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31)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31화(231/374)
232화 태양의 전사
강렬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준이 소환한 화속성 마력이 기뻐하듯 낭창낭창 춤을 췄다.
마력엔 감정이라는 게 존재치 않는다.
그것은 생명체도 아니요, 영(靈)조차 아니었으니까.
하나, 바라는 것은 있다.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바람이 되어 들판을 질주하고 싶어 하고.
물이 되어 바다를 이루고 싶어 하며.
때로는 강렬한 화마가 되어 숲을 태우고.
흙이 되어 만인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준은 그들에게 속성이라는 옷을 입혀 주었다.
단순히 자연에서 탄생한 속성이 아니다.
그의 심상에서 빚어 내어 오롯이 존재하는 탐화 속성.
마력은 그 속성이란 옷을 입었고, 이내 그것은 강렬한 부름이 되었다.
이내, 그 부름은 강렬한 차원의 일그러짐을 만들어 냈고.
이 세계와 연결된, 또 다른 차원이 반응했다.
영들의 세계.
정령 차원이 오랜 단절을 끝내고 이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무, 무슨 짓을……?”
“네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차원과 차원이 연결되는 기적과도 같은 그 광경에 제이메르와 테이메르가 기겁을 하며 준을 노려봤다.
그러나 준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저, 저 너머의 어떤 존재들을 응시할 뿐이다.
“…….”
무수히 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본디 영혼을 느끼지 못하는 준조차 그들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반응이었다.
그중에서도 제법 강력한 기운이 준의 마력에 반응했다.
이곳에 가득 존재하는 탐화에 관심을 보인 것일까?
차원 너머 일렁이는 모습으로 보았을 때, 샐러맨더로 추측됐다.
‘샐러맨더 정도만 되어도 충분해.’
불의 정령이 화속성으로 가득한 이곳에 강림한다면.
그리하여 이곳에 가득한 화속성을 품어 낸다면, 저 7레벨의 강자들에게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터.
그뿐만 아니라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리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
정령의 차원이 갑자기 침묵에 잠겼다.
화염의 도마뱀이 차원을 넘으려던 찰나에, 녀석이 뒤로 물러섰다.
녀석뿐만이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다른 정령들도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서고, 그 너머로 다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아주, 아주아주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불.
그 자체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이쪽에 관심을 보였다.
-실로 오랜만의 이계로군.
그는 마치 준이 연주하는 불의 노래를 음미하듯 지그시 이쪽을 바라봤다.
준은 멋대로 꿈틀거리는 전생자의 기억 속 그 이름을 읊었다.
“이프리트…….”
불의 정령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군림하는 존재.
순간 준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온몸이 굳은 채 심해로 떨어지는 감각.
생전 이 감각을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마력 탈진 현상.
차원의 틈새 너머. 녀석이 자신의 의지를 이곳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빨려 나가고 있었다.
[언령, ‘게으른 순례자의 오디세이’의 영향력을 50% 하향합니다.]언령을 해제하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 쉴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 차원을 넘은 존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상대도 입을 열었다.
-풋내기 정령술사인가? 아니, 정령 마법은 아니로군. 전혀 다른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극도로 속성력을 끌어올려 강제로 차원을 찢은 것인가? 이건 대단하군.
그 말에 준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거물이 등장하셨네.”
-네가 가진 힘이 그만큼 흥미로웠다. 그러나 아직 내 힘을 제대로 쓰기엔, 모든 게 미완성이군.
아무렴.
애초에 이 마법은 정령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게 아니다.
그저 정령계를 열어, 녀석들의 힘 일부를 끌어 와 사용할 뿐인 마법이다.
때문에 이런 마법에 이프리트가 이끌린 것이 놀라울 정도였으니.
그만큼 준이 만들어 낸 탐화라는 속성은 최상급 불의 정령. 이프리트의 관심을 끌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우리에게 불쾌하다. 비록 향기로운 속성에 이끌려 왔으나, 결과적으로는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이 경계 너머의 세상을 제대로 느낄 수 없지. 그래서야 제 힘의 반도 채 쓰기 힘들 것이다. 지금 너의 마력이 이토록 빠져나가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 바.
“…….”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준은 이곳에 존재하는 자신의 속성을 대가로, 그들의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인데.
인간의 상식으로는 제대로 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그래. 너희 세계에 존재하는 그 특별한 마법사에게 부탁해 보아라. 그녀라면 알겠지.
“특별한 마법사? 인간들 사이에 정령술사는 극히 드물 텐데.”
-정령술사가 아니다. 너와 같은 마법사이지. 죽은 여동생의 영혼으로서 우리와 소통하는 여인이다.
“……!”
그와 함께 누군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8서클의 비밀이 그런 거였나.”
라네스.
그녀의 이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을 때, 이프리트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나마 볼 수 있었으니 기쁘다. 선물을 남겨 두는 것은 괜찮을 터.
그와 함께 준의 마력이 재차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프리트가 단순히 지금처럼 의지를 전하는 게 아닌, 이 세계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큭…….”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마력회로.
이 일대를 가득 채운 준의 탐화 속성이 모조리 이프리트에게 흡수되었고, 그 대신 녀석의 불꽃이 이 세상에 현현했다.
“……이건.”
불의 거인.
이프리트의 편린을 지닌 불의 거인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인간의 아이야. 나중에 또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차원의 틈새가 닫히며 다시금 차가운 바람이 협곡에 휘몰아쳤으나, 금세 어마어마한 열기가 냉기를 밀어내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몸을 일으킨 불의 거인이 손을 뻗자, 거대한 화염의 검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저게, 무슨!”
“막아!!”
그 압도적인 기운에 위기감을 느낀 제이메르와 테이메르가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저 거인의 검이, 다름 아닌 군영들을 향했기 때문이다.
두 만인대장의 돌발 행동에 에이든과 마야도 어떻게든 놈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려 했으나, 전력을 다한 두 7레벨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우우우웅―!
영혼으로 연결된 둘의 힘을 레이피어에 쏟아붓는다.
그 순간 에이든과 마야가 입술을 씹었다.
이쪽이 숨겨 둔 한 수를 가지고 있던 만큼, 상대에게도 숨겨진 수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정말 사력을 다해 막으려는 것인지, 두 7레벨은 바로 뒤까지 쫓아온 에이든과 마야도 무시한 채 레이피어를 찔러 넣었다.
본디 기운이라는 것은 하나에 하나를 더한다 한들 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빈 곳을 채워 주고 더하다 보면 그만큼 손실되는 부분이 많기에 그렇다.
하지만 쌍둥이 만인대장이 펼친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한계까지 단련된 합은 더욱 강대하게 상대를 꿰뚫을 기세로 나아갔다.
지금이라면 준의 [실드]는 물론이고, 에이든의 마야. 두 사람의 합조차 저 레이피어를 피할 방도가 없을 터.
이 자리에 위치한 넷 중 하나를 반드시 죽일 수 있는 필살의 기술을, 놈들은 저 불의 거인에게 쏘아 냈다.
쉬이익!!
두 만인대장이 내지른 레이피어가 소닉붐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놈들의 바로 지척까지 도달한 에이든과 마야가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공간이 꿰뚫렸다.
말 그대로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고, 방금 막 일으킨 풍파가 다시금 그 안으로 이끌렸다.
빈 공간을 가득 채우려는 세계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일격은 불의 거인을 꿰뚫고, 끝내 하늘 저편까지 이어져 구름마저 흩뜨렸다.
저 먼 우주까지 향하려는 것일까, 검은 점이 되어 사라진 일격.
그러나.
“……!!!”
신체 절반이 사라졌음에도 불의 거인은 소멸되지 않았다.
도리어 주변의 마력을 무지막지하게 흡수하며 잠시간 일대의 마력을 소멸시켜 버렸다.
‘탐화의 속성!’
준의 마력을 흡수해, 이프리트가 만들어 낸 불의 거인.
마치 과거 오크 로드가 죽였던 ‘흑경’처럼, 거인은 주변의 모든 마력을 연소시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검을 내리쳤다.
――――――!!!!
가장 먼저 소리가 삼켜졌다.
직후, 온 세상이 색을 빼앗겼다.
하늘과 땅, 지평선 너머까지 순백의 색으로 바뀌었다.
마치 불의 거인이 휘두른 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듯, 모든 이들의 시야가 백색으로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쿠르르릉…….
저 멀리까지 도망친 소리가 뒤늦게 협곡 너머로 메아리쳤다.
끝내 세상을 집어삼킨 섬광이 석양처럼 저물어 가고, 세상이 제 색을 되찾았다.
그렇다면 백색에 삼켜졌던 지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이게 도대체…….”
성벽 위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어느 한 병사가 넋을 놓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보는 지상의 절반이, 새하얀 불꽃에 삼켜져 있었다.
분명 그 절반은, 붉은 재앙으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모든 공격을 막아 내던 방패병도.
뒤에서 일격에 병사들의 심장을 쪼개던 창병도.
대지에 깃발을 꽂은 채 기사의 목을 자르려던 천인대장도.
거대한 돌을 내던지며 성벽을 두드리던 메가 클로버도.
모두 저 백염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이 새하얀 섬광이 스치고 지나간 뒤의 풍경이었다.
“미친…….”
“태양의 전사…….”
“태양의 전사가 기적을 일으켰다.”
이글거리는 백염만이 방금까지 적들이 여기 있었노라 가리키고 있는 풍경에, 본 모든 이들이 동시에 생각했다.
――태양의 전사가 기적을 일으켰노라고.
백색 섬광이 찾아오기 전, 절벽에 나타난 거대한 불의 거인이 가져다준 충격.
하지만 그 충격적인 광경에도 본인들의 본분을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푸욱―!!
에이든과 마야.
그 둘이 빈틈으로 가득한 쌍둥이 만인대장의 뒤를 찔렀다.
정확히 목과 심장을 노린 일격.
본래라면 결코 당하지 않았어야 마땅했다.
아무리 에이든과 마야가 재능의 꽃을 만개했다 한들, 단시간에 7레벨의 목을 넘볼 수준은 아니었으니.
하나 불의 거인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제이메르와 테이메르는 그 공격에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우리의 군대가…….”
이번만큼은 공명의 뱀조차 그들을 회복시켜 주지 못했다.
그들의 영역 아래 있던 병력 대다수가 백염에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아아…….”
“왕이시여…….”
끝내 자신들의 소임을 끝까지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던 것일까.
그 둘은 최후의 일격을 날린 에이든과 마야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못하고 허망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 에이든, 마야!”
“엇?!”
놈들의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던 공명의 뱀이 순식간에 숙주의 기운을 빨아먹었다.
[플레어]가장 먼저 반응한 준의 마법이 한 마리를 처치했으나, 에이든과 마야가 노렸던 한 놈은 끝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성인 팔뚝만 한 뱀은 허공에서 날개를 펼쳐 유유히 반대편 절벽으로 날아가고야 말았다.
“끝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나.”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지막 남은 만인대장.
소환술사 클레만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결국 최후의 보루만이 남았군.”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도 꺼내선 안됐으니까.
실제로 그는 다른 만인대장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준비했을 뿐, 실제로 사용할 생각 따윈 없었다.
하나,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정령계와 교류를 성공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불가능한 일을 해낸 존재가 있다.
그는 자신의 군단장, 폼멜에게 들어 온 정보를 떠올렸다.
외계의 존재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그놈’에게 들었던 정보였다.
새로운 그릇을 발견했다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자질을 지녔다고 하였다.
필시 그가 말했던 존재는, 반대편 절벽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저 반백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마법사일 터.
“여기서 죽여야 한다.”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