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Mage in the Hero’s Party RAW novel - Chapter (290)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290화(290/374)
291화 죽음의 형상(3)
죽음의 신이 손에 쥔 지팡이를 까딱이며 위에서 아래로 선을 그리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한 줄기 빛조차 없이, 하늘을 빼곡히 채운 형용할 수 없는 어둠.
준은 그 어둠의 정체를 금방 깨달았다.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죽음의 손이, 수없이 뭉친 결과물이다.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군.’
북부에서 놈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규모의 공격.
그때조차 준은 목숨을 걸어 가며 막아 낼 수 있었는데, 그보다 수백 배는 거대한 저 규모를, 과연 베른이 막아 줄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언제나처럼 동료를 믿는다.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다. 계산을 마쳤고, 충분한 가능성을 봤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라이트 오브 라이프]찬란한 황금빛 신성력이 일행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물론 저 막대한 어둠 앞에서는 등불처럼 작디작은 빛일 뿐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빛을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저 죽음에 대항할 가장 유일한 빛이었으니까.
[힘널 오브 라이트] [블록 오브 라이트] [피어스 오브 라이트] [포인트 인 오브 라이트]연이어 황금빛이 일행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힘을 몰아 받은 것은, 단연 베른이었다.
“…….”
베른이 잠시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엘레노어를 돌아봤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손을 잡고 데리고 온 아이.
그런 아이에게, 결코 사과 하나만으로는 끝낼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자비처럼 엘레노어는 화를 한 번 내는 것만으로 자신들을 용서해 주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런 자신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막지 못하면 성기사로서, 인간으로서도 실격이겠구나.”
배틀 해머와 타워 실드를 든 손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간다.
그의 평생 대부분을 채웠던 신성력보다, 엘레노어가 펼친 이 신성력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후우…….”
전신을 가득 신성력을 방패에 담는다.
그러자 그에 호응하듯 방패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거대한 성벽처럼 펼쳐지며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과 맞닿았다.
쿠구구궁…….
죽음이 본래 그러하듯, 소리 없이 베른의 방패를 찍어 눌렀다.
순식간에 그의 육체가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곳곳에서 비명을 질렀다.
신성력이 쥐어짜이면서 그의 전신도 함께 고통에 겨워한다.
“가볍구나!”
그럼에도 베른의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야, 그의 죄는 이보다 훨씬 무거웠으니까. 그것과 비교하면 이까짓 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란 것이 의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현실이 그러했고, 현재 베른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상의 힘이다.
‘오래도 되었구나.’
그가 7레벨에 이른 지도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다.
그의 성장이 멈춘 이유는 육체의 한계도, 깨달음의 부재 때문도 아니다.
그저 죄책감의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긴 세월, 죄의 무게를 버티기만 할 뿐만 아니라, 이겨 내기 위해 그의 정신이 육체보다 한 단계 먼저 상승했다.
이어서 그의 육체가 그런 정신의 뒤를 쫓아 그 이상의 경지로 향해 나아간다.
우드득-!
검게 죽어 버렸던 소우주가, 찬란한 황금빛을 머금고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죽음을 이겨 내는 재생력.
치유의 신 아리클로토스,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힘이 따스하게 베른의 육체를 채워 나갔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께서 긴 잠에 빠져들었다 하더라도.
신께서 굽어살펴 주시는 이 힘은 자신의 육체에 깃들어 있음이다.
그럼에도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분의 긴 잠을 부정하며 제발 한 번만 돌아봐 달라고 청했으니.
믿음이 부족했고, 신을 믿지 못하니 스스로조차 믿지 못 했다.
그래선 안 됐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보듬어야 신께 보내는 믿음 또한 굳건할 수 있었건만.
콰드드득-!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고통이 찾아온다.
순간순간에 근섬유가 찢겨져 나가고, 실핏줄이 터져 오공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신성력은 그런 베른의 육체를 계속해서 치료해 나갔다.
재생되고, 찢어지고, 회복되고, 파괴되고.
본래라면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이 무너져 내렸어야 함이 정상이었으나, 오히려 베른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육체가 파괴되고 회복될 때마다 신성력이 그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육체로 거듭났으니까.
정출지일(正出之日).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의 육체가 더욱 강대해지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끝내 죽음의 손아귀마저 버텨 냈다.
“…….”
이윽고 베른이 하늘을 바라봤을 때, 그는 피로 막힌 코를 흥 풀며 말했다.
“신치고는 주먹이 가볍군.”
“…….”
그러나 여전히 죽음의 신은, 오연한 시선으로 일행들을 바라봤다.
분명 인간의 몸으로 신이 내린 일격을 버틴 것은 대단한 일이 맞았다.
그 격의 차이를, 한순간이나마 성장의 반발력으로 막아 냈으니.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분명 한계까지 발휘했을 터.
하나, 그것도 이번 한 번뿐이다.
“죽어 가고 있군.”
찰나의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여 8레벨의 단계에 진입한 베른.
하지만 그 성장 과정에서 치솟는 힘의 대부분을 방금 그 일격을 막아 내는 데 사용했다.
두 번째는 막지 못한다.
그런 확신에 재차 죽음의 신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던 그때.
“수고하셨습니다.”
아까부터 뒤에서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던 마법사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그의 전신에 흐르는 불길할 정도로 번뜩이는 전류.
도대체 무슨 기운이 담겨 있는 것은지, 붉은 기운이 담겨진 뇌격이 그의 주변으로 스파크와 함께 천둥 소리를 퍼뜨렸다.
[극점(極點)]멜렌 성에서 며칠 동안 홀로 틀어박혀 새롭게 깨달은 속성.
녀석은 다른 기운들과 달리 극히 호전적으로 준의 서클을 주위로 회전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극점은 우레를 터뜨리며 서클 밖으로 빠져나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극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법 패턴이, 준의 마력과 극점의 속성을 일시에 빨아들이며 하나의 마법을 이 세상에 현현시키니.
[역천뢰(逆天雷)]하늘의 뜻이 아닌 인간의 기개가 하늘을 넘어 우주로 쏘아질 듯 터져 나오니, 무언가에 막혀 파지직 사납게 울음을 터뜨린다.
“……!”
죽음의 신은 베른의 방어에도 나름의 감탄을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경악과 극노의 감정을 느꼈다.
지금 준이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네놈!!”
“내가 말했지? 네놈이 만든 이 가짜 하늘을 무너뜨릴 방법이, 과연 없을 줄 알았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준의 손끝에선 치솟아 오르는 붉은 뇌격의 기둥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준의 목표는 단 하나.
가짜로 만들어진, 이 빌어먹을 하늘이다.
수많은 인간들의 절망과 공포로 만들어진 이 결계를 깨부수는 것이었다.
후우우우웅-!
다시 한번 죽음의 기운을 담은 손이 꾸역꾸역 얽히며 하늘을 가리려 한다.
어떻게든 저 일격을 도중에 끊기 위한 발악이었다.
“확실히, 성급하다니까.”
이어 엘레노어의 신성력이 그 일격에 대항하기 위해 찬란한 빛을 터뜨렸다.
하나, 아까처럼 겨우 막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치지직.
황금빛으로 물든 신성력 사이로 붉게 점멸하는 뇌격.
“……!”
엘레노어의 손은 어느새, 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붉은 번개를 토해 내고 있는 그 손을.
그리고 그 손을 통해서, 엘레노어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가 극점의 속성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와이번을 죽여 얻은 마석.
아티팩트의 대가, 샤일록에 의해 가공되어 돌아온 그것이 극점의 속성을 담아, ‘비탄의 종말’에 깃들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뒤엉켜 조화를 이뤘다.
본래라면 생명을 치유하기 위한 아리클로토스의 신성력에 파괴력이 담기고, 이 세계에 침범한 기운을 격리시킨다.
고작 7레벨 둘이 합쳐져 만들었다곤 믿을 수 없는 기적.
그러나 저 둘을 어느 누가 평범한 7레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히 네가!”
극도로 분노한 죽음의 신이 엘레노어를 바라보며 포효했다.
쩌저적-!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듯, 죽음의 신이 더욱 맹렬한 기운을 터뜨렸다.
육체의 내구성조차 무시한다.
그의 정신을 담은 멜렌 공작의 육체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메마른 점토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위험을 부담했기 때문일까.
준과 엘레노어의 기운이 합쳐진 뇌격의 신성력이 점차 뒤로 밀려났다.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파괴적으로 빛나는 생명력을 꺼뜨리려던 그때.
에이든과 마야가 움직였다.
그그극-
사정없이 흔들리는 에이든의 팔.
듀라한과의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의 일부를 일격에 담아 낸다.
스스로가 가진 영역을, 잠시나마 외부로 돌리는 것.
평범한 검이었다면 감히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졌겠으나, 황혼검은 달랐다.
덜덜 떨리면서도 충분히 에이든의 기운을 감당하고, 평야를 질주하는 코끼리처럼 뻗어 나갔다.
콰드득-!
하늘을 절반쯤 차지한 죽음의 기운에 비하면 고작 한 줌에 불과한 에이든의 오러.
하지만 그 오러가 명백히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며 뻗어나가고, 죽음의 손아귀들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 냈다.
이어서 마야의 영격이 아칸더스의 송곳니를 벗어나 에이든의 검격을 따라 쏘아졌다.
[영참]선조의 영혼들이 가진 죽음을 거부하는 힘.
그것이 다시금 균열을 메우기 위해 움직이는 수많은 손들을 가르며 지나간다.
찰나지간 만들어진 여유.
재차 준과 엘레노어가 죽음의 기운을 밀어내고, 준의 [역천뢰]가 여태까지 꾹 억눌려 있다 터진 것처럼 폭발하여 하늘 높이 비상했다.
콰가가가가각-!!
재차 거짓된 세상의 하늘을 두드리는 [역천뢰].
“노오오옴-!”
진노한 죽음의 신이 무언가 수를 써 보기도 전에, 하늘에 균열이 일어났다.
디멘션 리버스가 만들어 낸 균열은 우스울 정도로 거대한 균열이.
쨍그랑-
유리창이…… 아니,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너머.
밤하늘의 별이 담긴, 진짜 하늘이 보였다.
누군가는 평생을 염원했을, 메르데인의 진짜 하늘이.
“크아…….”
죽음의 신을 구성하고 있던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도자기처럼 깨져 나가며, 육체를 잃은 죽음의 신.
하나 놈은 마지막까지 발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실패하지 않았단 말이다! 나는, 필히 나의 세상을 얻어 내고야 말 것이다!”
이제는 멜렌 공작의 형체를 잃어버린 채, 오연히 본연의 기운으로 돌아간 죽음의 신.
놈이 끝내 이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기운마저 끌어다 쓰며 흰고래 용병단을 덮쳤다.
가짜로 만들어졌으나, 분명 이 세계에는 있던 죽음이…… 일행들을 덮쳐 왔다.
죽음의 신이 본신의 힘을 온전히 녹여 낸 기운.
불시에 터져 나온 그 힘마저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단 한 명.
준 혼자만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로 산다는 것 292화