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84)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84화(284/374)
285화 방어전
시야를 가득 채운 검은 안개.
그 안에 번뜩이는 수많은 안광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마주한 채 서 있는 것은, 고작 수천의 병력뿐.
이제는 제법 숫자가 줄어든, 토벌전 병력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아까부터 몸이 더럽게 무겁군.”
“염병할 사기 때문이겠지.”
“성녀의 신성력이 생각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어…….”
토벌전의 시작 당시와는 정반대의 입장이 되었다.
이젠 그들이 메르데인 전역에 깔려 있는 사기에 짓눌렸고, 언데드들은 리치의 흑마력에 의해 더욱 강력해졌다.
누가 보더라도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
성녀가 떠나기 전에 남긴 임시 정화 구역의 지속 시간이 끝난다면, 물밀 듯 쏟아져 오는 언데드들에 의해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마냥 쓸려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정말 그랬다면 성녀는 이들을 놓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쿠르르릉…….
지금 이 순간에도 개조되고 있는 진형.
거대한 성벽이 치솟아 오르는가 하면, 그 앞으로 거대한 해자가 파이더니.
그 안으로는 부글부글 들끓는 용암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 한 명의 마법사…… 그리고 토벌전에 참여한 세력 소속의 마법사들이 벌인 일이다.
“마법이라는 게 이렇게 간편한 거였나?”
“무슨 미친 소리냐. 저딴 건 내가 살면서 본 적이 없어.”
메르데인에서 오랜 시간 정화 작업을 해 왔던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마법사들과 조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마법사들 대다수가, 저렇게 마법을 떡 주무르듯 손쉽게 펼치지 못했다.
“저 마법사들 경악한 꼬라지들 보라지.”
“그럼 흰고래 용병단장의 힘이겠군.”
“아까 마법사들한테 뭘 나눠주더라고. 저 종이 쪼가리들.”
“인챈트 스크롤하고 비슷한 건가?”
“비슷한 원리로 돌아가는 거겠지. 마법사 놈들 경악한 걸 보니 대충 그림이 나오잖아.”
“괜히 성녀가 우리만 놓고 움직인 게 아니었군.”
한편 마법사들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건 빌어먹을 마탑에서도 본 적이 없소만.”
“딱 보니 기존의 마법이 아니오. 머저리 같은 마탑 놈들이 이런 마법을 환영할 리가 없지.”
“젠장.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지?!”
“아마 본인이 직접 만든 거겠지.”
“이런 걸 직접 만들었다고? 마탑의 도움을 받아도 수십 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고대의 비술이라도 배운 것 같은데, 적어도 그랬다면 마탑이 두 눈 뜨고 볼 리가 없지 않소.”
“그것도 그렇군……. 사람이 내놓는 기술에는 치를 떨며 단점만 찾아내는 놈들이, 고대 비술에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찾아다니니.”
준이 마법사들에게 넘겨준 것은 부여 마법이 깃든 인챈트북이었다.
단순히 마력만 주입해도 알아서 마법이 발동되는 편리한 도구.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 깃든 수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법 패턴은, 보고 있는 마법사들로 하여금 질린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도무지 따라서 만들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어찌어찌 형태는 비슷하게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섬세함을 따라 할 방법은 없었다.
“대충 준비는 다 끝났나.”
순수한 은으로 이루어졌고, 엘레노어에게 받은 인챈트북까지 활용하여 신성력을 부여한 성벽과 용암이 흐르는 해자.
어지간한 언데드는 닿는 것만으로도 타올라 소멸할 테고, 강력한 언데드도 상당한 꺼림칙함을 느낄 것이다.
“대충 반나절 정도 걸리려나.”
이곳에서 버텨야 할 시간이며, 성녀가 리치를 토벌하기까지 걸릴 시간.
이전처럼 리치는 자신의 라이프 베슬을 숨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고, 부활하기 무섭게 성녀에게 대항하기 위해 라이프 베슬을 직접 들고 있을 것이다.
성녀도 그것을 알기에 피해를 감수하고도 단기결전을 선택한 것이고.
“슬슬 시작되겠군. 에이든, 마야. 준비됐지?”
“예.”
“옛슴다.”
준의 말에 두 사람이 호응하기 무섭게, 하늘 위에 떠 있던 작은 태양이 점차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성녀가 남기고 간 임시 정화 구역이 해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그나마 이곳을 비추고 있던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지고.
때가 되었음을 알리듯, 도시 전역을 가득 채운 언데드들이 귀곡성을 터뜨렸다.
“후우우……. 썅.”
“죽어 보자고.”
“지랄 마라. 난 살아서 여우 같은 아내랑 토끼 같은 자식 만나서 오순도순 살 거다.”
“뭐라는 거냐, 토끼 같은 새끼가.”
임박한 전투.
모두가 한껏 달아오른 긴장을 풀기 위해 욕설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가벼운 시비 겸 농담을 지껄였다.
“가자.”
흰고래 용병단의 마법사의 한마디와 함께, 언데드들이 검게 물든 해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치지이이이이이이――!!!
썩은 탄내가 전장을 가득 채우고.
갸르아아아아-!!
살점이 녹아내리면서도 생자를 향해 귀곡성을 터뜨리는 언데드가 용암 속으로 점차 모습을 감춰 간다.
머지 않아 또 다른 언데드가 그 위에 추락하여 자리를 차지했다.
녀석 또한 방금 녹아내린 언데드와 마찬가지로 점차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그것도 잠깐뿐.
녹아내려 밑으로 가라앉는 속도보다, 그런 녀석들을 짓밟고 해자 위로 올라오는 언데드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은과 신성력으로 도배된 성벽을 두들기는 언데드들.
개중에는 7레벨의 데스 나이트가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오러로 성벽을 베어 댔다.
그러면 틈에서 오러가 담긴 창이 튀어나와 데스 나이트의 투구를 반쪽으로 쪼갰다.
사방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상이 그렇다면, 하늘은 어떨까.
밤하늘 대신 수없이 떠오른 밴시들이 구슬피 울며 산 자들의 기운을 빼앗으려 악을 썼다.
그 또한 성벽에 가로막혔으나, 그중 일부는 분명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뒤이어 성벽 위로 올라간 궁수들이 마력을 담은 화살을 쏴 대며 밴시들을 노렸다.
한 발 한 발, 강력한 마력이 담긴 화살이 밴시로 가득한 하늘을 잠깐이나마 채우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젠장, 포션 더 가져와!”
“여기 구멍 뚫렸다! 당장 막아!”
“마법사! 화력 좀 지원해 봐!”
“집중하고 있으니까 닥쳐!”
“잠깐! 땅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썅!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진동이 땅을 통해 울려 퍼졌다.
그러다 성벽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땅을 뚫고 튀어올랐다.
시체 벌레.
평소에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잠만 처자는 시체로 이루어진 벌레가, 그 길쭉한 몸뚱이의 일부를 드러냈다.
놈의 몸뚱이에 털처럼 난 촉수들이 사방에 널리고 널린 언데드들을 꾸역꾸역 피부 안으로 구겨 넣고 소화시키더니, 꾸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빛 점액질로 범벅이 된 언데드들을 토해 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몰골.
다른 지역에 있던 언데드들을 운반하는 역할이 바로 시체 벌레였다.
그런 시체 벌레의 주둥이에서 나온 언데드 하나하나가 7레벨급에 이르고, 개중에는 8레벨에 가까운 놈들도 있었다.
레이드 보스급으로 취급되는 리치만큼은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듀라한.
데스 나이트의 상급 개체로, 놈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머리통은 시뻘건 안광을 흩뿌리며 은과 신성력으로 도배된 성벽을 바라봤다.
[…….]이윽고 녀석이 길쭉한 칠흑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더니, 저 먼 거리에서 내려찍어 왔다.
구르르르르릉-!
칠흑의 오러가 거대한 그림자의 형상을 취하며, 성벽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성벽은 여태까지와 달리,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가 바람처럼 달려와 검을 뽑아 들었다.
에이든.
버려진 황자가 핏빛으로 이글거리는 화염의 오러를 뽑아내 전력을 다해 그 일검을 막아 냈다.
일점에 집중.
[파산검]초대 황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연상하여, 그를 베겠다는 일념하에 만들어 낸 에이든의 고유 검법.
신화적인 존재를 베겠다는 의지에 벼려진 검이, 8레벨 듀라한의 오러를 단번에 꿰뚫었다.
쿠르르릉-!
그러나 반쯤 무너져 내린 성벽에서 용케 도랑을 넘어 올라온 언데드들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다.
“죽여!!”
“으아아아!”
삽시간에 성벽 너머로 몰려오는 언데드들.
그리고 그 광경을 허공에서 지켜보고 있던 준의 시선은, 방금 성벽을 무너뜨린 듀라한에게 향했다.
‘마야 정도는 되어야 놈을 죽일 수 있겠네.’
에이든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에이든은 성벽 내부로 침입한 언데드를 상대하기도 바쁜 상황.
마야도 다수의 적들을 상대하는 기술이야 가지고 있었지만, 정확히 아군만 걸러 내는 정밀함까진 없었다.
[화령]그에 듀라한의 빈틈을 만들기 위해 화염구 세 개를 소환했다.
이곳까지 오며 개량을 마친 화염구는, 이전보다 확실히 강력한 화염을 토해 내며 성벽에 들러붙은 언데드들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자 아주 잠깐 생긴 공백.
그사이 에이든이 다시 한번 전장을 질주하고, 시간이 생긴 마야가 준에게 시선을 보냈다.
[천뢰]밴시들에 의해 삼켜진 하늘 위로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그 분노를 지상에 내리꽂았다.
콰릉, 콰르릉! 콰아앙!!
지상에 맞닿기 무섭게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전류.
그 안에서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마른 낙엽처럼 쓰러지는 언데드들 사이로, 듀라한의 머리통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와 준을 노려본다.
“네가 보면 어쩔 건데.”
아까처럼 큰 기술을 연달아 사용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이만한 거리의 격차를 좁힐 만한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후우웅-!
듀라한의 검에 모이기 시작하는 흑마력.
이윽고 진득하게 모인 흑마력의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두르자, 오러는 그대로 검과 분리 되어 준에게 쏘아져 날아온다.
치지지직-!
하나 그 직후, 준의 앞에 생겨난 [실드]가 푸른 전격을 두른 채 모습을 드러낸다.
뇌속성은 파마의 힘을 간직하고 있고, 흑마력과는 상성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정확히 준과 듀라한 사이의 경로를 가로막은 수십 장의 [실드]에 의해 듀라한의 오러는 끝내 준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분해되어 사그라들었다.
잠깐의 대치 상황.
[……!]그러던 중, 별안간 녀석이 검으로 뒤를 후웅-! 베어냈다.
하나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 뿐.
그 순간, 놈의 발 밑에서 마야가 튀어나왔다.
“제법 감이 좋은 검다.”
영력이 담긴 마야의 아칸더스 송곳니가 놈의 팔과 가슴을 베어 냈다.
그 즉시 듀라한이 허리춤의 숏소드를 뽑아 내 휘둘렀으나, 이미 그녀의 몸은 허공에서 사라진 뒤였다.
영적 차원에 숨어든 마야의 흔적을 잡아 내기 위해 듀라한이 주변을 둘러봤으나, 또다시 준의 견제가 들어왔다.
[화령]에 의해 소환된 세 개의 화염구가 하나로 합쳐져 듀라한의 정면으로 초고열의 화염을 토해 낸 것이다.끝내 마야에게 등 뒤를 허락한 듀라한은 아칸더스 송곳니에 의해 무자비하게 난자되었고, 최후에는 [혼령난무]에 의해 가루로 화해 사라지고 말았다.
“후우……. 그래도 예전보단, 버틸만 한 검미다.”
“고생했다.”
듀라한은 명백히 지금의 마야보다 격이 높은 상대였다.
그럼에도 마야는 [혼령난무]로 놈을 처리하고서 멀쩡하게 돌아왔다.
제법 지친 표정이지만, 그게 전부.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결과였다.
‘전장은…….’
준과 마야가 듀라한을 처리하긴 했지만, 이것도 시간을 조금 더 번 것에 불과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언데드들은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고, 해자의 역할은 끝난 지 오래됐다.
성벽 위는 함락되어, 수많은 병력들이 다시금 밑으로 내려왔고, 마법사들의 화력도 슬슬 끝을 보이고 있는 상황.
이젠 정말 버티기만 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기사, 애초에 이번 전투는 적의 섬멸이 아니다.
그건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
고작 수천 명으로, 천만에 가까운 언데드들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태양교단이 향한 멜렌 성으로 향했다.
한참 전투 중인 것일까.
아까부터 번쩍이는 태양빛과 리치의 광폭한 흑마력이 부딪히며 몇 번이고 대지를 울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쪽의 피해도 이미 상당하다.
부상자들에게 중급 마력 포션을 물 쓰듯 때려 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상자가 더욱 많다.
결국 살기 위해서, 아직 채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돌아가다 장렬히 산화한다.
그린 광경이 무수히 나타났다.
거기에 7서클 이후, 전투 중엔 처음으로 준의 마력 회로가 푸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만큼 준 또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체가 바닥에 산처럼 쌓이기 시작하고, 그 둘의 경계가 희미해져 갔다.
방금까지 저런 언덕이 있었나?
싶으면 다른 곳에 또 다른 언덕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미 은빛으로 신성력을 뿜어내던 성벽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피에 의해 가려진 것인가, 아니면 언데드의 맹공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인가.
기어코 마법사들까지 쓰러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붉게 달아오른 마력 회로.
아무리 포션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었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찾아왔고.
죽어 가는 언데드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다.
에이든의 얼굴에도 한가득 피로가 쌓였으며, 마야는 아까부터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다.
온 사방이 죽음을 알려 오고 있다.
전전대 태양교단의 교황이 들었다던 예언처럼, 하늘과 땅이 모두 죽음으로 물들어 가던 그때.
파아앙-!
멜렌 성의 최상층이 무너져 내리며, 지고한 태양이 우뚝 솟아 올라 그들에가 따사로운 빛을 흘려보내 주었다.
“아아…….”
“드디어……!”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고……!!”
리치.
오랜 시간 메르데인을 죽음으로 물들였던 녀석이 무(無)로 되돌아간 것이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사아아아아――
성녀의 태양이, 리치의 시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어둠에 집어삼켜지기 전까진.
죽음의 빛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8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