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199)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199화(199/374)
200화 라네스(1)
“그런 꼴이라고요……? 다시 말해 보시겠어요, 이 시팔놈아?”
남자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기껏 새로운 그릇을, 그것도 전 인류를 통틀어 봐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그릇을 발견해서 온갖 연락을 다 취해 봐도 요지부동이었던 놈이.
자신이 실패하니까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만약 저놈까지 나섰더라면 이야기가 달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자의 반응에도 상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과거 우리가 자리를 비워 멋대로 행동했을 때 네놈이 했던 짓을 잊은 건가?”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요, 개자식아?”
“품위 떨어진다.”
“하, 진짜…….”
성격 같아서는 저놈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공간을 떼어다가 대륙 반대편으로 보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아쉽게도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무리했기 때문이다.
상대도 그것을 알아본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놈이 그 정도로 ‘규칙’을 어길 상대가 있었나?”
“개자식님아. 제가 보낸 요청서도 안 읽었어요?”
“안 읽었다. 그럴 시간 따윈 없었으니.”
“와.”
그냥 다 때려 치고 죽여 버릴까.
그런 욕구가 순간 치솟아 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 대신 손에 쥐인 힙 플라스크를 내던졌지만.
상대는 태연하게 그것을 받고는 뚜껑을 따 내용물을 마셨다.
“흠. 썩 마실 만하군. 과거 폐하께서 내게 하사해 주신 것만큼은 아니지만.”
“지랄 말고 내놓기나 하세요.”
“그러지.”
그러면서 상대는 주변에 적당한 수정 위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입고 있는 검붉은 제복 때문일까, 사방에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이 거울처럼 빛나는 수정들에 비춰 주변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시팔놈이?”
진지한 얼굴로 개소리를 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혈압이 올랐으나, 사내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덴. 그 늙은이한테 당했어요. 그 외에도 ‘규칙’을 어긴 대가도 치르고 있고요.”
“검혼 아덴? 제법 쓸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 만약 과거에 만났더라면 당시 내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인물이야. 하지만 그대가 그와 직접 마주할 필요가 있었나?”
“최근 물밑에서 작업 중인 것들 몇 개가 허사로 돌아갔어요. 특히 황족에게 수작질하던 게 걸려서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렸죠.”
“그건 꽤나 뼈 아픈 일이었지.”
“뿐만 아니라, 정령을 폭주시키는 연구도 많이 지체됐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 직접 움직였다는 건가?”
거기까지 듣던 제복의 남자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 그렇게 급한 거지?”
눈앞에 있는 사내는 평소 그렇게 급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벌써 수백 년이란 시간 동안 인내해 온 인물이지 않은가.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저렇게 성급히 움직인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이라고 해야할까요.”
“감이라.”
들려오는 대답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대충이었지만.
제복의 남자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계에서 온 그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군.”
“하여간 그래요. 제가 직접 움직이지 않았어도 황실에선 이쪽의 존재를 제법 눈치챘을 것 같고요.”
“원인은?”
“한 마법사…… 때문이라고 해 두죠.”
“마법사?”
금시초문이라는 남자의 반응에 사내가 주변에 던질 게 없다 두리번 거렸다.
“새로운 그릇이요, 이 시팔놈아! 내가 그쪽에 몇 번이나 정보를 넘겼다고 생각하세요?!”
“너무 그렇게 반응하진 마라.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바쁘니까. 너도 알지 않나.”
“그래서 나 혼자 움직인 거잖아요.”
“그리고 실패했지.”
“개새끼가?”
“충견을 우습게 말하지 마라.”
“그럼 씹새끼라고 하죠.”
“음.”
그러면서 제복의 남자가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튼, 너의 실패로 인한 여파가 적지는 않다. 이쪽도 작전에 속도를 높여야겠군.”
“그러시던가요. 그러다 저처럼 대차게 망하지 그러세요?”
“난 너와 다르다.”
“하.”
과연 그럴까?
조직의 입장을 생각하면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일이나, 눈앞에 있는 남자의 싹수를 보면 도저히 응원은 못할 것 같았다.
“아무튼 몸이나 신경 써라. 해야 할 일이 많다.”
“후우…… 이젠 욕할 기운도 없네요.”
“잘됐군. 그래도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어봐야겠다. 새로운 그릇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준. 흰고래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인간이에요.”
“기억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복의 남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사내는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래도…… 아예 실패만 한 건 아니라 다행인가요.”
손실이 가득한 뼈 아픈 결과였지만. 그래도 제법 쓸 만한 연구 성과는 건졌다.
사내는 거기에 만족하기로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라네스.
준이 게임 내에서 봤던 라네스는 여러모로 호탕한 성격의 여인이었다.
엘레노어가 나이를 먹고 조금 더 연륜이 쌓이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네가 그 소문의 마법사로구나.”
그런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자신의 제자인 벨레스와 함께.
“……라네스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음…….”
잠깐 사이 준이 라네스를 관찰했던 것처럼.
라네스 또한 준을 관찰했다.
다만 준과 달리 라네스는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준을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곁에 선 벨레스를 바라봤다.
“그는 훌륭한 마법사입니다. 스승님.”
“알 것 같구나. 그러니 잠깐 밖에서 기다리거라.”
“예?”
아니…… 이곳까지 기껏 안내했는데 바로 축객령이라니.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벨레스는 감히 자신의 스승에게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벨레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숙소 밖으로 나가자, 라네스는 자연스럽게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
그러나 그 짧은 사이에 준은 주변으로 퍼지는 마력의 파동을 느꼈다.
어찌나 은밀하고 동시에 자연스러웠는지, [마신지체]를 지닌 준이 아니었다면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너도 자리에 앉아라.”
“……예.”
“그래, 보고로 들었을 때와 달리 직접 눈앞에 보니까 알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오랜만에 보는구나. 데미안의 제자야.”
“……!!”
순간, 준의 몸이 굳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 정도로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은 것은.
“뭐, 그 모습을 보니 둘의 사이가 그리 좋게 끝난 것 같진 않구나. 사실 너의 목에 걸린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노릇이지.”
“스승의 언령에 대해 아시는 겁니까.”
“모를 수가 없지. 그 녀석의 고약한 성격이 그대로 담겨 있는 마법이거늘.”
“…….”
“너무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아이야. 벨레스도 그렇고, 샤일록도 그렇고…… 너에게는 빚을 진 게 제법 있단다. 굳이 어디 가서 떠벌릴 이유가 없지.”
“그렇습니까?”
“그래. 네가 가진 그 특별한 체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준에게 게임 속 라네스의 정보가 없었더라면.
준은 지금 이 순간 라네스를 적으로 인지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여간 시달린 게 아니구나. 하기야, 그러니 그만한 실력을 갖고도 탑외 출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준은 라네스라는 여인을 인정하고 또 존중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달갑지 않은 주제로 오래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대놓고 주제를 돌렸으나, 라네스는 그럴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흥미로운 마법사는 언제나 내 관심 주제에 있단다. 벨레스가 아주 오두방정을 떨더군.”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너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은 아이다. 그래도 여타 다른 멍청한 녀석들보단 나은 편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정 관념을 갖기도 하지만, 때론 열린 시야로 주변을 보는 아이니까.”
“그런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준에게 품위가 없다느니 뭐라느니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걸더니, 패배하기 무섭게 결과에 승복하고 줄곧 준을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여러모로 인상 깊은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만큼은 아니다.”
“갑자기 무슨…….”
“분명 재능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뛰어난 아이지만…… 아이야. 너에 비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이로구나.”
“아끼는 제자라고 들었습니다만. 평가가 너무 박하신 것 아닙니까.”
실제로 벨레스가 저 말을 들었더라면 오열했을 만도 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억지로 칭찬하거나, 그 아이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어.”
“예…….”
은근히 라네스와의 만남을 기대하긴 했는데, 어째서인지 대화하면 할수록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아까의 주제로 심력이 다 소모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지금이라도 마탑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 거냐?”
“예. 제 체질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너의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늘이라면 충분합니다.”
“과연. 너는 야생화로구나.”
그렇게 말하곤 잠시 생각에 잠긴 라네스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최근 너에게 시간이 남는다고 들었다. 잠시 나를 따라와 배우는 건 어떻겠느냐.”
“그것마저도 부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비록 라네스 마탑이 정통 마법사들에게 품위 없다는 소리를 듣긴 하나.
사실 그런 전통 마법사들 대부분이 라네스 마탑주보다 실력에서 뒤처지지 않던가.
그런 그녀가 직접 찾아온 것은 원체 재능 있는 마법사를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직접 끌고 다니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전투 마법사로서 그녀는 정말 엄격한 스승이었고, 철저한 절차를 밟아 가며 제자들을 실전에 투입시킨다.
비록 실력에 따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 한 번도 그 규칙을 어긴 적이 없던 그녀가, 직접 준을 데리고 다닌다라.
마법사 사회가 준의 존재에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을 일이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
그리고 라네스는 그런 준의 심리를 단심에 꿰뚫어 봤다.
“네가 걸어 온 행보와는 달리, 그쪽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구나. 이유가 따로 있는 게냐.”
“굳이 물어보지 않으셔도 알지 않습니까.”
준은 자신의 목에 걸린 초커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스승이란 작자가 제 심장을 노렸습니다. 볼카토르닉 마탑도 마찬가지지요.”
“호오.”
그러나 라네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준이 말한 저 두 개의 마탑은 모두 몰락한 곳이었으니.
고작 한 명의 마법사가, 무려 두 개의 마탑을 몰락시켰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두 마탑 모두 라네스 마탑과 비교하면 상당히 빛을 바래는 곳이긴 했지만.
그만큼 준은 자신의 비밀을 지켜 왔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내게도 적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무 성급히 접근한 것일까.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평소에도 제자들에게 한 소리 듣지 않았던가.
언젠가 그 막무가내 성격 때문에 큰코다칠 거라고.
당장 황실의 눈치도 무시하는 그녀의 성격상 그럴 리가 있겠냐며 비웃었는데.
눈앞에 있는 마법사가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내가 너무 단도진입적으로 말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자신에게 ‘적의’마저 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라네스가 단호한 성격이라지만 눈치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좋은 사람이다.
무려 황좌쟁탈전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이렇듯 마탑까지 일으켜 세운 여인이었으니.
‘내 성격이 싫다기보단…… 그저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체질 때문에 저러는 것 같군.’
오히려 상대는 자신의 단도진입적인 성격 덕분에 이렇게나마 상대해 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 굳이 이쪽에서 자세를 바꿀 필요는 없다.
라네스가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따라올 테냐?”
8서클의 대마법사가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준의 눈이 조금은 커졌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