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36)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36화(236/374)
237화 여동생의 이론
눈을 뜬 다음 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눈이 뜨였다.
“음.”
창밖을 보니 여전히 하늘 위였다.
밖으로 나가 볼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나가 봤자 할 게 없을 것 같았다.
차원 팔찌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이것들을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나…….”
평소 습관처럼 마법과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며 펜을 놀렸다.
“우선 [탐용화산]부터 손볼까.”
강력한 폭발과 용암 분출로 인한 파괴력, 그리고 거대한 화산 그 자체로 만들어지는 지형의 변화는 충분히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변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성을 담으면 적들의 마력을 급속도로 소모시키는 것까지 가능했으니, 대규모 전투에서 이만한 마법이 있을까 싶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법진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거지.”
거기에 소모되는 마력도 보통이 아닌 탓에 홀로 감당할 만한 마법은 아니었다.
“매번 쓸 때마다 다른 마법사들의 힘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몽환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복잡한 수식은 몽환이 재현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부여 마법은 어떨까?
“문제는 종이의 내구성이란 말이지. 너무 큰 규모의 마법이라 압축이 필수적인데, 그랬다간 종이가 버티질 못해. 분량을 넉넉하게 해서 책으로 만들자니 거의 5권 분량이고.”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 달 가량이 걸리지 않겠나.
하라면 할 수 있지만, 그만한 시간을 소모할 여유가 없었다.
슥슥슥슥슥.
팔락-
빠른 속도로 수첩이 넘어간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방법이 제시되고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이 또한 준에겐 소소한 깨달음의 일부분이었다.
이런 행위 자체가 그가 가진 마법 지식의 정립을 도와주었고, 개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가져다주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마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까.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밖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려 문을 열자.
팔랑팔랑……
종이새 하나가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쪽지……?”
준이 손을 뻗자, 종이새가 그 위로 앉았다.
마력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준이 종이를 펼쳤다.
“음.”
라네스의 부름이었다.
* * *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블랙아웃에서 그만한 일들을 겪었는데,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딱히 원해서 그런 사건에 휘말린 건 아니었습니다만…….”
“후후, 그렇겠지.”
준으로서는 다분히 억울했지만, 라네스는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네가 북부에서 펼친 마법의 흔적을 봤단다.”
“아.”
안 그래도 정령 마법과 관련해 그녀에게 물을 게 있었는데.
때마침 그녀가 먼저 준을 불렀다.
“정령을 소환한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본 게 맞을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내겐 무척 신선했단다. 네가 가진 그 속성을 미끼로 정령계를 이곳과 연결시킨다니.”
“그렇습니까?”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정령사란 존재는 무척 희귀해졌단다. 이 세계에서 정령이라는 존재를 보는 것도 힘들어졌지.”
그러고보니 이프리트도 오랜 시간 이 세계와 단절됐던 것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신들이 긴 잠에 빠져들었다던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어떤 명확한 이유가 있기보단, 6서클에 이르러 보다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며 든 생각이었다.
“현재 이 세계는 정령계와의 연결이 끊어져 있단다. 벌써 수백년이나 더 된 일이지.”
“예? 그럼 아직까지 있는 정령사들은 어떻게 존재하는 겁니까?”
“연결이 끊어지기 전에 이어진 계약. 그 계약을 연장시켜 대를 이을 뿐이었지. 그마저도 정령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라네스는 준의 몸을 위아래로 살펴봤다.
“처음 내가 너를 보았을 때, 내부가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지. 만약 그 상급 사제의 독특한 신성력이 아니었더라면, 나조차도 몇 달간 정양했어야 할 부상이었단다.”
“……그랬습니다.”
“가장 큰 부상은 마지막에 펼쳤던 기묘한 마법이었지만…… 그 전에도 이미 부상이 심각했었겠지. 그것이 정령 마법을 펼친 대가였지?”
“예.”
마치 직접 본 듯한 말투.
그만큼 8서클에 이른 자의 눈은 단지 관측만으로도 현상을 알아차리는 신묘함이 담겨 있었다.
“단절된 양쪽 세계를 연결하는 마법을 펼쳤으니, 당연한 일이지. 아마 놀랐을 거다. 분명 계산상의 마력보다 훨씬 많은 마력이 소모됐을 테니.”
“그게 양쪽 세계가 단절됐기 때문입니까?”
“그렇단다. 본래 마법이란 실존하지 않는 것을 현실에 일으키는 이적. 하지만 그 규모가 방대하면 방대할수록 소모되는 기운도 더 많은 법이지.”
어쩐지. 아무리 계산해봐도 이프리트의 존재가 준의 마력을 그만큼 빨아들인 것은 의문이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풀린 순간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러면서 준은 은회색의 눈동자로 라네스를 바라보았다.
아까처럼 신묘함이 담긴 시야 덕분일까. 그녀는 이번에도 준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었다.
“이프리트에게 들은 모양이구나. 하긴, 수다스러운 정령이라 하였지.”
“라네스 님께 정령에 대해 들으라 하였습니다.”
“그런가…….”
그러면서 라네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준. 언젠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지. 어째서 8서클에 들어서고도 세간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단다. 내 아집 때문이지.”
8서클 대마법사의 표정에 혼돈이 찾아왔다.
수많은 감정들이 얽히고설켰다.
그것은 과거를 향한 회한이요, 깊은 호기심이었고 또한 드높은 기대감이었다.
그중 일부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본 준이 속으로 의의문을 품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 같구나.”
그리 말하는 라네스의 시선은 어느새 과거로 향해 있었다.
* * *
전대 황제의 형제자매이자, 이제는 황족으로서의 이름을 버린 자.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지은 그 이름, 라네스.
그녀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마법으로 해소하고자 했고, 그 누구보다 마법에 대한 흥미가 깊었던 소녀였다.
“나와 내 여동생은 오랜 시간 황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단다. 아주 어렸던 시절. 황실에 찾아온 유랑단 소속 마법사의 마법이 그 계기가 되어 주었지.”
라네스의 손끝에서 마력의 실이 넘실거리며 한 마리의 새를 만들어 냈다.
별거 아닌 기예다.
마법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저 마력을 뭉쳐 만든 것일 뿐이다.
하지만 새가 날갯짓을 하는 순간 별거 아닌 기예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적으로 바뀌었다.
홀로 표표히 날아가는 새가 넓은 방안을 자유로이 누비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준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어떤 마법의 술식도 담겨 있지 않아. 그저 마력을 뭉쳐 만든 ‘현상’에 불과한 조각인데. 어떻게 혼자 움직이는 거지?’
그뿐만이 아니다.
삐삐~
하늘을 나는 새가 지저귄다. 마치 감정이라도 가진 것마냥, 자유롭게 활공하던 새는 끝내 비행선의 유리창을 통과하며 다시금 자연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 당시 마법사가 보여 주었던 마법이 저것과 같진 않았으나, 우리의 눈에는 더 없이 자유로워 보였지.”
그리하여 마법을 동경하게 된 두 소녀는 새처럼 날아 황실이란 이름의 새장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내 여동생에겐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아예 전무하다고 해야 할 지경이었지.”
마력을 곧잘 느끼던 라네스와 달리, 그녀의 동생은 마력을 일절 느끼지 못했다.
황족의 피를 타고났음에도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머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진한 정령의 피를 타고 났더구나. 내 여동생은 마법사가 될 수 없었어. 마력 대신 정령을 느꼈던 것이지.”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이 세계에는 정령이 존재하질 않는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진한 피를 타고났어. 하지만 이 세계에 정령은 존재하지 않지. 그 아이의 영혼은 점차 이 세계를 뛰어넘어 정령계로 향하기 시작했단다.”
허물을 벗는 나비처럼, 인간의 몸으로는 갈 수 없는 정령계로 향하기 위해 여동생의 영혼은 멋대로 육신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 누가 와도 막을 수 없는 순리였지. 하여 그 아이는 어떻게든 정령계의 문을 열 방법을 찾아다녔단다.”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예 성과가 없진 않았다.
“다행히 내 동생에겐 타고난 통찰력이 있었단다. 다양한 현상들과 마법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지.”
“…….”
“내 마법의 근원은 바로 여동생의 이론이란다. 그 아이가 정령계로 떠날 때까지, 그 이론은 어떤 마법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했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준은 그녀의 행보를 떠올렸다.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인재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
또한, 경직된 마법사 사회를 그 누구보다 바꾸고 싶어 하는 의지 등.
그녀가 살아온 삶이 그녀의 바람을 대신하여 말해 주는 듯했다.
“여동생의 이론이…… 모든 마법사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겁니까?”
“……그래. 그것만이 내 동생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했단다.”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스로가 8서클에 올랐다는 사실을 세간에 알리지 않은 이유가 아집 때문이라고.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자신이 8서클에 이른 이유를 앞으로도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이다.
여동생의 이론을 모든 마법사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근간을 세우기 전까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그리고 여동생의 이론을 몸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진정 자신의 위치를 세상에 알릴 것이다.
그래야만 모든 이들이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이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찬양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경직된 마법사 사회를 그토록 혐오했던 건가.’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마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틀에 갇혀 있기에 발전이 뎌딘 마법사들이지 않던가.
세상에 많고 많은 게 새로운 길이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아집을 꺾지 않았다.
“어느 마법사들도 나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단다. 혹은 한참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지.”
다만 여태까진 그녀조차도 그 이론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녀의 마법은 통찰력보다는 직감의 영역이었고, 타고난 혈통의 힘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러나 이변이 나타났다.
바로 준이라는 사내의 존재였다.
그토록 그녀가 준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비록 [마신지체]라는 힘을 가지고 있긴 하나.
준의 마법은 모두 이론상 가능한 것들이었고.
실제로 정령계의 문을 여는 지경까지 다다랐으니.
“너라면 내 마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리하여 8서클의 대마법사가 물었다.
자신의 제자가 될 생각이 있느냐고.
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쉬움이 깊게 남는 거절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