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27)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27화(227/374)
228화 내가 죽일 거야
“물러서, 에이든.”
“……!”
준의 말에 에이든이 리케다이몬과의 대치를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홀로 남은 마야가 어찌 될지는 묻지 않았다.
단지 준의 말을 믿고 따랐을 뿐.
리케다이몬 또한 에이든에게 달라붙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정면에 향해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물러나 준의 옆에 선 에이든은 그제야 이유를 물으려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한 마리의 괴물이 서 있었다.
“저, 저건……? 흐윽?!”
저게 무엇이냐 물어보려던 에이든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마어마한 두통. 가까스로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째서 준이 물러서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수의 정기를 통해 마야의 흔들리는 정신이 느껴진 것이다.
그제야 에이든은 갑자기 나타난 저 괴물의 정체가 마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배……?”
준 또한 그런 마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이 새하얀 기운에 집어삼켜진 마야.
가슴에 뚫린 나선의 구멍은 수십, 수백의 영혼들이 뭉치고 뭉쳐져 만들어진 허무였으며.
양팔은 인간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길게 늘어져 바닥을 긁는 그 모습은 마치 원혼들의 증오처럼 느껴졌다.
“흐음……. 영혼들에게 집어삼켜진 것인가.”
리케다이몬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더 이상 명예와는 관련 없는, 처절한 원혼 덩어리가 됐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건…… 좋지 않군.”
그와 함께 리케다이몬이 두 자루의 대검으로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동시에 하얀 괴물의 인영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금 하얀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리케다이몬의 코앞이었다.
원혼에 물든 두 손톱이 검처럼 휘둘러진다.
“음!”
리케다이몬이 전력을 다해 기세를 터뜨렸다.
그의 투지는 수십, 수백의 전쟁을 통해 다듬어진 의지의 집합체.
그 자체만으로 물리적 형상을 갖췄으며,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에너지는 대응하는 입장에서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으나.
지이익!!
원혼의 손톱은 그런 무형의 기운을 그대로 찢어발기며 놈의 검과 맞부딪혔다.
“이런……!”
상성이 좋지 않았다.
순식간에 대검이 원혼의 손톱에 의해 갈가리 찢겨지며 리케다이몬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대검째로 찢겨졌을 것이다.
가르르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하얀 괴물이 낮게 울음을 토해 냈다.
“선배…… 저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광경을 목도한 에이든이 준에게 물었다.
“영혼에 집어삼켜진 것 같은데……?”
대답한 이는 엘레노어였다.
영혼을 볼 수 있는 그녀의 눈에, 지금 저 하얀 괴물에게서 마야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다른 무언가가 그녀의 육신을 집어삼킨 것이다.
문제는 엘레노어조차 저 안에 담긴 영혼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미친……. 저런 영혼들은 처음 봐.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정도의 원혼을 쌓을 수 있는 거지……?”
“조경족. 알고 있겠지만, 그들의 시작은 초대 황제의 ‘천하통일’에서부터 시작돼.”
“…….”
에이든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제국이 지상의 주인이 된 이후로 세상은 전쟁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동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그건 그저 집안 아이들끼리의 투닥거림에 불과했다.
초대 황제가 지상의 주인이 되겠다 공표하기 전.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의 도가니였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평화가 그저 공짜로 쥐어졌을까.
결코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죽음이 깔려 있었다.
“조경족은 초대 황제로부터 시작된 전쟁에 휘말려 사라졌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들의 죽음은 역사라는 이름 아래 파묻힌 여타 희생자들과는 다르다는 거야.”
“정확히 뭐가 다른데?”
“정령의 핏줄을 타고났지. 까마득히 오랜 옛날부터 정령의 핏줄을 타고난 그들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마력의 일부에 자신들의 기억을 담아 내.”
그게 마야의 몸에 깃든 수많은 영혼들의 정체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야.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
하지만 완성된 제국에 반기를 들 수는 없었고, 그들의 원혼은 그저 쌓이기만 할 뿐이었다.
“족히 수백 년 간 쌓여 온 영혼의 힘인 셈이지.”
리케다이몬이 저 하얀 괴물에게 순식간에 밀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과거의 영웅?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리케다이몬의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그저 죽음의 신에 의해 아주 잠깐 지상에 현현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수백 년간 쌓여 온 원혼들의 힘 앞에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마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마야가 쓴 기술은…… [혈귀야행]. 피로 이루어진 영혼들이 복수를 위해 마야의 몸을 장악했어. 다만 완성된 기술이 아니야. 그 안에서 마야는 수많은 원혼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해.”
그걸 이겨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신력을 필요로 할까.
‘본래 게임 내에서는 마야한테 정신력 관련 아티팩트를 둘둘 감아 줬어야 했지.’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선조의 영혼들은 그대로 마야의 몸을 삼켜 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 터.
“그럼…… 저희가 도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아예 없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없어.”
에이든은 뒤늦게 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리케다이몬과의 전투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지원에 나선 적이 없던 준.
기회라면 몇 번이고 있었음에도 준과 엘레노어는 후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준의 시선을 따라 협곡 저 너머를 바라본 에이든은 무언가 희끄무레한 인영을 발견했다.
“……또 다른 지휘관입니까?”
“맞아. 아까부터 놈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어.”
여태까지 준과 엘레노어는 놈과의 기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섣불리 이쪽에 영향력을 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행히 저쪽 또한 이곳까지 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
‘향후 전쟁을 위해 힘을 보전해 두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에서 군영이 쏟아져 내린 이후, 놈들은 아직 본대를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제어가 불가능한 군대를 먼저 보내는 형태야.’
군영은 기본적으로 지휘관을 필요로 한다.
저 깃발이 바로 그것으로, 깃발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녀석들에겐 상세한 명령 하달이 불가능한 것이다.
‘만인대장의 숫자가 적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 이곳에서 두 명의 지휘관을 잃는 최악의 그림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일 터.
물론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일은 아니다.
이쪽이 빈틈을 보인다면, 반드시 그 틈을 찌르고 들어 올 놈들이었으니까.
‘7레벨이 둘……. 그런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까부터 준이 어마어마한 수준의 마력을 퍼뜨리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었는데, 이는 엘레노어의 도움이 컸다.
그녀의 넘치는 신성력까지 비탄의 재앙을 통해 마력으로 변환시키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상대도 이쪽이 7레벨이라 착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리케다이몬과 선조의 영혼들에게 삼켜진 마야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뿐.
‘마야…….’
본격적으로 마야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는 것은 이문을 넘어서부터다.
훗날 삼문으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단계.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만약을 위한 대비는 모두 해 뒀어. 남은 건 마야가 얼마나 잘해 주느냐야.’
마야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저 믿을 뿐이다.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마야가 본인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 * *
수많은 영혼들이 묻고 있다.
-너는 우리를 감당할 수 있느냐?
수백 년이란 시간의 세월이 담긴 이 거대한 원한을, 네가 감히 품을 수 있느냐 묻는다.
여태까진 저들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는 게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조경족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주워진 제국의 아이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가진 원한이 보였다.
그렇기에 마야는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양손에 들린 아칸더스의 송곳니를 집어 들었다.
의식의 세계 속에서도 아칸더스의 송곳니는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물질적인 힘이 아닌, 똑같이 원혼이 담긴 무기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말로만 묻지 마. 덤벼.”
준이 직접 골라 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다.
원혼들이 다가왔다.
싸움은 일방적인 마야의 패배였다.
수없이 몰려드는 원혼들 속에서 다른 원혼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그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덤벼.”
하지만, 이곳은 영적 세계.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일어선 마야가 선조의 영혼 앞에 섰다.
그들은 이전처럼 마야를 무참히 유린했으나, 이전만큼 빠르게 그녀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아직 안 끝났어.”
죽음의 경험?
이미 몇 번이고 겪어 봤다.
이제와서 두려운 것은 죽음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동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 더욱 두려운 일이니.
몇 번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그들에게 대항한다.
원혼으로 이루어진 영혼들의 행진.
그 안에서 마야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일초지적.
그 다음에는 이초지적.
또 일어섰을 땐 삼초지적.
이번 버티는 시간이 늘어났고, 종국에는 수많은 원혼 중 하나를 베는 데 성공했다.
“……다시!”
하나가 둘로, 둘에서 셋으로.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마야는 분명 원혼들의 숫자를 착실하게 줄여 나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가진 기술을 체화해 나갔다.
“흣…….”
더불어 원혼을 하나씩 벨 때마다 그들이 겪었던 죽음이 단편적으로 보였다.
누군가는 제국의 검사에게 심장이 꿰뚫리고.
누군가는 후퇴하는 부족민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는 가족을 죽인 검에 베여 죽었다.
그들이 가진 울분이 느껴진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거대한 원한들.
그것들이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려는 게 느껴진다.
마치 자신들처럼 되라는 손짓과도 같은 행위였으나.
“내 복수는 내가 할 거야.”
이지를 뚜렷하게 담은 마야가 또 다른 원혼을 베어 가며 말했다.
“당신들의 원한은 내 알 바 아니야.”
주워진 순간부터 부족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들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제국의 핏줄이란 이유만으로 배척받던 나날들.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 부족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이유는…….
그녀를 줍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보살펴 주었던 아버지.
단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어. 당신들의 칭얼거림이나 들으려고 온 게 아냐.”
그러니 당당하게 말한다.
만약 나를 돕지 않을 거라면, 반대로 철저히 당신들을 이용할 것이라고.
[그림자 걸음]그녀의 다리가 음차원의 마력 위를 거닌다.
[혼령질주]그 안에서 속도를 더하고, 수백의 원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림자 주망]하늘 위에서 터진 수천의 암기 바늘이 원혼들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들의 전신에 연결된 마력의 실이 섬뜩하게 반짝이는 순간.
[그림자 주망:폭(爆)]마력의 실에서 시작된 폭발이 날카롭게 터져 나가며 주변의 모든 것을 갈갈이 찢어 버렸다.
그 끝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원혼뿐.
“대신, 바깥에 있는 저놈들.”
마야는 지금도 바깥에 있을 수많은 군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놈들의 대장까지.”
회백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최후의 원혼에게 향했다.
“내가 죽일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한테 힘을 보태.”
끝내 아칸더스의 송곳니가 남은 원혼의 가슴에 박혔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마야뿐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