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74)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74화(274/374)
275화 스승
이정준이 ‘준으로서’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그가 봤던 인물은, 검은 머리카락에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사내였다.
데미안.
그의 스승이자, 증오하고, 동시에 혐오했던 인물.
그러나 준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아니, 평온과도 거리가 멀었다.
무(無).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투명한 유리 같은 표정으로, 제 스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당신이 여기 튀어나온 거지?”
“시간의 흐름조차 뚫은 수백의 원혼. 무엇을 꾸미고 있을지 모를 황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신조차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라고 한들 못할 이유가 있을까.”
“……언령. [마신지체]의 힘이 풀린 순간 나타난 건가.”
“역시 넌 지혜롭다.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편이었지.”
“……그런데 왜 굳이 모습을 드러낸 거냐? 얌전히 숨어 있으면 됐을 텐데.”
“그리고 또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구나.”
“대답이나 해.”
준의 말에도 데미안은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차원에 마력이 뭉치며 의자가 생성됐다.
“너도 예상했다시피, 나는 언령에 깃든 본체의 의식이다.”
“…….”
“그리고 언령이 사라지면, 나라는 의지조차 사라지게 되지.”
“그래서 그게 아쉽다고 나왔다는 건가?”
“맞다. 나라는 의지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나, 아쉬운 것은 있다.”
“꼴에 뭘 할 수 있다고?”
“지식을 남길 수는 있겠지.”
“너 따위가 가진 지식을 나보고 배우라는 거냐.”
처음으로 투명했던 준의 표정에 짙은 혐오가 깃들었다.
“그 표정도 오랜만에 보는군. 그래, 세상 밖으로 나온 이후, 넌 그런 표정을 짓는 경우가 잘 없었지.”
“어처구니가 없군. 뒤졌으면 얌전히 가라. 구차하게 세상에 남아 있으려 하지 말고.”
“너무 냉정하게 말하지는 마라. 어찌 됐든 나는…….”
일그러진 표정 위로 짙은 미소가 데미안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네 아비이지 않느냐.”
* * *
“빨리빨리 움직여라, 이 굼벵이 같은 녀석아!”
“아니, 방금까지 멀쩡하던 게 왜 갑자기 이렇게 흔들리냐고!”
“그걸 알기 위해 이러는 거 아니냐, 벌써부터 그렇게 평정심이 꺾이면 어쩌자는 게야!”
“아, 알겠으니까 입 좀 다무쇼!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냥!”
“정신이 없어서 못 보는 게냐? 으이?! 당장 네놈이 밟고 있는 패턴에서 발이나 떼라!”
“아오, 젠장! 이건 또 언제……!”
갑자기 오브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항상 준의 차례가 되면 조용하던 오브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단번에 동료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쏠렸다.
“어…… 무슨 일이지?”
“설마, 선배가 위험하신 건…….”
“그럴 리가. 난 신도 보고 왔다고.”
엘레노어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뭘 멀리서만 보고 있는 검까. 불안하면 물어보는 검다.”
“아니, 딱 봐도 바빠 보이잖냐.”
“그래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아봐야…….”
“이, 이런 미친놈이! 안쪽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게야!”
샤일록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고, 일행들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 갔다.
* * *
아들.
그 말에 준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들이라고?”
“그래.”
“아니지, 아니야. 당신도 알고 있잖아. 난 당신의 아들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맞다. 너는 내 아들의 육신에 들어온 다른 존재지.”
“그걸 알면서도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 건가?”
“그때는 그랬다. 나는 너를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았지.”
“이제와서 달라졌다고?”
하, 늦어도 너무 늦은 생각이지 않나.
아니, 애초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고작 마법에 깃든 한낱 의지 따위가 그딴 말을 내뱉는 건가?”
“한낱 의지가 맞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와 다르다고 하냐면, 그건 아니다.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던 이유를.”
“…….”
언령.
무려 [마신지체]를 짓누를 정도로 강력한 힘이며, 대상자의 영혼에 걸리는 데미안의 고유 마법.
그러나 강력한 만큼 시전에 대한 대가도 가혹한 편에 속했다.
대상에게 부여한 언령의 힘만큼, 시전자의 영혼도 함께 묶이는 것.
따라서 언령을 쓰면 쓸수록 데미안의 힘 또한 약해졌다.
준에게 언령을 건 후에는, 고작 3서클의 마법도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에. 언령에는 그의 영혼이 깊게 새겨져 있었고, 눈앞에 있는 데미안의 의지는 스스로를 ‘진짜’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너는 내 아들이 맞다.”
“육체적으로는 그렇겠지.”
“틀렸다. 여전히 단면적으로만 세상을 보는구나.”
“무슨 소리냐.”
“다른 차원에서 온 너의 영혼이, 정말 내 아들의 영혼을 온전히 밀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처음 나를 발견했던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이정준이 준의 몸에 들어오기 전…… 이 육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천장에 건 밧줄에 의지해서.
“정말 내 아들은 그때 죽은 것인가?”
“……?”
“영이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준. 특히 원한이 강한, 한이 많은 영혼은 특히 더 그렇지. 그건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
처음 이정준이 이 몸에 들어왔을 당시.
그는 반쯤 미쳐 있었다.
본래 몸의 주인이 가진 기억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내 영혼이 이 몸의 주인과 합쳐졌다는 건가?”
“비슷하면서 또 다르지. 기억이란 것이 그렇다. 네가 그 몸에 들어갔을 당시 봤던 기억은 어땠지? 너는 그것을 타인의 기억으로 인지했나? 그렇다면 왜 그렇게 힘들어했지?”
“…….”
단순히 타인의 기억을 읽는 것이었더라면. 어쩌면 준은 당시의 기억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기억 속에 파묻혀 슬퍼했고, 괴로워했으며, 증오했다.
“그리고 애초에…… 다른 차원의 네가 그 몸에 들어간 것이 그저 우연일까?”
“…….”
“고민하고 또 고민해라. 그 차이를 알아야만, 지금 이상의 성장을 이뤄 낼 수 있을 테니.”
“하.”
비틀린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은회색의 눈동자로 데미안을 바라본다.
“아니. 필요없다.”
“…….”
이번엔 반대로 데미안이 침묵에 빠졌다.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다. 필요없어. 그따위 고민.”
둘로 나뉘어진 영혼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도 아니라면, 애초에 자신의 영혼과 이 영혼이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것인가?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준은 그 따위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내’가 하나든, 둘이든 상관없는 이야기야. 이제 와서는.”
“…….”
“녀석의 기억도, 내가 가진 기억도. 모두 내 거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기로 했다. 네놈을 죽이고, 세상 밖으로 처음 나왔던 그날부터 정한 사실이지.”
그런데 이제와서 둘을 따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준의 기억이든 이정준의 기억이든. 그 모든 것은 그가 겪은 일들.
그러니 부정할 필요도, 외면할 필요도 없다.
“그렇군.”
“이제와서 죄책감이라도 든 모양이지?”
“부정하진 않겠다. 그래, 나는 죄책감이란 것을 지니고 있더군.”
“그랬겠지. 네놈의 애매한 선택이 결국 ‘나’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었으니까.”
그저 하룻밤의 장난으로 태어난 아이.
마탑의 주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버렸다.
하지만 어느 날의 변덕이었을까.
어미는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떠나기 전 남긴 편지에 그녀와 자식이 살았던 마을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했다.
마신지체의 아이를.
지고하며, 한낱 인간이 이해하기 너무도 벅찬 힘.
그러나 그렇기에, 그 누구도 꿈꿀 수 없는 영역을 선사해 주는 힘이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혼란스러워했다.
어차피 버렸던 자식. 그러니 자신의 연구 재료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쉽사리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무언가가 계속해서 그의 행동을 멈추고 있었다.
그게 죄책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육체를 잃고 지금처럼 ‘의지’로만 남게 된 후였다.
“아직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당신의 그 역겨웠던 표정이.”
‘준’이 자결을 택하고, 그 육체에 다른 영혼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됐을 때.
데미안은 웃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을 향해.
그 무엇보다 기쁘다는 듯.
혹은 슬픔을 느끼듯.
미친 듯이 웃었다.
준은 그 광경을 바로 앞에서 봤다.
안도감, 죄책감, 슬픔, 즐거움, 괴로움, 기대감, 실망감.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실로 인간적인. 그렇기에 역겨웠던 그 모습을.
“그런데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니. 차라리 그런 걸 느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결해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몸이다. 너의 능력이 그만큼 성장했으니. 더 이상 [마신지체]는 내가 억누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준의 레벨이 낮을 때는 언령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으나, 준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마신지체] 또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겠느냐? 내가 사라지고 나면, [마신지체]는 오롯이 네가 감당해야 한다.”
“…….”
바로 아까도 [마신지체]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마력으로 화해 사라질 뻔했다.
고작 7서클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랬다.
“그래, 혼자 감당하긴 힘들겠지. 하지만 당신의 도움 따윈 받지 않아.”
“고집인가? 아니면 오만인가?”
“이론이다.”
“이론?”
“그리고 직감이지.”
[마신지체]의 힘은 분명 위험하다.하지만 그 흐름에 스스로를 지킬 방법은 존재했다.
“심상 구현인가.”
“그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심상 구현.
게임 내에서는 단순히 마법사 캐릭터의 필살기처럼 표현되었던 기술.
하지만 현실에선 고작 마우스 클릭 한 번 딸깍 한다고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포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자…….
이 드넓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소유할 수 있는 힘이다.
“물론 당장은 힘들겠지. 적어도 8서클.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할지도 몰라.”
8서클이자, 8레벨의 지고한 영역에 들어선다면, 더 이상 [마신지체]에 흔들리지 않으리라.
“또 숙제가 늘어났지만…… 어차피 항상 해 왔던 일이다.”
익숙한 일이었다. 미래에 대비하는 것쯤은.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사라져라.”
[심상 결계:아랑지구]저 인간에게 무언가를 배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강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굶주린 늑대가 아가리를 벌린다.
검게 물든 아차원의 공간.
사방에서 늑대의 안광이 명백한 적을 바라보고, 서서히 입을 벌리고 있다.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오로지 사냥감의 숨통을 끊기 위해.
“그런가.”
수십의 거대한 늑대들이 입을 여는 중에도, 데미안의 회색빛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준을 응시했다.
“그때부터 이미 답을 정해 뒀던 건가.”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괴물이 끝내 늑대의 아가리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 * *
“선배…… 괜찮으십니까?”
밖으로 나오자 일행들이 곧바로 준에게 달려왔다.
“음? 무슨 일이야?”
“그게, 바깥에서 난리가 나서…… 잠깐. 대장 지금……?”
“7레벨. 먼저 올라간 검까?”
가장 먼저 엘레노어와 마야가 준의 넓어진 그릇을 알아차렸고, 뒤늦게 에이든도 확연히 달라진 준의 기도를 느꼈다.
“무언가…… 선배를 옭아매고 있던 주박이 풀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 하하. 그래?”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안에서 선배가 겪으신 일을.”
어느새 진중하게 물어보는 에이든의 모습.
다른 두 사람도 에이든과 동조하듯 같은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엄. 뭐, 누굴 좀 만났어.”
“누구라면?”
“내 스승 놈.”
“뭐야!”
준의 말에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는 곳이었다.
한참 아티팩트를 조율하고 있던 샤일록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