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83)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83화(283/374)
284화 리치(4)
준이 상정하고 있는 상황이 들이닥친다면, 성녀로서는 그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래 흰고래 용병단에게 의뢰를 맡긴 것도 작년부터 메르데인에 일어나기 시작한 문제의 해결을 위함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리치의 부활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마당에 죽음의 신까지 부활한다니.
아무리 성녀가 흰고래 용병단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다지만, 죽음의 신과 관련된 문제까지 믿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관련된 이야기 정도는 남겨 둬야 하나.’
게임 내에서는 성녀 홀로 고군분투하며 상황을 해결하려 했지만, 준의 조언이 깔려 있다면 조금 더 유하게 대처할지 모른다.
“성녀님께서는 죽음의 형상이라는 존재를 아십니까.”
“……!”
오.
순간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성녀의 모습에 준은 속으로 제법 감탄했다.
성녀가 죽음의 형상에 대해 알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에.
그리고 그것은 성녀도 마찬가지였다.
“당신께선 그걸 어떻게……?”
“제법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의 형상은…….”
“그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시는군요.”
“……그리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아요. 죽음을 좇는 신. 하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외부의 존재.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모든 생명체를 가리지 않고, 하늘과 땅, 그리고 이 세계를 죽음의 빛으로 물들이려 한다고 했죠.”
“…….”
꽤나 상세하다.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구한 정보일까.
“오래 전, 전전대 교주께서 블랙아웃으로 내려갔을 당시, 그곳의 점술가에게 받은 예언이라고 했어요.”
“점술가, 예언이라…….”
이쯤 되니 준은 그 점술가라든가, 예언자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번 들었기 때문이다.
‘샤일록도 분명 예언과 관련된 힘을 블랙아웃에서 얻었다고 했지.’
준은 샤일록이 예언자와 마주쳤을 때를 회상하던 당시, 그 예언자를 자신의 전생자가 아닐까 의심했었다.
‘아마 맞는 것 같은데.’
전생자.
그의 예언은 소름 끼치도록 현재와 맞는 부분이 많았고, 어쩌면 그는 준이 알고 있는 ‘미래’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지금 내가 있는 세계는 도대체 뭐지?’
영화나 소설에 자주 나오는 평행 세계 같은 건가?
같은 시간대라 하더라도, 수많은 가능성으로 나뉘어져 있는 차원?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언제나 그렇듯 깊이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문제는 뒤로 제쳐 둬야 했다.
다시금 성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는 우리 교단의 태양이 죽음의 빛에 가려져 오랫동안 이어지리라고 예언했습니다.”
“허어. 전전대 교황이라는 분이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이셨습니까?”
“예. 그 예언가로부터는 아무런 마력도 느낄 수 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놀라웠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에, 조금의 마력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니.”
확실히, 이 세계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긴 할 것이다.
이 세계에선 마력이 없는 존재라곤…….
‘검혼 아덴. 그 양반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지.’
또 [마신지체]를 감당할 수 없어 반대로 체내의 마력을 모조리 소멸시켜 버린 전생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터.
‘대략 맞는 이야기기도 하고.’
본래라면 몇 년 뒤의 일이지만, 게임 속에서도 태양교단은 죽음의 신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니까.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성녀를 플레이어의 파티에 영입시킬 수 있던 것이다.
‘뭐, 아무튼 이야기하기가 좀 더 편해지겠군.’
전생자의 이야기는 다시 기억 저편으로 돌려놓고, 자신이 할 말을 꺼냈다.
“저도 비슷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때가 아닐까 생각 중입니다.”
“죽음의 형상이 이곳에 도래한다는 말인가요.”
“예.”
전전대 교황이 들은 예언이었던 만큼, 당연히 지금쯤이면 반쯤 잊혀졌을 법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교단의 사람도 아니고 뜬금없는 용병단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쯤되니 성녀는 도대체 준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방금, 보았다고 했었죠.’
말인즉슨, 예언으로 들은 것이 아닌, 직접 ‘보았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고작 3년 만에 블랙아웃에서 저만큼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고, 최근 황실…… 더 정확히는 황제의 측근처럼 활동하고 있는 인물.
‘혼란스럽네요.’
원체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것이라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와 만난 이후에는 특히나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엘레노어. 당신이 이 남자를 따라다니는 이유도 그것과 비슷할까요.’
태양교단은 비록 메르데인에 오랜 시간 묶여 있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까지 모르지는 않았다.
특히 교단과 교단 사이에서의 일은 더욱 그렇다.
과거에는 태양교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던 아리클로토스 교단.
최근에야 다시금 이름이 급부상하고 있었지만, 그전까진 굉장히 영세했었다.
과거, 신의 정신을 인간의 몸에 담겠다는 위험천만한 행위를 실패한 이후의 사태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시도되었고, 왜 실패했는지까진 알려지지 않았으나…….
‘죽음의 형상이라.’
어쩌면 그 존재가 아리클로토스 교단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직감이 찾아왔다.
이 남자가 굳이 자신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 또한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 무슨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어느 정도의 대비는 하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언, 감사히 받아들이겠어요.”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마저 어정쩡한 것은 아니다.
리치의 부활, 그리고 메르데인에 생기고 있는 알 수 없는 현상들.
그 모든 것이, 뜻밖의 이변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렇게 친절하게 위험을 알려 주고 있는 만큼,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할 터였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니,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시간만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씨발.”
“결국 죽었나…….”
준과 성녀의 회의 이후, 바로 다음 날부터 하나둘씩 사상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르데인의 특성상, 죽은 자의 시체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태양교단의 사제가 직접 시체를 불태워 수습을 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라는 듯, 사상자는 연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 사기는 바닥을 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에는 성녀의 신성력에 의해 언데드들 대다수가 약화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리치의 영향권에 돌입하면서, 언데드들도 더 이상 성녀의 신성력에 약화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평야처럼 드넓은 곳을 새카맣게 채우고 있는 언데드들과 마주했으니.
가장 먼저 쓰러지기 시작한 게 5레벨 유저들이었고, 열흘 무렵 지났을 땐 처음으로 6레벨 유저 중 사상자가 나타났다.
“허억, 허억!”
“조금만 영역 밖으로 나가도 뒤질 것 같잖아……!”
목적지인 멜렌 성과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흑마력.
그런 흑마력을 듬뿍 부여받은 사기가 생자들의 기운을 빼앗기 위해 검은 안개의 형태로 다가왔다.
이제 성녀의 신성력은 모두 그 검은 안개를 막는 것, 그리고 이전처럼 일부 구역을 임시 정화시키는 것에 집중되고 있었다.
“후우…….”
성녀는 그럴수록 하루가 다르게 피로를 느끼고 있었으나, 그것을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한편, 준과 일행들에게 가중되는 임무도 점차 늘어났다.
“뭔 데스 나이트가 저렇게 돌 굴러다니듯 지나다니는 거야……?”
하루 전.
성녀의 신성력을 뚫고 다수의 데스 나이트가 내부로 침입해 성기사 한 명과 수십 명의 병력을 참살했다.
오늘 새벽에도 같은 시도가 있었는데, 앞서 놈들의 기척을 느낀 엘레노어와 마야가 베른과 함께 놈들의 침입을 차단했다.
현재 흰고래 용병단은 바로 그 데스 나이트 소대를 처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보고받은 숫자보다 많은걸.”
지금 이 순간에 이른 것이다.
한때 마야가 복용할 동시하초를 구할 무렵, 그걸 지키고 있던 데스 나이트보단 조금 약한 녀석들이 무려 스무 개체가 넘게 보였다.
하나하나가 7레벨에 다다르는 기운을 품고 있는 모습.
“그, 이번엔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발람 용병단의 프레그가 후퇴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해 봤지만,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알고 있던 함정이기도 했어.”
“끄응. 그런가.”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더 이상 뺄 게 있겠는가.
프레그가 자신의 단원들에게 준비하라는 말을 할 때, 준도 동료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따로 도망치거나 외부에서 찾아오는 놈들이 없는지 봐줘.”
이미 준이 [포그 오브 사일런스]로 기척을 한계까지 죽이고 있긴 했으나,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법.
준의 말에 따라 각자가 포지션을 잡았고, 이내 준의 마법이 시전되었다.
‘그걸 써 볼까.’
7서클 이후, 여태까지 준이 써 왔던 기존의 마법들은 더 이상 그의 몸에 맞지 않게 되었다.
쓰라면 쓸 수 있겠지만, 본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기엔 마법의 구조 자체가 거기에 맞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준의 서클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각각의 속성들에게 있었다.
기존의 마법들이 더 이상 저 속성들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
그렇기에 준은 [상급마법재능]이 속삭이는 영감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마법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그리하여 세상 밖에 나온 준의 고유 마법.
[화령(火領)]마력에 반응하고 심상을 토대로 빚어진 마법이 현현된다.
생명을 품은 듯,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형태로 회전하는 화염구 다수가 소환됐다.
겉보기엔 그저 생김새가 조금 독특한 화염구에 불과했으나, 저 안에는 준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카가강-!
때마침 이쪽의 존재를 알아차린 데스 나이트 다수가 검을 뽑아들고 곧바로 돌진해 왔다.
그러자 화염구는 준이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움직이며 적을 향해 불꽃을 토해 냈다.
그에 대항하여 데스 나이트가 흑마력의 오러가 깃든 검을 휘둘러 불을 통째로 베어 내려 했으나, 오히려 불꽃은 데스 나이트의 검을 장작처럼 태워 가며 놈들의 육체에 들러붙었다.
순식간에 데스 나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흑마력이 화염의 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 화염구 하나하나에 준의 심상이 심어져 있는 결과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저절로 마법을 발현하는 마법.
‘잘되는군.’
데스 나이트의 내구력이 생각 이상인 탓에 쉽게 놈들이 쓰러지진 않았으나,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화염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고열의 화염을 토해 내며 전염병을 퍼뜨리듯 데스 나이트에 옮겨 붙고 있다.
……!!!
물론 데스 나이트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일대의 사기를 빨아들여 불꽃을 잠시나마 흐트러뜨리고, 곧바로 준을 향해 짓쳐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화령]에 의해 탄생한 화염구가 경계하듯 데스 나이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화염의 장벽을 소환해 냈다.
총 4개의 화염구가 모서리를 차지하고, 각자의 화염을 회전시키며 파괴력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사이 놈들의 측면으로 돌아간 화염구가 재차 화염을 쏘아 냈다.
마치 화속성 마법사 여럿이 폭격을 퍼붓듯, 쉴 새 없이 데스 나이트들에게 대미지를 축적시켜 갔다.
“저건 또 뭐야…….”
똑같은 7레벨로서, 프레그는 자신이 저 데스 나이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을 상상해 봤지만, 도무지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방법은 단 하나뿐.
저 마법이 발현되기 전에 시전자를 죽이는 것뿐이다.
자신조차 하나하나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데스 나이트들이, 준의 마법 하나에 농락당하듯 점차 힘을 잃어 갔다.
‘음. 아직 화력이 생각만큼 잘 나와 주지 않는군.’
반면 준은 아직 마법에 허점이 있다는 걸 깨닫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용성을 생각해 화염구의 숫자를 늘려 봤지만, 오히려 오합지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차라리 숫자를 줄이고, 각 화염구에 들어가는 심상을 늘려 파괴력을 높이는 게 효과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쓸 만은 하군.”
테스트는 모두 끝났다. 이후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준의 마법에 의해 약화될 대로 약화된 데스 나이트들이 금방 정리되었다.
“가자.”
무사히 끝마친 임무.
그리고 이 임무도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저 앞에 보이는 멜렌 성의 꼭대기.
끔찍하리만치 강렬하게 느껴지는 리치의 흑마력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 * *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 도착한 멜렌 성의 앞.
그러나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정해져 있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성녀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엄중한 시간.
수십 년 간 그들의 삶을 바쳐야만 했던 메르데인의 수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이 무대의 주인공은, 그들도, 흰고래 용병단도 아니다.
성녀.
머리 위로 작은 태양을 띄운 저 여인의 것이다.
“이제부터 저를 포함한 태양교단 전 병력은 멜렌 성 내부로 입성합니다.”
단, 내부로 입성하는 것은 태양교단뿐.
그 외의 세력들은 모두 외부를 맡고 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성녀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저 사특한 리치의 기운은, 이곳에 있는 7레벨 유저들조차 쉽게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5, 6레벨 유저들은 말할 것도 없는 일.
8레벨 레이드 몬스터로 군림하는 리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성녀의 신성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만 성녀 또한 리치를 상대로 타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
그렇기에 외부에 남겨진 병력들은 도시 내에 다른 언데드 무리들이 태양교단의 뒤를 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고, 거기엔 흰고래 용병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음. 괜찮겠죠……?”
걱정이 담긴 에이든의 목소리에 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능해.”
태양교단 성녀의 힘은 진짜다.
지금 이 순간에도 8레벨에 조금 못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언데드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리치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이쪽이리라.
“성녀로부터 발악하기 위해 리치가 도시에 있는 모든 언데드들을 움직일 거야.”
처절한 방어전이 예상된다.
이때만큼은 준도 여태까지처럼 여유롭게 생각할 수 없었다.
“엘레노어와 베른은…….”
“그 둘이잖아. 충분히 제 몫을 하고도 남아.”
엘레노어와 베른 또한, 성녀의 요청으로 성 내부에 진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턴, 그 어떤 신성력의 힘에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