어.”
“아, 알겠습니다! 그…… 정말 감사합니다. 아덴 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허헛. 그런 얘기는 훈련이 끝나서 하게나. 에잉. 다른 녀석들은 올 때랑 갈 때랑 영 반응이 틀리더라고.”
괜히 서늘해지는 말을 남긴 채, 아덴이 떠났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19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