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9)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9화(29/374)
29화 환생
[중급마법재능]을 깨우치며 들어오는 지식은, 기존에 준이 알고 있던 지식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보이게 된 것이다.따라서 시점이 바뀌었을 뿐, 새로운 지식을 터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되는 이 기억은, 준의 것도 아니요, 하물며 ‘이정준’이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굉장히 불쾌했고, 낯설었으며, 한순간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는.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분명, 방법이 있을 터. 찾아야만 한다.] [하하, 이 저주받을 세상이여! 저주받을 운명이여!] [기어코 나는 그 힘을 쥘 수 없단 말인가? 그것이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하나 거절한다. 기필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설사, 그것이 세상조차 허락하지 않은 방법일지라도!] [차, 찾았다……! 찾았어! 오오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운명은 내 차례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하나, 세상이여. 알아 두어라.] [나는 마법사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비틀어 현실에 현현시킬 것이다.] [비록, 나는 벗어날지 못할지언정. 나의 후인(後人)은 벗어날지어다!]거적떼기를 두른 한 노년의 마법사가 절규하듯 외치고 있었다.
그가 두른 거적떼기는, 준의 눈에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내, 전생이라고……?”
* * *
환생.
‘이정준’이 <블랙아웃> 속 세계에 들어오기 직전, 게임사에서 내걸었던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보상.
그렇기에 준은 그저 그것을 게임의 시스템으로서만 바라봤지, ‘환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단순히 게임 속 픽셀 몇 개로 설명 되는 세계가 아니었고, 모든 이들이 살아 숨쉬었으며, 준은 그 세계 속 주민이 되었다.
그러므로.
환생 또한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라, 일종의 개연(蓋然)이 존재했다.
[비록, 나는 벗어날지 못할지언정. 나의 후인은 벗어날지어다!]투지가 활활 타오르는 한 마법사의 외침.
노년의 나이에, 걸친 것은 거적떼기 하나뿐이었지만.
준은 본능적으로 알아봤다.
저게, 과거 ‘이정준’ 시절에 생성했던 마법사 캐릭터였음을.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그건 이치에 맞지 않았으니까.
‘시간상 말이 안 돼.’
애초에 준이 존재하는 지금 이 시점은, 게임 <블랙아웃>의 캐릭터 생성 시점보다 몇 년이나 과거인 상황.
당연히 준이 만든 캐릭터가 실존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미래여야만 했다.
기억 속 캐릭터의 나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수십 년의 세월은 흘렀어야 정상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까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그가 생성한 마법사는,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신지체]를 얻음과 동시에 마법을 잃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게으른 순례자의 오디세이]가 없었으니까.
재능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힘이 없었기에, 그는 온전히 [마신지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독이 든 성배다.
지금의 준 또한 [마신지체]의 봉인을 10퍼센트만 풀어도 몸에 반동이 걸리지 않았던가.
[마신지체]를 100퍼센트 가동했다간 온몸의 마력회로가 불타오를 것이고, 끝내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그래서 마법을 쓰지 못했던 거야.’
‘이정준’ 시절에는 그게 단순히 버그거나 혹은 캐릭터가 일종의 저주에 걸렸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관련해서 버그 리포트를 게임사에 보내 봐도 게임사 측에서는 ‘해당 문제는 버그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었으니까.
그렇기에 마법사에게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신의 캐릭터는, 반대로 마법을 잃어버렸다.
과하게 넘쳐 나는 마력을 관리할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그대로 내 캐릭터를 포기했지만…….’
어딘가 살아 있을 그의 캐릭터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이었으니까.
그는 아주 긴 시간 동안 홀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끝내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자그마한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운명이었던 거야. [마신지체]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얻음과 동시에, 마법이라는 축복을 잃어버린 건.’
운명(運命).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정해져 있는 처지.
노년의 마법사는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환생체에겐 그런 운명을 피해 가도록 방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정준’이 깃든 신체의 주인이었다.
죽은 스승의 언령, [게으른 순례자의 오디세이]가 대신 [마신지체]를 막아서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마신지체]의 영향을 받으면서, 목숨에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게 됐다.
‘좀 복잡하긴 한데, 지금은 일단…… 기억을 정리하는 게 가장 급선무야.’
극심한 두통에 시야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균형 감각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준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움직이면서도, 기억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방을 돌아다녔다.
“끄응…… 좋아, 일단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고.”
[중급마법재능]을 터득함과 동시에, 준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이게 진짜 자신의 전생은 아닐 테지만, 어찌 됐든.
편의상 자신의 전생자는 끝내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으나, 대신 그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준은 자신에게 허락된 몇몇 지식들을 떠올렸다.
‘내가 알고 있는 고대어나, 고블린 로드를 상대할 당시 주술을 해석할 수 있던 이유. 그게 전부 이것 때문이었나?’
그제야 여태껏 자신을 찜찜하게 만들었던 의문들이 풀렸다.
“문제는 이 지식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인데.”
지식.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마법사에게 지식이란 때로 스킬북보다 더한 보물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게 도대체 몇 개야.”
전생자가 가지고 있던 마법에 대한 지식이 멋대로 머릿속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토록 목말라하던 4서클 마법이었다.
한때 위력에 미쳐 살았던 ‘이정준’이 마법사 캐릭터로 배워 둔 마법들이었다.
당연히 위력 하나에만 미쳐 있던 터라, 파괴력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마법들뿐.
‘그때는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오네.’
하나하나가 수백, 수천만 골드를 호가할 4서클 마법들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다니!
다만,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중급마법재능] 덕분인가? 마법에 대한 기억들은 내 수준에 걸맞게 선명히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들이 흐릿해.’
준이 마법사 캐릭터로 배웠던 마법들은 5서클까지였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4서클뿐.
분명 머릿속에 존재하는 지식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흐릿하다.
그 외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전생자가 가진 대부분의 기억들이 흐릿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고대어 정도.
그 외에 주술이라든가, 전생자가 환생을 위해 익힌 수많은 지식들은 흐릿하기만 했다.
아마 관련된 지식을 배우든가, 혹은 지금보다 성장을 이뤄 내든가 해야 할 터.
‘흐릿하기만 할 뿐인 기억들이 사방팔방에 퍼져 있어.’
아마 자신이 느끼는 두통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준으로선 이미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몸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겪었던 것이었으니.
‘기억부터 정리해야겠네.’
당장 쓸 수 있는 것부터, 없는 것들까지.
준은 낡은 공책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들을 하나하나 분류하며 적었고, 선명한 기억과 흐릿한 기억들을 정리해 나갔다.
‘나쁘지 않아.’
여전히 두통은 그대로였지만, 준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성장통은 언제나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으니.
* * *
“나쁘지 않긴 개뿔.”
환생의 기억을 깨달은 지도 어느덧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글이 난잡하게 적힌 종이들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연필을 잡고 있던 손은 덜덜 떨렸다.
“선배?!”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난 에이든이 무슨 일이냐며 걱정할 정도로 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마법에 대한 지식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데…….”
애초에 마법사 캐릭터가 배운 마법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 부분의 정리는 금방 끝났다.
문제는 흐릿한 기억들이었다.
흐릿한 주제에, 그 기억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강하게 발산했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억은 준을 점점 미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기억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건가.’
한 번씩 자신들의 존재감을 발산한 기억들은 거기에 만족한 듯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결국 시간이 약이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언제까지 방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오늘은 일정을 좀 소화해 볼 예정이었다.
“먼저 포션 제조법을 구해야겠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행히 여러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이정준’은 <블랙아웃>의 리메이크 펀딩이 끝난 이후, 혼자 몸이 달아올라 여러 성장 플롯들을 세워 뒀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포션제조] 스킬의 활용이다.
‘처음에는 그냥 초반에 포션 값 좀 아껴 보자는 의도였는데.’
스킬과 관련해 여러 정보들을 습득한 결과, ‘이정준’은 단순히 포션 값만 아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훗날 사업 컨텐츠에서도 [포션제조] 스킬은 꽃을 피울 수 있던 것이다.
덕분에 준의 머릿속에는 당시 습득했던 정보들이 생생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어떤 던전들을 공략해야 할지 훤해.’
준은 이와 관련해서 에이든에게 향후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당분간 우리는 훈련을 할 예정이야. 그 목적지는 1계층의 여러 던전들이고.”
“던전입니까!”
최근 며칠 동안 요새 안에서 머물고 있던 에이든이 찌뿌등한 몸을 풀며 반겼다.
“앞으로의 일정에는 여러 목적들이 있어.”
“훈련 이외의 것입니까?”
“그런 것도 있고, 훈련에 포함된 것도 있지.”
“훈련 이외의 것은 무엇입니까?”
“슬슬 사업을 준비하려고 해.”
“사업…… 말씀입니까.”
“응.”
이미 며칠 전에 클로이와 나눴던 대화는 에이든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사업과 관련이 있는 걸까?
“지금은 포션 레시피를 경매에 붙이는 것에 머물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클로이가 다양한 인재들과 연결점을 갖게 될 거야.”
그 인맥들을 통해서 준은 향후 포션 사업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니 내 이름도 그들의 귀에 박히도록 만들어야지.”
“음,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크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물론, 에이든이 그 이상 알 필요는 없었다.
“뭐, 이건 네가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용병대의 대장인 내가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다, 라고 설명해 주는 것뿐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훈련의 경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어.”
“하나는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전력을 다듬는 거고.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적응 훈련이야.”
“적응 훈련……? 무엇에 적응하는 겁니까?”
“환경 그 자체. 이제 슬슬 2계층을 준비해야 할 시기니까.”
“2, 2계층 말입니까!”
그러자 방금까지 그저 그랬던 에이든의 표정에서 빛이 났다.
“응. 객관적으로 따져 봤을 때, 우리 실력은 3계층에서도 충분히 먹혀.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3계층으로 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 그래서 적응 훈련인 겁니까?”
“맞아. 여태까지 우리의 무대였던 검은 숲을 벗어나서 새로운 지형으로 가 봐야지.”
“정말 모험 같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가득한 에이든의 모습에 준은 짧게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에이든에게 말하지 않은 또 다른 계획도 떠올렸다.
‘거기에 슬슬…… 새로운 동료를 영입할 때가 됐지.’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욕심이 가득한 일정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