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24)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24화(224/374)
225화 북부의 재앙(5)
성으로 돌아오니 다행히 이쪽 또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듯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카밀로 백작이 부드러운 미소로 준과 동료들을 환대할 리 없었다.
“큰일을 해 주었소.”
“일 처리가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이지 백작은 기쁜 듯 보였다.
이는 이상한 일이다.
본래 피난민이란 존재는 그리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중에 친인이 있다면 반가운 일이겠지만, 보통은 식량을 축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당연히 걱정과 근심도 늘어났어야 할 터.
그럼에도 백작의 표정이 이토록 밝은 이유는, 준의 마법 덕분이었다.
누가 믿을까.
모두가 얼어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피난민들이, 머리 위로 환한 태양을 짊어지고 도착했음을.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일 정도였고,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진짜 태양이 그들 머리 위에 섰을 땐 누군가 성호를 그렸을 정도였다.
“그대의 마법 덕에 성내 사기가 나쁘지 않네.”
“이 또한 백작님께서 현명히 대처하셨기 때문입니다.”
준의 활약도 물론 컸지만.
어쨌거나 이곳의 정신적 지주는 다름 아닌 카밀로다.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차분히 시민들을 위무하는 모습은 준에게도 여러모로 뜻깊게 보였다.
‘게임 내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지.’
창천교의 수작에 의해 제국이 전쟁의 화마에 뒤덮일 땐 모두가 서로를 증오했다.
지금 카밀로의 모습을 보면 꼭 그런 미래만이 있진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이 떠올랐다.
“아무튼…… 이제부터가 중요할 것 같군.”
“그렇습니다.”
준과 동료들이 떠나 있던 밤에도 침공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많은 5천이란 숫자가 쳐들어왔다고 한다.
“놈들의 절반은 밖에서 정리했고, 나머지는 공성전으로 치러졌다네. 아주 무식하게도 돌진하더군.”
“도중에 큰 덩치의 몬스터는 없었습니까?”
“비르타넨 경의 보고에 있던 몬스터인가.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네.”
“그건 다행이로군요.”
가능하면 놈은 자신이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라네스 마탑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최소 5일.
그때까지 성벽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다만…… 기쁜 소식만 전할 수는 없을 것 같군.”
어느새 카밀로가 진중한 표정이 되어 방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방금 막 눈보라를 뚫고 온 듯한 카일러가 서 있었다.
“카일러 단장?”
“정찰을 끝내고 왔어요.”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그 잠깐 사이 눈보라가 몰아치더라고요. 오랜만이죠, 이곳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래서, 들려온 정보대로더냐?”
카밀로의 질문에 카일러가 무겁게 끄덕였다.
“추가적인 난민 무리가 발견됐어요.”
“숫자는?”
“1만 2천.”
그 말에 준의 표정이 굳었고, 그것은 카밀로 백작도 다르지 않았다.
“첫 보고보다 숫자가 많은데…….”
“옆에 있던 로튼가르 영지의 난민들까지 합류한 것 같아요. 부상자는 이번에 들인 사람들보다 많고…… 식량의 상황도 안 좋아요.”
“문제는 지리인가.”
“방향이 어찌됩니까?”
“북동쪽이에요.”
“앞서 로튼가르 영지라고 하셨다면…… 설마 칼날 협곡 사이입니까?”
준의 물음에 카일러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곳 지리를 다 외우셨군요?”
“예.”
“대단하네요. 아니,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준 단장의 말이 맞아요. 현재 피난민들이 오고 있는 방향은 칼날 협곡이에요.”
칼날 협곡.
이름처럼 좁고 깊게 펼쳐진 협곡으로, 양옆에 깎아지른 듯 가파른 낭떠러지가 위치한 장소였다.
“왜 하필 그곳으로……?”
“다른 방향은 모두 재앙이 도래했다고 하더군요.”
“선택지가 없던 게로군.”
카밀로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적군의 수는 어떻습니까?”
“일만일세.”
“일만…….”
이는 앞서 준이 썼던 [흡명:운합무집]으로도 장악하기 힘든 숫자다.
그만한 숫자의 군영을 모조리 중독시키려면 아마 마력 유동체가 한 트럭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닐세. 지형이 지형인 만큼 이쪽에서 틀어막는 것도 쉽지.”
“협곡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너무 도박수에요. 까딱하다간 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결과적으로 방법은 하나뿐이다.
협곡의 중간에서 놈들을 막아서는 것이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한들, 좁은 협곡에 진압할 수 있는 적의 숫자는 한정적일 테니까.
“협곡의 크기는 넉넉잡아 성인 백여 명이 한 번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일세.”
“그럼 백작님께선 어찌 선택을 내리셨습니까.”
“……시도는 해 봄직하군.”
“다른 가신들은 어떻습니까?”
“둘은 찬성, 한 명은 반대했네.”
의외로 반대표를 던진 것은 다름 아닌 노르넨이었다.
가장 먼저 난민 발생을 예상하고 그들을 구해야 했던 그녀가, 어째서 반대를 표한 것일까?
“아주 현실적인 이유이지.”
그 이유는 난민이 발생한 곳이 북동쪽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쉽고, 데리고 오기 편한 난민들도 있더군.”
“그럼 그녀는…….”
“셈이 빠른 여인일세.”
그녀가 우려했던 것은 난민의 목숨이 아니다. 향후 북부를 책임질 백작의 명성이다.
즉, 난민이 발생된 두 곳 중 하나는 포기하고, 다른 한쪽을 구하러 갔다는 ‘명분’을 방패로 삼자는 것이다.
“으음…….”
별로 듣기 좋은 소린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카밀로 백작 또한 표정을 구겼으니.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했다.
언제 적들의 총공격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당이지 않은가.
섣부른 선택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었다.
“어제 자네가 저지한 병력은 현재 성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네. 그리고…… 카일러 단장은 다른 방향의 난민들을 구호하러 가기로 했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너무 비인간적인 선택인 걸까.
그러나 그런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아직 적의 병력은 8만 이상일 것이라 추측 중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7레벨 유저인 카일러 단장과 그녀의 모험단원들을 섣불리 잃을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저희를 보낼지 말지 고민 중이시군요.”
“……그렇다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흰고래 용병단도 알타스 모험단만큼이나 귀중한 병력이었다.
특히 이런 대규모 전투에선 규격 외의 6서클 마법사인 준만큼 귀중한 전력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 숫자가 있었으니.
바로 1만 2천이란 숫자의 피난민들이었다.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감은 준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쳤다.
무겁게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에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이윽고 무언가 계산을 끝마친 것일까, 준이 입을 열었다.
“1만 2천의 난민. 저희들이 구하겠습니다.”
“……! 가능하겠나?”
“단,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십시오.”
“무엇이지?”
“만년한철. 그걸 부탁드립니다.”
“으음……!”
만년한철.
북부에서도 오지로 불리는 광산에서 극히 일부 발견된다는 광물.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이며, 얼마나 희귀한지 그것을 다루는 장인조차 찾기 힘들 지경이라 했다.
아마 황실에 소속되어 있는 명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터.
준은 그런 물건을 요구했다.
그리고 북부의 맹주 가문답게, 카밀로는 만년한철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거대한 크기의 만년한철을.
마치 가보처럼 내려오는 물건으로, 여태까지 이걸 다룰 장인을 찾지 못해 제련을 못하고 있었는데.
준은 그것을 요구한 것이다.
“……어렵지 않지.”
“오라버니?”
카일러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그것은 질타의 의미가 아닌, 놀라움이었다.
만년한철은 전대 백작마저도 결코 외부에 내놓지 않았던 물건이었으니까.
“어차피 쓰지도 못할 물건. 이미 우린 준 단장에게 진 빚이 많다.”
“그건…… 그렇지.”
당장 이렇게 재앙이 찾아왔음에도 보상에 관해 주고받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 또한 흰고래 용병단 덕분이지 않나.
그런 상황에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임무를 흰고래 용병단에게 맡긴다는 것은 카밀로 백작의 욕심이요, 남들의 시선엔 흰고래 용병단을 버림패로 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흔쾌히 만년한철을 내놓겠다고 하는 것일 터.
‘그래도 지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군.’
물론 카밀로 백작은 정말로 흰고래 용병단을 버림패로 쓸 생각은 없었다.
단지 선택지가 없었기에 결단을 내렸을 뿐.
덕분에 준은 적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활과 화살일세.”
“로튼가르 영지는 예로부터 레인저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능숙하게 산맥을 타고 활로 몬스터들을 사냥했죠.”
“적어도 그들의 도움은 받을 수 있을 터.”
꽤 괜찮은 물건들로 이루어진 지원품, 그 외에도 여러 식량 등을 쥐어 줬다.
“반드시 그들을 구출하고 살아서 돌아와 주게나.”
그리 말하는 카밀로 백작을 뒤로한 채, 준과 동료들은 또다시 성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후아. 진짜 바쁘게 움직이네.”
“원래 한가한 것보단 바쁜 게 좋은 거랬어.”
“누가 그딴 개소리를 해……?”
차마 지구에서 들었던 말이라 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준은 조용히 엘레노어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다들 들었다시피 우린 이제부터 1만 2천의 피난민을 구하기 위해 출발할 거야.”
“음……!”
분명 위험한 임무였지만, 이번 일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준은 그 사실이 못내 감사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순 없는 터라, 조용히 이어서 말했다.
“여기 이 지도를 보면, 이 구간이 유독 가팔라.”
“오르막에, 길의 너비도 좁군요.”
“맞아. 그리고 현재 피난민의 위치는 이곳이야.”
준이 가리킨 방향은 앞서 말한 구간보다 한참 북으로 올라가 있었다.
즉, 지금부터 출발한다 한들 피난민들은 좁은 구간을 넘지 못하리란 의미였다.
“그리고 적의 위치는 여기지.”
“쯧. 대장이 말한 구역에 도달하기 전에 적들이 먼저 뒤를 치겠네.”
“맞아. 그래서 우리가 선제 타격을 하고, 놈들의 진격을 방해해야 해.”
다행히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마력 유동체는 몇 번 더 쓸 수 있었고, 말인즉슨 [흡명:운합무집]을 다시 한번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하지만 적들의 대처가 이상할 정도로 빨라. 아마 우리가 가진 세계수의 정기처럼, 서로 멀리서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거겠지.”
“그럼…… 이전처럼 효율적으로 놈들을 묶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건가?”
엘레노어의 질문에 준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최악을 가정해야겠지. 놈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탈출할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해.”
그래도 준의 마법은 그렇게 파훼하기 쉬운 종류의 것이 아니고, 최소한 발걸음을 늦추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판단한 동료들은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필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까닭에 하루를 꼬박 소비하고 도착한 목적지.
“저기 있다.”
저 멀리서 난민들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고로 들었던 것보단 숫자가 제법 줄어들었다.
적어도 2천 가량은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에이든이 눈에 원망을 담은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날씨가 이래서…….”
“많이들 얼어 죽은 모양이야.”
하필 추워도 가장 추울 때에 대규모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말았으니.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엘레노어. 네가 저들을 맞이해 줘. 그중 무구를 쓸 수 있는 사람들도 따로 빼 주고.”
“대장은?”
“난 따로 함정을 설치해 두고 올게.”
“그래, 알겠어.”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에이든을 대동한 준은 협곡 위를 달렸고, 마야는 엘레노어의 호위를 위해 남았다.
일행이 다시금 뭉친 것은 다음 날 늦은 오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